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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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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6 21:43:38 조회: 803 추천: 0 |
[10]
넬은 키리아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서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색한 미소만을 보여주던 소녀가 자연스런 얼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새로운 일면을 지켜보고만 넬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질러버렸다. 지금도 그런 표정을 짓고있는 키리아는 끝내 넬이 무엇에 반응하였는지를 깨닫지못한다. 키리아는 넬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혼란스러워져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버렸던 것 뿐,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넬은 곧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대고서,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은 어째서인지 기뻐보인다. 소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거기서 제정신을 차렸어야했다. 소녀의 얼굴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리던 넬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너무 늦었다. 허공에 걸음을 옮기며, 넬은 뒤로 나자빠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내밀었지만 장식용 카펫과 함꼐 미끄러질 뿐이었다. 이어서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모서리에 엉덩이를 부딧혀버린다. 결국 넬은 연속으로 일곱번의 엉덩방아를 찧고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허리를 감싸쥐며, '아야야...'라고 김세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꽤 큰소리가 들려왔기에, 아랫층에서 컵을 닦고있던 남자가 도중에 일을 그만두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내 넬의 표정이 생글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선 그가 크게 다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위상황에 맞는 진부한 질문을 건낸다.
"...사제님, 괜찮으세요?"
계단을 엉덩이로 내려온 주제에 갈색머리 견습사제는 미소를 짓고있다. 억지로 웃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넬은 허리가 아프긴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계속 웃고있는 것이다.
"아아, 괜찮습니다."
사실은 '죽도록 아프긴 하지만, 웃음이 멈추질 않는군요.'하고 말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는 거의 버릇이 되어버린 '괜찮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묘하게 익숙한 태도다. 넬은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을 살며시 누르며, 억지로 일어났다. 남자는 넬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만 두었다. 아무래도 저 해실거리는 표정의 사제에겐 지금 무슨 소릴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비실비실한 걸음을 옮기다, 넬은 기여코 앞에 있던 화분과 정면 충돌하고 말았다. 정말 괜찮긴한건가, 하고 남자는 생각했다.
레노아는 작은 규모를 가진 마을로서, 일주일에 한번씩 들리는 수도의 상인들에게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 것을 제외하면 외부와의 첩촉이 없는 마을이었다. 덕분에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그들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있으며, 덕분에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사람들이 적은 만큼이나 주민들의 결속력은 컷다. 이웃들은 서로 가족과 같이 지냈으며, 마을내에서 비밀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만큼 활발한 교류가 오갔다. 어디까지나 같은 마을 사람에 한해서만이지만. 그러나, 그런 작은 마을에서 이틀에 걸쳐 연달아 사람이 살해당했다. 일곱이라는 적지 않는 숫자가 하루 아침사이에 요괴라는 미지의 괴물에게 잡아먹혀버린 것이다. 나뒹굴고 있는 토막난 신체조각 중에 보이는 세개의 팔이 적어도 희생자가 두 명이상이란 것을 의미한다. 전달 닉슨과 같이 집을 나섰던 첫날에 사라진 다섯명과 같이, 지금 발견된 잔해들도 닉슨의 패거리였다.
"...세상에..."
끔찍한 광경이었다. 여기저리 널부러진 주검의 잔해들 그 자체가 공포였다. 뼈의 모양은 멀쩡한데 반해 시체의 피부는 늘어져있다. 신체의 일부를 억지로 뜯어낸 것이다. 여기저기에 소름 끼치는 핏자국들이 보인다. 얼핏 보아도 시체의 일부분은 소실되어있다. 요괴가 먹어버린 것일까? 넬은 방금전까지 웃음을 짓고있던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소녀의 무방비한 얼굴 표정을 보고서 사태의 심각성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넬은 그 둘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이전에 넬이 보았던 밤 중에 필사적으로 도망치면 그 두 사람이었다. 아마도 마을을 떠나려 하다 봉변을 당한 것 같다. 공포에 질린 표정의 목이 바닥을 굴러다닌다. 아랫 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머리 쪽도 잡아 뜯겨진 것 같다.
"욱..."
급하게 손수건으로 입을 막는다. 넬은 순간 구역질이 나서, 금방이라도 뱃속의 것들을 게워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전의 소녀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달빛에 비치는 키리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한 그림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 피에 뒤범범된 시체의 나열은 혐오의 대상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넬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반응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넬은 더 이상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아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여기저기에서 구경꾼들이 북적거리며, 죽어버린 자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의 눈을 급하게 가리면서도 그 광경을 끝까지 보고있는 여자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듯이 그저 지나쳐버리는 노부부, 희생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통곡.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과 피해자들을 불쌍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불행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에도 신경쓰지않는 사람. 이 세가지 부류의 인간들이 이 자리에 모두 모여있다. 넬은 가슴 한 구석이 찌끈거리는 것 느꼈다. 그는 위의 세가지 중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자신과 상관이 있던지 없던지를 벗어나서, 저 사람이 살아나고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저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해버린다.
'나는...뭐하러 여기에 온거지?'
넬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무엇인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도 없는데다, 요괴를 물리칠 수 있는 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이라는 진실이 넬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는 품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었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넬이 구경꾼들의 뒤를 밀쳐내며,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옆으로 넬에게 밀려진 사람들은 기분나쁜 듯이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가 입고있는 옷이 사제복이라는 사실에 금새 그것을 거두어들였다. 넬에 손에 들려진 것은 십자가 모양의 조그마한 물병이었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퀴스나트 성당에서 가져온 성수. 마시는 용도가 아닌 순수하게 신앙심에 의한 성물인 것이다. 넬은 잔혹하게 도살당한 시체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다 어느 지점에서 살며시 앉아버렸다. 사제복 끝이 바닥에 닿자, 아래의 붉은 액체가 스며들어가기 시작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저 사제가 뭘 하려는 거죠?"
"쉿, 신성한 의식이야."
"다들 조용히 해요."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저지했다. 넬의 행동에 호기심이 생긴 사람이나, 무엇을 할지 대충 알아챈 사람. 모두가 입을 막았다. 모두가 넬의 모습을 주시하는 가운데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의식은 물병을 막고있던 뚜껑을 떼어내고 천천히 주변에 흩뿌리는 것만으로 끝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십자가 모양의 물병을 품 안으로 넣었다. 잠시 멈췄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겨우 저런 놈들 때문에 교단의 성의를 더럽혔다는 건가?'
경멸과 조종이 뒤섞인 조소가 그를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죽어버린 자들을 동정하면서도 닉슨의 패거리였던 그런 방탕아들이 그런 축복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만 죽은 두 사람의 가족으로 보이는 노파만이 넬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뿐이었다.
"아아, 사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동안 일으킨 나쁜 일이 많았기에 이 형제는 구원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늙은 어머니는 통곡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비참했다. 평소에 악행을 자주 저지르던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감싸며 교육시키려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그 둘은 닉슨이라는 마을의 불량아와 어울려 다니다 요괴에게 살해당해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런 노파의 앞에 넬이 나타나 자신의 교의가 피에 더럽혀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아들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다른 이들에겐 어리석은 일, 혹은 쓸대없는 짓이었지만 이 노파에게는 정말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는 노파에게 넬은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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