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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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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9 21:31:40 조회: 1,960 추천: 0 |
네프리티나는 문 앞까지 손님을 배웅하고서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넬이 손을 흔든다. 네프리티나의 뒤에게 얼굴만 빼꼼 드러낸 캐시도 거기에 맞춰 순을 흔들었다.
"그 아저씨 착한 사람이었어요."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어주지 않던 캐시가 넬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자 네프리티나는 의외라는 얼굴을 지었다. 하지만 곧 미소로 되돌아온다. 자신이 보기에도 넬이라는 남자는 좋은 사람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응, 그렇구나."
캐시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이제는 시아에서 사라져버린 그들의 모습을 찾아본다. 캐시는 엄마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린다.
"그치만..."
"음?"
캐시가 말끝을 흐렸다. 네프리티나는 아래로 시선을 향했다. 캐시가 손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라색 언니...얼굴은 예쁜데 무서웠어요."
"무섭다니, 그런 소리하면 못써."
네프리티나는 그렇게 호통치긴했지만, 사실 자신도 키리아에게 기묘한 불안감을 느낀 것을 부정 할 수는 없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도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에 민감하다. 여지껏 아이들을 길러운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캐시가 '무섭다.' 라고 말한 것은 아마 괜한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하고 네프리티나는 생각했다.
"엄마?"
엄마가 먼 곳을 주시하며, 무거운 표정을 짓고있자, 캐시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자, 이만 들어가서 잘 준비해야지?"
"네에-"
어느새 원래의 온화한 얼굴로 되돌아간 엄마를 확인하고서야 캐시는 집 안으로 달려갔다. 네프리티나도 문의 손잡이를 잡고서 몸을 돌렸다. 문이 닫히기 직전, 네프리티나의 눈동자는 무엇을 결심한 듯이 희미한 빛을 낸다. 넬과 키리아가 걸어간 거리는 주황색의 붉은 황혼이 비춰지고 있었다.
키리아양과 여관으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키리아양이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써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기분좋아 보인다. 가벼운 걸음을 옮기는 키리아양을 보니, 내 의도대로 기분전환이 잘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 그녀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던가? 너무 오랫동안 밖에 나와있었으니, 산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오늘 하루가 아쉽게 느껴지는 찰나, 나는 곧 그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나는 하루의 시간을 버리고서라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 예술을 볼 수 있었다. 불의 요정이 지상에 내려온 것만 같은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키리아양이 발을 내디딜 때 마다 찰랑거리는 자색의 머리카락, 그 흐름에 따라 주변이 붉게 물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 홍련의 천사가 보여주는 행보에 현혹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
완전히 지쳐버렸다. 몸의 부피를 억지로 인간 형태에 끼워 맞추고 생활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인간으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평소보다 몇배는 체력소모가 크다. 하지만 나는 신체보다 정신이 더 지쳐버렸다. 오늘 하루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여관에 있는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 위에 올려진 배게에 머리를 묻으며 쓰러졌다. 어째서인지 넬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벙한 표정의 넬, 믿음직한 표정의 넬, 걱정스런 표정의 넬, 그리고 미소를 짓는 넬. 이상한 인간, 참견이 심하고 착각이 수준급인 귀찮은 녀석. 멍청하고 둔해빠진 주제에 자신보다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보같은 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넬의 모습을 모두 떠올렸다.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원인은 모두 이 '넬 노튼' 이라는 사제 놈 탓이다. 하지만 역시 살의는 생기지 않아. 넬은 틀림없이 나에게 있어서 거슬리고 방해되는 존재임이 틀림없는데도, 나는 녀석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소화가 끝날 때까지 흥미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인간 놀이를 즐길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덕분에 생각해야할 것들이 늘어났다. "넬, 이 망할녀석", 하고 인간의 욕설을 내뱉어본다. 물론 옆 방의 넬이 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각이 발달됐을리는 없을테지. 혹여나 싶어 목소리를 줄여 말하긴 했지만, 만일 들었다고 해도 별로... 아니, 아마 녀석에게 '공'이란 걸 던졌을 때 처럼 나에게 숙녀의 행동거지에 대해 설명하려 할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써 목소리를 줄일거, 뭐하러 말한건지... 비효율적인 행동을 해버렸다. 며칠간 인간이랑 어울려다니더니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돌아버린건가? 분명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나는 웃고있었다. 역시 어느 한 부분이 심하게 고장나 버린 것 같다.
어둠이 몰려들어 마을의 생기를 빨아들인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침묵의 대지에는 이제 황백색의 달만이 홀로남아 빛을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회색 구름의 행렬이 하늘을 뒤덮는다. 순간 그 검은 장막들 사이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새라고 하기엔 너무도 컷다. 거대한 그림자가 지상을 뒤덮었다. 그것은 고요한 어둠의 하늘을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않는 높은 창공에서 검은색의 '그것'은 다섯개의 불길한 푸른 빛을 뿜어내며, 모두가 잠든 마을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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