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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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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05 19:39:34 조회: 546 추천: 0 |
많은 분들이 길다고 하셔서 좀 짧게 써야지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제가 한번 필이오면 몰아쓰는 타입이라 그게 잘 안돼네요. 한 10kb단위로 나눠서 올려볼까요?
2-1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의 천장이었다. 크게 뒤틀려버린 나의 일상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라고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후우….”
입에서는 한심한 한숨이 나온다. 아직 머리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는지 제대로 된 사고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워있기만 한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 팔의 상처는 남아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움직임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다소의 무리가 생기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팔을 사용하는 근육운동의 비중을 낮추고
복근운동을 조금 더 비중을 올려주었다.
약 30분정도의 가벼운 트레이닝이 끝나고, 땀범벅이 되어버린 티셔츠를 세탁물통에 던져 넣고 냉장고에서
어묵바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물통을 꺼내 병째로 들이키자, 이제야 정신이 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어쩐다.”
혼잣말을 입에 담는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정학상태이다. 물론 그 이전에 어제의 그런 대소동이 일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한 이상, 못해도 3일은 휴교라는 것 정도야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전자레인지에서 어묵바를 꺼내자 먹으려고 하자, 현관 쪽에서 벨이 울렸다.
이 집은 쓸데없이 넓기만 하고 실질적인 인터폰조차 하나 없어서, 손님이 올 경우 무조건적으로 현관까지
나가야 돼는 귀찮은 일을 만들어준다. 뜰을 지나 대문까지 걸어 나와, 문을 열었다.
문앞에는 예상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엉? 네가 웬일로 우리 집에?"
눈앞에는 거의 처음 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사복차림의 현아가 서있었다.
“뭐야, 무사했잖아. 어제 뜬금없이 학교에서 사라져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해서 들른거야.”
이게 도데체 무슨소리 일까. 어제 나의 바보짓은 분명 현아를 포함한 학교의 여러 인물들에게
목격당해서, 어떻게 수습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 부분에 대해서만 기억이 없는
것처럼 현아는 말하고 있었다.
"잠깐, 이건 어떻게 된…?!"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갑작스런 인기척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본다.
살기와는 달랐다. 인베이더도 아니였다. 순수한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찾을려고 하지만.
"어디냐…"
지각범위에 한해서만 차크라를 가동시켜 탐지한다. 내 탐지범위는 길게 잡아야 400M정도.
그
렇다고 해도 인기척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는 아니다. 이정도로 모습을 확실하게 숨길 수 있으면서
기척만을 내보이고 있다. 나를 끌어내려고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현아가 말려들 가능성도 낮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들어와. 뜰을 일직선으로 지나서 정문으로 들어가. 열쇠는 잠겨있지 않으니까
상관하지 말고."
갑자기 말을 끊었다가 들어오라고 하는 나에게 뭔가 묻고 싶은 듯한 얼굴을 한 현아를 끌어당겨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동시에 나는 대로변으로 나와 한계까지 차크라의 자각범위를 늘려 상대의 위치를 탐색했다.
하지만 그 존재의 위치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기척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앞집의 대문이 열리며, 에일린이 걸어 나왔다.
"…사라진 듯 하군요. 린도 기척을 느낀 겁니까?"
아마 에일린도 나와 같은 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 듯 했다.
"그래, 너라면 혹시 그 위치까지 추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불가능해."
혹시나 하는 기대에 에일린의 얼굴을 바라보자, 고개를 양쪽으로 저었다.
"저의 탐지범위를 뛰어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어쩔 수 없나. 그렇다면 다음 의문을 물어보자.
"그럼 다음 질문. 어제 현아는 분명 나의 주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그건 네가 한 일인거야?"
이번 질문에는 긍정을 표시했다.
"적어도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단위암시를 걸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암시능력은
강한 편이 못되어서, 그중 몇몇은 기억을 찾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정도의 전투능력에, 암시까지 사용한다니 이건 도대체 뭐하는 괴물인가.
"그럼 난 돌아가겠어."
뒤로 돌아 대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에일린이 갑자기 작은 소리로 제지했다.
"그런데 현아의 기억은 어떻게 확인한겁니까? 아직 학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만."
이녀석, 휴교한 사실은 모르는 걸까?
"지금 우리 집에 있거든. 그리고 참고로 말해주자면 오늘은 임시휴교니까 교복입고 있을 필요는 없어."
조금은 웃기는 얼굴을 한 에일린에게 눈인사를 하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내 방을 지나서 식탁 쪽으로 나오자 현아의 얼굴이 보였다.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었다.
"뭐야 배고프냐? 아래쪽에 어묵바 있으니까 데워서 먹던가."
그러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를 보던 현아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어떻게 냉장고에 있는 거라곤 어묵바하고 물밖에 없냐?"
또다시 시작되는 참견과 잔소리의 연타인가.
"편하고, 어차피 배만 부르면 되잖아. 요리니 뭐니 귀찮기도 하고."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손가락을 세우며 일반론을 내세운다.
"사람에게는 영양균형이 필요한거야! 이렇게 인스턴트만 먹으면 몸에 안좋아."
"난 튼튼하기 때문에 문제없어. 그리고 가끔은 영양제라던가, 외식이라던가 하니까 별 문제는
없다고 보는데?"
"돈도 많으면서 생색내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순수하게 귀찮아서 그런거야?"
그러고 보니 이녀석이 왜 나에게 용무가 있는지를 듣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용무로 찾아온 거야?"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약간 삐진듯한 목소리를 흘린다.
"지나가던 김에 무사한지 확인이라고 해볼 생각으로 온건데 네가 갑자기 집으로 밀어넣은 거잖아!"
아, 그랬지. 깜빡 잊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눈은 웃고있는데 입이 일그러져 있다. 이거 위험하다.
두뇌의 변명회로를 풀가동시켜서 적절한 변명을 짜낸다.
"그래 그거야! 그러니까 내 일그러진 식생활의 개선을 위해서 협력해달라 이거지."
"아까는 괜찮으시다면서요? 갑자기 변명하는 티가 팍팍 나는데요?"
"그건 영양불균형으로 파괴된 내 뇌가 잠깐 헛소리를 지껄인거야. 그런 관계로 장보러 가자!"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낸다.
"금방 나갈테니까 잠깐 기달려."
현관으로 보낸 후에 방에서 군청색의 블루종을 꺼내 입는다. 방구석에 처박아뒀기 때문에 조금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꽃아넣고, 블루종의 안주머니에 보이지 않게 '검'을 숨긴다.
어제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돼는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의 대비와 방금전 느껴진
그 시선의 원인을 생각해서 무기를 챙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뜰을 지나서 대문으로 나가자, 거기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현아 이외에 사람이 있었다.
에일린과 현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지만, 작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평범한 소녀들의 대화여서, 그 중간을 자르는 것은 좋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갈까? 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리랑 같이 갈래?"
에일린을 보고 반 장난삼아 말을 걸자,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저도 '어묵바'라는 식품에 슬슬 물려가던 참이니 이쯤에서 새로운 식료품을 보급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길어봐야 3일도 안먹은 주제에 감히 내앞에서 어묵바가 물렸다고 입을 열다니, 천인공노할 대사건이다!
라는 식의 바보짓을 잠깐 생각해보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졌다.
"...?"
의문을 품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자, 쟂빛의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색깔이었다.
"우산을 가져오는게 좋겠군요." 라고 말하며 에일린은 현아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현관을 다시 열고 들어가 뜰 옆에 놓여있는 우산을 하나 꺼내 들었다.
우산하나 챙기는데 뭔 시간이 그렇게 걸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현아와 에일린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비가 오는 하늘이 좋았다. 구름의 눈물방울들은 몸은 차갑게, 마음은 따듯하게 만들어 준다.
잠깐 시간을 멍하게 보내고 있자, 자신의 앞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처음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반정도?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미녀라고 대답하리라.
170이 좀 넘을 것 같은 큰 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갈색의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노인이 있다면 불호통을 칠 듯한 짧은 핫팬츠에 그 아래에는 검은색의 타이즈로 다리를 가리고
있었다. 핫팬츠와 타이즈 사이에 돌출되어 있는 허벅지는 그녀의 다리를 한층 더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다.
발목을 감싸고 있는 스니커즈에는 금속성의 질감이 느껴졌다. 상의는 배꼽이 다 보이는 타이트한 나시 위에
팔꿈치 앞쪽에서 끊어지는 라이더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이 모든 의상이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예외적인 색깔을 지닌 부분이라면, 양 손목에 차고 있는 금색의 팔찌와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 정도였다.
그녀의 복장보다도 훨씬 더 검은 칠흑의 눈이 장난기를 띄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장난감을 찾은 고양이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ㅡ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여자의 기척은 아까 나를 감시했던 그 기척과 완전히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의를 비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흘러가고, 먼저 발을 내딛은 것은 상대쪽이었다.
한걸음, 이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였다.
"너 혹시 이 주변에서 이정도 돼는 금발의 여자아이 못봤니?"
그렇게 말하며 손을 자신의 턱 높이까지 들어올린다.
"녹안금발의 미소녀인데 겉으로 보면 한 15,6살 정도로 보일꺼야."
지금 이 여자가 찾고 있는 상대는 분명히 에일린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 관계되었다기 보다는
에일린이 행동하고 있는 쪽에 관련되어 있다는 건가?
"아뇨.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적어도 부정을 하자.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가볍게 웃으며,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ㅡ기척은 커녕 발소리 조차 듣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일린은 분명 이곳에 있고, 너는 그녀를 알고있어. 하지만 지금 모른다고 부정했지."
목줄기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지. 너를 추궁해서 에일린을 돌려받는 정도야."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대로 말해줘야겠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알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빨리 에일린이 돌아와주기를 빌었다.
에일린의 집 쪽에서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래도 역시 저도 현아처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걸어나오던 에일린은 문 밖의 상황, 정확히는 내 등뒤에 서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뻐끔거리는 입이 마치 붕어같았다.
동시에 나를 구속하고 있던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눈 앞에는 차마 웃지못할 광경이 일어났다.
"꺄아아! 루루 이게 정말 얼마만이야!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아무런 말도없이 사라져서
그 돌덩이 오웬이랑 둘이서 행동하느라 얼마나 끔찍했는뎨!"
그렇게 말하며 장신의 검은 여자는 에일린을 끌어안았다.
"우와아아앗! 사,사야님! 일단 진정해주세요!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까 뺨을 부비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뒤에서 덮치듯이 끌어안고, 뺨을 부비고 있던 여자는 에일린의 대사에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갑옷를 입은 루루도 좋지만 역시 이렇게 소녀다운 옷을 입혀놔야 됀다니까!"
...차마 눈뜨고 못볼 광경이었다. 방금 전 까지 죽을꺼라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러니까 귀에 바람을 부는 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도데체 남의 가슴에는 왜 그렇게 얼굴을
파묻는겁니까!"
"아잉~ 그래도 한달은 떨어져 있었는데 재회의 감격정도는 나눠도 괜찮은거 아냐?
그런데 루루, 가슴이 조금 커진거 같은데?"
꽃들의 향연이니 뭐니, 신나서 사진이라도 찍을 놈들도 세상에 수두룩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와 현아는 그자리에 굳어서 멀뚱히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
....
..
"아하하핫! 그거 걸작인데? 설마 내가 진짜로 죽일거라고 생각한거야?"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에서, 나는 신나게 비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상당시간을 재회의 감격(?)에 소모한 에일린과 사야라고 불린 여자는 그대로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우리집을 강제점거하고 들어앉았다. 당연히 어묵바 이외의 먹을 것이라곤 전혀 없던
우리집의 식료품 상황을 보고서는 집주인인 나를 마음대로 부려먹으면서 쇼핑까지 하고, 결국은
이시간까지 눌러앉아 현재는 신나게 먹고,마시고,웃고있었다.
벌써 몇개째인지도 모르는 맥주캔을 따는 사야를 보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등뒤에서 사람 목에 칼을 들이대놓고 사과한마디 안하고 남의 집 식료품까지 축내다니
조금은 반성하라구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지금 고기를 굽고 있다.
"남자가 쪼잔하게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 애초에 네가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거 잖아.
자업자득이야!"
"제길, 내가 뭔 죄가 있다고 이런 집단에 둘러쌓여서 고생해야 돼는거야..."
굽던 고기를 한 점 집어먹으며 혼잣말을 궁시렁거리고 있자, 이 무서운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남자들에게 있어선 꿈과도 같은 양손의 꽃이잖아? 조금은 더 즐겨도 됀다고 꼬마."
그렇게 말하며 옆쪽에서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에일린에게 다가간다.
"루루도 그렇게 구석에 혼자 앉아있지 말고 한잔 하는게 어때? 시원하고 맛있어, 이거."
그렇게 말하며 강제로 맥주를 에일린의 볼에다가 문지른다.
"사야님, 적당히 하지 않으면 화낼껍니다. 그리고 그 루루란 호칭은 그만 써 주세요.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녀석도 어묵바 이외의 음식, 그것도 그 비싸다는 꽃등심의 냄새에
유혹당하고 있는 듯 했다.
"그냥 너도 앉아서 먹어라... 혼자서 그런대서 어묵이나 뜯고 있는거 궁상맞다."
다 구운 고기를 그릇에 담으며 혼자 툇마루에 앉아있는 에일린은 불렀다.
"...린이 그렇게 말하니 일단은 같이 앉겠습니다. 하지만 전 절대로 술은 안마실껍니다."
그러고선 식탁에 앉아 빛나는 눈으로 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작 나의 식생활 개선계획의 원인이 된 현아는 에일린과 사야의 정체불명의 사태에 당황에
귀가했다. 나름대로 나쁠 건 없는 상황이지만 또 나는 뭐라고 변명해야 좋은걸까...
"그건 그렇고 당신, 사야라고 했던가? 당신도 우리 아버지 찾아서 온거야?"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사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확실하게 대답해줘.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니까."
적어도 지금 이 사태에 원인을 아버지에게 분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사야는 약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금새 입을 열었다.
"나는 차크라의 기질을 파악하는게 특기라서, 이쪽에 와서 오린을 찾는 레이더 역활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게 잡히지 않는거야..."
"린의 말로는 오린은 자신의 검을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아마 코어도 그 때 같이
운반한 듯 합니다."
"그렇겠지... 발툰의 메인 코어야 일반인들도 느낄 수 있을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여자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기회에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왜 우리 아버지를 찾는건지 그 이유나 좀 가르쳐 달란 말이야..."
"아 그거? 흠... 자세히 말해주는건 좀 불가능하고 간략하게 추려서 말해줄께."
다 마신 맥주 캔을 뒤로 던지며 사야가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린은 우리들의 세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이쪽으로
날아버렸어. 그래서 그걸 돌려받으러 찾아온거야."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의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라고 하면서 왜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찾으려고 온거죠? 보통은 잃어버리는
순간에 찾으러 오는게 정상 아닌가요?"
그 질문에 사야는 피식, 하고 웃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사실 이것도 무리하게 빨리 시도한 거라서 불확정 요소가 커.
일단 20년이란 시차의 가장 큰 원인은 도약점의 시간차이에서 오는거야."
도약점? 에일린도 전에 입에 담았던 말이다. 아마 아버지를 도약자라고 하며 세계를 넘어왔다고 했었지.
"중력무기를 개조해 만든 녀석이라 그런지 시간축이 불안정한거야. 우리는 오린이 떠나고 나서
4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도약했어. 하지만 이쪽은 오린의 도착 후 20년이란 시간이 지나있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네요. 하지만 일단 아버지가 들고온게 당신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 만큼은 알겠어요."
이 이상은 추궁한다고 해도 특별히 이익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최종적인 결론은 힘들게 기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린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당초의 목적은 보이질 않으니.. 말 그대로 꽈당이지."
묻지 않은 이야기에도 대답을 술술 하는게 이 사야는 상당히 취한 것 같았다.
"그럼 사소한거 하나만 더 물어볼께요. 왜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는거에요?
거기서도 한국어를 쓰는건가?"
처음 에일린을 만났을 때 부터 좀 이상했다. 외국인 주제에 국어가 너무 능숙하다.
"그건 통역기가 작동하고 있으니까지."
"그런건 안보이는데요?"
"다는게 아니라, 먹는거야. 한번 먹으면 영구지속으로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서로 다른 언어라도 확실하게 번역해줘. 덕분에 여러가지 이득을 보고 있지."
"후우우~."
이상한 한숨을 내쉬며 에일린이 식탁에 쓰러졌다. 맥주 3캔으로 저렇게 취하다니
세상살이가 힘이 들지 않을까.
"저렇게 간단히 쓰러지면 재미가 없는데 말이지."
정작 술을 먹인 장본인은 웃고 있었다.
"재미 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 지금 한가하면 나랑 대련이나 해볼래?"
갑작스럽게 표정을 바꾸고 사야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마침 이렇게 큰 뜰도 있겠다. 특별히 이 사야님께서 한 수 가르쳐 주도록 하지."
엣헴, 하고 가슴을 펴며 그녀는 말했다.
"한합도 안돼서 나가떨어질게 뻔히 보이는데 덤볐다가 고기조각이라도 돼라는 거에요?"
"재미없는 아이네... 너 오린의 아들이잖아? 겉으로 보기에도 카르마는 충분한데 왜 그렇게
위축되어 있는거야? 아님 혹시 기술 자체를 못배운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허리에 차고 있던 두자루의 검을 꺼내 날을 생성했다.
사야가 예니체리 라는 사실은 낮에 위협당할 때 느꼈지만, 지금은 그 느낌이 틀렸다.
만월의 달빛을 받으며 푸른 검신을 빛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한 의미로 빛났다.
"...굉장하네요. 이도류라니, 그것도 둘다 완벽하게 구현 되어있어."
"후훗, 이래뵈도 현 예니체리 서열 2위인 이몸이 이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돼지."
일단은 품에서 검을 꺼냈다. 하지만 저런 아름다운 검 앞에서 자신의 꼴사나운 물건을
보이는게 바보짓이 아닐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검을 보았다.
"구현."
동조의 과정을 생략하게 간략하게 짜여진 정보로써 형태를 잡아간다. 그 형태의 이상이
되어주는 물건이 바로 눈 앞에 있으니 그것을 참고 하는 것 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붉은 색의 검을 들고 그녀 앞에 대치한다.
"흐음..."
한동안 나의 검을 관찰하더니, 사야는 입을 열었다.
"...아주 긍정적으로 위로해 주는거하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매몰차게 사실만 말해주는
거하고, 어느 쪽이 좋아?"
제기랄, 이거 결과가 너무 뻔하다.
"긍적적인 사실만 말해주면 안됄까요..."
"좋아, 나쁜소리는 않겠어. 포기해라."
"충분히 나쁜소리잖아!"
서로가 검을 거두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났다.
"이상하네... 피가 섞이면서 전도율이 떨어진건가? 보통은 이정도까지는 내려가지 않는데."
"그정도로 심각해요?"
"음, 그러니까. 총량은 충분해. 검의 구현도 어느 수준까지는 이루어지고 있어. 하지만
너, 카르마를 차크라로 전환하는 변환기가 이상한거야. 원래의 힘의 반도 못 쓰고 있어."
힘이 쭉 빠졌다. 그건 나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분명하게 내 힘은 증가하고 있지만
그 상승률이 너무나도 낮았었다.
"어떻게 못고치는겁니까?"
간절한 소망을 담아 그녀를 보자, 어쩔 수 없지 라는 식의 미소를 지었다.
"센스는 있어. 하지만 재능이 부족한거야. 하지만 그 재능이란것은 예니체리로써의
재능뿐이야. 격투계열로 전환해 보는것은 어때?"
물론 그런 생각도 안해본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나는 검을 휘두르고 싶어요.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이상하게 말이 술술 나왔다. 하지 않아도 돼는 말들까지 해버릴 정도로.
"오린의 뒷모습을 쫓고싶은 거구나... 아들이 아버지를 쫓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거니까. 방법은 가르쳐 주겠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마?"
그렇게 말하며 사야는 허리에 달고 있던 또 다른 검을 던졌다.
받아들어 쥐어보자, 묵직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검이라기 보다는 권총의 손잡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방아쇠 비슷한 것도 달려있고.
"이건?"
"소드 슬라이서야. 발툰에서 파낸 정석을 박아넣어서 힘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고정된 이미지 형태로 차크라를 뽑아낼 수 있게 만든거야. 백병전에서 가장
자주쓰는 거야. 검지손가락 부분에 트리거가 있지? 당겨봐."
명령을 받들어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감각과 함께 날이 형성되었다.
이미지도 필요 없이 자동적으로 적절한 형태의 검신이 유지되고 있다.
그에 반해서 차크라 소모량은 기존보다 적은 편 이었다.
"굉장한 물건 같은데요? 사야는 왜 이걸 쓰지 않는 거에요?"
내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는 웃었다.
"가변성이 없잖아, 가변성이. 이미지가 필요 없다는 것은 곧 형태의 변환도
불가능해. 그건 애초에 아직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는 예니체리 후보생이나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야."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대체적인 사용법은 바로 알겠지? 그 트리거를 당기면 날이 형성돼. 기본적으로는
다시 트리거를 당길 때 까지 계속 작동되고 있지. 몸에서 떨어지면 바로 검신이
사라지니까 주의하고.'
익숙치 않은 검을 손에 쥐고 가볍게 휘둘러 본다. 약간 묵직한 느낌이 중량감을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 또 색다른 맛을 지닌 검이었다.
"...강도의 조절이 안돼는군요. 이래서는 쉽게 굴절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말 했잖아. 일반 병사들이나 쓰는 물건이라고. 그럼 이제 결정해.
그걸 쓸래 아니면 나한테 격투술이라도 배울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둘다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나와야지!"
사야는 웃으면서 윙크를 날린다. 동시에 입고있던 재킷을 벗어 던졌다.
"전력으로 와. 나도 손대중은 하지 않을테니까."
아무런 자세도 잡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저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여도, 지금 당장이라고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싸움이다. 기본기부터 차례대로 펼쳐보자.
왼손을 방패삼아 앞으로 내밀고, 한발의 반격을 위한 오른손을 어깨부터
장전했다. 그리고 앞으로 대쉬하면서 플래쉬 잽을 날렸다.
"이정도 가지고는 개미 한마리 못죽인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누나한테 혼나요."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잽을 전부 피한다. 하지만 이쪽은 사거리까지 파고들었다.
"잡았다!"
잽으로 위장한 왼손으로 사야의 오른쪽 팔목을 잡고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그녀의 턱을 향해 장저를 날린다.
그리고 몽둥이로 사람을 패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어...?"
그리고 나는 기절했다.
......
....
..
눈을 뜬 것은 약 20분 이상이 지난 후 였다.
"약한 주제에 무식하게 정면으로 파고드냐! 상대의 기량을 파악하고 덤벼야지!"
내가 장저를 날림과 동시에, 그녀의 수도가 나의 목을 베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방에 나가 떨어질줄이야... 정말로 당황했어요."
"나한테 맞고 한방에 기절 안하면 그게 더 신기한거야. 그래 머리는 좀 괜찮냐?"
아까부터 피가 안통하는지 어질어질한게 일어서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어느정도는... 그래도 움직이는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당장 일어나. 이거 하고 끝내자는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앞으로 장시간은 몸이 고달플 것 같았다.
2-1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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