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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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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04 19:48:04 조회: 979 추천: 0 |
[5]
그들은 인간을 먹는데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일 구하기 손쉬운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지, 인간이라는 음식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들에게 대항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포식자는 이 세계에 없었다. 그들은 인간을 능가하는 지적 생물이었다. 기존에 없었던 존재들의 출현으로, 이 세계-퀴스나테나-의 생태계는 무너져버렸다. 여제껏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고라는 왕좌에 서있었던 인간은,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거기에서 추락해버렸다. 화살이라는 무기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의 단단한 외부골격은 예리한 검과 창으로도 뚫을 수 없었고, 무장하고있던 방패와 갑옷은 그들의 힘에 의해서 허무하리 만큼 쉽게 찢겨져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인류를 멸망시킬 생각이 없었다는 것일까. 사실, 이렇게 잡아먹기 좋은 먹이를 한번에 없애버려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힘앞에서는 인간은 무력했다. 놈들에게 대항할 방법따윈 없다. 그래서 인간은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일을 단순한 불행으로 치부해버렸다. 비가 오는 날, 우연히 친 번개에 맞아서 쇼크사해버린 남자나 밭을 가꾸던 중, 멧돼지와 마주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예처럼, '요괴'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단순한 재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륙을 나누고있던 두 나라 모두 요괴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은 거의 포기와 같은 태도를 취하였고, 요괴에게 가족을 빼앗긴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나보군요?"
"아하하, 그렇게 보이나요?"
조그마한 가판대 위를 먹음직스런 과일들이 자리를 차치있다. 그 과일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수염이 덮수룩한 남자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사과를 고르는 갈색머리의 견습사제에게 말을 건냈다. 갈색머리의 청년, 넬은 실없이 웃으며 남자에게 되물었다. 누가 보아도 기분이 좋아보일 수 밖에.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오늘만큼은 누가 제 가슴에 칼을 들이데도, 얼마든지 맞아드리죠.'와 같은 표정을 하고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전혀 틀리지않았다.
"후아, 혼자서 다 먹을 수 있겠수? 아무리봐도 한없이 들어가는 체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제가 먹을게 아니랍니다."
"음? 이런, 겉보기와 다르게 아이라도 기르고 있나봅니다?"
"예에, 아마 그거랑 비슷할겁니다."
사실, 아이를 기르는게 틀린 것은 아니지. 넬의 답변에 남자는 어리둥절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친절한 서버스 정신을 유지하며, 손님이 지목한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직접 손에 쥐여주는 것을 잊지않았다. 덧붙여서, 또 이용해주십시오, 하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끝낸다.
"아하하, 수고하세요."
전형적인 장사꾼의 행동을 가장 일반적인 대답으로 맞받아치고서, 넬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행복에 젖은 표정의 원인은 단연 키리아였을 것이다. 그는 키리아라는 소녀를 10년전에 마수에게 빼앗겨버린 여동생과 겹쳐 보고있었다.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떠나서도, 요괴에게 고통을 당한 피해자를 내버려두는 것은 사제의 행동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국가가 요괴에게 당한 것은 '재앙'이라며, 관심을 끊고있을 무렴,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다름아닌 퀴스나트 교단이었다. 마음의 안식이라는 종교의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한 이 퀴스나트 교단은 그것을 계기로 대륙을 대표하는 종교로서 뿌리를 내려갔다. 그런 교단에 속한 넬은 그런 이유에서라도 자신 앞에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꼭 그가 신을 섬기는 사제가 아니더라도 키리아를 돌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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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실의에 빠진 비운의 여주인공같은 역할이 반가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우습지도 않은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넬이라는 인간에게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넬의 행동은 거슬리긴 했지만, 확실히 심심하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나 재미있었다. 내가 조금만 머뭇거리거나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제멋대로 짐작해버리는 넬의 바보같으리만큼의 착각과 더불어 그 녀석의 말을 듣고서 그대로 수긍해버리는 마을의 멍청이들이 말이다. 정말이지, 그들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우스워서 죽을 뻔했다. 내가 반나절동안 아무것도 먹지않자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거식증이 생긴 것이라며 호들갑떠는 녀석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않는다. 먹지못하는게 아니라, 먹을 필요가 없을뿐인데 말이지. 내 위장 속에는 다섯명 분의 인간이 채워져있으니까. 이 사실을 넬 녀석이 알게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보통의 인간들과 같이 벌벌 떨어대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겠지? 아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걸음아 나살려라하며 도망칠까?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당장은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이유인즉슨, 나는 아직 배가 고프지않고, 이런 생활도 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럼 짧은 시간이나마 인간행세를 하며 유희를 즐겨볼까나. 기뻐해라, 넬. 네가 특이한 인간이라 조금이라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게되었으니까.
[툭-툭-]
"저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동시에 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넬에 의해서 여관 주인의 배려로, 무료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이 더 편하긴 하지만, 기왕 인간의 흉내를 내기고 했으니, 이 정도는 참아볼까하고 결심했다. 넬이 조용히 문을 열고선, 뭔가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나에게 내민다.
"키리아양, 사과를 사왔습니다만..."
방금 전에는 야채 스프따위를 가져와놓곤, 이번에는 붉은색 과일이냐? 성의는 고맙다만, 안타깝게도 나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아무것도 먹지못하는 불쌍한 여인이라는 설정이라 말이지. 나는 최대한 쓸쓸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넬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싶지않아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연기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서, 넬은 잠시동안 표정이 굳어버렸다. 꽤나 참견이 심한 인간이라, 내가 두번이나 먹는 것을 거절하자 동요가 꽤 큰 것 같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스프나 과일이 입맛을 자극할지는 몰라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자'들에겐 전혀 해당사항 없음이다.
"뭐라도 드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영양실조에 걸린다구요."
나에게 반드시 저 시뻘건 물체를 먹일셈인지, 넬은 고집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호통했다. 녀석의 이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전혀 딴 사람같잖아. 항상 멍한 표정에 뭔가 하나 빠진 표정을 짓고있던 녀석이 어찌된 노릇인지 지금은 꽤나 믿음직한 얼굴이다. 자세히보니, 넬의 얼굴은 인간들의 미적 기준에서 본다면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있으니, 넬의 잘생긴 이목구비가 단연 독보인다. 이마를 가린 살색의 머리카락과 짙은 고동빛의 눈동자, 그리고 여자아이같은 엶은 눈썹과 작은 입이 넬이라는 인간을 나타낸다.
"드실...거죠?"
...이거, 새로나온 협박의 일종인가? 아니, 그보다 지상최강의 포식자에게 한낱 먹이 따위가 협박을 하다니. 이런 소문이 동족들에게 흘러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노력해볼게요."
기세에 못이겨 나는 결국 대답해버렸다. 육식동물인 내가, 어째서 이것을 먹지않으면 안되는거지...
"예에, 그러셔야죠."
내가 순순히 대답하자, 넬은 본연의 미소를 짓는다. 어째서일까, 나는 이 미소가 묘하게 두렵다. 다른 때의 미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이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긴달까, 살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미소와 같이 그리 좋은 의미가 담긴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니, 무서워서 대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앙풰에서 흘러온 자'인 내가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게 압도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고 말고.
"그럼 저는 잠시 나갔다오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얼른 나가버려 망할 견습사제녀석.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당분간 혼자서 있을 수 있겠다고 안도의 함숨을 내쉬는 순간, 곧이어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어머나, 벌써 사이가 좋아지셨군요."
...이게 어딜보고서 친해보인다는 거야, 이건 먹는 것을 요구당하며 괴롭힘당한 거란 말이다!
넬이 나가자마자, 중년의 여자가 들어왔다. 이 여관의 주인이라나. 방금 시장에서 사온 것으로 보이는 짐을 한가득 가슴에 안고있다. 넬 녀석이 문을 닫지 않아서, 밖에서 모든 상황을지켜보았나 보다.
'조심성없는 놈 같으니...'
나는 속으로 넬을 욕하며, 그 여자가 들고 있던 짐을 바라보았다. 사이사이로 길다란 빵이나, 이름모를 과일 등이 보인다. 아니, 잠시만! 나한테 그걸 다 먹일 작정이냐, 이 망할 원숭이들아!
"모, 모두 넬씨 덕분이죠..."
나는 어색게 웃으며, 여자에게 대답했다. 아아,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중년의 여자도 덩달아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바구니를 건네주곤 금방 나가버린다.
'그건 그렇고 신기한 일이네.'
나는 넬과 여관의 주인, 그리고 마을의 얼간이들, 이렇게 인간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인간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거울이라는 도구에 이 얼굴을 비춘다고 해도, 나는 스스로 그것이 내 얼굴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 인간의 형상이 진짜 내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내 눈에는 인간이란 생물들이 다 비슷하게 보여서 구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수십마리의 쥐를 놓고서 그것들의 차이점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같이 나는 인간을 바라볼 때, 수컷과 암컷의 차이와,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 이외에는 제대로 판별해내지 못한다. 뭐, 인간을 잡아먹을 때에 생긴 것을 구분해서 먹는 다른 것 자체가 넌센스일테니까. 어쩌면 내가 인간과 접촉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방법을 터득한 것일지도.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먹는거지?'
나는 넬이 '사과'라고 말했던 과일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먹는 것을 망설였다.
"..."
...설마 이전의 그 카르보이아인지 뭔지하는 그 독약처럼 위험한 건 아니겠지? 나는 여관 주인이 내민 바구니에서도 '사과'라는 것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열매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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