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잠꼬대
|
날짜: 2004.08.29 01:18:02 조회: 222 추천: 1 |
「여신은 어느 편일까?」
작은 풀밭 언덕 위에서 무릎을 가슴으로 모아 앉아있던 그녀가 나에게 가만히 물어왔다. 시선은 여전히 먼 하늘의 달만을 향한 채... 가슴이 아파온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차가웠다.
「상관없어. 난 그저 일족의 명예를 걸고 싸운다. 그것 뿐이야」
이게 아닌데... 내가 싸우는 이유는 절대로 이게 아닌데... 그래, 처음의 목적은 우리 일족의 명예와 부흥... 하지만 지금은, 지금의 내가 싸우는 이유는...
「일족의 명예... 싸움의 이유...」
내 말을 조심스레 되새겨보던 그녀가 무릎 사이로 조용히 얼굴을 묻는다. 가슴이 미어진다. 결코 동정심 따위가 아니다. 내가... 내가 아픈 것이다.
「좋겠다... 린은...」
볼이 뜨겁다.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흐른다. 나는... 울고 있는 건가?
「세실리아 언니, 이 남자 울고 있어요!」
귓가에서 작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목소리가 말하는 남자란 아마도 나겠지?
「정신이 드나요?」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 살짝 눈을 떠보니 검은 머리의 미녀 엘프가 허리를 숙여 날 내려다보고 있다. 눈부신 햇빛을 뒤로 한 엘프는 참 아름다워 보이고, 머리와 마친가지인 검은 눈은 마치 맑고 깊은 호수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눈이었다.
「아...」
엘프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 아직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다시 흘려내렸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황급히 일어나 손등으로 눈가를 대충 문지른 다음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나무로 된 작은 방의 한 침대 위였다. 아마도 여긴 여관인 모양이지?
「괜찮으세요?」
엘프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엘프의 말을 깨끗히 무시한 상태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당황한 나머지, 매우 어벙한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네? 아, 네 괜찮아요. 그보다 여긴 어디죠? 그리고 당신들은...?」
「여긴 산 속의 마을 바노에요. 음... 우선 저희 소개부터 하죠. 저는 세실리아 이브던트라고 해요. 그리고 이쪽은 레니 미에르에요」
「안녕?」
그제서야 엘프, 즉 세실리아 옆에 서 있는 붉은 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년는 붉은 단발이 잘 어울리는 큰 눈과 하얀 얼굴이었는데 무척 생기발랄해 보였다. 아마 여린 목소리의 주인공인 모양이다. 잠시 레니라는 소녀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나를 보는 세실리아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녀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의 검은 눈은 왜 자기소개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듯했다.
「아, 저는 린이라고 해요」
이걸로 벌써 두번째군. 근데 내 이름이 린이었나? 세실라의 눈빛에 당황해서 급히 대답하긴 했지만 왠지 낯설다.
「린 씨? 그럼 성은 어떻게 되죠?」
아까 이름을 대답하면서부터 설마했는데... 아무래도 설마가 사실인 것 같아. 난...
「기억이 안 나는데요?」
「네?」
놀란 세실리아의 반문. 하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일까? 이름 말고는 기억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니! 아니, 린이라는 이름도 정말 내 이름일까? 이건 도대체... 하지만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태연한 나였다. 이게... 이게 내 성격인가? 이런... 성격까지 잊은 건가?
「저... 린 씨? 기억이 안 난다니 그게 무슨...」
「모르겠어요.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전혀...」
세실라의 말을 끊으며 대답한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기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듯이..
「저기... 음... 오빠?」
깊은 생각에 잠긴 나를 부른 건 다름아닌 레니였다.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다가 오빠라고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무슨 일이죠?」
흠칫! 레니가 잠시 주춤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존댓말을 쓰니 상당히 어색한 모양이다. 하지만 레니는 다시 생글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말씀하세요」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저렇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까? 비록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어쩌면 내 기억의 단서라도 알고 있는 걸까?
「저... 조심해야 되요」
「그게... 무슨 말이죠?」
조심하라니? 무엇을? 나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숙이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레니는 눈을 보름달처름 동그랗게 뜨더니 팔을 위아래로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오, 오, 오빠는 지금 알몸이라고욧!」
에... 알몸? 그, 그러고보니 난 지금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하체도!
「이, 이건 도대체 무슨... 왜 제가 알몸으로 이 곳에 있는 거죠?」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외쳤다. 레니는 그런 나를 보고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까르르 웃기 시작해다.
「모든 걸...」
갑작스렇게 시작된 세실리아의 말에 레니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나와 레니는 동시에 세실리아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세실리아가 다음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모든 걸 알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눈군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다만 저희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당신이 이 곳에 있는 이유 정도입니다」
「... 이유란 게... 뭐죠?」
놀랍다. 정말 놀랍다. 어떻게 이렇게 차가울 수 있는 걸까? 알려준다는데, 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무엇보다 내 말투. 흥미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목소리다. 레니도 내 말투에 놀란 듯 크고 동그란 눈으로 나와 세실리아를 번갈아보았다.
「이유를... 말해주시겠습니까?」
「이틀 전의 일입니다」
햐... 나도 나지만 세실리아도 참 대단하다. 엘프란 다 이런가? 하긴... 숲의 종족 엘프는 인간과 많이 다르다. 그들운 조화로운 느린 종족... 마치 숲과 같은... 세실리아는 엘프구나. 어? 그런데 난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던 것 아니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나는 이 의문들은 잠시 접어놓기로 하고, 세실리아의 말을 계속 듣기로 했다.
「저희는 모험가들입니다. 당신을 발견한 그 날도 저희는 한 낡은 유적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곳을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들의 목적지는 유적이 아닌 바노아 영지였다. 바노아 영지는 이 나라의(나라 이름은 세이트리아라고 했다) 북쪽에 있는 조그만 영지다.
「이 세계는 세이트리아, 아틀라스, 가이안의 세 개의 대륙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륙 이름을 곧 나라 이름으로 쓰고 있어요. 그 중 저희 세이트리아는 대륙의 80%가 산과 들판으로 이루어진 푸른 대륙으로, 남쪽으로 가이안과 붙어 있는데 가이안은 사막 대륙입니다. 해안가 근처의 항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막이죠. 그리고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면 아틀라스 대륙이 나오는데, 바다로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문화의 독창성이 강한 곳입니다. 각 나라는 국왕이 다스리는데, 이 세이트리아의 국왕은 아르슈 세이트리아 국왕입니다. 각 대륙은 매우 넓어 대륙 하나만 둘러보는데도 1-2년이 걸립니다」
「와! 굉장히 넓군요!」
「네. 게다가 저희 세이트리아는 500년 전의 이스트 전쟁의 역사를 가진 대륙입니다」
「이스트 전쟁이라니, 그게 뭐죠?」
「슬픈 역사에요. 500년 전 아틀라스에는 동양인이 살고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세이트리아에서는 마법이 완성되고 몇몇 마법사들이 동양, 즉 과거의 아틀라스 대륙...」
「하아아암...」
세실라아의 역사공부가 한참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내 옆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에는 눈을 반쯤 감은 레니가 침대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레니는 세실리아의 말이 끊기자 세실리아를 향해 고개를 들더니 곧 사태를 알아차린 듯 배시시 웃었다.
「방해됐어요? 헤헤... 계속 해요. 세실리아 언니」
「레니, 린 씨를 간호하느라 고생했으니 한숨 자도록 해요. 그리고 린 씨? 얘기를 계속하죠. 아틀라스 대륙의 살던 동양인일 알게 된 마법사들은 그들과의 융합을 시도했으나, 자존심 강한 동양인들은 이를 거절하고 전쟁일 일으켰고, 2년간의 긴 전쟁 끝에 세이트리아의 승리고 끝이 났습니다. 여기서 본론으로 돌아와 당신을 발견한 곳은 동양의 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유적 안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
전에 올렸던 것은 지우고 내용을 조금 더 첨가하여 다시 썼습니다 ^ㅡ^
소설 쓰는거 보기보다 상당히 힘드네요...
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쓰렵니다 ^ㅡ^;;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