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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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7.21 10:24:19 조회: 206 추천: 1 |
"음, 저기 성벽이 보이기 시작하는군."
침을 삼키며 도르드가 말했다. 아직 슈투르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르드들이 서있는 곳에까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슈투르에서 얼마나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별수 없이 뛰어갈 수밖에 없다. 가장 싸우기를 원하는 피라치가 선두로 서서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피라치는 뒷주머니에 꽂아둔 식칼들을 꺼내고 도르드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라켈은 곡예사의 피리를 꺼내들었지만, 유진은 아무 말이나 행동 없이 뛰기만 하였다. 하긴 그녀에게 있어서 무기란 필요치 않으니까. 피라치가 얼마나 기쁜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나의 식칼들을 피로 목욕을 시킬 수가 있겠어!! 아싸라!! 존나 신난다는 거다!!"
그 광기어린 모습을 바라보며 유진이 중얼거렸다.
"처음 봤을 때 익히 알아 봤지만 역시 특이한 녀석이야."
비록 옆의 사람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피라치가 되받아쳤다.
"난 특이해~!!!"
"얼씨구 좋단다."
라켈이 폴짝 뛰면서 연신 자기가 특이하다고 소리치는 피라치를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뭐, 특이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작게 보이던 성벽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일 정도로 슈투르에 다다랐다. 그러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리듯이 크고 뚜렷하게 들려왔다.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너희들 뭐하는 거냐!"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성벽 위쪽이었다. 어떤 병사가 머리만 내민 채 피라치들에게 다급히 물어본 것이었다. 피라치가 말했다.
"아니, 뭐 볼일이 있어서!! 문 좀 열어줘!!"
피라치의 반말에 머리를 내밀고 있던 병사가 소릴 질렀다.
"이 자식아!! 어따 대고 반말이야!! 닥치고 사라져!!"
병사는 사라졌다. 피라치는 발로 땅을 퍽퍽 차며 신경질을 부렸다. 라켈은 뒤에서 따갑게 쳐다보고 도르드는 어떻게 들어갈 수 없을까하며 요리조리 성문을 살폈다. 그런 모습이 워낙 답답했는지 잠자코 뒤에 물러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유진이 말했다.
"후우.. 너희들 뭐하는 거니? 이깟 성벽도 못 올라가?"
라켈이 너 미쳤냐는 듯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유진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무슨 수로?"
"흥, 잘봐."
완전 불가능 하다는 라켈에게 보란 듯이 유진이 아주 가볍게 성벽으로 뛰어 올랐다. 그 모습에 라켈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르드와 피라치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도르드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침착하게 라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드래건이잖아."
쉽게 적응해 버리는 도르드를 보며 라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성벽 위에 올라간 유진이 아래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피라치들에게 말했다.
"내가 문을 열 테니 들어와."
"으아아악!"
"끄아아악!"
약간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난 뒤 몇 분 후에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유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엔 수십 명 정도의 병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라치가 엄지손가락을 펼쳤다. 어쨌든 일단 슈투르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너무 늦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승패가 갈라지지 않았기에 피라치들은 검을 들고 달려오는 병사들을 때려눕히며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집들은 부서지고 사방엔 시체와 피가 흥건하였다. 잔인한 모습에 유진을 뺀 나머지 세 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피융!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날아온 화살들은 이내 유진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다.
"비겁한 인.. 아니 녀석들아! 치사하게 굴지 말고 나와!"
여자로 외형은 변했지만 그 위압감 있는 카리스마는 변하지 않았다. 폭포 호수에서 막 출발했을 때의 귀여운 행동이나 말투는 그저 장난이었던가 보다.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
아무도 없었던 거리에 어느덧 삼심여명의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훈련된 병사들인지 순식간에 피라치들을 감쌌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피라치들이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녀석까지 나타났다. 바로 피라치였다. 약 2주일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 했던 터라 간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유진이 나서려고 하였지만 도르드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냥 피라치에게 맡겨. 녀석.. 아마 몸이 간지러워서 미칠 지경일 거야."
유진이 아쉬운 듯 말했다.
"뭐, 그러지. 어차피 이런 녀석들 천명이 온다 고해도 그리 만족되지는 않으니까."
유진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비록 몸은 인간으로 변하였다고해도 그녀는 드래건이기 때문에. 일단, 유진이 양보를 하였기 때문에 피라치가 원하는 대로 삼십 여명의 병사들을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라치는 양 식칼을 가볍게 휘둘러주면서 말했다.
"나 상당히 지루하거든?"
타닷!
어느새 한 명의 병사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타다다닷! 곧이어 네 명의 병사들이 피분수를 일으키며 쓰러져갔다. 어느새 피라치의 식칼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런 식칼을 바라보며 쓰러진 동료들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머지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후회가 되는가보지? 어서와! 이 새끼들아!! 꾸물대면 다 죽는단 말이다!!!"
서걱! 툭!
오줌을 질질 싸던 병사의 목이 또다시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여태껏 나서지 못하고 있던 병사들이 죽을힘을 다해 피라치에게 뛰어들었다. 그들의 무기는 피라치의 식칼보다 더 크고 강한 손도끼였지만 재빠른 피라치를 때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방만 맞아도 피라치는 날아갈 것 같았지만 병사들은 피라치를 단 한대도 못 때렸다. 이제 한명 남았다. 동료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병사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절망했는지 손에 쥐고 있던 손도끼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무릎을 팍 꿇더니 넙죽 고개를 떨어뜨렸다.
"흑흑흑...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병사의 애처로운 모습에 라켈이 피라치에게 살려주자고 하였다. 하지만, 피라치는 라켈을 밀쳐내며 말했다.
"안 돼. 녀석들은 우릴 죽이려고 했어. 고작 우리가 어린 아이게 불과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저 새끼들은 잘못 건드린 거지. 만약 우리가 약했다면 반대로 우리가 죽었을 거야. 난 그래서 이 새끼를 살려줄 수 없어. 알았어? 잘 가라. 임마."
푸욱! 애처롭게 두 손을 싹싹 빌던 병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의 등에서 컬컬컬 피가 흘렀다. 살려주자던 라켈은 그 광경을 미처 못 보겠던지 몸을 뒤로 돌렸다. 도르드와 유진은 그냥 무덤덤하게 지켜보았다. 도르드는 오랫동안 그 모습을 봐와서 익숙한 것이었고 유진은 인간의 죽음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켈은 달랐다. 피라치와 도르드처럼 그리 강하지도 않은 라켈은 적어도 그 둘보다 인정이 많다. 그래서 애절하게 살려달라고 구걸하던 병사를 살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어도 말이다. 갑자기 유진이 말했다.
"많은 수의 인간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어. 피라치."
피라치가 말했다.
"그럼 더 좋지. 우리가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내가 느끼기에도 아주 쌘 인간이 한명, 아니 두 명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어."
"뭐, 상관없어!! 오라고 그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백 명, 아니 수천 명도 넘어 보이는 병사들이 떼거지로 나타났다. 그중에 수장으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목 없는 주검들과 무릎을 꿇은 채 죽은 병사를 바라보며 원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바로 앞에 서있는 피라치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도르드에게 물었다.
"너희들 이자들을 죽인 녀석들을 못 보았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도르드가 모른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요, 저흰 못 봤어요. 우리도 방금 이 곳에 왔기에..."
"정신이 없는 아이들이군. 얼른 이곳을 떠나라!! 여긴 위험한 곳이야. 언제 너희들이 죽을 지도 모르니 슈투르를 당장 떠나라! 이봐라!! 이 아이들을 얼른 내보내!!"
"네! 대장님! 너희들 이리로 따라와!"
도르드와 라켈, 유진은 그 병사를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피라치만은 그러지 않았다. 제발 무사하게 피해가길 원하는 라켈은 피라치에게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피라치는 오히려 대장이라는 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도르드가 아차 하며 뭔가 말하려던 찰나에 피라치가 더 빨리 식칼을 꺼내들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식칼을 보면서 대장이라는 자가 말했다.
"어린 녀석에게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군. 설마, 너희들이 죽인 것이냐?"
도르드가 말했다.
"저희는..."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대장이라는 자가 다가와서는 도르드의 멱살을 잡아서 하늘 위로 힘껏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그 덕에 도르드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려보는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대장이라는 자가 으르렁 대며 말했다.
"너희들이 죽인 것이냐고 묻지 않느냐."
"으윽……."
가히 최강이었다. 제카 기사단의 리더인 페랄라이나 붉은 전갈 용병대의 총대장인 캘리캑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쳐지지 않는 위압감을 뿜어대고 있었다. 결국,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켈이 그자에게 말했다.
"저흰 안 죽였어요!"
"어떻게 그것을 믿지? 그럼 저 녀석의 피 묻은 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끄으으. 날 열 받게 하지 마라!! 내 병사들을 죽인 대가는 엄청나게 치를 것이다!! 이젠 너희들이 죽인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열불이 나서 못 참겠다!! 으랏챠!!"
쿵! 미처 손도 못 써보고 도르드가 땅에 처박혔다.
"으으윽.."
"도르드!!!"
라켈이 신음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는 도르드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피라치가 이를 갈았다. 분명 녀석에게 칼을 겨누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뭔가가 피라치의 몸을 잡아두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유진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장이라는 자는 도저히 귀여운 여자 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얼굴로 노려보며 다가오는 유진을 보며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귀여운 여자 아이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는 거야."
"닥쳐라."
귀여운 여자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황당해하며 그가 말했다.
"뭐라고? 하하하."
"귀가 먹었나? 닥치라고."
"하하하하!! 보았나? 나보고 닥치라는데?"
그자가 두 손을 번쩍 들으며 졌다는 듯이 주위의 병사들을 보고 황당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하자 병사들도 그를 따라 웃었다. 한껏 웃은 뒤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유진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귀여운 아가씨."
"닥. 치. 라. 고."
콰앙! 그자의 주먹이 땅에 박혔다. 엄청난 장면이었지만 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당초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너무 무례하게 군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태도도 점점 바뀌어갔다.
"흥, 수염이나 깎으시지. 더러워. 우웩!"
"이..이!! 참을 수가 없군. 여봐라!! 이 년을 죽여라!!"
"네!!! 대장님!!"
그의 말에 수많은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유진에게 다가갔다. 창을 든 병사들은 서서히 유진을 둘러쌓다. 날카로운 창날이 유진의 온몸을 겨냥하였다. 하지만, 절대절명의 순간임에도 유진은 무표정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소로웠던지 그가 창으로 유진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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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슈투르 : 제카의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가장 큰 성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근처에 이스트 해협과 사우스 해협이 만나는 이우트 해협이 있으며 황제의 측근인 실테우너 카를로스 백작이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또 제카 기사단 4대대의 주둔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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