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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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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8.17 08:49:22 조회: 240 추천: 1 |
낙화 74년 1월 4일
마룡문의 문지기의 직책을 맡고 있는 강은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기강이 잡혀있는 그의 모습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 곳을 지나가지는 않는다. 화산파의 필적할만한 크기의 문파였지만 이런 겨울에 많은 사람이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강이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서있었지만, 개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점점 긴장이 풀릴만도 했고, 결국 그는 어깨를 푹 내리며 자세를 풀어버렸다.
“으으……힘들다…….”
강은 그제서야 추위를 느꼈는지 사지를 떨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이 아닌 것처럼, 그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 되었다. 잠시 동안 그러고 있던 강은 자신의 창을 꼬나쥐고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 내가 잘못 본건가?”
아직까지 강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비볐다. 분명 자신이 본 것은 검은색의 형체였다. 하지만 그것에서는 살기도 아닌, 거대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주위를 향해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내뿜던 강은, 자신의 모든 기력이 다하자 털썩 주저 앉았다.
“크으……. 허억?”
“여어.”
주저앉아 있던 강의 앞에, 갑자기 검은 형체가 떨어져 내렸다. 분명 인간의 형태였지만 어째서인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은 자신을 향해 친근하게 손을 내뻗는 그 존재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목 뒤쪽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차가운 눈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마룡문 용황전(龍皇廛) 대정원(大庭園)
밖에 있던 일을 안에서 모르게 하라……라는 말은 없는 것 같지만, 아무튼 현재 본전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눈을 맞으며 뛰어 노는 작은 강아지들과 어린 소녀 한명.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대며 웃는 것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화를 타오르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색의 물체.
“많이 컸네…….”
무성한 소나무 위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눈 왼쪽을 검은색 천으로 휘어감은 사내였다. 검은 산발의 머리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서 왠지 괴기스러운 모습을 풍겼다. 그리고 검은 천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글씨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녀가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용황전 내전(內殿)
정기회의 시간이 아닌 용황전의 내전은 사람 한명 없었다. 검은 천의 사내는 그 곳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정 짓고서 아무 스스럼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내전의 상석(上席)의 주위를 한바퀴 빙 돈 다음에, 뒤에 조각되어 있는 쌍룡(雙龍)을 향해 약간의 내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키기긱
그러자 기괴한 기계 마찰음과 함께 막혀 있던 것 같았던 내전의 뒷벽 일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살며시 몸을 일으켜 그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둡군.”
그가 들어오자 한 말이었다. 불씨 하나 없는 칠흑같은 어둠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얼굴로 오른손을 든 다음에, 잠시 동안 내력을 불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오른쪽 눈이 황금색으로 번뜩였다가, 다시 그 빛은 사라져 갔다.
“됐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전의 내력을 불어넣어서인지 그의 눈은 그럭저럭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넓지 않은 복도에는 검, 창, 도와 같은 무기들이 수두룩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마기나 요기, 선기까지 뿜어내고 있는 명품들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한번씩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거 참, 아까운 것들이 썩어가는군.”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는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알수도 없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긴 통로였다. 게다가 간혹 있는 갈림길, 하지만 그는 아주 능숙하게 움직여갔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선기에, 그는 씁쓸한 듯이 말했다.
“사파에 선기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통로 끝에 자그마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 불빛을 보고서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점점 갈수록 그의 발을 빨라졌고, 이윽고 아예 달리기 시작한 그의 움직임은 엄청났다. 순식간에 꽤나 긴 통로를 주파한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문짝이 하나 있었다. 마룡문의 상징인 쌍룡이 새겨져 있는 금빛 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그는 살며시 손을 들어 문을 열었다.
끼익
듣기 싫은 마찰음과 함께 무거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점점 불빛을 환해졌고,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약간 적응이 된 듯하자 살며시 눈을 뜬 그의 눈에는 푸른빛을 띄고 있는 작은 구슬이 작은 단상 위에 약간 떠 있는 모양이 비춰졌다.
“만년청수사련단(萬年淸水思戀團)…….”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눈에 비치는 사련단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기에 그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갑자기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향해 다가가 아무 제재 없이 그것을 손에 쥐었다.
“너무 싱겁군……?”
푹
뭔가가 꿰뚫리는 듯한 소리에 그는 무심코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는 붉은 피가 꿀렁거리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자 그의 다리가 힘없이 풀려 버렸다.
“크윽……!”
그는 신음을 흘리며 복부에 박혀 있던 것을 빼버렸다. 굵은 바늘처럼 보이는 암기.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너무 쉽다 했어…….”
“성휘, 방심은 금물이라고 했을 텐데.”
“아버지…….”
성휘의 눈앞에는 백발을 길게 기른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성휘의 눈에 있던 천만 없앤다면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하게 생긴, 바로 그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마룡문의 문주, 천성황이었다. 성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올 줄 알았나요?”
“아니.”
“그럼?”
“왠지 심심해져서.”
“…….”
그의 말에 성휘는 아픔조차 잊은 채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크게 웃어 제꼈다.
“크큭, 역시 아버지야. 못 당하겠어.”
“3년 동안 무엇을 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알 필요 없어요. 어차피 죽일 거면서.”
성휘는 다 필요 없다는 듯이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성황은 싸늘한 눈초리로 성휘를 노려보며 방 한구석에 있는 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말하지 않는다면 10년 동안 여기에 매달아두고 고문해주마.”
“…….”
질린 듯한 표정의 성휘.
“에에, 말하면 될 것 아니에요.”
“잘 생각했다.”
성황은 뿌듯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성휘는 힘이 딸리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쪽 체질이 아니라서 말이에요. 서방으로 가봤거든요?”
“으음.”
“근데, 갸렌 사막에서 거인을 봤어요.”
“거인?”
“네. 심심해서 한번 잡아봤거든요? 근데 그 안에 사람이 타고 있더군요. 색목인들 말이에요.”
성휘는 과장된 모습으로 그 상황을 재현하다가 배에 상처가 욱신거렸는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좀 지식이 있잖아요. 폐관 수련할 때 색목인들의 언어를 좀 배워봤는데.”
“이 자식. 폐관 수련 때 그따위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아아, 좀 들어보라니까요. 뭐냐, 그러니까 그 녀석들 말로 그 거인을 레이븐(Raven), 우리말로 하면 까마귀...정도로 해설할 수 있을걸요.”
“까마귀?”
성황은 눈을 약간 찌푸리며 반문했다. 처음으로 나온 그의 반응에 성휘는 신났는지 다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네. 별로 까마귀를 닯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저는 그들을 곱게 돌려 보내고, 레이븐인가 뭔가를 해부해봤거든요?”
“사막에서?”
성황이 무덤덤하게 물어봤지만 성휘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에에이, 제가 미쳤어요? 당연히 들고 왔죠.”
“거인이라며.”
“아……정말, 사풍진(砂風陣) 있잖아요, 문주면서 그것도 몰라요?”
“아아, 맞아.”
성황은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성휘는 한심하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상당히 재밌는 구조였어요. 그러니까, 색목인들의 내공을 구슬처럼 집약해서 집어넣은 거라고나 할까? 그걸로 움직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번 만들어보려고 한 2년 동안 노력했죠.”
“그래서? 사련단은 왜?”
“에에, 이해 다 가셨잖아요. 구슬이라 하면…….”
애교를 떠는 듯한 성휘의 말에 성황은 눈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결론은, 그걸 가지고 튀겠다는 거 아니야.”
“잘 아시네요. 역시 아버지에요.”
“그럼,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지도 알겠구나?”
“물론이죠.”
성황은 성휘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짓더니, 자신의 긴 손 소매자락에서 부채 2자루를 꺼내 펼쳤다. 그 모습에 성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에, 아버지. 언제 부채를 들고 다니셨어요?”
“옛날부터, 네 녀석이 엄마 젖 먹을 때부터다.”
“…….”
“나는 안봐준다. 알고 있지?”
“에이, 다쳤는데.”
성휘는 이미 지혈이 끝난 배를 가리키며 앙탈을 부리듯 말했다. 성휘는 다시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성휘야.”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니?”
“글쎄요.”
성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성황의 두 눈이 번뜩 떠지면서 그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 큰 사내자식이 애교부리는거다!!”
성황의 부채에서 붉으스름한 기운이 성휘를 향해 쇄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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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먼저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녀석입니다.
리메이크 중입니다만....
여기서도 천성휘가 나옵니다. 물론 동일인물은 아닙니다.
왜 여기도 나오나면....
제가 이름 짓기를 귀찮아 해서, 한번 지어놓은 캐릭터로 몇번 우려 먹기 때문입니다.[...]
뭐, 괜찮겠지요.[머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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