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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15 14:35:38 조회: 1,125 추천: 0 |
나는 어쩌다 보니 이 학교에 굴러들어 왔지만 서도, 그녀는 왜 이 학교로 온 것일까? 옷을 갈아입고 2층 창문에서 아래로 풀쩍 뛰어 내리며 한 생각이다.
삐걱. 예상 외로 무릎이 좀 아픈 걸, 주말 효과 때문인가. 어찌되었든 그녀는 근처에 공과쪽을 더 잘 가르치는 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그래서 우리학교가 안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그녀는 우리 학교로 진학했다. 진학 한지 일 년 반째, 나는 성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위험이나 걱정도 없이 살아가는 고2로, 그녀는 목표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2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내가 그녀의 목표를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으로 볼 때, 그것은 무언가 노려보며 달려가는 사람의 그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리라 짐작 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타박 타박 발걸음이 가볍다. 이제 주말 효과는 다 사라졌다.
타박 탁탁 타박탁 타박탁타박-.
뒤의 누군가와 발소리가 겹친다. 여느 때도 이렇다. 발소리는 그녀의 것이고, 그녀는 뛰어오고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슬쩍 웃었다.
“여, 왔는가, 제군.”
찰싹-
워, 등짝이 시원하다. 언제 뒤로 돌아 들어왔지? 그녀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얼른 따라잡아 그녀 옆에서 보조를 맞추었다.
타박 타박
발소리가 일정하게 겹친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맑은 페퍼민트 색의 하늘- 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냥 파란데 흰 점을 찍어 문질러 놓은 하늘이었다. 요즘은 이런 맑은 날이 계속 되는 여름의 후반이다. 이제 곧 낙엽이 떨어지고 가지는 혼자 바람에 떠는 가을이 오겠지. 모든 것이 서서히 죽어가는 가을. 난 가을이 좋다.
저기 언덕 너머로 학교가 보였다. 그것은 일반 고등학교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는데, 일단 크기에서부터 뭔가 달랐다. 모든 계열을 수용해야 하다 보니, 학교의 크기도 점점 커 질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인지 곳곳에 조경림이나 분수대 같은 것도 만들어 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대체적으로 시설은 좋다. 그러나 위치는 별로 좋지 않다. 여자라면 치를 떨 만 한 수 개의 언덕들이 학교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지선이는 매일 매일 언덕을 걸어도 종아리가 굵어지지도 않고~ 그렇지만, 다른 여학생들은 싫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찍 등교한다. 현재 시각은 5시 21분. 일렉트릭 리스트컴퓨터가 알려주는 시간인 만큼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 수업 시작 시각은 9시 정각. 3시간 하고도 39분이나 시간이 남는다. 그동안 우리는 학교에서 뭘 하느냐? 그냥 있는다. 가끔 교실 밖으로 나가 학교를 탐색하거나 학교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보통은 창가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멍하니 하늘만 올려 본다거나, 밀린 숙제나 수행평가를 한다거나, 말도 되지 않는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런 나날도 뭔가 재미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래서 이렇게 등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2학년 1반으로 입실, 그녀는 2학년 3반으로 입실했다. 물론 나는 가방만 갖다 놓고 그녀의 교실로 간다. 어차피 지금은 학교에 학생은 나와 그녀 둘밖에 없으니 거슬릴 건 없다. 그녀는 뭔가 복잡한 설계도에 푹 빠져 있었기에, 나는 그냥 의자를 끌어 와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펄럭이는 현수막. 엄청 크다. 거기에는 내가 겨우 읽을 수 있을 만 한 영어 단어들의 배열이 적혀 있었다.
“The Simulation fantasy(디 시뮬레이션 판타지)…… 당신은 저항 하지 못하고 ‘이곳’ 에 도착 하게 될 것이다? 광고 같긴 한데…… 무슨 광고가 저래?”
그때 불쑥 지선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거, 게임이야.”
“게임?”
“응, 이쪽 세계에서 저건 엄청 획기적인 발전이야. 모두들 알고 있어. 뭣하면 너도 해 보지 그래? 끝없는 과학 기술에 탄복 하게 될 걸.”
흐음, 그래서 빠져 있는 건가?
“근데 저게 왜 획기적인 발전이라는 소리야? 그냥 일반 게임처럼 보이는데? 무지한 중생을 깨우쳐 주소서…….”
지선이는 설계도처럼 보이는 종이를 접어서 책상 밑에 넣고는 손으로 턱을 괬다.
“저건 말이지…….”
“그래.”
“…….”
“…뭐야?”
“너도 방금 인정 했잖아?”
“뭘?”
“저건 말이라고. 하하….”
“…….”
“…아, 네가 아직도 그런……”
“저건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게임’ 이야. 물론 한국에서 발명 한 건 아니고, 세계 과학 협력기구에서 만든 거지. 그래서 수익금은 모두 그쪽 연구비용으로 쓰고, 그 게임은 단지 돈벌이용이야.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퀄리티가 높아. 나도 스냅샷을 본 적이 있는데, 중세의 모습에 요즘 게임의 기본 베이스를 얹은 것 같았어. 네가 좋아하는 종류 말야.”
내 말을 끊은건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 후 이어지는 지선이의 말에 나는 솔깃해 질 수밖에 없었다. 중세를 체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피가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데?”
지선이는 살짝 웃었다.
“역시 관심이 있나보네. 간단 해. 현수막 밑에 커넥션 코드 어드레스가 적혀 있지? 저기 있는 주소로 접속 하면 돼. 너한텐 일렉트릭 리스트컴퓨터가 있으니까 지금도 가능하잖아?”
나는 바로 일렉트릭 리스트컴퓨터의 중앙전원을 넣었다. 몇 초 후 홀로그램이 뜨고, 나는 홀로그램 키보드로 커넥션 코드 어드레스를 입력했다. 그러자 바로 ‘디 시뮬레이션 판타지’ 의 페이지가 나타났다.
[TSF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당신이 이곳에 접속 한 이상, 당신은 이곳을 벗어 날 수 없을 것입니다.]
메뉴 [아트웍 감상] [프로모션 스크린 샷] [스냅샷] [게임 개요] [게임 설명] [문의]
아마도 TSF의 페이지는, 게임의 환상적인 그래픽을 중점으로 둔 것 같았다. 나는 스냅샷을 터치 후 감상했다.
그건, 말로 표현 가능 한 ‘환상’ 이었다. 그러나 ‘현실’ 이었다. 체험 해 보고 싶다……, 욕망만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나는 바로 문의 매뉴를 터치해 게임 패키지 구매 신청을 해버렸다. 난 보급용 모델이 아닌 프리미엄용 모델을 주문했다. 그곳에는 단지 ‘편안하고 더욱 즐거운 게임을 원하시면 프리미엄 모델을 구입 해 주세요.’ 라는 글귀만 적혀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믿고 8천만 원을 결제 해 버렸다.
아마도 게임의 패키지는 오프라인으로 배송 및 설치를 지원 해 주는 것 같았다. 설치 완료 예상 시간은 오전 열한시 삼십분. 지금 시간은 여섯시. 다섯 시간 삼십분이나 남았다.
그러나…….
“지선아, 미안. 나 오늘 결석이다.”
“아- 응.”
지선이는 이미 예상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한 숨 놓을 수 있겠군.
“그럼.”
“후…,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걱정 해 주는 사람 한 명 없는 세상에서, 지선이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도 늦지 않게 와.”지선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달렸다.
집에 도착 하자 여섯시 십분 쯤 되었다. 많다면 많을 수 있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그 시간동안 나는 TSF의 페이지에 다시 접속해 게임 소개와 정보를 모두 정독 했다. 한 번 씩만 정독을 하고 내용을 파악 했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울리는 일렉트릭 리스트컴퓨터를 감지하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나는 전화를 받았고, 덕분에 패키지의 설치를 맡은 사람들은 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일단 방의 공간을 줄이기는 싫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싫지는 않았지만 공간을 줄이는 게 가능 하다면 그쪽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자 그 남자들은 침대를 옆으로 치우더니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설치는 몇 십 분 안으로 끝났다. 뚫은 천장에 철제 직사각형 통을 집어넣고는 손질을 조금 하는가 싶더니 끝이었다.
“그럼, 즐거운 게임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남자들은 떠났다.
나는 그게 반가웠다.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나도 이기적이지. 그러나 난 그런 생각을 접고 침대에 몸을 뉘인 다음 베개 옆의 스위치를 ON에 놓았다. 그러자 천장이 열리며 속이 텅 빈 두꺼운 철제 직사각형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어두워지고, 난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삐익 삐익 삐익- 눈을 떠 주십시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회원 등록 가능 합니다. 등록 하시겠습니까?]
난 그만 웃고 말았다.
“네”
파앗-!
눈앞이 빛났다. 너무 밝은 빛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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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없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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