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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포세이도스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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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포세이도스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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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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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6.06 05:57:56 조회: 579 추천: 0 |
안녕하세요?
제가 마스터 오브 판타지 라는 게임
100일 기념 백일장에 낸 소설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포세이도스의 소녀 ]
1.
- 라.. 라.. 안녕하세요..
그대의 .. 파란.. 눈은 .. 하늘의 별 처럼...
반짝 .. 반짝 .. 라라... 라라 ..
나도 그대.. 따라 .. 빙글 .. 빙글..
라라 .. 언제나..언제나.. 랄라라..
함께 .. 함께 ..
춤춰요.. -
삐걱.. 삐걱 ..
다 낡아 삐걱거리는 갑판. 여기저기에 이가 나간 갑판 사이사이 이끼가 끼어 몹시 지저분해 보인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는 위로 거미만이 분주하게 집을 치고 있다. 나무기둥에 메여있던 돛은 다 찢어져 이제 축 쳐져 버렸다. 굴러다니는 부러진 칼과 깨진 유리병들이 여기저기로 나뒹군다. 파도가 칠 때마다 조금씩 뜯겨나가 이젠 뼈대만 남아버린 용골까지.. 이제 배라고 불릴 수도 없게 되어 버린 이 물체는 어딘가 음산하다. 갑판을 따라 가다 창문이 깨지고 못이 튀어나온 문을 지나 역시 다 깨져버린 계단을 내려가자 긴 홀이 나온다. 과거에는 화려했을 듯 한 홀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이제 폐허일 뿐이다. 홀의 양쪽 벽에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품격 있는 창틀과 깨지지 않았다면 집 한 채만한 유리가 달렸을 창이 차갑게 서있다. 에메랄드와 루비 빛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대리석 바닥에도 뽀얀 먼지가 두껍게 층을 이루고 있다. 홀의 중앙에는 구 모양으로 양쪽으로 사자장식으로 가득한 촛대가 솟아나 있으며 촛대마다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이는 유리가 주렁주렁 달렸을법한 샹들리에가 떨어져 박살 나 있다. 그 파편들을 지나 홀의 끝에는 반구형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 되 있고 계단 위에는 무대가 있다. 그 무대 위.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그 곳. 누군가가 있다. 아니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 라...라 .. 안녕하세요..
꿈 속 인 듯 홀 안에 조용히 메아리치는 그 소리는 영원처럼 그 곳을 멤돈다.
- 그대의 .. 파란.. 눈은 .. 하늘의 별 처럼...
반짝 .. 반짝 .. 라라... 라라 ..
누구든지 들으면 울고 싶어 질 만큼 슬프게 울려 퍼지는 노래.
- 나도 그대.. 따라 .. 빙글 .. 빙글..
라라 .. 언제나..언제나.. 랄라라..
배가 흔들린다. 노래의 슬픔에 배가 우는 듯 삐걱거린다. 배가 춤을 춘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혼자 있었어. 라고 외쳐댄다.
- 라라 .. 언제나..언제나.. 랄라라..
함께 .. 함께 ..
춤춰요..
2.
두 남자가 낡아빠진 배 위에 서있다. 그 배 앞엔 그들이 탄 배가 점으로 보일만큼 커다란 벽이 있고 두 남자는 그 벽 꼭대기에서 그들의 배로 내려온 로프 앞에 망설이고 있다.
“ 펜릴.... 정말 여...여..기가 거...거..거....거기가 맞..냐? ”
“ 커빈. 니가 한번 둘러봐. 이 배는 ‘이게 바로 유령선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 같잖아..? ”
“ 그... 그렇긴한데... 그..그래 그게 맞긴 한데 ... 꼭 가야...겠..냐? ”
“ 너 이번에 도박빚이 얼마 있더라..... 한 500만 리비쯤 되냐? ”
“ 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우리야 뭐 항상 쫓기니까. 이 놈에 돈이 문제야. ”
“ 그럼 됐네. 잔소리 말고 따라와. ”
펜릴이라 불린 빨간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얼굴 선이 고운 전형적인 미남자인 남자가 먼저 로프를 잡고 끙끙대며 올라갔다. 겁먹은 듯한 표정을 한 커빈도 마지못해 펜릴의 뒤를 따른다.
“ 페..펜릴!! 같이가! 무섭다구!!!! ”
“ 쓸모없는 자식! ”
한참을 낑낑댄 후에 그들은 겨우 커다란 벽을 올라왔다. 그들 앞에 있던 벽은 단순한 벽이 아니었다. 벽은 바로 엄청나게 거대한 배의 선체였다.
“ 으아~ 무지하게 높다. 이놈에 배는 왜 이렇게 큰 거야? 이렇게 돈을 쳐 바르니 저주를 받지. 안 그러냐? ”
“ 펜...펜..펜릴... 여..여기가 바..바..바..로.. ”
“ 그래 이 자식아. 여긴 신에게 저주받은 배. 악령의 무덤. 유령선으로 유명한. 아무도 위치를 모른다는 포세이도스다.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 배의 다른 별명은 바로 황.금.의.배. ”
“ 아무도 모르면, 그..그럼 우리는 .. 어떻게 온거냐? ”
“ 이 몸이, 달리 리비 섬 제일의 도적이겠냐! 얼마 전에 골동품 점에 장물을 처분하러 갔는데 처음 보는 상자가 떡 하니 놓여 있더라구. 당연히 슬쩍했지. ”
“ 리비.. 제일의 좀도둑 아니냐? ”
“ 시끄러. 아무튼 그 상자 안에 이 포세이도스에 탔던 소녀가 쓴 일기가 있었어. 그게 바로 이 책이지! ”
펜릴은 자신의 벨트 안쪽에 숨겨둔 작은 책을 꺼내며 말했다.
“ 이 일기에 따르면 포세이도스는 도깨비 섬에 갔다가 아쿠아 월드로 항해하고 있다는 글이 있지. ”
“ 아..아쿠아 월드면..? 폭풍의 장막 근처라서 아무도 못가는 그 곳이잖아! ”
“ 이 포세이도스는 인간들이 아르노스 대륙을 떠나오기 100년 전의 것이야. 당연히 그 땐 폭풍의 장막도 없었지.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고, 귀족들을 위한 엄청난 유람선인 포세이도스를 만든거지. ”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커빈이 무서움은 다 잊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 하지만 우린 아쿠아 월드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데..? ”
단순히 이야기에 열중한 것으로 두려움이 사라진 커빈을 보곤 웃으며 펜릴이 대답했다.
“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 이 일기의 마지막장을 보라구! 자! ”
펜릴은 일기의 한 쪽을 펴서 커빈에게 보여준다.
“ 312년 6월 3일. 레오오빠는 역시 바보다. 내가 그렇게 말했.. ”
“ 이 멍청아 거기가 아니잖아. 그 옆쪽을 보라구!!! ”
커빈은 멋쩍은 듯 다시 본다. 그리고 더듬더듬 읽어내려간다.
“ 312년 6월 5일. 배... 배.. 이거 배 맞지? ( 맞다. 바보야 ) 배가 심하게 흔들린..... ”
“ 그래. 이 기록이 마지막이고 이 줄도 쓰다가 말았지. 참고로 이 때의 일주일 전인 5월 29일에 포세이도스는 도깨비 섬을 구경 갔다가 아쿠아 월드로 향한다고 되어있지. ”
“ 아. 그래서 도깨비 섬에서 아쿠아 월드까지 항해의 길에서 일주일 정도 되는 거리를 찾으면..... 역시! 잔머리 하나는 최고라니까! ”
“ 잔머리가 아니라. 정말 머리가 좋은 것 이란다. 아무튼 그렇게 계산을 해보고 널 데리고 이 낡은 배를 타고 이 곳까지 온 거지. 넌 영광인줄 알아라. 내가 사전작업으로 여길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넌 아무 것도 안하고 단순히 올 수 있었으니. 황금을 찾으면 9:1로 나누는 거다. ”
“ 뭐야? 치사하다 진짜! 네 노력은 알았으니 7:3 정도루 하자구우 .. ”
“ 안되. 10분의 1만 가져도 넌 빚 다 청산하고 평생 놀고 먹으며 살 걸? 니가 똑똑해서 내가 믿지 못했거나 혼자 황금을 옮길 수 있었다면 넌 데려 오지도 않았어. ”
“ 으으 치사한 자식. 그나저나 그 배에 황금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거야? ”
“ 예전 대륙에는 황금은 귀금속이 아니라 흔한 금속인 듯 해. 풍요의 여관에 노파도 내 금반지를 보고 하찮은 걸 끼고 다닌다며 웃었지. 사람들이 리비섬으로 온건 불과 45년 전이니까. 분명 그 노인네는 젊었을 땐 대륙에 살았을 거고, 지금 섬에서 귀한 금속인 황금이 우습게 보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이 일기의 글이야. ”
“ 오 소녀도 황금 장신구가 많았나 보네? ”
“ 걔는 귀족이었을 테니 흔한 황금이 눈에 찰 리가 있나. 단지 레오 오빠인가 뭔가랑 술래잡기를 하다가 배 밑창엘 가게 됐는데 배의 무게추 역할 겸 방수재로 황금을 깔아놓아서 눈이 아팠다는 일기가 있었어. ”
“ 맙소사 이렇게 큰 배 밑창을 온통 황금으로? ”
“ 그래. 그걸 가져가면 어떻게 될지 알지? ”
커빈은 벌써부터 황금을 손에 넣기라도 했다는 듯이 행복에 가득 찬 표정이 되었다.
' 쯧쯧.. 역시 단순한 놈이야. 그래서 더 믿을만 하지만. ‘
“ 아무튼 이제 설명을 해줬으니 가볼까? ”
“ 이...이야기.. 들으면서.. 신경을 못.. 썼...썼..는데.. 다..다시 보..보니.. 무서워어어어!! ”
“ 어이구 이 멍청한 놈! 내가 데려오지를 말았어야지. 어휴 따라오기나 해 ”
“ 페..펜릴.. 어..어디로 가는거야.. ”
“ 일단 밑창으로 내려가야 되니 여기저기를 가보자구. ”
두 남자는 삐걱거리는 갑판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배는 너무나도 음산했다. 하지만 낡아서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배지만 그 크기에서 자연스레 웅장함이 풍겨 나왔다. 펜릴은 당당히 갑판을 걸어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커빈은 펜릴을 엄마로 아는 아기 오리인 마냥 그 뒤만 졸졸 따라 다녔다. 커빈이 떨며 낡아빠진 갑판 한쪽을 밟은 순간 갑판 사이로 바람과 함께 희미한 무언가가 새나왔다.
- 라... 라...
“ 응? 펜릴!! 펜릴!! .. 무....무..무슨 소리가 들렸어! 노래소리 !! ”
“ 헛것을 들은 거 아냐? 이 배는 무려 150년 전에 침몰한 배라구! 있다면 사람 뼈다귀 뿐이랄까? ”
“ 근.. 근데 말야 이상한게 ..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면.. 흔..흔적이 있어야 될텐데 .. 해골은 무섭지만.. 해골이.. 하나도 없네 .. ”
“ 음 .. 그렇네. 뭐 150년이나 지났으니 뼈다귀도 다 삭아 없어진 거겠지. 원래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여기선.. 파도로 돌아갔겠군. ”
- 라... 라.. 그대의 .. 파란.. 눈은...
" 으악!! 들었어? 들었냐고!!??? 분명 노래소리야! “
“ 시...시 ..끄러. 나...나..나도 들었다구. ”
아까까지만 해도 당당했던 펜릴이었지만 커빈의 말대로 정말 노래소리가 들리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둘을 베어내듯 스쳐갔다. 바람소리마저 웅웅거리며 귀신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 분..분명... 아무도 살..살아있을 리가.. 없는데.. ”
“ 아..아니야. 여...여긴. 유....유..령선이잖아 .. 유.유령은. . ”
- 반짝 .. 반짝 .. 라라... 라라 ..
“ 으아아아아악! 유령이다!!!!!!!!!!!!!!!!!! ”
또 다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커빈은 정신을 잃은 듯 혼자 달려가 버렸다.
“ 커빈!!! 미쳤어? 정신차려! ”
“ 황금도 필요없어. 살고싶어! 나 돌아갈거야!!!!!!!! "
커빈은 그들이 타고 온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펜릴은 커빈의 뒤를 쫓아 가려다가 멈추었다.
‘ 내 인생. 20년간의 내 인생에 이런 기회는 없었다. 고아로 태어나 배운 건 도둑질과 도박. 평생을 오기 하나만으로 버텨왔어. 하지만, 황금을 찾는다면 평생 동안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빌어먹을 내 인생이 바뀌는 거라고.. 귀신이든 뭐든 다 덤벼봐라. 방해하면 다 없애 버릴거다. ’
“ 팍, 쿵..............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돌아서려는 펜릴에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이후에 찢어지는 듯한 커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 제기랄 역시 데려 오는게 아니었어. 젠장 ”
커빈이 달려간 곳으로 따라 달려나간 펜릴은 낡아빠진 갑판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세월의 힘에 삭아버린 갑판이 갑자기 뛰어나간 커빈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 바보자식... ”
펜릴은 조심스레 다가가 구멍 아래를 보았다. 역시, 커빈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응? 그런데 커빈이 소리는 왜 지른거지? 일단 데려와야겠군. ”
펜릴은 네 다섯 사람 키 정도의 깊이는 됨직한 구멍 아래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가볍게 착지한 후 둘러보니 먼지에 쌓인 바닥이지만 에메랄드 빛과 루비 빛의 대리석은 최고급의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 귀족들의 사교장이었나 보군. 아무리 커도 배는 배인데.. 이런 걸 깔아놓다니 .. 젠장 돈이 썩어났군. ”
투덜대며 커빈을 업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펜릴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 라... 라 ... 함께 .. 춤춰요 ..
펜릴은 등에 소름이 돋으며 오한을 느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더크를 뽑아들고 소리쳤다.
“ 누구냐! 누구냐고! ”
- 왜 ......... 왜 ... 이제야.. 왔어?
이번에는 희미한 노래소리가 아닌 공기 자체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 흐윽... 모...모습을 드러내라. ”
고아로 태어나 억세게 자라서인지 선천적으로 겁이 없던 것인지 어떤 일에도 대범하던 펜릴도 이번에도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커빈은 기절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꼴사납게 쓰러져있었다.
“ 네 ... 네 눈꺼풀을 벗겨내고 손톱으... 을 뜯..뜯어버릴 테다... 빨...빨리 나...나오면 혀....혓.. 혓... 바닥은 봐..봐주지... 흐으...윽 ”
- 난.... 오랫동안... 여기에서 기다렸어 ..
“ 제...제..제발 이리로 나와. 귀신이든.. 몬..몬스터든 몽땅 다 상...상대해주마.. 제..제발 ”
명령과 부탁이 섞여버린 이상한 문장까지 써가면서 두려움에 저항하는 펜릴이었다.
- 내가.. 내가.. 이 곳이.. 보이지 않아?
그 순간 펜릴의 눈앞에서 환한 빛과 함께 낡아 빠져 무채색이 되어 버린 벽에 조금씩 색이 돌아왔다. 홀의 끝 계단이 먼지가 쌓여 뽀얀 흰색에서 반들거리는 갈색으로 바뀌어 나갔다. 조금씩 조금씩 계단 바닥으로 창문으로 그 색은 퍼져나갔다. 그렇게 계단을 타고 내려온 색은 바닥의 거미줄을 걷어내며 천연의 에메랄드빛과 루비 빛을 찾고 번쩍였으며 다 깨져 흉측한 뼈 같은 틀만 남은 창문도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씌워진 것으로 변했다. 펜릴의 약간 뒤쪽에 있던 다 망가져버린 샹들리에도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체 인 듯 꿈틀대며 주변의 파편을 주워 모우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홀의 중앙 꼭대기에 붙어버렸다. 모든 것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했다. 펜릴은 홀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 까지 멍하게 보고 있었다. 홀의 반대편 끝의 멋진 흑단으로 만들어진 문까지 제자리를 찾고 나자 말로만 듣던 궁궐의 파티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꼈다.
“ 이...이...이게 어찌 된.. 된 일이지 ? ”
“ 왜 이제 온거야...? ”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변을 둘러보던 펜릴은 재빨리 목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서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 누..누..누구야? ”
“ 내...내가 얼마나 ... 기다렸다구.. ”
홀의 끝 무대의 구석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보라색머리에 작고 귀여운 리본을 하고 레이스가 달린 화려하지만 귀여움이 가득한 옷을 입은 앙증맞은 소녀였다. 12~13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깍지 낀 손 사이에 곰으로 보이는 인형을 들고 있었다. 작은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떨던 펜릴은 긴장감을 지울 수 없었다.
“ 잠.. 잠깐. 넌 누구지? ”
“ 레오팔드 오빠... 날 정말 모르겠어..? ”
“ 나.. 난 레오팔드 인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펜.펜릴이야. ”
“ 거짓말 하지마. 아무리 오래 지났어도 난 다 기억해. 오빠의 그 붉은 머리카락.. 그 파란 눈.. 레오팔드 오빠가 분명하다구.. 좀 커진 것 같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 그리고 그 .. 일기장. 그 배가 흔들리던 날. 오빠가 나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던 날. 돌아오면 같이 춤 춰 주겠다고 한날. 그 때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준 거잖아. ”
“ 일기장? .. 아.. 아니 이거 말이야? ”
펜릴은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 꽂아둔 소녀의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 이거 라고 하지마.. 기억 못하겠어? 늘 보고 싶어 했잖아. 오빠가 늘 보여 달라고 졸랐지만 절대 안 보여줬잖아...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 .. ”
“ 난 펜릴이라고, 네 오빠가 아니야. ”
“ 레오오빠 ... 우리... 같이 자주 놀았잖아. 술래잡기도 하고 .. 그리고 내가 오빠를 얼마나.. 얼마나 .. ”
“ 레오....오빠..? 술...술래잡기? 혹...혹시? ”
펜릴은 아까 커빈이 잘못 읽은 일기장의 부분과 황금이 어디 있는지 적힌 부분 그리고 소녀의 일기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 레오오빠는 ... 레오오빠가.. 레오오빠를.. ’ 이라고 쓰인 글들의 주인공이 레오팔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 전에는 보여줄 수가 없었어... 난 아직 고백할 수 없었어. 오빤 난 늘 어리게 봤으니까. 하지만 오빠랑 같이 이 배에 탈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이 가득한.. 내 가장 소중한 물건. 그걸 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리고.. 난 기다렸어. 오빠가 돌아올 때 까지 .. 약속대로. 여기서 .. ”
소녀는 무언가를 상상하듯 혼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펜릴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 여기서 .. 계속 기다린 거니? ”
“ 응 ...... 오빠가 약속 했잖아. 얌전히 기다리면... 금방 돌아와서 같이 춤추자고.. ”
그 순간 소녀의 모습을 보며 펜릴은 모든 걸 추측 할 수 있었다. 배가 침몰하려하자, 레오팔드는 이 소녀를 여기 남겨두고 빠져나가려 한 것이리라. 아무렇게나 꾸며낸 약속까지 해가면서.. 그리고 이 정도 배가 침몰 할 정도의 폭풍에서 비상용 작은 배를 타고 나가보았자 모두 가라앉아버렸을 것이다. 이 소녀를 제외하곤 거의가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바다에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포세이도스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배가 되었고 포세이도스 자체에는 사람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침몰이 멈춘 포세이도스 안에는 오직 소녀만이 오지 않을 레오팔드를 기다렸던 것이다 .. 영원히 .. 영원히 ..
펜릴은 재빨리 일기장의 뒤편을 찾아 보았다. 서툰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 이올렛의 일기에요! 레오팔드 오빠 보지 말 것! ’
“ 이올렛 ... 이올렛... ”
“............”
소녀는 아무말없이 울고 있었다.
“ 이...이올렛.. ? ”
“ 아니야 .. 내가 잘못 봤어 .. ”
“ 이올렛 .. ”
“ 당신은 레오 오빠가 아니야... 너무나 오래 있어서.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기다려 와서 .. 이제 오빠의 얼굴마저 잊은 거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버릴 정도로... 슬퍼. 너무 슬퍼..”
“ 아니. 이올렛. 나야. 늦어서 미안해.. ”
펜릴의 말에 이올렛이라 불린 소녀는 고개를 들며 흐느꼈다.
“ 아..아니야 ... 아... 아니야 .. ”
펜릴은 그가 태어나서 느껴본 가장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이올렛에게 말을 걸었다.
“ 이올렛. 늦어서 미안해. 오빠가... 정말 많이 바빴거든? 그..그동안 외로웠지 ..? ”
“ ............ 정..정말? ”
“ 응 .. 이올렛. 미안해. 늦어서.. ”
“ ... 레.... 레오..레오오빠!!!!!!!!!!!!! ”
“ 이올렛.. ”
“ 레오오빠!!!!!!!!!! "
소녀는 손에 든 인형을 팽개치고 달려와 펜릴에게 안겼다. 아니, 레오팔드에게 안겼다.
“ 왜 이제야 온거야. 내..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구.. 흑흑으어어어엉........ ”
“ 미...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이올렛.. 미안해 ..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그래 .. 실컷.. 실컷 울어. ”
펜릴은 자기가 정말 레오팔드라도 된 듯이 소녀를 토닥였다. 150년간 외로움에 맞서서 자신이 죽은지도 모른 채로 레오를 기다린 소녀의 마음에 눈밑이 촉촉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펜릴의 품에 안겨 울던 이올렛은 살짝 떨어져서 눈물로 젖어버린 눈으로 펜릴을 바라보았다.
“ ... 그래도 .. 와줘서 고마워... ”
“ 응.. 보고싶었어. ”
“ .. 그럼 약속지켜. ”
“ 응? 무슨 약속 ..? ”
“ 또 ... 잊은거야? 이 바보 레오오빠는 항상 멍청해! ”
펜릴은 아까 이올렛이 뱉은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헤헤 .. 오빠가 좀 멍청하잖아! 귀여운 우리 이올렛 공주님이 가르쳐줘. ”
“ 칫. 공주님이라고 해서 특별히 조금 가르쳐 줄게. ”
“ 응 고마워요 공주님. ”
“ 내가 소중한.. 내.. 일기장.. 줬을 때 .. 약속했잖아 .. 그거 .. 돌아오면 .. ”
펜릴은 아까 이올렛이 한 말이 생각났다.
‘ 그리고 그 .. 일기장. 그 배가 흔들리던 날. 오빠가 나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던 날. 돌아오면 같이 춤춰 주겠다고 한날. 그 때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준 거잖아. ’
‘ 같이 춤춰 주겠다고 한 날 .... 같이 춤추기로 했잖아.. ’
“ 응 고마워요 이올렛. 오빠가 이제 생각이 났어! ”
“ 정말 ? ”
“ 그럼~ ”
“ 뭐.. 뭐게? ”
펜릴은 약간 뒤로 물러서 레이디에게 춤을 청하는 기사인 듯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 한 곡 추실까요, 레이디? ”
“ ..... ”
이올렛은 그 모습을 굳은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이올렛? ”
“ 아.. 아 너무 ... 너무 기다리던 말이라 감동해서 ..그래.. 다..다시 한번만 해줘.. ”
“ 부디 저와 한 곡 출 영광을 주십시오, 마이 레이디. ”
“ 그..그.. 러...죠 .. ”
펜릴의 내미는 손을 이올렛은 부끄러운듯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펜릴을 일어나며 자기 가슴께 밖에 오지 않는 이올렛을 살짝 안았다. 이올렛은 부끄러운 듯 눈을 감았지만 감은 두 눈 사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라.. 라.. 안녕하세요.. -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까 들렸던 것과 같은 노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소녀의 꿈과 부끄러움이 베여있는 부드럽고 앙증맞은 곡이다. 창 밖에서 부딪치는 파도도 감미로운 멜로디에 섞여 하나의 화음이 된다.
- 그대의 .. 파란.. 눈은 .. 하늘의 별 처럼...
반짝 .. 반짝 .. 라라... 라라 ..
나도 그대.. 따라 .. 빙글 .. 빙글.. -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도 잔잔하게 분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어디선가 부드럽고 향기로운 봄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도 리듬에 섞여 함께 춤춘다. 펜릴과 이올렛은 하나가 된 듯 완벽하게 춤을 춘다. 펜릴은 춤 같은건 평생 춰 본적이 없지만 이올렛과의 춤은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 심장이 뛰 듯, 피가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흐르듯이 자연스레 그저 흐름에 맞추어 하나가 된다.
- 라라 .. 언제나..언제나.. 랄라라..
함께 .. 함께 ..
춤춰요.. -
어느새 펜릴도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뜰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하나처럼 커다란 자연의 법칙처럼 바람처럼 파도소리처럼 그렇게 춤을 추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꿈꾸듯 그렇게 춤을 추었다. 눈을 뜨지 않아도 이올렛이 보였다. 이올렛은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물을 거둔 눈빛으로 .. 너무나 아름다웠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표정.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저녁노을을 보는 듯한 행복한 표정으로 그렇게 천천히 .. 흐릿해져 간다. 모든 것이..
‘ 고마워요. 제가 이미 당신과 다른 세계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요. 당신이 레오 오빠가 아닌 것 두요. 레오 오빠는 영원히 돌아 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제가 인정할 수 없었을 뿐. 전 그 날 이후로 150년간 고집쟁이 였는 걸요.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요. 당신과 춘 춤은 제 생에 최고의 춤이었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오빠를 대신해 말 할 게요. 언제나 영원히 사랑합니다. ’
“ 이...이올렛! 이올렛! 이올렛!!!!!!! "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올렛을 보며 소리친 펜릴은 갑자기 눈이 떠졌다. 그대로 였다. 뽀얀 먼지와 무채색의 배경. 깨져나간 창문과 떨어진 샹들리에 .. 그리고 꼴사납게 뒹굴고 있는 커빈.
“ 으... 으.. 으....... ”
커빈이 정신을 차리려 하는지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 .... 이 자식아 일어나! ”
“ 으으 ... 으아 ... 아파라 .. 으으 ”
“ 왜이렇게 엄살이야. 야! 어서 나가자 ”
커빈이 뽀얀 먼지속에서 몸을 일으키자 먼지가 사방으로 날린다.
“ 으어어.. 콜록콜록~ 으어.. 펜릴..? 여기가 어디야? ”
“ 얌마 그 무서운 유령선 안이다! "
" 으허허허헉 맞다! 여....여..여기 .. 포..포..포세..세이도.. .맞다!!!
그.. 그 유...유..유령...목..목소리... “
“ 임마 유령이 어디있어! 요즘 세상에! 어서 나가자! ”
“ 엥 ..? 내..내가 잘못 들은거야? 분..분명히 들렸는데.. ”
“ 그래 ! 빨리나가자 배고프다. ”
“ 응 .. 그...래 .. 가 아니라 야 황금은? 황금은 찾은거야? ”
“ 아 .. 찾아봤는데 황금이 아니라 녹슨 철밖에 없더라구! 이올렛이 그냥 착각했나봐! ”
“ 아 .. 그래? 근데 이올렛은 누구야? ”
“ 아.. 아냐 임마! 이 애가! 라고 말했어. 왜 아까부터 잘못 듣고 그래... ”
“ 그..그래? 왜이렇게 귀가 나빠졌지. ”
“ 잔말 말고 빨리가자. 이제 안 무섭냐? ”
“ 이..이상하게 아까보다 훨씬 안 무서운데? ”
펜릴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은 듯 커빈의 목 뒤를 잡고 빠져나왔다.
“ 아야아야~ 아프잖아 간다구! ”
“ 그래 배고프다 아 빨리가자~ ”
커빈의 등 뒤로 보이는 홀을 보며 펜릴은 희미한 웃음이 지었다.
3.
철썩~ 철썩~
낡은 갑판.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이 낡은 배에도 햇빛의 온기가 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원래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던 홀의 무대부분에 빛이 가득 들어와 비추었다.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갑판에서 홀으로 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의 흔들림과 함께 늘 들리던 슬픈 그 노래도 더 이상은 들리지 않는다. 철썩~ 하는 파도소리만 들릴 뿐 .. 다만 홀의 무대 위에 작은 책이 한 권 놓여있다. 햇빛에 비친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이올렛의 일기에요! 레오팔드 오빠 보지말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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