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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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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9 21:31:08 조회: 2,059 추천: 0 |
[18]
집주인은 스프와 빵이라는 간단한 메뉴를 내놓았다. 디저트는 예상되로 시럽이 뿌러진 애플 파이.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던 키리아는 제외하더라도, 넬은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불청객들의 출현이 싫지만은 않은 듯한 모습의 캐시와 조나단의 모습을 보고서 그것을 곧 잊어버렸다. 파이를 만드는 레서피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와 먹는내내 '맛있다.'를 남발하는 캐시로 인해서 집안의 분위기는 씨끌벅쩍해졌다.
"...뭐야?"
자신의 몫을 다 먹어치우고서 오빠의 파이를 빤히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조나단이 말했다. 딴청을 피우며 동생의 의도를 애써 피하려다, 결국 기세에 눌러 패배를 인정한다.
"쳇, 알았어. 주면 되잖아."
"에헤..."
나이프로 자신 파이를 반으로 갈라 동생의 접시 위에 올려준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서 흐뭇한 표정를 짓는 넬과 네프리티나. 모두가 단란하고 밝은 분위기에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거기에 동화되지 못했다.
'...내가 뭐하러 여기서 이런 밀가루 덩어리를 먹어야 하는거지.'
키리아는 소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먹고싶지도 않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았다. 넬의 표정을 바라본다. 자신과 있을 때 보다도 더 밝은 얼굴이 보인다. 뭔가 기분이 더 침울해진다. 하지만 키리아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넬이 모습이 어째서인지 기뻐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만 없다면,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질텐데, 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떠올린다. 가슴 어딘가가 아파온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키리아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대체 뭐지, 인간이란건...?'
오랜 시간을 살아온 키리아의 지식은 보통의 인간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그녀는 상식이 이상하리만큼 부족했다. 그것은 자신 이외의 지적생물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며, 설사 마주치더라도 그것은 금새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나단과 캐시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동생의 입가에 묻은 시럽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자상한 오빠의 모습. 방금 전에 자신의 몫을 캐시에게 나눠준 조나단의 행동을 키리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요괴라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앙풰에서 흘러온 자'에게 형제라는 의미를 가진 개체가 존재할리는 만무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것을 약탈할 뿐, 절대 배풀지는 않는다. 자신이 소유한 무언가를 남에게 넘긴다는 행위는 복족을 뜻하기 때문이다. 키리아는 남매의 모습을 관찰하며, 생각에 빠졌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일까? 그 행동에 무슨 이득이 있는 것일까? 뇌가 비약적으로 크게 진화한 이족보행 영장류. 지적 수준이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높아, 보다 효율적인 사건해결능력을 가진 생물. 수명은 백년 남짓이고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월정도의 포유류. 사회를 구성하여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그들에겐 먹이를 찢여줄일 발톱과 이빨이 없지만, 지식이라는 창과 지혜라는 방패로 무장하고서 자신들보다 신체 능력이 우세한 동물을 굴복시킬 수 있다. 그것이 키리아가 알고 있는 인간이란 생물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해하기 부족했다. 지금 키리아가 목격한 남매간의 '양보'처럼 사소한 것 조차도 요괴의 입장에서 본다면 알 수없는 행동이었다. 다시금 '인간은 대체 뭐지?' 하고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걸까?" 하고 덧붙인다. 요괴, 그러니까 '앙풰에서 흘러온 자'인 자신은 여지껏 사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단 두가지 유형으로만 인식했다. 그것은 생손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구별방법이었으며, 키리아는 그 사실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먹고, 거슬리는 것은 제거한다는 단순한 사고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넬이라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특이한 인간을 만난 이후로 키리아의 식별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 불필요한 생각이 많이 지면서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고, 그만큼 행동에 장애가 발생했다. 지금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어째서 이 모습을 유지하는 있는가? 자신에게 질문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어. 나는 인간이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의류를 몸에 걸치고서 그들의 언어를 구사한다.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소녀의 형상, 그러나 속은 전혀 다른 생물이다. 키리아는 넬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가 멀게 느껴졌다. 자신과 다른 개체들 사이에서 키리아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니야, 안먹으면 저 주세요."
"야, 넌 그만먹어도 되잖아!"
키리아가 파이를 한 입도 먹지않은 것을 본 캐시가 키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동생이 욕심을 부리자 조나단이 저지한다.
"저기... 입에 않맞으신가요?"
키리아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서 네프리티나는 자신의 요리에 혹여나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며 키리아에게 물었다. 거기에 넬의 시선도 키리아를 향했다.
"키리아양?"
집안의 모든 사람의 눈동자가 키리아를 비추었다. 적의나 악의가 전혀없는, 순수한 호의만이 담긴 걱정스런 시선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 키리아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전에는 누군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불쾌했을텐데, 넬의 배려가 귀찮고 짜증스럽게 느껴졌을 텐데. 지금은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역시 부담스러운 것은 마찮가지. 키리아는 접시에 담긴 파이조각을 포크로 집어, 한입 배어물었다. 딱히 먹고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과육이 씹히며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져간다. 처음 먹어보는 파이은 꽤 자극적인 맛이었다. 키리아가 말할 소감은 정해졌다.
"맛있어요."
키리아는 감상은 진심이었다. 강렬하고 기묘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것은 미각 세포에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다행이군요, 이번 애플파이는 꽤 신경써서 만든건데 맛이 없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지 뭐예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키리아에게 제작일화 따위를 설명하는 네프리티나. 넬도 피식하고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캐시와 조나단은 아직도 손님의 파이를 소유할 권리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있다. 키리아는 놀랐다. 고작 음식 따위로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다니. 다시 포크를 들어, 남은 파이를 입으로 가져다댄다.
"맛있어요."
다시 찬사를 내뱉는다. 키리아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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