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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 글등록: 30점(하루 3개) / 코멘트: 1점
엽전 - 글등록: 20냥 / 코멘트: 5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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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커뮤니티
blood rain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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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 rain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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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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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03 17:02:26 조회: 532 추천: 0 |
......
....
..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떠진 하루. 이런 날은 기분이 좋다.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면서 기지개를 피자, 전신에 피가 도는 느낌이 좋았다.
"하암..."
입에서 자연스래 흘러나온 하품을 무시하고, 평소와도 같은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와도 같은 것이지만, 역시 운동을 끝낸 후에 피로감은 장난이 아니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음료수를 목구멍에 털어넣는것과 동시에 어묵바를 꺼냈다.
"...이제 이틀째인데 벌써 질려서 어쩌자고?"
자신에게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를 30초.
따듯한 어묵바를 입에 넣으며 교복상의에 팔을 쑤셔넣었다.
요즘은 어째 생활패턴이 점점 고정화되는 느낌이란 말이야.
입에 물고있던 어묵바의 꼬챙이를 빼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가방을 집어든다.
오늘은 조금 빨랐는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은 7시정도. 빨리 가서 잠이나 잘까, 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르자 바로 실행하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하늘이 약간 어두웠다. 차가운 봄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머리위를 지나간다.
뭐, 상관없나. 나는 애당초 비맞는게 좋기도 하고.
어두운 하늘을 배경삼아 등교길의 언덕을 올라간다.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식혀준다.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 교실문을 열자, 역시나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가 맨 뒷자리에서 가방을 배게삼아 엎드린다.
불을 키지 않은 어두운 교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게 돼지는 않는듯.
"어머? 벌써 학생이 와있네?"
저여자는 잠도없나.. 왜 이런 시간에 등교를 하는건데?
구두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다가오는 선생. 이름은 까먹었다.
"저기...서린이었지? 왜 이렇게 학교에 일찍온거야?"
"일찍오면 안돼는겁니까? 그냥 눈이 떠지길래 온 것 뿐입니다."
"그래도, 잘려면 집에서 좀 더 편안하게 자다가 오는편이 좋지않아? 그렇게 엎드려서 자면 허리에
안좋아요."
...정말 귀찮게 하는 여자다.
"괜찮으니까 상관하지 마시고 볼일 보세요."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제스쳐로 고개를 창가쪽으로 돌린다.
옆에서는 약간 화난듯한 숨소리를 내뱉은 선생은 곧 구두소리를 내며 교탁쪽으로 옴겨갔다.
출석부의 체크라도 하고 있는걸까? 젊어서 그런가 성실하네.
조금 눈을 붙이고 있자, 하나둘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성실하게 선생에게 인사하는 녀석, 아예
무시하고 교실로 들어오는 녀석. 여러명의 부류가 있지만, 역시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것은
고맙달까.
흐리멍텅한 의식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자마자 또 자는거야? 정말로 쓸대없이 학교에 일찍오는 녀석이라니까."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거기에는 현아가 서 있었다.
"상관하지 마시게 아가씨. 나는 지금 매우 피로한 상태라고..."
"상관 안핱테니까 천천히 자세요 아저씨!"
난폭하게 내 얼굴쪽에다가 무언가를 던졌다. 약간은 물컹한 무언가. 조금은 아팠다.
"뜬금없이 사람얼굴에다가 물건을 던지냐!"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물건을 바라본다.
랩에 싸인 샌드위치 2쪽. 그 옆에는 삼각팩에 담긴 우유.
"어차피 아침도 안먹고 왔지? 남았길래 들고왔는데 배도 안고프니까 먹어."
새침한 얼굴로 그런말을 내뱉다니, 이녀석도 조금은 귀여운 면이 있달까.
"예예, 감사히 먹죠 아가씨."
랩을 뜯어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우유팩에 빨대를 꽃아 마신다.
"겍, 커피우유냐? 난 흰우유가 좋다고."
"...주는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드세요."
"예, 죄송합니다."
눈 앞의 교실에는 이미 대부분의 학생이 와있었다. 시계바늘은 어느덧 8시 20분.
8시 30분에 수업이 시작이니까.. 생각보다 오래 잔 느낌이다.
뻣뻣해진 허리를 피고 가방을 창가에 던진다. 어차피 든것이라곤 체육복밖에 없으니까 마구 다뤄도
문제가 전혀 없다는게 매우 좋았다.
"하아...1교시는 뭐지?"
옆자리에서 예습하고 있는 현아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성실한 녀석이다.
"1교시부터 영어, 현대사, 법과사회, 국어야."
"끔찍하군... 영어면 그 히스테리 노처녀 선생인가? 아아..끔찍하다."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안좋아. 너도 가끔은 예습이라도 해봐."
"할리가 있냐. 근데 현대사 할아버지는 작년이 정년 아니였나? 누가 들어오는거야?"
"우리담임."
"겍, 그렇다면 1,2교시는 죽음의 수업이 되겠군."
"어차피 잘거잖아?"
"잘 알고있네 뭐. 그럼 난 잔다."
가방을 배게로 삼지 못하는것은 매우 슬프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라도 자두는 편이 좋겠지.
1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잠들어, 끝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선생도 이젠 이골이 났는지 깨우지도 않는게 편하긴 하군.
쑤시는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나 교실 문 밖으로 나왔다.
한가하게 대화하는 학생들. 그곳에 나의 자리는 없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들고 창가쪽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식혀준다.
"피로하신듯 하군요. 수업시간동안 한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거같습니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에일린이 서있었다.
"뭐...특별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그냥 졸업만 할 생각이니까."
약간은 씁쓸한 커피향이 입에 남았다. 조금은 따듯한 커피가 몸을 덥혀준다.
수업시작종이 들려온다.
......현대사는 싫었다. 자신의 공포를 일깨워주는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옥상에가서 한시간정도 자고 내려오는것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계단을 밟았을 때
하필이면 담임이 옥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수업종이 쳤는데 어딜 가는거죠?"
시선이 날 찌르고있다. 땡땡이는 용서못한다! 란 소리일까.
"별로...."
"아무일도 아니라면 지금 당장 교실로 돌아가죠!"
...제기랄.
선생의 뒤에 이끌려 교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 옆에서 현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임한테 걸리다니, 너답지 않은데? 현대사 시간만큼은 확실하게 대피 가능했었잖아."
"창가에서 멍하고 있었던게 실수였어. 제기랄 안좋은데."
"거기! 떠들지 말고 교과서를 펴세요."
저 선생은 안경도 쓴 주제에 눈이 왜저렇게 좋은걸까. 제발 좀 봐달라고.
건성으로 교과서를 펼친 후에 책상에 던져놓고 허리를 피고 앉았다.
조금은 들킬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앉은상태에서 눈을 감고 수면을 취한다.
정확히 말하면 주위와의 정보교환을 단절하기 위한 방어벽을 친다.
조금 멍하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꿈을 본다.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꿈. 절대로 보고 싶지 않던 그 꿈.
"꺄아아아아아!"
건물 내부가 흔들리며 수많은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피와 살이 튀고 수많은 시체가 바닥을 굴렀다.
그것은 이미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일그러져버린 고기조각들.
그 아수라장의 속을 한 소년과 여자가 달리고 있다.
"멈추면 안돼! 끝까지 뛰는거야! 어서!"
아이의 어머니인걸까. 서로 닯은 외모를 지닌 소년과 여자. 소년의 손을 이끌고 마구 달려간다.
그 뒤를 쫓아오는 이형의 무리. 그 존재는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돼는 물체.
"크오오오오오오."
이형이 내뱉는 포효에 달리던 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수십을 넘어선 수많은 괴물들의 모습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색은 돌처럼 굳어간다.
이미 제정신을 잃고 웃으며 뛰어다니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 모든 원인은 이형들의 뒤쪽, 식당의 앞에 보이는 검게 일그러진 공간.
빛조차도 빨아들이는 그 검은 공간에서 지금은 인베이더라 명명된 수많은 괴물들이 생성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모녀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인베이더들의 모습은 이미 공포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육체를 찢어발기기 위해 내려처진 손톱은 자신의 아이를 감싸기 위해 앞으로 나선 어머니의 등줄기를
내리꽃았다.
"크흑!...."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명과 혈액. 하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꼭 잡은 손에 이끌려 오는
작은 체온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발버둥. 움직이지 않는 신체가 쓰러진다.
"린아...아빠를 대려와주겠니? 엄마는 조금 힘이 들어서 여기서 쉬고 있을께..."
미소를 잃지않고 내뱉는 목소리에는, 한없는 애정과 슬픔이 담겨있었다.
"응...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아프면 안돼 엄마!"
소년은 달렸다. 어딨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그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 줄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항상 보아왔던 그의 등은 너무나도 넓고, 너무나도 강해보였다.
언제나 내게 맡겨라,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의 등을 보는것 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코너를 돌아 비상계단쪽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 자신의 구세주의 모습이 들어왔다.
"린아! 엄마는, 엄마는 어딨니?!"
그의 다급한 목소리와 표정에, 소년은 당황했다. 자신의 이상이, 당황했다. 지금 상황에.
"어..엄마 저,저기!!! 저쪽에 있어!"
대답을 듣자마자 잔상조차 남기지 않으며 그는 사라졌다. 홀로 남은 소년은 그의 뒤를 쫓는다.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약 5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그곳. 코너를 돌아 소년의 눈에 비친 그 광경은...
".....ㅣㄴ!"
...누군가가 자신의 의식을 불러들인다. 누굴까?
".....린!"
"....서린!"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 엄마? 아니다. 누굴까. 어째서인지 그립지는 않지만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곧이어 자신의 신체중 일부가 통증을 호소했다는 것을 느꼈다.
"뭐야...."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내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선생. 즉 우리 담임이 보였다.
"무슨생각이죠 당신은?! 수업종이 쳤는데 옥상에 가려고 하질 않나, 수업시간에는 대놓고 잠을
자지를 않나!"
정말로 귀찮게 하는 여자다.
"별로...상관없지않습니까. 어차피 현대사라는거 배워봤자 별 이득을 보는 과목도 아니고."
"지금 무슨소리를 하는거에요! 그게 학생이 선생에게 할 수 있는소리라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다면 당장 교실에서 나가세요!"
이걸 노렸다.
"...그러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나가자, 뒤에서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도데체 뭐야! 지금 장난하는거야?! 날 가지고 노는거나고!"
"나가라고 해서 나갈 뿐입니다."
아, 끊어졌다.
선생은 눈물이 맻힌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나의 뺨을 후려갈겼다.
"아야야...."
말을 하고 있을때 맞아서인지, 혀를 깨물어버렸다. 입에서 피가 떨어진다.
"어째서 처음 선생이 되서부터 이런...!"
그러더니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는 선생. 이거 많이 곤란한데...
"정학 확정일까?"
"당연하지 바보야! 무슨 생각으로 선생님을 울리는거야?!"
나의 질문의 칼같은 답변을 해준 현아를 바라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쩔 수 없잖아..."
정말로, 어쩔 수 없다.
......
....
..
눈 앞에는 교장이 자신의 의자에 앉아 나를 주시하고 있다.
"...이번엔 또 무슨이유로 나랑 얼굴을 마주하는거지?"
불안한 얼굴의 교장. 지금까지 학교생활중에 이 아저씨랑 얼굴을 마주한 적이 벌써 20번이 넘었다.
탁자에 펴저있는 반성문과 사건경위서를 보고 교장은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박서린군은 지금부터 일주일간 정학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현정선생님에게 사과하도록."
"예예."
의자에서 일어나 교장실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로써 정학도 벌써 4번인가? 신기록 수립중이다.
교장실 앞에는 여러 선생들이 수근거리고 있다. 나의 명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는구나.
"현정선생님 어디계신지 아시는분 있습니까?"
그러자 수근거리던 선생들이 딱 침묵한다. 우리학교 선생들은 자기주관이란게 없는건가? 왜이렇게
나서는 사람이 없는거지. 그러자 뒤쪽에서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유현정선생님이라면 제3교무실에 계실꺼야."
3교무실이라면 내 교실 바로 옆이다. 생각보다 가까운게 다행이군.
3교시 수업중에 교장실에 불려갔기 때문에 쉬는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종료종이 치고 나서 교무실의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자, 교무실 제일 구석 책상에서 엎드려있는
담임을 발견했다. 그래도 처음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지도하겠다는 열정이 가득했을텐데 나같은
학생을 만난게 죄라면 죄겠다.
"저기...선생님?"
어깨를 살짝 흔들자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또 뭐에요! 이제 그만! ....어?"
누가 좀 건드렸나보다. 그러더니 나의 얼굴을 보고 표정이 놀란듯이 변해간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정직하게 머리를 숙인다.
"........"
대답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들 수는 없는노릇. 약 30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선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휴....알았어요. 고개 들어봐요."
볼에는 눈물로 번진 화장자국과 빨갛게 부은 눈. 상당히 웃기다.
"세수라도 하시는건 어때요?"
왜 내가 세수하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지, 책상 앞에 있던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히익~?!"
그러더니 세면대 앞으로 뛰어가서 찬물로 세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선생의 모습은 솔직히 좀 안타까워보인다고 할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낸다.
"병주고 약주는거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는다.
화장이 지워진 선생은 아직 소녀의 티가 남아있다고 할까? 쉽게 말해 동안이었다.
"아무튼 방금 전 수업시간에는 저도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요?"
"제 생활기록부에는 양친이 사망으로 체크되어있어요. 그 이유를 아시겠어요?"
조금은 돌려말한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일을 내뱉는것은 좋지 않았다.
"아....그,그런! 미안해요. 그런 이유가 있는 줄도 모르고..."
"뭐, 애초에 말하지 않은 제가 나쁜거니까요."
양친이 인베이더의 공습에 희생자.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같이 존재하는 사건의 일부일뿐.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상황이라면 절대로
기분이 좋지는 못했다.
"저... 그 근신처분은 어떻게 됬어요?"
"일주일간 정학이라는군요. 1,2,3학년 누적합계를 따지면 벌써 60일이 넘어버렸나.."
"아! 역시 그건 안되겠어요. 내가 교장선생님에게 다시 말해볼테니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교무실을 뛰쳐나가는 선생. 뭐랄까 상당히 웃기는 선생이군.
교무실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교실에 돌아오자 수십개의 눈이 자신을 주목하는것을 느낀다.
자리에 앉자, 옆에있던 현아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을 걸었다.
"...이번엔 뭐야?"
"일주일간 정학이란다. 뭐 선생이 항의해 준다고 했으니 좀 빠지겠지."
턱을 괴고 앉아있던 현아는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휴...그정도면 다행이네. 그럼 일단, 이번교시 체육이니까 슬슬 갈아입으러 나가줄래?"
그러고보니 교실에 남아있는 남학생은 나 혼자다. 이 학교는 전통적으로 여성상위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어서, 여자들은 교실에서 갈아입으면 돼지만 남자들은 귀찮게도 멀리 돌아서 탈의실까지 가야한다.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내 들고 교실문을 나왔다. 교실이 6층인데 탈의실은 4층. 이 무슨 처절한
차별이란 말인가, 라고 궁시렁대면서 지나가는 같은반 녀석들을 무시하고 탈의실에 들어갔다.
6번. 자신의 로커를 열고 교복상의를 쑤셔넣었다. 와이셔츠도 마찬가지로 던져버리고 체육복 상의를
뒤집어썼다. 어차피 체육복이라고 해봐야 가볍고 편한 복장을 입으면 돼기때문에 평소에 입는 운동복
을 챙겨온것 뿐이지만. 바지까지 갈아입고 로커의 문을 닫았다.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체육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특별히 생각할 필요도 없고.
탈의실 밖으로 나와 운동장까지의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약간은 쌀쌀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빛의 조화가 신체를 감싸주었다.
"벌써 내려왔어? 빠르네."
벤치에 앉아있자 옆에 털썩 하고 앉으며 현아가 말을 걸었다.
"체육은 생각없이 해도 상관없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구름조차 없던 푸른하늘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비가 올려는걸까. 조금은 불안했다.
"오늘 체육은 농구로 할까 아니면 피구로 할까 골라봐라!"
뒤에서 공을 던지며 외치는 선생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예감이 안좋아."
다시한번 하늘을 바라봤다.
......
....
..
교내매점에서 빵을 사서 교실에 돌아오자, 학생들이 전원 모여있었다.
"...사거리 근처에서 게이트가 열렸다나봐. 대기명령이야."
...또냐.
'게이트'라고 불리는 검은 아공간. 인베이더들의 침략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공간전이 계열의 이동방식
일까? 그들은 끊임없이 게이트를 통해 만들어져왔다. 게이트가 닫힐때까지 막아내면 인간의 승리.
그렇지 못하면 대참사가 나버리는게 이 세계의 현재상황이다. 4년전 나토의 특수부대가 게이트를 통해
잠입을 시도했던 적도 있지만 그들은 그후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꼴로 게이트가 생성된다. 생성위치는 측정불가능. 그렇기에 대처는 언제나
대량의 피해가 일어난 후에 발생된다. 목적도 이유도 모르는 학살을 자행하는 인베이더들의 침략.
한번에 약 만개 이상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던 2008년 1월 24일. 그 하루에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이미
억 단위를 넘었었다. 특이하게도 그 생물체들은 건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노리는것은 그저 인간뿐.
인베이더들은 두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인간을 '먹는다'라는 행위만을 목적으로 하는 녀석과
'죽인다'라고 하는 목적을 가진 두가지의 생물체로.
그로부터 2년후, 미국과 중동국가들을 시작으로 급격히 발달한 군수무기 시장에 불이 붙었다.
인간의 힘으로 활성화시키기까지 약 20년 이상이 걸릴 것 이라고 예측되어져왔던 킬러위성과
레이저 라이플. 소형 자기유도로켓 등 수많은 대 인베이더 전용 무기가 생성되었다. 공격범위가 직선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개발계획에서 제외되었던 레이저 라이플은 이미 인류에게 없어선 안될 무기가 되었다.
단 일격으로 인베이더를 두동강 낼 수 있는 무기이고 또한 충전방식도 매우 간단하다.
2시간의 충전으로 30번 이상의 슈팅이 가능한 차세대무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킬러위성.
약 20대 가량의 솔라에너지를 이용하는 대범위 공격위성을 만들어 지구의 위성궤도에 띄워, 이미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에 생성된 게이트를 완전소멸시켜버리는 대군병기까지 제조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런 소수침략법에는 무능했다. 보통 근처지부에서 군이 출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그동안 살해당하는 사람의 수를 생각하면 절대로 가볍지 못하겠지.
그런면에서 학교는 요새급의 건물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명의 군인이 상시대기하고있고, 또한
자체쉘터까지 준비되어있으니.
"후...정말로 언제까지 계속되는걸까."
자신의 목소리라곤 생각되지 않는 푸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학교에서도 나 이외의 피해자는 많았다. 그저 내가 조금 히스테리같은 성향을 부린다고 보는 녀석이
대부분이겠지. 옆에 있는 현아의 아버지도 첫 습격때 돌아가셨다.
담임은 학교에서 인베이더의 습격을 본 것은 처음이다보니 조금 긴장했는지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다.
책상에 가볍게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이상황에서 안절부절 한다고 뭐가 되는것도 아니고, 그저 쉬는게
좋다. 역겨운 구토감을 참아내기 위해서도 이게 가장 쉬운 선택이다.
약 20분 후. 학생들에게 귀가조치가 떨어졌다. 수업을 지속하기엔 조금 애매했던걸까.
선생은 학생들의 종례인솔을 위해 같이 운동장 쪽으로 내려갔다.
나도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서려고하자, 에일린이 아까부터 없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디간거지...?"
조금은 걱정이되었다. 교실 주위를 가볍게 돌아본다. 대피때문일까? 아무도 없었다.
완벽방음이 설정되어있는 이 학교 내에서 사람을 불러서 찾는다는건 불가능하겠지.
가볍게 각 교실을 보자 남은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었다. 나도 슬슬 내려가지 않으면 여러가지로 곤란한
점이 생길거 같으니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고 계단에 손을 댄 순간.
옥상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
-노이즈-
-노이즈-
머리속에서 망가진 TV와도 같은 소음이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생성되는 두통.
"무...무슨?!"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몸은 질주하고 있었다.
느낀적이 있는 감각. 언제나 활성화되어있는 카르마의 영향으로 자신은 이상징후를 발견하는데에 있어서
일반인들보다 20배이상 뛰어났다. 이 일그러짐은 분명 게이트가 열릴 때 느끼는 감각. 그것도 자신의
인식범위는 약 800M 내외. 그렇다는건 지금 생성되는 게이트는!
"......."
교문을 뛰쳐나온 나의 눈에 들어온건, 참혹한 광경이었다.
차가운 비와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증기를 발하는 조각난 고깃덩어리 사이에 그것은 존재했다.
'게이트'
익숙해지지않는 피의 냄새에, 정신이 돌아버릴것 같았다.
"이럴수가! 하루에, 그것도 1시간도 안돼는 짧은 기간동안에 이렇게 근처에서 게이트가 동시생성
되다니 이건 말도안돼!"
라이플을 난사하며 비명을 지르는 군인. 그의 옆에는 이미 쓰러진 그의 동료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의 수는 약 10구. 그중에 자신이 아는 얼굴이 있는지 확인한다.
"꺄아아아아아!"
자신의 왼쪽에서 들리는 비명에 놀라 바라보니, 학생들을 감싸고 있는 선생. 우리 담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제어가 돼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은 이길 수 없다. 여기는 후퇴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냉정한 판단을
기초로 한 전투를 준비할 차례이다,라고 머리는 말한다. 하지만 몸은 움직인다.
무작정 질주한다.
"전개."
암시의 단어를 내뱉는것과 동시에 자신의 육체가 한계까지 강화된다. 끌어낸 차크라가 직접적으로
신체를 감싸는 보호막의 역활을 이루어준다. 그 차크라의 절반이상을 양 주먹에 집중시킨다.
가속력이 붙은 다리를 강제로 고정시키는것과 동시에 주먹을 내질른다.
"크아아아아아!"
인베이더의 목줄기에 주먹이 닿는것과 동시에 차크라를 폭파시킨다. 흔히 말한다. 아무리 강한
정권이라고 해도 피부부터 얇은 옷까지, 그 모든 방해물이 충격을 감소시킨다고.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면 간단한것이다. 밖에서 힘으로 때려부수는게 아닌, 안으로 힘을 주입해서 폭파시킨다. 흔히
'발경'이라고 하는 기술이다. 인베이더의 점성이 짖은 붉은색의 체액이 자신의 얼굴에 묻는다.
"....서린군?"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멍한 소리를 내뱉는 교사의 모습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들을 무시하고 방금전의 군인쪽으로 뛰어가, 그 옆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에서 라이플을 주워
드는것과 동시에 난사했다.
.......
....
..
눈앞의 참상에 아직 어린 그녀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 대상이 누가 됬던, 사람이 사람답게 죽지 못한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좋지 못한 기분이다.
"큭...프린시펄리티의 기하급수적 증가의 원인은 이곳에서 직접 소체를 끌여들인건가..."
그녀의 떨리는 눈에 들어온 모습은 무작정 돌격하는 바보같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절대적으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타인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몸까지
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자신들 크루세이더들과 마찬가지였다. 힘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을 피난시키는 소년의 등 뒤에서 인베이더가 그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완전한 사각이기에
그에겐 보일리 만무했다.
"...감시대상이 죽어버린다면 이쪽도 곤란하지요. 어쩔 도리가 없이 지원을 행할 수 밖에 없겠군요."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내뱉는것과 동시에, 그녀의 검은 창이 바람을 갈랐다.
......
....
..
"큭?!"
뒤에서 느껴지는 급작스런 차크라의 변동에 양팔로 얼굴을 가드하는것과 동시에 인베이더의 손톱이
자신의 팔을 가격한것을 느낀다. 차크라의 막으로 보호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피해를 전부 흡수하는건
불가능했다. 살점이 날아가고 뼈가 보였다. 강제로 출혈을 멈추기는 했지만 피로도를 따져봤을때 그렇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였다.
감정에 휩싸여서 돌격한 결과가 이것. 그 어떤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하는 예니체리의 기본이
안됀 자신의 결과였다. 왼손에 들려있는 컴뱃 나이프도 이미 날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톱니부분에 박힌 인베이더의 살점이 떨어지지 않아 지금은 무딘 돌같은 느낌만이 들 뿐이었다.
"제기랄!"
입에서 나오는 욕지거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차크라가 전개되어있는 동안은 심장이나 머리가 파괴되지
않는한 붙어있기만 하면 팔이든 다리든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차크라도 이미 거의 바닥났다.
자신의 팔을 뜯어낸 인베이더의 눈쪽에 나이프를 찌른 후 내려찍기로 박아넣었다.
"아...아아!!"
숨이 끊어질듯한 비명이 자신의 뒷쪽에서 들렸다. 바라보니 방금전까지 자신을 엄호해주던 병사가
쓰러져있고, 그 옆에는 피를 뒤집어쓴 소녀가 보였다. 아직 어린애같은 느낌이 강했다.
강제로 다리를 움직여 괴물의 연수부분을 강하게 쥐고 뜯어냈다. 하지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체액이 묻어 굳어버린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가벼운 상처만으로 끝내버린 것 이었다.
그 이빨이 자신의 팔목을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주체할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이 흘러나왔다. 오른팔이 그대로 찢어질거 같았다.
패닉상태에 빠진 소녀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무기가 절실했다. 가급적이면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고,
날이 무뎌지지 않는 강한 무기가.
순간, 자신의 눈앞을 검은 섬광이 뚫고 지나갔다.
인베이더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버린 괴적의 끝에는, 2M가까이 되는 거창(巨槍)이 꽃혀있었다.
"이...이건?"
창이 뚫고나간 인베이더는 검은 연기가 되어 증발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꽃혀있는 창의 주변에
황금색의 안개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실루엣. 한손으로 창을 세우고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생성되었다.
황금의 안개는 그렇게 형태를 이루어 뭉쳐지더니 곧 그 형태의 모습이 드러났다.
황금의 안개에 둘러싸인 소녀는 입을 열었다.
"잠시간의 협력을 하도록 하지요."
"....에일린?"
"말은 필요 없을 것 입니다. 사람들의 피난을 부탁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자신의 뇌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자신의 시선을 빼앗아버렸다. 무심코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와 버렸다.
"아... 응."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창을 거머쥐고 오른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서자, 자신의 턱 아래도
안오는 작은 소녀는 가볍게 나에게 눈인사를 건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질풍이 되어 사라진 그녀는, 약 200M앞의 인베이더들의 무리 사이에 다시 나타났다.
눈앞의 인베이더에게 섬광과도 같은 3단찌르기. 눈 앞의 인베이더가 검은 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창대를 돌려 그 뒷부분으로 다른 인베이더의 다리를 찍은 후에 창을 버팀목 삼아 점프해
무릎으로 인베이더의 머리를 가격하자, 그 머리가 폭팔했다.
"차크라...? 아니, 달라. 저건 뭐지?"
차크라와는 다른 알 수 없는 힘. 그것이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황금의 빛이라고 이미지되는
차크라라면, 그녀의 힘은 순수한 백색. 그녀의 창에서 베어나오는 검은 요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움직임에 그림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도데체 정체가 뭐지?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4마리의 인베이더를 증발시키고 다음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 돌진력은 이미 검은 폭풍. 주위에 인베이더를 집어삼키는 그녀의 창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는
인베이더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졌다.
전투력의 차이를 느꼈는지, 도주하는 인베이더들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창을 들었다.
"궁니르!"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검은 창을 던졌다. 그리고 검은 마창은 인베이더를 '추적'했다.
직선궤도로 돌진하는 창앞에, 도망치는 인베이더들은 무력했다.
그 창날이 인베이더의 머리를 꿰뚫자, 서있던 소유주 에일린은 발목부터 황금의 안개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약 2초, 그녀는 다시 자신의 창 옆에 나타났다.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이동법이었다. 창이 적을 추적하면 주인은 그동안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또한 여러가지 행동이 가능해진다. 맨주먹으로도 가볍게 에일린은 인베이더를 처리할 수 있었다.
10분이상의 난전에서 내가 쓰러트린 인베이더의 숫자는 8체. 하지만 그녀는 단 2분도 돼지 않는 시간
동안 30마리가 넘는 인베이더를 소멸시켜버렸다. 원래 자체회복능력이 있는 인베이더들은, 목을 자르거나
머리를 파괴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활동했지만, 그녀의 창날에 닿은 인베이더들은 검은 증기가 되어
증발해버렸다.
"말도안돼...."
체액 한방울 묻히지 않으며 인베이더를 처리한 그녀는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겁니까!"
갑작스러운 호통과 동시에 나의 팔목을 잡았다.
"일단 출혈은 어느정도 조절이 가능한가보군요. 급한대로 응급처치를 해두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허공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 손에 들려있는것은 작은 가방.
허공에 떠있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이더니 후추병같은 병을 꺼내 팔목의 상처에 그것을 털어냈다.
파란색의 빛나는 가루가 자신의 뼈까지 드러난 팔목에 스며들자, 순식간에 출혈부위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되었다.
약병을 다시 가방에 넣고서 뒤적거리더니 이번엔 붕대를 꺼내서 팔에 둘둘 감는다.
가볍게 끝을 끊어내고 매듭을 짓는다.
"일단은 출혈은 멈췄을테니 차크라의 제어를 풀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행이다. 이미 피로가 한계까지 몰려들어 더이상 버티기도 힘들었다.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한숨을 내쉰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단절되어있던 통각이 일시에 회복되면서 쇼크가 몰려왔다.
"크헉!"
자신의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괴성이 입에서 흘러나오는것과 동시에 의식이 끊겼다.
......
....
..
전신을 내달리는 격통과 두통속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시야가 제대로 회복돼지 않아서인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건다. 목소리로 보아서 여자. 이 시간에 나 이외의 사람이 집에 있다니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침대가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지금 어째서 잠이 들었나를 떠올리자, 단번에
모든것이 기억나지는 않아도 단편적으로 정보들이 들어온다.
인베이더, 검은창, 자신의 무모한 돌격, 그리고... 에일린.
"크아아아?!"
침대에서 뛰어내리는것과 동시에 문을 찾는다.
"...상처는 괜찮으신겁니까? 그렇게 무리해도."
그러고보니, 침대를 뛰어넘어 문까지 점프할생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침대 바로 아래에 굴러떨어져있다.
참지 못할정도는 아니였지만 관절이 쑤시는듯한 통증은 생각보다 곤란했다.
"...내가 왜 여기있는거지? 아니 그전에 여기 어디야?"
침대엎에 앉아있던 에일린에게 말을 건다.
"일전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있길래 급한대로 저의 집에서 응급치료를 해둔겁니다. 뭔가 불만이라도?"
마음을 꿰뚫어보는듯한 녹색 눈동자가 자신의 눈과 마주친다.
"아니, 일단은 그렇다면 고마워."
확실히 뜯겨져나간 팔목의 감겨있는 붕대안쪽에는 살이 있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다행히도 못쓸
정도의 부상은 아니였던가보다.
"앞으로 3일은 절대안정입니다. 일단 다시 침대에 누워주세요."
목덜미를 잡고서 침대로 끌고간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무식하냐!
"잠,잠깐! 그전에 너에게 묻고싶은말이 산처럼 있어!"
검은 마창. 상상도 할 수 없을정도의 움직임. 그리고 어째서인지 자신을 도와줬다.
"...그럼 그냥은 뭐하니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하지요."
그렇게 말하고 에일린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기본적인 신체의 점검을 실행한다. 모든 근육에 상당한 피로가 축적되어 전체적으로 무겁다.
차크라를 무리하게 쓴탓인지 카르마의 제어도 쉽지가 않았다. 제일 심한 부상부위는 역시 양팔.
에일린이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기세로 상처가 아물고는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있었다.
"후우...역시 그렇게 간단하게는 안돼나."
일단은 예니체리라고는 해도 제대로 검을 못쓰는 나는 결국 이런 육탄전 정도밖에 할 수 없는것이었다.
10분정도 검을 쓴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검의 구현에 초점을 맞췄을때의 이야기지, 솔직히
전투행동과 동시에 검을 구현화한다는게 자신에게 있어선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에일린의 일도, 자신의 일도 결국은 무언가의 원인이 있을것이다.
방안을 한번 쭉 둘러본다. 사람이 사는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살풍경한 방이었다.
10평정도의 방에 커다란 침대하나, 창문하나, 의자하나. 그것으로 가구는 끝이었다.
"나보다 더 살풍경하구만..."
"무엇이 풍경하다구요?"
예상치못한 답변에 문쪽을 바라보자 에일린이 서있었다. 분명히 식사준비를 하러간다고 해서 마음놓고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3분도 안돼서 돌아오는것을 보며 조금은 당황했다.
"아니, 방에 가구가 너무 없어서. 그것보다 식사준비 한다더니 왜 벌써왔어?"
그러자 방으로 들어오는것과 동시에 그 손에 들려있는 무언가를 나에게 건낸다.
...이것은 어묵바!
충동구매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한달치 식량이 되어버린 어묵바가 지금 이곳에 나타나있었다.
"맛있습니다. 드시죠."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있던 어묵바 하나를 나에게 쥐어준다. 어묵의 상큼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고마워."
어묵바의 꼬챙이를 집어들고 그것을 먹는다. 언제나의 익숙한 맛이 자신의 혀를 자극한다.
역시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부담일까? 그 지겹던 어묵바도 맛있게 느껴질정도로 배가 고팠다.
"하나 더 드시겠습니까?"
급하게 먹는 나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몫으로 들고있던 어묵바를 나에게 건내준다.
그것을 받아들고 또 잡아뜯는다. 한번 음식맛을 본 위장이 요동친다.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올 시기이다.
3개째의 어묵바를 목구멍으로 넘기자, 에일린이 옆에서 차가운 물을 가득담은 컵을 건내주었다.
한번에 원샷하고 입을 스윽 닦는다.
"후...살겠다."
그런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에일린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담고 있었던 의문을 뱉어낸다.
"몇가지 물어보고싶은게 있어. 괜찮을까?"
그녀는 풀어진 표정을 바로고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승락의 표현이라고 봐도 괜찮겠지.
"일단, 첫번째로 너는 누구지? 아니 그 이전에 인간인거냐?"
그 질문에 그녀는 즉답했다.
"일전에 소개했잖습니까. 전 에일린 루 입니다. 물론 인간이죠."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가 벙 찌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 뭐랄까, 어제?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베이더가 학교에 습격해왔던날
네가 보여준 움직임이라던가 그런것은 인간의 동작이라고 할 수 없었어."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의자를 끌어와 침대앞에 놓고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일시적으로 차크라를 활성화하는게 가능하시다면 해보실수 있겠습니까? 시각이랑 자각능력쪽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일단은 시키는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에일린이란 소녀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 날 보였던
그 흰색의 빛의장막은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대답은 나오신듯하군요. 그렇다면 다시한번 저를 봐주시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가볍게 자신의 오른손을 옆으로 뻗자 거기에는 예의 그 검은 마창이 들려있었다.
순간, 그녀를 감싸고있는 힘의 흐름이 변해갔다. 창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힘이 그녀를 감싼다.
순식간에 흰색의 빛에 둘러쌓인 그녀의 몸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압력이 뿜어져나왔다.
"...아시겠습니까? 저의 힘의 근원은 이 마창 '궁니르'입니다."
에일린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검은 마창은 흔적도 남기지않고 사라저버렸다. 말 그대로 마술.
"그렇다면 다음질문. 어째서 넌 차크라를 알고있지? 예니체리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것을 설명하기 이전에 당신의 아버님과 저의 관계부터 설명해야하겠군요."
아버지가 관련되어있는건가? 혹시나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들어맞을줄은 상상이외였다.
"아버지와의 관계? 설마 숨겨진 딸이라거나..."
농담삼아 한마디 던져본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딱딱히 굳으면서 그 눈에 분노가 차오른다.
"농담이라도 그런말을 하진 말아주십시오! 내 형제의 원수가 나의 부모라니, 꿈에도 상상하기 싫습니다!"
...부모의 원수? 이건 또 무슨말인지 도통 감이 안잡힌다.
"부모의 원수라고?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잖아. 제대로 설명해주기를 바라는데?"
에일린은 끊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아버지. 이곳에서는 뭐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던 곳에서 그는 '오린'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들어본적이 없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의 맥을 끊으면 그녀가 또다시 화를 낼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그냥 듣고 있었다.
"오린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존재하던 세계. 일단은 '메디나'라고 해두지요. 그는 그곳에서
이곳으로 도약한 '도약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도약자라고? 도약이라는 것은 나는것과 비슷할정도의 점프아냐? 그럼 우리 아버지가 무슨 이세계에서
온 사람이 되어버리잖아."
나의 대답에 정색하며 에일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한말에 있어서 일말의 거짓도 없음을 맹세할수도 있습니다. 뭣하시면 오린에게 가서 직접
확인해보시면 돼는일 아닙니까?"
"아니 나도 묻고싶지만 말이야. 우리 아버지는 5년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물어보란거야?"
나의 대답에 에일린이 무슨 전쟁이라도 일어난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관총같은 속도로 말을 내뱉었다.
"오..오린이 죽었다고요? 언제,어디서,어떻게! 당장 설명해보세요!"
...무섭다 이 여자. 방금전까지의 다소곳한 태도는 어디가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건 한마리의 악마다, 악마.
"글쎄...언제, 라고 하면 방금 말했듯이 5년전. 어디서는 나도 모르겠는데."
"당신 아버지잖습니까! 그것도 모릅니까?!"
에일린에게 자극을 받아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날의 일을.
......
....
..
"...정말로 덥구나, 오늘은."
에어컨이 망가져버려서 부채질하는것 이외엔 도리가 없던 아버지와 나는 뜰에 나와 앉아있었다.
"후우..진짜로 장마가 지나갔어도 이 후덥지근한 습기는 사라지지가 않는게 괴롭다..."
나이는 있는대로 먹어서 덥다고 징징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아파오는 아들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햇빛이 비추는게 어디야. 비오는날 우울하게 방구석에 있는것보단 편하잖아."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할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모처럼인데 이렇게 할일없이 있는것도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 린아, 가볍게 몸이라도 움직여볼까?"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것과 동시에 뻗어져나오는 정권을 오른손으로 흘려보냄과 동시에 턱을 노리고
왼손으로 장저를 날렸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자신의 팔이 아버지의 턱에 닿는다, 라는게 쉬울리가 없었다.
"또 그런다. 넌 아직 키가 안돼니까 하체를 노리라고 말해도 왜 맨날 상체부를 노리는거야?"
사력을 다해 상단에 연속공격을 걸고 있지만, 웃으며 한손으로 그것을 전부 받아치는 괴물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당연히 한방을 노리기 위해서지. 그 어떤놈이라도 일단 머리가 날아가면 끝나잖아."
그 대답에 아버지는 조금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너에게는 너의 방식이란게 존재하니까, 내가 왈가왈부할게 아니다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너를
가르쳐줄수도 없는거야."
그 표정이 너무 답답해보였다.
"곧 죽을 영감같은 소리하기는, 못해도 100년은 더살것처럼 팔팔하면서 어디서 장난이야!"
명치를 노리고 뻗은 정권이 그대로 관절기로 이어졌다. 어깨부터 땅에 닿은 자신의 추한 모습에 화가난다.
"제기랄, 왜 맨날 이렇게 간단히 지는거지?"
패배를 선언하고 풀려나온 어깨를 만지며 입을 열자, 아버지는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미소를 지었다.
"경험차이가 몇년인데 벌써 맞먹으려 하는게 이상한거지. 애초에 넌 너무 공격이 단순해. 사람은 정직하게만
살아갈수는 없는거야. 완전히 노릴곳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공격이잖아. 조금은 페이트도 섞어보고 하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해야 공격이 들어가는거지."
매우 정확한 지적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폼이 안나잖아! 그리고 그렇게 잔기술만 늘려서는 강해질수 없다고! 한놈당 한방씩으로 계산하면
이쪽이 훨씬 더 좋은거잖아!"
"...도데체 몇명이랑 한꺼번에 붙길래 그렇게 무식하냐 너는?! 애초에 그런식의 싸움은 자신보다 약한
적을 단체로 상대하거나 하는 경우에나 하는거지, 너랑 대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적을 상대로 그런
싸움이 성립할거라고 보냐?"
억울했다. 지금 저렇게 충고하는 아버지는 그 많던 인베이더를 일격에 처리했으면서도.
"제길, 한번 더 해보자고! 이번엔 꼭 이긴다!"
"백년을 해봐라, 어디 먹히나."
땡볕 아래의 배틀이 끝난건 그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나서였다.
밥을 먹는지 마시는지 구분이 안가는 속도로 먹고나서 정신단련을 하려고 하자, 식탁 위에 있던 윈도우
패널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 옥상으로 올라와라."
직접 부르면 돼지 왠 음성전송? 이라고 투덜거리면서 옥상으로 올라가자
아버지는 홀로 의자에 앉아 별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왠 옥상이야?"
"아아... 너에게 말해둘것이 있어서. 아직은 덥기도 하니까 밖이 좋잖아."
의자를 끌어 아버지의 옆에 놓고 똑같이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야기라는건 뭔데?"
조금은 뜸을 들이던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사실은 조금 일이생겨서, 내일부터 당장 집을 비울거같아."
자주 외국이라던가 여러곳을 다니던 아버지에게 있어서 출장이라는것은 익숙한것이었다.
"이번엔 언제돌아오는데?"
"글쎄...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 웃는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해보였다. 그래서일까, 나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저 하늘의 별의 수만큼의 인연이 있고,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어."
급속도로 인간이 줄자 공해가 사라진 세계에는 맑은 대기가 돌아왔다. 칠흑의 어둠속에 빛나는 진주와도
같은 별을 올려다보며 입을 여는 그의 옆모습에선, 쓸쓸함이 느껴졌다.
"왠 시인같은 소리를 하는거야?"
쑥스러워서 정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게 서툰 우리 부자는 이렇게 서로를 놀리듯이 말을 하는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
"글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고로 일단 너에게 줄 물건이 있어."
그리고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아버지의 검을 나에 손에 올려놓았다.
"...이걸 나한태 줘도 돼는거야?"
"어차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놈한테 칼쥐어줘봤자 뭘하겠냐만, 적어도 언젠가 그녀석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지."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의 등받이를 내려서 별을 올려다본다.
"언젠가는 너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을 수 있을거야. 그때는 망설이지 않는게 가장 중요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라고 나의 옛 스승이 말한적이 있었지 아마."
"...그러는 아버지의 신념은 뭔데?"
그 순간 딱딱하게 굳어진 아버지의 표정에서 슬픔을 느꼈다.
"...깨어져버린 신념은 다시 붙일 수 없는거야. 그것이 누군가와의 약속이라면 더더욱."
더이상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것은 서로에게 좋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이때 생각했었다. 아버지와 만나는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날의 저녁은, 그렇게 끝났다.
......
....
..
"...여행을 떠났다, 라는 것은 결국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것 아닙니까."
나의 긴 이야기를 듣고있던 에일린은 의문을 가진 얼굴로 말을 내뱉는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신의 검을 나에게 주고 떠난거야 아버지는.
검을 잃은 예니체리는 죽음뿐이라고 언제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헀던 그 자신이 말이야."
"...최우선 보고사항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군요."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석양이 지고있었다.
"그럼 실례했어. 일단 나도 집에 돌아가봐야 하니까."
대문까지 마중나온 에일린을 보고 인사를 건낸다. 그렇다고 해봐야 바로 앞집이 나의 집이긴 하지만.
"그래서 결국 너의 목적은 뭐야?"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뒀던 가장 큰 의문을 건넨다.
"...오린의 탐색에 저희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천만의 메디나의 시민을 위해서라도 그는 꼭
찾지 않으면 안됍니다."
"도데체 아버지가 뭘했길래 그정도로 큰 소동이 일어난거야? 그것은 가르쳐줄수 없는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만 대답은 역시나 불가능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은 밝힐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도 관련이 있는 이상, 어쩌면 다음 목표는 당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마중하는 에일린에게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머리속에서 정리해본다.
'메디나'라고 밝힌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찾아왔다고 하는 에일린. 그리고 마찬가지인 아버지.
도데체 무슨 이유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갈피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책상위에 올려두었던 아버지의 검을 꺼내 손에 잡아본다.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 그리고 나에게 남아있는 가족과의 접점중에 하나.
이유없이 허공에 휘둘러본다. 무기를 쥐고 있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무엇이 시작되는걸까.."
-firs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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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상당히 흥미로운 전개! 재미있군요 |
2006-07-04
15: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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