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침략
주변사람들도, 그리고 자신 역시 지극히 평범한 중학교 3학년이라 믿고 있는 영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항상 들르던 오락실로 향하고 있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더구나 시험기간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그이기에 늘 반복되는 일과였다.
영민은 오락실로 가던 도중, 문득 든 생각에 오락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생각해보니, 오늘 집에 가는 중에 사기로 했던 소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민은 왼손에 찬 시계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서점에 들렀다 오락실에 가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시간에 맞춰 집에 가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했다. 영민은 할 수 없이 오락실을 포기하고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은 4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갓 출간된 일본 소설 때문이겠거니, 하고 생각한 영민은 다시 시계를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영민은 소설 코너에서 인상을 있는 대로 찌그러트렸다. 자신이 사고자 했던 소설의 재고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다지 인기 있는 소설도 아니었는데, 하필 오늘 재고가 떨어지다니. 영민은 한숨을 내쉬며 서점을 나왔다.
서점을 나와, 그가 향한 곳은 방금 전 그가 들른 서점과 항상 경쟁을 하는 다른 서점이었다. 다른 서점들도 얼마든지 있었으나, 자신이 사고자 하는 책은 규모가 작은 서점에서는 잘 들여놓질 않는다. 이 근방에서 규모가 큰 서점이라고는 아까 전 그곳과 지금 향하는 서점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영민은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이 서점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넘쳐나는 정도가 상당히 지나치는 것이다. 도저히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영민은 어떻게든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 틈을 파고들기도 하고,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체 오늘 무슨 책이 나오기에 다들 이러는가. 영민은 한숨을 내쉬며 할 수 없이 집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귀로 생애 처음 듣는, 거대한 폭음이 들린 것은. 영민은 자신의 고막을 연신 두들기는 폭음에 절로 상체를 낮추며 머리를 숙였다.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의 결과였다. 폭음의 잔재가 어느 정도 사라진 듯하자 그제야 영민은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폈다. 서점이 있는 자리를 보는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여기저기에 불이 붙고 있으며, 건물 전체가 검게 타버린 폐허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영민은 그 옆의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건물들은 모두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영민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 모두 어리둥절한 눈으로 검게 타버린 서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 여성의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 여성의 비명을 시작으로, 비명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영민은 도대체 왜 그러나, 하며 서점의 아래를 본 순간,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느라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새하얀 재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는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영민은 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그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겨우 가다듬으며 영민은 고개를 돌아보았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비명을 토해내고, 또 도망치려는 사람들도 보였다. 휴대폰을 꺼내 112에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고 십자가를 꺼내 자꾸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민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 때였다, 다시 거대한 폭음이 들려온 것은.
영민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폭음이 어느 정도 귀에서 떠난 듯하자, 상체를 일으키며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다시 한 번 더 휘둥그레졌다. 서점 옆에 위치한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이유였다.
서점처럼 검게 그을린 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면 그나마 덜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이번에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단 몇 십 초 사이에. 화력이 웬만큼 나오는 폭탄으로도 일으키기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피해를 입히지 않고 그 건물만을 폭파시켰다. 지구에 존재하는 과학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민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비명소리의 근원지가 늘어나고, 커졌으며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들고 다급하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히 늘어났다. ‘테러다, 테러’라며 이리저리 소리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춘 건물 덕에 커다란 충격이 전해져 온 탓일 거라 영민은 생각했다. 그렇게 주위가 난장판으로 변해갈 즈음, 폭발음이 연이어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서점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하여 주위 건물들이 거대한 폭음을 동반하며 차례로 폭삭 주저앉았다. 동시에 엄청난 먼지가 일어나며, 영민의 시야를 가렸다. 영민은 기관지에 들어온 먼지 탓에 눈물을 흘리며 콜록거렸다. 기침이 심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그는 뿌연 먼지 속을 뚫고 나오기 위해 달렸다. 뿌연 먼지 탓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먼지 속을 빠져 나오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영민은 들을 수 있었다.
먼지 속을 뚫고 나오자, 그의 시야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우뚝 솟아있던 건물의 모습이 아닌 건물들의 잔해였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영민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한 마디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널브러진 건물의 잔해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의 잔해 속에서 야망을 싹 틔우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영민이 건물의 잔해를 보며 다시 말을 꺼내려 한 순간이었다. 건물 잔해 밑에서 꿈틀대던 괴물체가 잔해를 해치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습을 드러낸 괴물체는 지구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이족보행을 하는 사람과 비슷했으나, 그 크기가 거의 3층 건물에 육박했으며, 온몸에는 중세전쟁을 다룬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풀 플레이트 메일(Full plate mail)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갑옷의 어깨 부위로는 뾰족한 뿔이 튀어나왔으며, 어둠만이 존재하는 투구 사이로 붉은 안광이 비쳤다. 손에는 조금 뭉툭한 날을 가진 거대한 창을 쥔 채, 괴물체는 서있었다.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괴물체 때문일까. 사람들은 아까 전과는 다른 의미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광경도 이내 터져 나온 하나의 비명에 처참히 깨졌다. 그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이다.
비명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도망이었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해낼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이기도 가장 효율적인 판단. 그러나 그 올바른 판단도 지금은 그다지 효율성 있어 보이지 않았다. 괴물체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핏빛의 붉은 안광을 빛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괴물체의 투구 사이로 기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것은, 공명(共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괴물체가 낸 소리는 허공을 향해 울려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막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청각이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괴롭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리를 조금이라도 듣지 않기 위해 허공에 대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악. 아아아. 연이어 울려 퍼지는, 마치 비명성과도 같은 사람들의 절규 비슷한 외침은 영민의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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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문단 하나 하나를 이렇게 띄어서 쓴 것을 용서하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대사가 하도 부족하다보니 중간에 쉬어갈 공간이 부족해 쓰는 저뿐만 아니라 읽는 분께서도 힘들까봐 일부러 띄어서 썼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연재주기는 불분명합니다.. 본인의 귀차니즘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여하튼, 한 편당 일주일은 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아디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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