칼을 쥔 열의 오른손은 붉은 빛을 띠는 바람으로 휘감기고 있었고 바람은 무엇이든 찢을 법한 기세로 그의 팔에서 머물렀다. 이미 열의 오른손 외투와 겉 살갗은 쾌속의 바람으로 인해서 너덜너덜하게 떨어져나가 있었다.
열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서는 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소년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자포자기한 듯 보였다.
“그러게 말 좀 듣지 그랬냐? 엉? 이젠 방법이 없다고”
소년은 왼다리를 오른쪽 앞으로 살짝 꼬아 걸치고 혀를 찼다. 그 와중에도 열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붉은 바람을 아찔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잠시 후 멈출 줄 모르던 바람은 차차 그 강도가 약해지더니 이윽고 사라져버렸다.
바람이 멈춘 열의 팔은 이미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열은 멀쩡한 왼팔로 소년의 멱살을 잡고 말을 쏟아냈다.
“뭐냐? 이 칼은?! 도대체 뭐 길래 내 팔을 이 지경으로..”
“그래서 말했잖아, 건드리지 말라고. 하나 충고해주마”
소년은 당연하다는 눈치였고 열은 자신이 한 행동은 생각도 않고 그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발만 구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열에게 소년은 말을 덧붙였다.
“너는 이제 인간들이 볼 수 없는걸 보게 될 거다. 처음엔 무서워서 까무러치고 살고 싶어 도망 다닐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칼을 쥐는 순간부터 니 녀석의 운명은 바뀐 거다. 행여 네가 앞으로 닥칠 일에 심장마비 걸려 죽어도 나에겐 죄가 없다 ~ 이거야.”
말을 끝낸 소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선 열을 등지고 돌아섰다. 소년이 다시 사라지려는 찰나에 열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니가 말한!! 헌터란 거... 그게 뭐냐?! 말해주고 가라.”
“영어로 Hunt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사냥...?”
“그래.. 요괴 사냥이다. 앞으로 네 주변에는 요괴들이 수두룩하게 보일 거다. 녀석들은 생김새부터 하는 짓거리까지 인간과는 완전 동떨어진 귀신들.. 그렇다고 녀석들이 직접 사람을 해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녀석들은 귀신일 뿐이니까.”
소년은 열에게 충고도 아닌 무시도 아닌 애매한 말을 남기고는 입을 닫았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장갑을 낀 오른손을 꺼내 손을 흔들었다. 가려던 모양이었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으하하 하하하!!!!! 정말이냐? 이제 내 눈으로 귀신을 볼 수 있다고?!?”
“뭐..뭐냐?!!? 겁에 질리거나.. 그래야 하지 않냐 너?!!”
소년은 당황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오른손에 움켜쥔 칼을 보고선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소년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 안 무섭냐?..”
“무서울 게 뭐가 있냐? 어차피 사람도 죽이지 못하는 귀신이라며?”
“아무리 봐도 이상한 녀석 이구만. 허 참.”
소년은 특유의 어이없는 듯한 웃음을 뱉었다. 열은 무릎을 굽혀 찢겨진 외투와 옷가지들을 주워 오른쪽 팔에 대충 동여맸다. 그리고선 다시 한번 쪼그려 앉아 떨어진 만화책을 정리에서 옆구리와 팔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야, 중절모.”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그는 꺼낸 오른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나?’ 라는 입 모양을 지었고 열은 그의 반응에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마 극이다. 니 멋대로 이름 가져다가 붙이지 말라고 !”
“그래, 극씨. 뭐 하나만 묻자. 이 칼로 그 귀신들을 사냥할 수 있는 거냐?”
“말했잖아. 그건 헌터들의 웨폰[무기]이라고..”
열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두어 번 더 끄덕인 열은 몸을 돌려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지켜보던 극은 어리둥절하며 열을 바라보았다.
극의 주변에는 나뭇잎 몇 개가 굴러다녔다.....
열은 오른손으로 칼을 쥔 상태에서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승강기는 도착했고 열은 즐거운 냥 흥얼거리며 12층을 나타내고 있는 버튼을 눌렀다. 고통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였다.
집 앞에 도착한 열은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으아 아아... 뭐야.. 저건?!?”
생전 본 적 없는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 녀석들의 몸이 벽을 관통해서 있는 모양을 봐서는 극이 말한 귀신, 즉 요괴인 것 같았다. 극에게 당부를 들었음에도 불과하고 열은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열을 보고선 두 시선은 그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하나의 시선은 그의 어머니..
또 하나의 시선은 어머니의 뒤에 매달려 있던 요괴였다.
요괴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열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열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미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상태였고 눈을 깜빡거리며 집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감긴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있던 요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열은 ‘ 휴 ~ ’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만화책을 집으려고 몸통을 돌렸다.
-내가 보이냐?
“으아아아악!!!!!!!!!!”
몸통을 돌리자 보인 것은 떨어진 만화책이 아니라 그 위에 서있던 요괴였다.
아무리 요괴라해도 귀신은 귀신 이였으니 빠른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인 것 같았다.
열은 급한 마음에 왼손으로 칼집을 옮겨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냈다.
칼은 휘황찬란한 은은한 빛을 뿜으며 눈을 부시게 했다.
집문은 바람에 의해 벌써 닫힌 후 였다.
빛을 쏘인 요괴는 눈을 깜빡거리며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요괴는 다시 무서운 기세로 입을 열었다.
-니 녀석.. 헌터로구나 !!!!!!!!
말을 채 끝내기가 무섭게 요괴는 오른발로 열의 얼굴을 걷어찼다. 발길질에 맞은 열은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내려갔다. 그는 떨어질 때 부딪힌 허리를 툭툭 치며 신음을 냈다.
“아야~ 극이란 놈이 귀신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했는데..”
-넌 사람이 아니라.. 헌터이지 않느냐 !!!!
어느새 나타났는지 요괴는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들고는 열의 얼굴과 아주 가깝게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놓고는 대답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요괴의 손톱은 열을 향해 덤벼들었다.
[ 챙!!! ]
열은 겁에 질린 채로 감겨있던 눈을 찔끔 떴다. 그는 속으로 ‘ 아 이제 난 죽었구나. ’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귀에는 손톱이 몸통을 찌르는 소리가 아닌 단단한 물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눈을 뜬것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던 것은 방금 전에 만났던 중절모를 쓴 극이었다.
“걱정돼서 따라와봤더니.. 큰 소리 치던 기세는 다 어디 있냐?!”
놀랍게도 극은 열을 바라본 채 오른쪽 손가락 하나만으로 요괴의 손톱을 막아내고 있었고 열이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자 한숨을 쉬며 다시 싸움에 몰입했다.
요괴 또한 또 한명의 헌터의 출현에 당황스러운 모습 이였고 흥분한 나머지 무자비하게 좌우 손톱을 극을 향해 휘둘러댔다. 하지만 요괴의 손톱은 극의 옷자락하나 스치지 못했고 요염하게 공격을 피하던 극은 오른쪽 손아귀로 요괴에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사라져라, 요괴 녀석아 ~”
극은 웃으며 요괴를 바라보며 오른쪽 손아귀를 그대로 밀어버렸다. 그러자 요괴의 머리통은 극의 손짓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열이 보기에는 전혀 힘을 준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한심한 녀석아.. 이렇게 맞으려고 헌터가 된 거냐?! 엉?!!”
극은 비아냥거리며 왼손으로 오른손을 털어내면서 열에게 말을 했다.
사탄추종자
주말이라 한편 올렸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이면 연합고사가 끝나니 틈틈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캐스톨씨께 ㅠㅠ;; 오랫동안 온프를 떠서 탈환을 어디까지 봤는지 까먹었어요 ㅠㅠ;; 죄송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