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비망록(銀河非忘錄) Chapter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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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비망록(銀河非忘錄) Chapter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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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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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7.20 22:17:51 조회: 882 추천: 2 |
Chapter 00. '지구는 죽었다'
지구는 죽었다. 2210년, 자원의 고갈과 함께 일어난 3차 세계 대전. 미합중국이 일으킨 이 전쟁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핵전쟁’.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고, 지구에는 핵겨울이 몰아 닥쳤다. 지구 인구 150억은 3차 세계대전 이후 8억 가까이 줄어들었으며, 지구의 대륙 면적이 반 이상 줄어 버렸다. 이미, 지구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행성이 아니었다.
핵전쟁 이후, 세계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빵 하나를 사려고 해도, 그 빵의 무게를 초과하는 달러를 내야 했다. 굶주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갔고,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어나갔다. 이런 시기가 계속 되고, 결국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났다.
‘인육’
사람의 가장 포악한 본성이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어미는 자식의 살을 뜯어 먹었다. 아비는 어미의 살을 뜯어 먹었다. 다시 지구의 인구는 반으로 줄었다. 세상은 미쳐가고 있었다.
핵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한국이었다. 핵을 가지고 있었던 북한과의 통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지만, 미국의 공격으로 인해 북한이 소멸해 버렸다. 북한의 소멸과 함께 한국의 중국 대륙과의 교류가 끊어지고 말았다. 일본 역시 한국과 등을 돌렸다. 한국은, 이미 고립된 섬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그 당시 주축세력이었던 미국 주재 이공계 자원들이 비밀리에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 와중에 몇 명의 자원들이 발각되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 있는 자원들은 단체로 한국에 밀항을 시도, 성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것들을 한국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국의 인구는 천만도 되지 않은, 소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천만의 인구로도 한국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이론은 아직까지 그 위험성은 극강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초광립자 이론‘이었다.
초광립자 이론은 터놓고 보자면 간단한 이론이다. 빛을 이루고 있는 ‘광자’를 쪼갠다. 그 안에는 ‘광립자’라는 물질이 있다. 이 ‘광립자’를 쪼갠다. 그럼 나오는 것이 ‘초광립자’라는 것이다. 초광립자는 흔히 물리학에서 말하는 ‘반물질’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반물질을 연구하던 스위스 국립 과학 연구소는 이 ‘초광립자’를 연구하다가 폭사되었다. 그 반경이 스위스 영토의 절반을 파괴할 만큼 극강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스위스 국립 과학 연구소가 연구하던 ‘초광립자’의 양은 0에 한없이 가까운, 0.0001나노 그램이었다.
세계는 경악했다. 그것은 ‘악마의 물질’이라고.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질이라고.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세계 각국은 반물질과 함께 초광립자의 연구를 금지하는 ‘알케미스트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비밀리에 이 협약을 깨면서 초광립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초광립자를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면, 우주로 나갈 수 있었다. 화성에 나무를 심어 놓은 지 어언 200년. 이제 어느 정도 산소가 생겼고, 단세포 식물들이 생겼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정도면 인류가 넘어가도 될 듯싶은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1억의 인구가 살 만큼의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다. 미국은, 외우주 탐사 계획을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었다. 초광립자만 있다면, 보이저가 200년 이상 날아간 곳을 3달 정도 만에 갈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미국 내에는 이제 뛰어난 이공계 자원이 고갈되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 1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것을 다른 국가의 자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미국 국립 초광립자 연구소의 80%가 한국 국적을 지녔거나, 한국 재미교포 2,3세였다. 그들은 자신의 국가를 황폐화 시킨 미국의 밑에 들어가, 조심스레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순조로웠다. 10년이 지나자 초광립자의 보관과 운반이 가능해 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인류 보완 계획’
인간의 과학이 퇴보하고, 다시 인간들의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되었을 무렵, 미국 국립 초광립자 연구소의 한국인들은 모두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연구의 주축이었던 인원들이 거의 모두 빠져 버렸으니 미국의 연구도 모두 정지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그들과 은밀하게 소통하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쥐어짜며 초광립자 가속 기구와 병기마저 만들어 내었다. 세계는 급변했다. 인구 천만 명의 한국이 나머지 3억 9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0년, 서기 2245년.
미국에 있던 초광립자 연구소는 한국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한국은 초광립자를 이용해 전 세계에 전력과 식량을 조달해주면서 미국을 제치고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했고, 동아시아를 ‘주신 국가 연합’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세력으로 흡수했다. 그와 동시에 주신 국가 연합-이하 주신-은 종신제 대통령을 발탁하기로 함과 동시에 초광립자 연구소의 한국인 총 책임자인 ‘강혁’을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 대대적인 전력 증강을 꾀했으며, 초광립자 수석 연구원 ‘김광진’을 우주개발부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미국의 화성 개발권을 인수받아 화성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 장관님?”
“음?”
우주개발부의 수석비서인 서지연. 그 역시 초광립자 연구소의 일원이었으나, 현재 그는 김광진의 비서로써 활동하고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초광립자에 대한 연구의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상부에서는 차관직을 수여해주기로 제의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녀가 그 것을 거부했다. 그녀의 부름에 광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그 모습에 지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졸았죠?”
“아, 아니야.”
광진은 뜨끔했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서는 재빨리 입에 흐르는 침을 닦고 입에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그 모습을 다 봐버린 지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존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노력하지는 마세요. 아무튼, 일이에요.”
“음…….”
광진은 그녀가 건네주는 두터운 문서뭉치를 받아 들었다. 절로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장관 취임 후 약 6개월,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에 하루 18시간 동안을 서류 사이에 파묻혀 지냈던 그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제 하얀색 A4용지를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외우주 탐사선을 보내시기로 했잖아요? 그에 대한 경비랑, 혹시 모를 위험에 따른 무기 배치, 또…….”
“그만, 그만.”
지연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골 때리는 용어들을 들으며 광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아니, 그 경비 같은 건 경제부로 넘기면 되잖아? 무기 배치는 국방부에! 우주선 설비는 건설부에! 응? 그걸 왜 이 우주개발부에 넘기냐고! 사람 죽일 일 있어? 엉?”
“불만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하지 마시고 대통령 각하께 하시는 게 어떠세요?”
지연은 그가 안돼 보였던지 어깨를 으쓱거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그를 향해 돌리더니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그럼, 열심히 해보세요, 장관님.”
“끄아아아!!”
광진의 절규가 장관실 내를 가득 채웠으나, 아무도 그것을 듣지는 못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현실도피였다.
청와대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초광립자 연구소 내부는 순백색을 띄고 있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청결함의 결정체. 내부에 들어가려면 모두 3번의 소독을 거쳐야 하고, 백색의 연구복을 입어야 한다. 연구소 내부는 오로지 ‘백색’이 만연해 있을 뿐이다. 지금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은 초광립자의 압축화였다. 이미 작은 양 만으로도 엄청난 출력을 자랑하는 초광립자이지만 장기간의 우주비행을 고려하자면 다량의 초광립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인원이 타는 전함의 경우 그 크기에 맞춰 많은 초광립자가 필요하다. 현재 그것의 연구 단계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90마이크로그램의 초광립자를 0.9나노 그램으로 압축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거대한 초광립자 압축기 앞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이 차분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내가 있었다.
“어떤가? 양 소장.”
“막바지입니다. 지금 초광립자의 무게는 1.78 나노 그램입니다. 이제 마지막 압축만이 남아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강 장관님?”
하얀색 연구복을 입고 있어서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들의 대화를 비추어 보면 키가 큰 사내는 국방부의 강혁 장관일 테고, 다른 사내는 연구소 소장 양희승일 것이 분명했다. 양희승은 손을 뻗어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 압축시를 0.95초 상승시키고 열전도율은 9.21% 감소시켜! 빨리!”
“역시 양 소장. 저것만 봐도 모든 상태를 파악한다는 건가?”
강혁은 작게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희승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하핫, 역시라니요. 여기서 오래 썩다보니 어쩔 수 없군요.”
“아무래도 좋지. 그건 그렇고, 언제 시작되나?”
“잠시만…….”
희승은 다시 한 번 대화를 중단시키고는 연구원들에게 바쁘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홀리겐 주입! 압축시 0.0082초 상승!”
“홀리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희승에 입에서 나온 단어를 중얼거렸다. 희승은 지시를 마쳤는지 강혁을 향했다.
“신물질입니다. 압축 실험 중에 찾아냈는데 홀리겐이 없으면 압축률이 상당히 낮게 나왔는데, 이것을 넣으면 압축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단 말씀.”
“호오, 신기한 물질이군. 내가 연구소를 떠난 후에 많이 바뀌었군. 다시 돌아오지는 못하겠는데?”
강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아쉬운 건지, 아니면 그냥 겉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희승 역시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강 장관님이 없으니 힘들긴 하네요. 게다가 광진 군마저 빠져버렸으니…….”
“그렇군.”
“아, 시작입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초광립자 압축기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연구원들도 모든 손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압축기를 휘감던 붉은 기류는 점점 그 기세를 더해가더니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압축기 자체를 감싸 형체를 가리기 시작했다. 강혁은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나군…….”
“그렇지요? 저도 처음 봤을 때는……후훗.”
희승은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압축기는 붉은 기류에 가려져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붉은 기류는 미친 듯이 몰아치고 있었으나 그 기세는 그들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갑자기 붉은 기류 사이로 하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기류의 사이사이로 삐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은 기류와 함께 돌기 시작하면서 적백색의 기류를 만들었다. 한참 동안 압축기를 휘감던 적백색의 기류는 점점 사그라지면서 압축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윽고 기류가 완전히 사라지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성공입니다, 장관님.”
“으음.”
강혁은 별 내색은 안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 놀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본 압축 장면. 그것은 장관이라고 해도 모자를 정도였다.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위이이잉
그 때 갑자기 연구소의 불빛이 붉게 변했다. 희승은 갑작스레 변한 주위 환경에 바쁘게 지나가던 연구원 한명을 붙잡고는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압축기에 무슨 이상이 있는가 봅니다!”
“뭐?”
희승의 양 미간이 휴지조각처럼 찌푸려졌다. 그 말을 들은 강혁 역시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희승은 재빨리 달려 나가 압축기를 만지고 있던 연구원 한명을 밀치고서는 자신이 그 앞에 섰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건 처음이야!”
한참 동안 계기판을 바라보던 희승은 거칠게 계기판을 내리치며 외쳤다. 계기판은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는 야생마처럼 말이다. 그 때 강혁이 조심스레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비켜보게.”
“네? 하지만…….”
“됐으니까.”
강혁은 조용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희승은 어떻게 거부하지 못한 채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강혁은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군…….’
그는 잠시 옛날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상황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90 마이크로그램의 초광립자가 폭주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이론상으로 압축 해제와 동시에 일어나는 파괴력은 보통의 파괴력의 수배는 된다. 말 그대로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강혁의 손이 키보드 위를 재빨리 밟고 다니기 시작했다.
‘시스템 상의 폭주는 아니다. 압축률이 너무 높았군……. 너무 욕심을 냈어.’
강혁은 컴퓨터를 만지면서 입맛을 다셨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세계의 파멸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자 강혁은 갑자기 짜증이 밀어 닥쳤다.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까…….’
하지만 강혁은 재빨리 고개를 흔들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연구원들, 청와대에 상주하고 있는 사람들, 주신의 사람들, 그리고 전 인류의 생사가 지금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멈춰라……제발!’
키이이잉
강혁의 손이 점점 빨라질수록 압축기의 폭주는 점점 더 심해져갔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절망으로 휩싸여 있었다. 강혁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희승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멈춰라아!!”
푸슈우욱
“…….”
강혁의 외침과 함께 압축기의 폭주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압축기는 조용해 졌다. 주위는 고요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지나자 연구소 안이 떠들썩해졌다. 목숨이 구해졌다. 가족의 목숨도 안전하다.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이 생각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혁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희승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강혁에게 달려 왔다.
“역시 장관님! 실력이 녹슬지는 않으셨네요!”
“아니…….”
“네?”
강혁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으나 희승은 잘 듣지 못했는지 되물었다. 하지만 강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압축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
“다 했다…….”
광진은 모든 힘을 다 소진했는지 몸을 축 늘어뜨리며 책상에 몸을 뉘었다. 뒤이어 들어온 지연이 미소를 띠며 커피 한잔을 가지고 와 그의 책상 옆에다 놓았다.
“수고하셨어요.”
“으으……. 홍차, 홍차. 커피는 싫다니까…….”
그는 겨우 손을 들어 커피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지연이 ‘푸훗’ 하며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리고서는 커피 잔을 들고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뭐 넣어 올까요?”
“브랜디 듬뿍.”
“음주는 안되는데요…….”
“…….”
그녀의 말에 광진은 할 말을 잃었는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금은 넣어 올게요.”
“오케이. 어서…….”
그때 갑자기 집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갈색 머리를 짧게 커트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지연은 그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고 재빨리 문 밖으로 빠져 나갔다. 광진 역시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보았다. 사내는 그를 향해 무뚝뚝한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여전하군.”
“꾸에엑.”
“…….”
광진은 다시 책상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러자 무뚝뚝한 사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의식적으로 발소리를 크게 하면서 광진을 향해 걸어 왔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퍽!
“일어나!”
“꾸에엑!”
사내의 일격에 광진은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강했는지 그의 이마가 뻘게져 있었다. 아주 내려 누른 모양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버럭 외쳤다.
“강 형님! 그렇게 난폭하게 사람을 때리는 경우가 어딨습니까?”
“호오라. 개기겠다는 거냐?”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그는 강혁이었다. 연구소에 있을 때 입고 있던 옷 때문에 그 당시 제대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광진은 한층 몸을 움츠리고서는 입을 열었다.
“근데 형님께서 갑자기 왜……?”
“할 말이 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할 말 없으면 올 필요도……으에엑!”
“조용히 해라…….”
“넵.”
강혁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신의 말에 딴지를 거는 광진을 향해 조용히 팔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조용해지는 광진. 그들의 사이에 뭔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강혁은 살짝 눈을 뜨면서 말했다.
“네 놈의 힘이 필요하다.”
“……?”
“초광립자의 폭주에 대한 건이다. 맡을 거냐?”
“글쎄요……. 이미 현장에서 떠난 지 오래니까.”
“그러냐……?”
“자, 잠시만. 손은 내려놓으시고…….”
광진은 강혁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얼굴에 억지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자 강혁의 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서는 그는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머리 긁으려고 손을 든 거다만…….”
‘능구렁이 같은……!’
광진은 이를 뿌드득 갈며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한 채 마음만 삭히고 있을 뿐. 광진은 표정을 고치고서는 말했다.
“자세히 한번 말해보세요. 듣고 한번 생각해 볼게요.”
“음. 지금 연구소에서 추진하는 계획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초광립자의 압축화 아닙니까?”
광진은 강혁을 향해 ‘그런 당연한 사실을 묻냐’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표정을 본 강혁의 표정이 약간 찌푸려졌지만 곧바로 표정이 펴진 채로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정도 전에 초광립자가 막바지 실험 도중에 폭주했었다.”
“에? 안 죽었어요?”
“…….”
광진의 발언에 갑자기 강혁의 표정이 굳어지자, 광진은 순식간에 손사래를 치면서 실수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순간 강혁은 약간의 살기를 발산했으나 곧 진정을 찾았는지 그 기운은 가라앉았다.
“크흠, 폭주는 했으나 곧 가라앉았다. 뭐, 그때는 나도 영락없이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흐음……. 옛날 스위스처럼 안 된 게 다행이네요.”
“아니, 폭주가 멈추지 않았으면 우리들은 내일 해를 보지도 못했을 거야.”
“에? 왜요?”
광진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 연구소는 지하 400m에 만들어져 있으며 100m에 육박하는 엄청난 두께의 초합금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강혁은 그의 그런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위스 연구소에서 일어난 폭발, 초광립자의 양이 얼마 정도 였지?”
“0.001 나노 그램이었나요?”
“아니, 0.0001 나노 그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스위스 영토의 절반이 초토화 되었지. 지금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초광립자의 양은 얼만 줄 아나?”
“아뇨.”
광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혁은 상상하기도 싫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90마이크로그램이다. 압축 완료된 양은 0.9 나노 그램이다.”
“허어…….”
광진 역시 질린 표정이었다. 지구를 파멸시킬만한 양이었기 때문이었다. 강혁은 그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흥미가 가나?”
“위험할 것 같지만 재밌겠네요. 계속 말씀해 주시겠어요?”
광진의 눈이 갑자기 번뜩이기 시작했다. 강혁은 다리가 아파왔는지 광진의 책상에 몸을 걸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지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들린 쟁반에는 홍차 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와 홍차를 건네주었다. 그리고서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그럼…….”
그녀는 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혁은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좋은 비서를 두었군. 나쁜 상관 아래 있는 것 치고는 말이야.”
“무슨 소리십니까…….”
광진 역시 홍차를 홀짝 들이키면서 말했다. 강혁은 살짝 웃으면서 농담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서는 잔을 놓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직 가설이지만 이건 엄청난 발견이야.”
“네?”
“듣고 놀라지 말라고.”
“말하세요.”
기대에 가득찬 광진의 표정을 바라보며 강혁은 다시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서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서는 입을 열었다.
“초광립자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푸우웁!!”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강혁의 말에 광진은 들이키고 있던 홍차를 내뿜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래가 걸렸는지 한참 동안이나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하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혁을 바라보았다.
“형님, 미쳤어요?”
“아니. 나는 정상이야.”
“아뇨, 제가 보기에는 비정상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그런 발언을…….”
광진은 강혁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고 있던지 상관치도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뼛속까지 과학자인 그는 단지 ‘물질’인 초광립자가 생물이 지닌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궤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봐라. 심각한 문제야.”
“지금 형님의 궤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어요?”
콰앙!
“조용히 해라.”
“넵.”
강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광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다시 광진의 입은 조개처럼 다물어져버렸다. 강혁은 일주일 전 일이 생생히 기억나는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들은 내 의지를 받아들였다. 나의 염원을 받아 들였던 거야.”
“우연일수도 있잖아요?”
“과학에 우연이란 없다. 게다가 말기까지, 그것도 갈 때까지 가버린 폭주가 그렇게 간단히 사그라질 리가 없지.”
“하지만…….”
광진은 할말을 잃은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까지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밝혀내기만 한다면 말 그대로 엄청난 대발견인 것이다. 이미 초광립자라는 물질이 일반 물리학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생물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광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형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건……?”
“우주로 가라.”
이번에는 강혁의 눈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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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입니다. 잘 봐주십쇼. 댓글도 많이 많이...
아, 그리고 초광립자는 그냥 제가 만든 겁니다. 착각하실 분은 계시지 않겠지만 노파심으로 말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게 더 최근에 썼던거에다가 나름대로 봐서 더 나은 것 같아서 이걸로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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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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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재미 있네요. 다음편이 심히 기대가 될 정도로!!
그리고 배울것도 많고~ ㅋ 한수 배우겠습니다.
연참해 주세요~^^ |
2005-07-20
22: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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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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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할 말 없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소설이 나오다니요!!!
초반부터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내 뿜더니!! 확실히 뭔가 체계가 잘 잡혀있는 소설입니다. 설정이라던가.. 여러가지 면에서!!
우오오!!!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4번째 읽었습니다..!! 캐스톨님 말 처럼 배울 점이 산더미..
다음 편을 보고 싶군요!! 빨리 콜콜!!! |
2005-07-21
01: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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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좀 긴 글이었지만, 어쨌든 다 읽었습니다. 체계가 착착 잡혀있네요. 에, 글을 보면서 느낀 건데.. 다음부터는 글을 올릴 때 조금씩 분량을 줄이면 안될까요? 스크롤의 압박이 있으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답니다..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요^^;; |
2005-07-21
08: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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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유조아나 드림워커 같은데 가셔도 전혀 안 꿀리실...필력...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군요 'ㅁ' |
2005-07-21
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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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좋군요. 한편의 비문학사설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체계가 잡혀있음은 물론이고, 마치 사실을 읽는 듯한 느낌... 乃
내용도 방대하고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
2005-07-21
14: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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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너무 허황되고 유치하지도 않고, 그러나 재미도 있는,,
소설 본질의 의미를 제대로 적어낸 소설이네요,,
특히 3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세계의 종말을 배경으로,,
한국인과 초광립자란 물질을 주연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마칠때도 그 다음편이 기다려지는 이야기 짜임새,,
다음편 정말 기다려집니다. |
2005-07-30
12: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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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음..
무슨 내용인지 자꾸 궁금해져요. |
2005-07-30
12: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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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입니다.... |
2005-07-30
20: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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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당.
인육....쩝; |
2005-08-01
13: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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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분량도 적당하고 내용도 환상적인 대작이 탄생하셨구려..
도중하차하지 마시고 끝까지 이어 나가면 책으로 펴내도 손색없는것
같습니다. |
2005-08-02
1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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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책으로 펴내면 대박 날 것 같습니다;;
태클 걸 내용이 없네요 |
2005-08-06
18: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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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어 보시는건 어떨까요 ?? |
2005-11-20
18: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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