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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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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5 12:03:36 조회: 1,063 추천: 1 |
[6]
퀴스나트 교단에서 고위 사제를 대상으로 재판을 거행한 것은 수세기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판의 대상이 된 사제는 '넬'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로, 그가 교리를 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부터 교단내에서 '넬 노튼'이라는 남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게되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가 신에게 바져진 제물을 자의로 훔쳐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도 않될 일이었다. 넬은 절대로 그 제물을 어디로 빼돌렸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교단내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심문은, 일반적인 그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문제의 제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정말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돈으로 바꾸어봤자, 금화 5냥정도가 나올정도의 것들. 그러니까, 장물의 가치로 따지자면 위험에 비해서 이득보다는 손해가 큰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어느 정도 교단내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인물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것은 결코 순간의 욕심 때문에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제물을 훔친 것일까? 퀴스나트 교단에서 말하는 다섯번째 교리는 '신의 것을 탐하지 말지어다.'이다. 그것을 어겼다는 시점에서, '넬 노튼' 상급 사제는 신을 모독한 것이 틀림없다, 라고 교단에서는 결론을 내렸다.
[퀴스나트님은 저를 이해해주실겁니다.]
재판 당시, 그가 꺼낸 말은 그게 다 였다. 마치 교리를 어긴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듯한 태도로, 그는 미소까지 지으면서 말했다. 그와 같이 교단에 들어온 사제들은 그가 절대로 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마를 가릴 정도로 꽤 긴 앞머리는 온화한 갈색이며, 림베르노의 십자가를 비추는 진한 고동색의 눈동자, 그리고 약간은 멍한 표정을 한 넬이라는 사제는 얼핏보아도 그런 큰 죄를 저지를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확실했다. 재판의 결과로, 넬 노튼은 순식간에 견습사제로 하강되었다. 그가 교단에서 제명되거나, 이단 심문관에게서 살해되지 않은 것은 그가 그 동안에 배푼 선행 때문이었으리라. 교리를 어긴 것 이전에 그는 그 누구보다도 착실하 신자로서, 그를 아는 모든 사제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를 제명시키지 말라는 상층부의 몇몇 권력자들의 압력과 아래에서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제들이 넬을 교단에 머물 수 있도록 항소를 올려준 덕분에, 넬은 견습사제나마 교단에 소속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넬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물 여섯이라는 비교적 어린나이에 상위급 사제의 벽을 뛰어넘은 유능한 젊은이를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하위 견습으로 내려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넬에게 '멍청한' 혹은 '바보같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얼간이 넬.', '멍청한 놈' 등등 그를 비하하는 명칭만이 늘어갔다.
[넬 선생님!]
그것을 참다못한 넬의 여제자, 릴리노어가 그의 서고제로 들이닥쳤다. 정확히는 발로 문을 걷어차며, 그대로 돌진해 들어간 것이지만. 이런 괴이하고 소란스런 행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다름아닌 금발의 소녀. 단호한 의지를 담은 두 눈동자가 날카롭게 넬을 노려보고 있다.
[아, 릴리노어양. 마침 잘됐군요. 새로 차를 끓였는데, 여기와서 같이 마셔요.]
이리저리 어질러진 책들과 그 중심의 책상 앞에서 넬이 그녀를 맞이했다. 한손에는 제목이 없는 책을 들고서, 차를 막 들이키려하고 있었다.
[차가 문제가 아니야! 요즘 지르간 패거리가 선생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음?]
식식거리며, 소리치는 금발소녀의 목소리에도 그저 '음?' 정도의 짧은 대답이 전부였다. 정말 궁금하긴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성의하다. 그녀가 언급한 지르간 패거리는 그녀와 동급생으로 질이 나쁜 측에 속하는 부류였으며, 평소에 넬이 담당하고 있는 수업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녀석들이 선생님을 '제물에 눈이 먼 얼간이'라고 말했다니까!]
거기에 분노하여 금발 소녀, 릴리노어가 친절하게도 그 사실을 넬에게 일러바친다. 화려한 복장이 말해주 듯, 그녀는 귀족의 태생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동안 배워온 예법이 아쉬울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하는 넬이라는 사제의 반응.
[아아, 그렇습니까...]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일인데도, 본인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화는 커녕 웃어버리다니. 이 남자는 정말 바보인건가, 하고 생각해버릴 정도의 시원한 답변이었다. 그것은 이미 알고있었다는 의미를 풍기는 동시에, 자신을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향한 동정의 뜻이었을까.
[그렇게 넘길 문제가 아니잖아!]
도리어 화를 내는 쪽은 본인이 아닌 제자였다. 귀까지 붉히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도 넬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귀족의 자제였던 릴리노어는 교단에 들어올 당시만해도 다른 귀족의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않게 제멋대로에다 이기적인 성격이었다.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와는 말도 하지않았으며, 하찮은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이 노골적으로 경멸의 눈빛을 뿜어내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따르는 스승이 넬이라는 사제였던 것이다. 그런 사제가, 자신이 인정한 스승이 상대할 만한 가치도 없는 놈들에게 모욕을 당하다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넬 선생님은 아무 잘못없잖아! 사실대로 말했다면, 이렇게 아래로 내려올 일도 없었을텐데...]
그녀는 사건의 진상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스승인 넬이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않아! 애시당초 그 망할 놈이 훔치려던 걸 선생님이 불쌍하다며 나눠줘버린 것부터가 문제야!]
교단에서는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막 두 강대국간의 전쟁이 끝나버린 지금,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의 피해자들은 종교에 의지했다. 릴리노어가 '망할 놈' 이라고 지칭한 남자도 그 피난민 중 하나였다. 그 남자는 지급되는 소량의 음식에 만족을 못했는지, 몰래 신전에 모셔진 제물을 탐냈던 모양이다. 그것을 훔치려는 찰나, 그는 넬에게 그것을 목격당하고 말았다.
[뒷일은 제가 책임질테니,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떠나십시오.]
그런 상황에서 넬은 남자에게 제물을 줘버렸다. 온화한 미소로 남자를 안심시키며 몰래 밖으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죄를 모두 자신이 뒤집어써버린 넬은 그대로 재판에 끌려가게 되었다. 릴리노어가 항의했지만, 넬의 신념은 완고했다.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제물로서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퀴스나트님께서도 저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여태까지 쌓아올린걸 한번에 잃게된거잖아!]
[신을 믿는데에 고위 사제면 어떻고, 견습 사제면 어떻습니까?]
농담이라도 하는 듯, 웃어버린다. 그에 비해, 릴리노어 쪽은 '이제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버린다.
그녀는 '넬 노튼'이라는 남자가 이처럼 바보같으리만큼 착해빠지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녀석이라는 것을 잠시동안 잊고있었다.
[...그래서, 이제 선생님은 뭘 어떻게 할건데?]
릴리노어 쪽에서 항복, 이것으로 넬은 30전 30승의 성과를 올렸다. 아쉬운 듯이 릴리노어는 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다.
[글쌔요, 일단은 여행을 해보고 싶네요.]
넬은 다시 차를 들어 한모금마신다. 뒷맛이 좋지 않았는지, 그의 표정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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