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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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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6 21:43:01 조회: 883 추천: 0 |
[9]
키사가 나타났다. 분명 저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있는거냐? 너희들이 말하는 키사는 여기 앞에 있는데.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나도 모르게 인간을 쳐죽였을리는 없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저 넬이라는 인간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저는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이거 바보아냐? 일이 벌어지기 전이든, 후이든 네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이미 뒈져버린 인간의 잔해따위를 봐서 뭐가 도움이 된다는거지? 아까전에도 이상한 것을 말했다. 다른 존재의 고통과 내가 느끼는 행복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별의 의지-가이아-가 다른 생물의 사고회로를 볼 수 없게 만든 것은 보다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넬은 뭐하러 억지로 남의 행복 따위에 신경쓰는거지? 전혀 모르겠다. 인간이란 생물이 사회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것도, 그것 덕분에 지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뿐이잖아. 자신을 위해서 커진 뇌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려한다. 이전에도 그랬다. 내 앞을 막아가면서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여자를 도망치게 만든 인간. 아이들만은 절대로 건들지말라고 웃기지도 않는 협박을 해대던 여자. 어머니는 내가 지키겠다, 라며 장난감같은 검을 들고서 나에게 돌진한 소년. 그때마다 생각했다.
'인간이란 동물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두 멍청한 것들이로구나.'
자기에게 생긴 위험보다 다른 개체를 걱정하는 바보같은 족속들이다. 비웃고싶어줄 정도로 병신같은 생물들이다. 지금 넬이라는 녀석을 보아도 그렇다. 남자를 따라가서 뭘 어쩔건데? 뭘 할 수 있지? 죽은 생물을 살려낼 수라도 있나?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저기, 키리아양..."
원인모를 허세를 부리며, 나에게 당당한 표정을 보이려 노력한다. 내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안심시키려는거냐? 아니면, 이 상황에서 이성에게 별이라도 따내려는 거야?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저 녀석의 광대놀음에 따를까? 아니면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베어버릴까-?
"...죄송합니다."
...뭐? 죄송하다니, 뭐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인간, 대체 뭘 말하는 거야? 정중한 태도로 나에게 사과한다. 너무도 황당한 녀석의 행동에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말았다.
"저... 키리아양이 요괴가 아닐까하고 의심했습니다..."
흠칫했다. 내가 요괴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고? 아아, 아까전에 너무 많은 것을 말해버려서 그런건가? 하지만 뭐가 문제였지? 난 인간으로서 완벽하게 연기했을텐데. 보통이 지키는 사회의 예법도 하나 빠짐없이 확살하게 행동했다. 그런데도 눈치챘다. 자존심이 상했다. 무엇보다 이런 멍청한 인간따위에게 발각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이런식으로 말해주는 이 녀석도 그렇다. 내가 격어본 다른 인간들에게선 볼 수 없는 행동이다. 대충 속으로 감추고 있을 것이지, 뭣하러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걸까? 정말 이해가 안되는 놈이다. 사제라는 놈들은 모두 이런거야? 나를 의심했었다고 이리도 당당하게 밝히다니. 사실 틀린 것도 아니었다만, 다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보니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방금 전에 나타나 두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그 녀석은 아마도 나와 동족일 것이다.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한 짓인가? 건방진 놈. 여기는 내 구역이니까, 더 이상 손대지 마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전 키사가 아니니까요."
속으로는 나에게 경고를 한 그 건방진 놈에 대한 분노를 삼키면서. 안면근육을 움직여 미소짓는 것처럼 만들어 넬에게 보였다. 다행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특유의 표정을 짓는 넬. 왠지 모르게 나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저, 혼자서 괜찮으시겠나요?"
역시나 또 내 걱정을 시작한다. 네놈은 참견이 너무 심하다. 남보다 네 걱정을 하는걸 권해주고 싶은데. 여기서는 벌벌 떨면서, '혼자 두지말아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현명할까?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아, 무서워요.'하면서 들러붙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무서워해야 할 상대가 누구여야할까? 나는 억지로 훌쩍거리며, 넬이 들려주고자 하는 대답을 밷어냈다.
"혼자 있는건 싫지만, 가고싶지 않아요..."
간단하게 생각해봤을 때, 내가 연기하는 연약한 소녀의 경우, 그런 참상을 다시 보고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 상황이긴해도, 그런 무서운 장소에 다시 가고싶진 않다는 것이지. 솔직히 동족이 벌려놓은 일에 별로 흥미도 없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약속할게요."
내 양어깨를 양손으로 잡는다. 남자치고 꽤 작은 손이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힘으로 누른다. 푸하, 마치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이전의 그 표정을 보여준다. 강한 척이라도 하고싶은건가. 내 어깨를 잡은 양손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인 느껴진다. 이 녀석도 인간이다. 피에 뒤섞인 광경따위 다시 보고싶을리가 없다. 나는 사제란 종류의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죽어버린 것들에게 기도라도 할 생각인가? 아니면 거기서 단서라도 잡아내어 요괴를 추적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남자가 하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저기..."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거울을 보지 않았기에, 그게 어떤 얼굴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 상황에서 틀린 정답은 아니겠지.
"넬씨는 대체 뭘 하시려는거죠? 상대는 괴물이잖아요. 게다가 이미 도망쳤다는데, 지금가봤자..."
넬은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은근히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있지?'라는 의미를 담겨서 그에게 말했다. 아직도 내 양 어깨에 팔을 올려두며, 곤란한 듯이 생각에 빠졌다.
"모르겠어요. 제가 뭘하려는 것인지..."
아하하하하하- 이거 멋진 대답이다. 자기가 뭘 하려는지도 모르는 인간이라니. 그래, 너는 틀림없이 바보다. 멍청한 놈이다. 나는 속으로 여러번 넬을 비웃었다. 자신이 이루려는 목적도 없이 그저 무턱대고 감정에 의존해서 움직이려는 것이다. 개와 같은 동물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을거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웃음의 과정을 멈춰버렸다. 뒤에 이어서 들려온 넬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않는게 싫을 뿐일지도..."
넬은 내 팔을 잡고있을 만큼 나와 가까이에 있다. 그의 얼굴이 시아에 들어온다. 쓴 웃음을 지으며, 그는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에겐 저와 6살정도 차이나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을 보아, 지금은 없다는 의미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는 대화의 흐름을 보고서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저는 빼앗기고 말았죠... 잠시 옆 집의 친구가 놓고간 물건을 전혀주겠다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가버린 그 아이를..."
"..."
나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버려 우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녀석의 말을 막지않았다. 넬이 어째서 그렇게 나서서 움직이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이었습니다. 동생의 비명소리가 밖에서 들려와 나가봤을 때에는 평소에 그 아이가 아끼던 곰인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아하- 그래서 너는 우리에게 원한이라도 풀어볼 셈이야? 복수하겠다는 거야?
"...저는 아무것도 하지못했습니다. 이틀 뒤에 동생이 입고있던 옷이 발견되고 나니, 저는..."
그 뒤에 올 말은 잘 알고있어. '요괴를 용서할 수 없다.' 정도겠지? 역시 이 녀석도 다른 인간들과 다르지않네. 분노 때문에 그런 거였어? 하지만 넬이 들려준 뒷말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저는 제가 너무도 무력하다는 사실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 제가 나서서 대신 밖으로 나갔더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서 밖으로 나갔더라면..."
...뭔가가 이상하다. 이 녀석은 우리들을 원망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불가항력이잖아? 우연히 눈에 띄여서 잡아먹힌 거잖아? 무슨 헛소리야, 너 때문에 여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는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들려올리없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교단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한 많은 이가 고통받지 않게하기 위해서 말이죠."
모르겠다. 알 수 가 없어. 이 넬이라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럴 수록 저는 제 무력함을 실감할 수 밖에 없더군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끝없이 되세기자, 기도만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바보같을까?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분노의 화살표를 우리에게 돌리면 되었을 걸. 무엇하러 스스로에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하는거야?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교단을 떠나왔습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까, 구할 수 있도록..."
알았다. 이 녀석은 자신이라는 개체보다도 타인을 생각하는 인간이다. 자신은 어떻게 되도 좋으니까, 남이 무사하길 바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나를 발견했을 때도 내가 요괴라는 생각보다 무사한 나를 보고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거다. 뭐지, 가슴이 아파온다. 어째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듣고서 내가 동요하고 있다고? 웃기지마, 있을 수 없다. 나는 저 너머에서 틈을 통해서 흘러온 존재다. 한낮 직립보행 원숭이의 감정따위 아무런 감흥도 없다.
"아, 쓸대없는 이야기를 해버렸군요."
억지로 헤실거리는거 티난다. 그 말을 끝으로, 넬은 내 어깨에서 손을 떼어냈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
갑자기 넬이 나를 바라보며, 이상한 감탄사를 내밷었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뭔가에 놀란 것 같다.
"에...?"
반사적으로 나도 이상한 소리를 해버렸다. 내 얼굴에 뭔가 묻은걸까? 아니, 그렇다면 이렇게 반응이 늦을리 없다. 하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어쨋든 전 이만..."
...싱거운 놈. 뭐지, 대체 무엇에 놀란거지? 순간 녀석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나에게 너무 시간을 빼앗겨서 그런 것도 아닐텐데, 넬은 뭔가에 쫒기듯이 바쁘게 나가버렸다. 도중에 '으아아-'하는 얼빠진 비명소리가 들려온 걸 보니, 계단에서 넘어졌나보다. 나가기 직전의 넬의 얼굴이 어쩐지 기뻐보인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을까?
"...'한사람이라도 더 구한다'라..."
나는 내 오른손을 바라보며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성대를 조작한 인간 소녀의 음성이 들려온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렇게 오래 있어본 것은 처음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했다. 넬이 말했던 '한사람'이라는 것이 나라는 것일까...?
"'구한다...'라고..."
오른팔에 시선을 두고서, 멍하니 말을 되풀이한다. 여태까지 빼앗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는 이 오른팔은 넬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넬의 표정이 떠오른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피로 물들어버린 나를 감싸앉고서 중얼거리던 넬. 지금 생각해보니, 혼란스럽다. 정확히 무엇이 그를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녀석이 나를 보며 여동생의 사건을 떠올린다는 것은 알겠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는 일상이, 녀석에게는 신에게 감사드릴 정도의 큰 일이었던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넬의 감정...역시 혼란스럽다. 머릿 속이 복잡해. 따로 분석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를 걱정해줄 존재 따위는 없었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알게된 이 감정은, 그러니까 남에게 관심을 받는 다는 것은 이상한 느낌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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