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발걸음으로 연무장을 향한다. 고개 또한 당당하게 들어 고고한 기세를 뽐낸다. 모여있는 여인들이 점점 가까워 진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나오십니다!"
단상 위에서 빠른 걸음으로 온 기사의 외침에 모든 귀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여인들은 저마다 몸을 바로 했다. 그 소릴 들은 아밀리언의 걸음도 멈췄다. 가슴 속에서 얕게 흐르는 기대감. 앞으로 자신의 위치는 바로 그자의 옆에 있을 것이니.
물론 저 여인들이 들으면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반문을 할 테지만 지금의 그녀는 여느때와는 달랐다.
그리고 등장한 사람.
등 뒤엔 밝은 태양을 지고 단상에 올라섰다. 등에 걸친 붉은 천에 금실로 수놓은 망토를 휘날리며 등장한 남자.
모든 귀족들은 긴장하며 한 쪽 무릎을 꿇고 읍했다.
"차질리우스 별의 가호를 받으신 고귀한 존체! 황제 폐하께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 아밀리언은 어색한 몸 동작으로 옆에 있던 영애들을 모습을 보고 따라했다. 왼 손으로 명치 윗 부분을 잡고 고개를 숙이는 그러한 동작. 귀족가의 레이디라면 누구나가 아는 인사 예절이었다. 아밀리언에겐 이 행동은 정말 생소했다. 드레스을 입어 본 적은 한 번이 없을 뿐더러 그러한 옷은 자신이 사절이었다.
"모두 고개를 들라!"
위엄있는 황제의 목소리는 연무장 구석 구석 울렸다.
모두 고개를 들어 황제가 있는 단상을 보았다. 아밀리언은 귀족들의 인사에 자신도 따라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제야 때가 된 것이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백금발은 사금이 흩뿌려지듯 반짝거렸다. 좀 더 아래쪽. 그 곳엔 위엄으로 빛나는 눈이 전방을 보고 있었다. 눈썹은 굵고 코는 오똑하다. 턱선 또한 굵고 강직하다. 그의 외모는 정말 남자답게 생겼다.
"흐음 외모는 역시 황족의 핏줄 다워."
예로부터 황족이나 귀족의 핏줄은 출중한 외모를 타고났다. 그 이유는? 권력은 미녀를 불러들인다. 그렇게 물려받고 물려 받다 보면 절로 미가 더해간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여기 모여있는 그대들은 귀족의 영애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황제의 외침.
"아닙니다!"
영애들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럼 그대들은 가녀린 레이디 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도 역시였다.
"그럼 그대들은 무엇으로 이 곳에 왔으며, 무슨 자세로 이 곳에 임하는가!"
조금 긴 서술형 질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가장 왼쪽의 여인이 오른쪽 무릎을 굽히고 가슴 앞에 오른손을 일자로 눞히며 말했다. 마치 기사처럼.
"전 황제 폐하를 보좌하는 뛰어난 수석 시녀가 되기 위한 자로 이 곳에 왔습니다! 어릴 적 부터 수석 시녀라는 자리 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며 다시 몸을 일으켜 바른 자세로 섰다.
그 후 옆의 여인도 똑같은 행동을 취하며.
"수석 시녀 후보로 이 곳에 왔습니다! 저의 목표이며 꿈이며 전부인 수석 시녀가 되기 위하여, 황제 폐하를 보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그건 하나의 관례인 것 같았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 응답들 뿐.
많은 여인들의 외침은 점잠 자신과 가까워 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체 아밀리언은 여인들과 동화되어 있었다.
어느새 마지막 한 사람. 그녀였다.
"음? 저런 영애가 있었던가?"
"공은 저 레이디를 본 적이 있소?"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려."
"지방 귀족의 영애인가?"
사방에서 귀족들의 말소리가 터져나왔다.
웅성웅성 거림에도 불구하고 아밀리언은 그저 해야 할 말을 떠올리느라 바빴다. 이것이 관례라면 자신도 따라야 하지 않는가?
"모두 조용히 하라!"
황제의 음성에 귀족들은 조용해 졌다.
"내 다시 묻겠나니 그대는 어찌 이 곳에 왔는가?"
질문이 조금 달랐지만 아밀리언은 힘차게 대답했다.
"난 날 귀찮게 하는 날파리를 피하기 위해 이 곳에 왔지. 정말 이젠 지긋지긋해. 황궁에서 호의호식하며 그 동안 누리지 못한 걸 누려볼려구."
이 곳은 황성. 눈 앞에 황제. 주변엔 귀족. 옆에는 살벌한 라이벌들.
과연 무슨 배짱으로 저런 소릴 했을까?
귀족들은 어김 없이 고유 멘트를 날렸다.
"아니 이런 무례한을 봤나!"
"어찌 황제 폐하의 앞에서 저리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허어!"
비단 귀족들 뿐만 아니었다. 옆에 있는 영애들은 화가 난 눈으로 그녀를 째려보고 있었다. 죄명은 의식 방해. 그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레이디는 누군가?"
"그대의 이름을 밝혀 보게! 어느 귀족의 여식인지는 몰라도 내 그에게 가서 따져야 겠네!"
이름? 이름을 말하라고?
"나의 이름은 린킨로셀로 아밀리언."
그들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귀족의 성 중 린킨로셀로 라는 성이 있었나 없었나 하는.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답은 하나.
"그대는 혹시 평민인가?"
아밀리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답했다.
"아마 그런 것 같아."
그 소릴 들은 좌중들은 모두 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뒤 따라 나올 뻔한 대사.
"저 무례한 자를 당장 포박하라!"
이 것들은 모두 귀족들의 독단이었다. 정작 황제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아밀리언을 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