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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귀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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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귀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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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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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0 11:41:15 조회: 1,075 추천: 1 |
[사람 사귀기]
그와 많이 만났다. 꽃다발 핑계로 그와 자주 말했다.
“오늘이야.”
오늘은 그와 약속을 했다. 날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작은 커피숍에서 약속을 했다.
“커피요. 근데 사람 두 명 더와요.”
커피를 워낙 안 마셔서 종류도 뭔지 모르겠다. 아, 약속 시간은 이제 5분 남았는데 내가 먼저 왔다. 보통 내가 먼저 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그 사이 띠리리하고 전화가 왔다. 원래 띠리리는 아니고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가 나오는데 뭔진 모르겠다.
“네. 아, 안사겨씨‥ 그냥 커피숍인데 간판에 잔이 그려져 있어요. 2층이요.”
안사겨씨였다. 내게 사람을 사귀는 걸 도와달라고 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것이라 꺼릴 필요는 없다. 돈버는 방법이 좀 독특한거 그거 하나 뿐이지 않나 싶다.
“‥그씨!”
잠깐 딴생각을 하는데 그가 왔다. 그는 안사겨씨가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안사겨씨완 같은 직장이고 같은 과이면서 안사겨씨가 너무 소극적이라 동료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렇고 보면 이 회사도 사치스러울 따름이다. 돈주고 사람을 사귀는건 좀 이상하지.
“먼저 와있으셨네요. 그런데 커피를 싫어하신다면서 어쩐 일로 이곳에?”
그는 내 앞에 앉았다. 난 한번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곧 올거에요. 안녕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죠.”
내 말에 그는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마 같은 회사여서 그렇겠지만, 남자를 소개시켜 주려니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안녕 회사요? 누군지 궁금하군요.”
“곧 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말을 끝내고 카운터를 곁눈질 했다. 마침 유리로 된 문이 열리고 하얀 정장을 입은 안사겨씨가 보인다.
“안사겨씨!”
내가 손을 올려 안사겨씨를 부르자 그도 고갤 돌렸다. 난 그가 “아닛!” 하는 중얼댐을 들었다.
“안사겨씨, 인사하세요. 제 친구입니다.”
안사겨씨도 내게 다가와서 그에게 인사를 하려하다가 놀란 눈칠 보였다. 물론 그건 안씨에게만 놀란 일이겠지만‥‥‥.
그 후, 우리 셋은 친해졌다. 물론 난 그런 친구들이 더러 많았다.
또 그 후에 어느 날이었다. 난 우리 회사 앞에서 담배를 뻐끔대고 있었는데, 안사겨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가 가끔 안사겨씨를 꺼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사겨씨를 싫어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조금 기다려 보세요.”
안사겨씨는 알았다며 전화를 뚝 끊었다. 그 뒤 어느 날에도 안사겨씨의 전화가 온 적이 많았다.
“어느 날엔 그와 나만 사무실에 있었는데 그는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나가는 걸 봤어요. 난 그냥 모른척 했죠. 또 어느 날엔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혼자 한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나하고만 안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하고 자주 식사하는 걸 봤거든요.”
그 후에 난 그씨와 만나기로 했다. 사실 안사겨씨의 이런 통화가 계속되면 내 일에 마찰이 있을 것만 같아서.
“오랜만이군요. 안사겨씨와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 땐 같은 과인지도 몰랐는데.”
“물론입니다.”
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사겨씨는 가끔 절 귀찮게 해요. 제 개인 생활을 방해한다고나 할까요‥ 좋은 사람인데 그 버릇만 고쳤으면 좋겠어요.”
“버릇요?”
“시도 때도없이 와서 말을 걸어요. 제 기분에 상관없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 안사겨씨의 잘못이었다. 그래서 난 그와 만난 뒤 안사겨씨에게 전화를 했다. 안사겨씨에게 그와의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는 날 귀찮게 생각했던 거군요.”
“안사겨씨, 그건 아닐겁니다.”
“아닐거라뇨? 당신의 말은 너무 이상합니다. 항상 추측하듯이 말하더군요. 그가 무슨 말을 했던가요? 사실은 제가 싫다고 말했겠죠? 애써 거짓말하려 들지 말아요.”
“예?”
나는 당황했다. “돈으로도 별 수 없는 게 역시 많군요.” 하고 안사겨씨는 뚝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에 안사겨씨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안사겨씨가 며칠 전부터 그에게 말도 안하고 혼자서 묵묵히 있다 사표를 냈다고 했다.
또 날이 샜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안사겨씨가 죽었습니다. 감기약을 많이 먹어서 죽고 말았어요.”
“아‥‥‥.”
좀 지나 그와 난 안사겨씨의 장례식을 참관했다. 가보니 참 쓸쓸한 것이, 가족밖에 없었다. 친구라고 보이는 사람은 우리 둘일까.
난 장례식을 뒤로하고 밖에 나와 담배를 뻐끔 폈다. 연기가 동그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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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
그가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창세 11:9)
지붕에 달린 낡은 형광등이 손 하나로 몸을 지탱한 채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회색 먼지가 이룬 원형 탁자엔 두 윤곽이 마주 앉아 있다. 그들은 무언가에 대해 얘길 하고 있다. 나는 며칠 전부터 그들의 얘길 들어왔다.
《오래 전의 일이야, 아직도 기억이 나?》
한 사람이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확신을 요구하는 물음처럼 보였다.
한 사람의 말에 마주 앉아 있던 안경잡이는 고개를 끄떡였다. 어딘가에 빛이 있는지, 안경에 붙어있던 렌즈 한 쪽이 번쩍거린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안경잡이는 진지했다.
《물론이지.》
한 사람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는 입을 가린다. 입은 꿈틀거리며 킥킥댔다.
「그러기 위해선 뭘 해야할까?」
안경잡이가 왼 손을 입으로 살짝 물었다. 일종의 버릇이다.
《우리에겐 2세기가 쥐여져 있어.》
한 사람이 웃는 모습을 안경잡이에게 보여줬다. 눈은 여우처럼 가늘고, 입은 들뜬 어린애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안경잡이가 웃음을 쪼갰다.
《미국으로 했으면 하는데.》
한 사람이 진지해졌다. 마치 얼굴로 장난을 치는 사람처럼 보인다.
「범죄자의 땅이잖아?」
안경잡이는 놀란 눈치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신뢰가 가질 않는다. 그들의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교화될 수 있어.》
「그것은 50%의 확률이야. 우린 완벽함이 필요하다구.」
한 사람의 설득에 안경잡이는 굉장히 단호했다.
한 사람은 안경잡이의 말에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안경잡이는 재빨리 말을 잇는다.
「영국은 어때? 애초에 미국은 영국의 파종이지.」
안경잡이는 웃었다. 코에 걸린 안경은 들썩였다.
한 사람은 픽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고개를 홱하고 돌리고, 또 픽 웃는다. 그리고, 안경잡이를 쳐다봤다.
《결과적으로 미국이란 얘기였군.》
한 사람의 오른쪽 입가에 주름이 나타났다.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갖게 될거야.」
안경잡이가 따라 웃었다.
《그럼, 끝난건가?》
한 사람이 일어났다. 회색 먼지가 풀썩 떨어져 순식간에 색을 잃었다.
「영어나 잘 배워두라구.」
안경잡이가 킥킥댔다.
한 사람의 윤곽이 움직인다. 앉아있던 안경잡이에게 멀어지더니,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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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경 추억]
그곳에는 작은 선반밖에 없었다. 다리가 네 개나 달린 그 갈색 민무늬 선반 위에는 시계가 째깍거리며 아무 소리도 없다는 걸 알려줬다. 그곳을 찬찬히 살피다 창문을 아주 조용히 열고 들어가자 말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면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두 개나 있었다.
둘은 내게 등을 보이며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얼핏 보아도 사람이었지만, 한 명은 그곳에서도 샛노란 빛처럼 보일 정도로 밝고 긴 머리를 갖고 있었다. 내가 더 가까이 가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째깍거리는 소리는 사라졌다.
《네가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면 넌 충분히 [기억속의 존재]로 존중받게 되는 거야.》
샛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존재라고? 우스운 소리마! 신이 정한 운명따위로 결정되는 누군가에게 남겨지는 [존재]따윈 필요없어.)
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을 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낄낄대며 긴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웃음은 멈추지 않아 그는 배를 쥐어 잡으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건 일부러 낸 웃음소리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넌 살기가 싫은건가? 누군가의 기억속에 있기 때문에 네가 살 수 있는건데?》
‘누군가’는 고개를 홱 돌리며 [이제 생명은 필요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럼 뭘 할거야?》
(죽을거야.)
누군가가 무릎을 굽히며 불편한 자세로 바닥에 엉덩이를 대지 않은 채 앉았다. 그는 고개를 내린 누군가를 쳐다보며 언성을 높였다.
《말리는 자는 없을거야. 슬프지 않아?》
(뭐가 슬프다는 거지?)
누군가는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 그를 쏘아봤다. 그는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대답했다.
《네가 [기억]을 부인하면 모두 사라져. 너와 마주쳤던 자들 모두.》
누군가는 고개를 내리더니 양 팔로 얼굴을 감쌌다. 누군가의 말소리는 이제 다른 사람의 어조로 들렸다. 그것은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모두 가짜야.)
또 그 소리는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는 킥하고 잠깐 웃고 대답했다.
《너도 가짜야.》
(그래서 죽을거야.)
그는 무릎까지 흘러내린 옷가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곤 누군가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그건 너무 불편한 자세였다.
《넌 죽을 수 없어.》
그가 비웃는 소리를 흥얼거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왜?)
《신이 정한 너의 운명의 수명은 아직 한참이니까.》
누군가가 그의 말과 동시에 그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빨강과 회색이 교차하는 타일 바닥을 쳐다보며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두고 그것을 부둥킨 채 턱을 대었다.
(그냥 죽으면 돼.)
《넌 죽을 수 없어. 죽기 전에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모르는 거야?》
그가 오른손으로 바닥을 찬찬히 쓸었다. 누군가의 눈길이 그의 손길을 따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알려줘.)
그가 소리없이 씨익하고 웃었다. 누군가는 그걸 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초리 위에서 이상한 느낌이 감돌았다.
《네 운명의 수명이 남아있기 때문이야. 넌 긴박한 죽음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택할 수 없어. 그저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이지.》
누군가가 두 팔 안에 입을 숨기며 말했다. 또다시 답답한 어조가 들렸다. 또한 웅얼거리는 소리와 같았다.(그에겐 확실히 들리는 것 같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야.)
그는 누군가의 말뒤로 한참을 보내고 나서 무릎을 들어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뒤에 서있던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렇다면 넌 정한 운명대로 살아가야 해. 변하지 않아. 네가 겪은 일도, 모두. 그리고 앞으로의 기억, 추억까지.》
그가 말을 끝마치고 알 수 없는 음을 속삭였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인 것 같았다. 그건 약간 따뜻하고 슬펐다.
누군가는 다리가 아픈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사이 두 팔로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누군가는 아주 약간 편안함을 느꼈다. 단지 누군가가 아쉬워 하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신과 다른 선택을 하면 끝나. 내 생명에 대해서 말야. 더 고심히 생각하면 돼.)
그가 낄낄댔다.(처음에 봤던 웃음이 아니다.)
《넌 하나만 알고있어.》
누군가가 그의 말이 이어지고 한참동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빨강과 회색이 교차하는 타일 바닥들. 그리고, 곳곳에 벽들뿐이었다.
(난 아는 게 없어.)
《너의 생각은 네 것이라고 생각해? 네가 무얼 선택하든, 그건 모두 신이 정한 일이야. 바뀌는 건 없어. 네가 신의 존재와 운명의 여부를 알았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는거야. 죽지도 못해. 운명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
내 귓가에 째깍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리고 나서 둘은 그곳에 없었다. 시계는 오후 10시를 끝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멈춰버렸다.
오후 10시경 추억은 그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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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
오래된 술집 같았다. 그를 따라 외진 골목에 짧막한 불빛을 내뿜는 그곳은, 오래된 술집이었다.
그곳의 문은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그것을 오른손으로 밀치며 나는 그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지붙은 옷을 입은 모든 사람들 틈에서 가장 돋보였다. 시끌시끌한 그곳에서 늙은 여자의 시선 앞에서 그는 아무도 없는 너무나도 낡은 탁자 근처에 앉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댔다. 사람들은 그에게 시선을 힐끔거리지도 않았다. 그가 그곳에서 돋보이는 사람이었는데도. 하지만, 그에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술집 안에서 가끔씩 깜박이는 불빛 주변을 빙빙 돌며 그를 지켜봤다.
오른손을 들어 까딱거리는 사람. 그는 눈도 채 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늙은 여자를 불렀다. 늙은이는 그 손가락을 자세히 보려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눈을 크게 떴다가 천천히 그의 탁자로 걸어갔다.
늙은 여자는 아무 소리없이 귀만 그에게 가까이 대었다. 그는 말을 하려다 아차하더니 늙은이의 귓가에 속삭이지 않고 떠벌려 말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오천만원을 준다고 하세요.]
그녀는 아주 음흉하게 웃더니 고개를 아주 조금 흔들었다. 늙은 여자는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술잔이 늘어선 긴 탁자 밑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정말 알 수 없는 글자를 썼다. 그리고, 탁자 옆에 있던(그러니까 그녀에게 아주 가까운) 벽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다.
사람들은 늙은 여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무언가가 적힌 종이를 세워두는 것을 보고 금방 달려가서는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앉아서 계속 술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잠깐, 잠깐만요! 일단 줄을 서세요!]
손을 내저으며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가지고 차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제 말해도 되지? 내가 말야. 정말로 평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가장 앞에 서있던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말이 조금 많았는데, 같은 말을 두 번씩 말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두 손을 들어 하는 말마다 그것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는 그 사람이 다가오자 애써 태연한 표정을 하고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 사람이 앉았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머리라구. 사람 머리는 모두 똑같잖아. 안 그래?]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금방 해결되었다. 그것은 노력의 정도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소리를 내지르며 왜 아니냐며 발끈하기 시작했지만, 뒤에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성질을 내거나 혹은 그 행동을 막아섰기 때문에 화가 난 그 사람은 술집을 나가버렸다.
내가 본 두번째 사람은 키가 아주 큰 사람이었다. 옷은 조금 초췌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몸이야. 몸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잖아?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지만 말야.]
그 사람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말한 것이 답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도 아까보다 조금 더 고민했지만, 태어나자마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 그 말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녜요. 미안합니다.]
그 사람은 금방이라도 화를 토할 것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순순히 비어있는 탁자로 가 술을 마셨다.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나쳤지만, 하나같이 예외 투성이였다.
그리고, 아주 침착해 보이는(어쩌면 묵묵한) 사람이 의자에 앉았다.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코웃음을 팽하고 치며 말했다.
[죽음이야. 너도 죽고, 나도 곧 죽어. 누가 더 오래 사느냐. 그것만 달라. 하지만, 누구나 죽게 되어있어. 너같이 부자라도 죽게 되있어. 그게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이야.]
그 사람은 왼손을 들고 검지를 치켜 세우더니 그것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시계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아! 죽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죽음]을 정답으로 삼고 있어서 였다. 그도 물론 그랬다. 여태껏 나왔던 모든 정답들 중에서 가장 그럴싸하고 그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계속 생각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다른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했을 때 죽음은 점점 평등이라는
기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천국과 지옥. 그것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에 따라 죽은 뒤에 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것은 분명 평등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10살 꼬마와 100살 노인이 같은 날에 죽는다면 그것도 평등이
아니었다. 10살 꼬마는 90년의 기억과 기회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껄껄하고 웃더니, 구석에 위치한 탁자 주변에 앉았다. 그것은 아주 느린 걸음이었다. 그는 그 사이 [세상에서 평등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였구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러했다.
모두들 차례를 벗어나서 술만 마시고 아직도 줄을 선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모두 말을 꺼내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그는 아주 늙은 그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앉아서 잠시 말을 꺼내지 않던 그 남자는 천천히 말했다. 마치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소곤대던 것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모두가 침을 삼켰다. 그는 그동안 침이 입 안에서 고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술잔을 드는 소리가 딸각 딸각 들렸다. 그는 삼키지 않은 침을 뱉어낼 뻔 하다가 그것을 꿀꺽 삼키며 소리쳤다.
[시간?]
그리고, 아주 깊게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소곤댔다. 모두들 [시간]이라는 평등에 대해 얘길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술잔을 비운 사람들은 그가 정답이라고 대답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다른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조금 더 언성을 높이며 [시간]이라는 정답을 허공에 뿌렸다.
[정답은 시간이야.]
[시간밖에 없어.]
[누가 잠을 자든, 지금 술을 마시든.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어.]
[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몇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거나 따르던 술을 떨어트리며) 더욱 언성을 높였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그가 그런 대답을 왜 했는지, 그것에 이유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저녀석, 괜히 수작부리는 거 아냐?]
[그래, 오천만원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지!]
그곳의 사람들은 이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직접 다가가서 그의 표정을 더 일그러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앞에 앉아있던 그 남자의 소리침에 다시 오래된 술집은 정적으로 가득찼다.
[왜 시간이 평등하지 않다는 거지!]
그는 눈을 찡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건 죽음과 같아요. 시간은 평등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죽으면 더이상 그 누군가에겐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흐르더라도, 그건 가짜일 게 분명합니다. 그건 9살 꼬마와 90살 노인이 같은 날에 죽지않는 것과 같아요. 90살 노인이 90년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9살의 꼬마는 9년의 시간밖에 가지지 못했어요. 만약 9살의 꼬마가 죽어버린다면 그 꼬마는 9년의 시간밖에 가지지 못하겠죠. 아니, 만약 죽어서도 시간을 가질 수 있다해도 그것은 일찍 태어난 사람과 더 늦게 태어난 사람과는 분명 시간의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시간은 죽음보다도 평등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소리도 태어나지 않는 술집이 있는 외진 골목을 걸어나왔다.
오래된 술집의 문은 딸각거리며 좀처럼 몸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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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어지는 약]
20년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은 질병과 상처, 그러니까 고통. 그것을 감쪽같이 잊을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의약의 발달로 이루어 졌다. 그 조그만 알약 하나로, 모든 고통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영구적이기 때문에 값이 비쌌지만, 그것은 영구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고통들이 사라졌다. 그 알약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한 병에 걸리더라도 아무런 고통없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주 편한 일이다.
그리고, 이번 2024년에 전국에 있는 학교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성적 고민]을 하고있는 학생이 전국 1%에 불과했고, 더욱 놀라운 일은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거나 때리는 경우가 약 0%나 다름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설문란에 [부모님이 날 때릴 때]를 표기한 학생이 한 명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약 0%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전국 엘리트들을 모아 만들었던 [고통 없어지는 약]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막고자 정부에서는 그 학생의 부모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어제였고, 수업중이던 그 학생의 반으로 찾아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
『계십니까?』
준수한 외모를 지닌 중년이 파란 대문을 두드렸다. 아무 소리가 없자 옆에 있던 사각턱 남자가 중년에 앞을 팔로 막아서며 말했다.
『얘야, 그러지 말고 네가 해라.』
가방끈을 굳게 잡고 대문을 올려다 보는 어린 아이에게 등을 기울이며 얼굴도 내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곧장 주저 앉아서는 색이 짙은 흙을 파더니 열쇠 하나를 꺼내 끙끙대며 문을 열었다. 그것은 끼이익거렸다.
어린 아이는 대문을 적당히 열어 젖히고(자신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비좁게) 사과를 깍고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엄마!』
그 할머니는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리곤 다시 사과를 깍았다. 어린 아이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는 엄마 옆에 앉아 사과 깍는 것을 아주 신기한 것처럼 바라봤다. 그러자 뒤에서 문을 좀 더 열어 젖히며 중년과 사각턱 남자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사과를 깍으면서도 소리를 아주 쉽게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이놈이 왜이리 일찍 왔나 했더니, 누가 따라왔구나.』
중년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 안을 뒤적거리더니 동시에 발을 옮기면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일단 펜을 쥔 손으로 무언가를 누르며 딸깍댔다.
『잠시 할머님께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중년이 머쓱히 웃었다. 사각턱 남자가 옆에서 말했다.
『좀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건 아주 큰 일이거든요.』
사각턱 남자가 중년에 옆으로 다가와 서며 말하고 나자 할머니는 코웃음을 핑하고 쳤다. 사각턱 남자는 오른손을 올려 헛기침을 하고는 어깨로 중년을 살짝 밀었다. 중년은 갈색 수첩을 열어 젖히고 말을 시작했다. 그것은 다분히 진지했다.
『애를 조사해 보니 [고통 없어지는 약]을 구입하신 걸로 아는데, 복용 시키셨나요?』
할머니는 사과를 아주 크게 삼등분 하고는 그것을 지켜보던 어린 아이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칼에 꽂혀 있었다. 어린 아이는 한 손으로 사과를 빼내며 아삭 아삭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남아있는 사과를 깍기 시작했다.(쓸데없는 행동 같아 보였다.)
『물론 먹였지. 나도 먹었고.』
할머니는 아까 깍아뒀던 큼지막한 사과 한 조각을 냉큼 아삭 베어 먹었다.
중년은 재질문을 하려다가 스슥대며 할머니의 대답을 적었다. 사각턱 남자는 중년이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하자 어깨로 툭치며 혼자 개별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애를 때리시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죠? 어차피 쓸데없는 일이잖습니까.』
사각턱 남자가 두 팔을 들어 어깨를 으슥댔다. 중년은 펜을 든 손을 턱에 대며 말했다.
『맞아요. 요샌 새로운 교육도 많이 생겨났잖아요.』
할머니는 둘의 말을 듣고 낄낄대며 웃었다. 배꼽을 잡고 웃어서 갑자기 힘이 빠진 오른손에 잡혀있던 사과가 툭하고 접시로 떨어졌다.
『그게 큰 일이야?』
사각턱 남자가 좀 더 진지해지며 대답했다.
『그것은 아주 큰 일이에요. 개인의 쓸데없는 자원 낭비이고, 첫번째로는 앞으로 나올 부작용을 예방할 수도 있거든요. 왜냐면 할머님의 그 행동이 [고통 없어지는 약]에 커다란 부작용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중엔 고통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어요.』
중년이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할머니는 사과를 열심히 깍으며 말했다.
『난 그냥 일부러 하는건데.』
사각턱 남자와 중년은 할머니의 말에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둘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돌렸다. 사각턱 남자는 중년의 수첩을 검지로 툭치며 그 말을 필기할 것을 요구했고, 곧장 말을 했다.
『어차피 이 꼬마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을 텐데요. [고통 없어지는 약]은 불쾌를 억제하니까요.』
중년은 사각턱 남자의 말도 적었다. 할머니는 사과를 다 깍고서 그것을 사각턱 남자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래서?』
사각턱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았다. 수첩에 열심히 둘의 말을 적고 있던 중년이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라뇨?‥‥‥.』
할머니는 또 낄낄거렸다.
『그래서 큰 일이 뭔데?』
여기서 끊겨있다.
고통을 즐기는 할머니에 관한 보고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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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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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정말로 믿을수가 없네요, 이런 대단한 글을 쓰시다니;; 진짜 강추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허접한 공상과는 비교가 되네요 정말 여기 있기에 아까울 정도 입니다. 진짜 소설가가 쓴 글 같아요 요즘 통 안보이시더니 언제 이런 실력을;;..
제가 한 싸이트 추천해드리죠 조아라라고 소설을 올릴 수 있는 싸이트가 있습니다. 분명 최고가 되실겁니다! |
2007-06-12
22: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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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알고 있었는데
조금 불편하고..게다가 금전을 요구하는 운영 ..
모기라는 소설 커뮤니티에 다니다가 요즘은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닥 이름 탄 적은 없지만, 그쪽에서 지금 이 소설들 사람 사귀기 빼고 거의 퇴짜라고 할 정도로. |
2007-06-15
17: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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