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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16 16:01:48 조회: 1,047 추천: 0 |
[사랑 하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을 하던,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낯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을 때 나타난 그 남자를, 그녀난 자신의 선배라고 소개했다. 그와 그녀가 연극 부 였을 때 같이 찍은 사진을 봐서인지 얼굴은 익숙했다. 그를 먼저 알아차린 그녀는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맑은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와 그, 그리고 내가 대화를 하던 때에도 그녀는 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에게는 희미한 미소밖에 보여주지 않던 그녀가. 나는 약간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화가 약간 나기도 하고 하며 그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때 서연이 선배였던 사람입니다. 이름은 강준영 이에요.”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서준식 입니다, 말 놓으세요.”
“하하, 그럴까?”
그는 바로 말을 놓았다. 그리고는 나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서연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둘은 무슨 사이?”
서연은 약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 하교를 같이 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평범한 날과는 다르게, 서연은 얼렁뚱땅 그 말을 넘겼다. 그리고는 연극 공연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같이 사귀는 사입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가 설명 해 주겠지.
이윽고 우리 셋은 다시 둘과 하나로 나뉘어져 원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왜 그에게 나를 남자친구라 말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왜 나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은 미소를 그에게 보여준 것일까.
참, 아까 그가 내일 연극 공연을 한다고 했었지? 그녀는 머뭇거리며 공연 티켓을 받고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내일은 나와 그녀가 같이 축제에 가기로 한 날이다. 잊지는 않았겠지?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 보다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나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머리를 창문으로 들어오는 북서풍에 식히며 잠을 청했다. 그래도 머리가 찌뿌둥 하다.
요 근래 일어나던 시간보다 약간 일찍 일어나 씻고 머리를 빗었다. 그녀는 우리 집으로 와 같이 축제에 가기로 했다. 지금 쯤 올 시간이다.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문구멍으로 누군지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그녀다. 나는 문을 열었다.
“왔어요?”
그녀는 약간 굳은 얼굴에 미소를 얹으며 대답했다.
“……응.”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축제 때 확실히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겠네.
아침을 먹지 않은 터라 그녀가 밥을 차려 주었다. 그녀의 요리는 식당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삐리리-.”
그녀의 핸드백이, 아니 휴대폰이 울린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바라보더니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전화 좀 받고 올게.”
화장실로 향한다.
“……네. 죄송해요, 선배. 친구와 약속 때문에…… 미안해요. …네, 공연…… 힘내세요.”
아아, 그거였군. 아마 공연은 두 시 까지라 했던가. 난 시계를 보고 지금이 아홉 시 라는 것을 확인 했다. 화장실에서 신발소리가 들린다. 그나저나 나도 모르게 엿듣고 있었군. 어서 제자리로 가야지.
나는 테이블에 앉았고, 그녀는 내가 앉자마자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하하, 옛날 친구인데, 동창회에 관한 이야기를 좀 했어. 통화 하는 것 도 오래간만이네, 그 친구.”
굳이 엄지로 볼을 긁으며 말하는,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난 거짓말 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열한 시 쯤 도착했다. 축제가 열린 장소에는 여러 노점상들과 많은 이벤트들이 준비 되어 있었다. 설탕 조각 만들기나 얼음 조각 전시회 같은 것 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녀는 아직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우리는 한시쯤 밥을 먹고 축제장을 좀 둘러보다가 메인이벤트가 시작되기 전 한숨 돌릴 겸 주위의 언덕으로 올라 와 앉았다. 발목까지 자란 낮은 풀들이 푸르렀다. 그녀는 약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원하고 좋은 곳이네, 어떻게 알았어?”
나에게만 보여주는 굳은 미소였다. 저런 걸 나 혼자 받는다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아. 나는 살짝 둘러 댄 후 고개를 들어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축제장을 바라보았다. 축제장 첨탑의 시계는 지금 시간이 한시 오십 분 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난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소 짓지 않을 때 그녀의 얼굴은 평상시보다 훨씬 굳어 있었다. 나는, 나를 잘 돌봐주고 챙겨주는 한 살 연상의 그녀를 보며 마른 입을 떼었다.
“선배.”
그녀도 나를 돌아보았다.
“응? 왜?”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우리……, 사귀는 것 맞죠?”그녀는 다시 그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난 너를…… 사랑해.”
나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검지는 볼에 살짝 닿아있다. 우리 둘의 대화에 약간의 시간이 끼어들고, 나는 그것을 내버려 두다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쫒아버렸다.
“그 공연, 두 시 까지죠?”
그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있었어?”
나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약간 못된 버릇이 있어서요.”
잠시의 침묵.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준영선배 좋아하죠?”
그녀는 다시 놀라버렸다. ……선배는 절 사랑하지 않아요.
“나에게 대하는 Like의 좋아하다가 아닌, Love의 좋아하다. 맞죠?”
그녀는 더듬거리며 내 말에 대답하려 했다.
“아, 아냐. 나는 널…….”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그녀 앞에 똑바로 앉아, 고개를 숙인다.
“감사했습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었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나뭇잎을 내리쬐는 태양이, 내 손등을 비추고, 그녀를 비춘다. 그녀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대답은 필요 없다.
“가 보세요. 공연에 늦을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선배의 공연이잖아요?’……. 말을 삼킨다.
“준식아…….”
“알고 있었어요. 어제부터. 선배가 나보다 준영선배를 더 좋아 한다는 걸.”
손등을 다시 태양빛에 태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잡고 싶었지만 저는 제 사랑보다 선배의 행복이 더 중요해요.”
그녀는 이제 눈을 깜박거린다. 눈에 먼지가 들어 갔나보다. 어서 가 봐요. 마음 변하기 전에. 그녀는 일어서서 날 바라보았다.
“준식아……. 고마워……, 미안 해.”
그녀는 돌아서 뛰었다. 그녀의 모습은 점점 언덕에서 사라지고, ‘거짓이었지만 하나였던 하나’는 이제 ‘하나’와 ‘하나’로 나뉘어졌다. 언덕에서 멀어지는 ‘하나’는 이제 곧 ‘둘이 하나가 된 하나’가 되겠지. 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내가 선택한 거야. 내가 그것을 원했어. 언덕 위에는 나만 놓여있다. 멀리 떨어진 것 도, 가까이 있는 것 도 아닌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입을 연다.
“우리……, 사랑 하고 있습니까?”
내가 던질 만 한 의문이 아니다.
“사랑 했었습니까?” 저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바람이 콧잔등을 휘어 감는다. 뜨거워진 눈시울에서는 빛의 과실이 열매가 되어 떨어진다. 난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손에 가려 어두워진 시야가 흐릿해 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의문을 던진다.
당신은……, 아니. “우리……, 사랑 하고 있습니까?”
맑은 하늘의 빗소리만이 대답을 들려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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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퇴고 하기 싫습니다. 더군다나 글도 군데군데 이상하군요. 아니, 전체적으로 이상해서 그런가? 끅.
그나저나, 온몸에 닭살이 우둘두둘 돋는 기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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