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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銀色)의 흡혈사(吸血士) 01. 광월야(狂月野)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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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銀色)의 흡혈사(吸血士) 01. 광월야(狂月野)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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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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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6.01 23:11:49 조회: 752 추천: 0 |
……(전략)……피라고 하는 것은 혼의 맹약, 생명의 상징.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이러한 피의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흡혈'이라는 행위를 행하게 하는 데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이 흡혈의 행위는 카톨릭적 세계관에서 금기로서 운운되었으며, 잔혹과 악의 상징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가장 보편적인 흡혈 행위는 인간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신체 부위를 접촉시켜, 말 그대로 '흡혈'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의 의미, 즉 '생명과 혼'만을 흡수하는 두 가지 계열로 나누어져 있다. 혹자들은 이 두 가지 계열의 흡혈 행위를 구분하여, 전자의 행위를 실천하는 이들을 '흡혈귀(吸血鬼, vampire)'라 지칭하며, 후자의 이들을 '흡혈사(吸血士, bloodsucking gentleman)'라고 지칭한다.……(후략)……
<흡혈이란 무엇인가?(What is a Bloodsucking?) (2006), Paul Hauser> 에서 발췌
2007년 3월 2일, 대한민국 서울.
"으음."
은발을 단정하게 가다듬은 소년은 거울 앞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밑으로 약간 내려오는 단발머리는 소년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건네어 주었다. 은발과 대비되는 칠흑의 눈동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호수 같았다.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단정한 양장 형식의 교복이었다. 검은색의 슈트와 극도로 대비되는 흰 셔츠, 그리고 검은색의 넥타이는 소년의 은발을 꽤나 부각시켜주었다. 오른쪽 가슴에는 화려하게 번쩍이는 교표가 붙어있었고, 반대편 가슴에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姜銀常(강은상)-
금색으로 수놓아져있는 명찰은 소년의 이름을 뽐내고 있었다.
"아직, 늦지는 않았지?"
소년-강은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침들이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7시 30분. 그는 만족한 듯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0분이나 남았군. 널널하구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은상이 사는 이곳은 원룸이었다. 7평 남짓하는 원룸에는 침대, TV, 식탁과 냉장고 2개가 전부였다. 학생인 주제에 책상도 하나 없는 것은 뭔가 이상하달까. 그는 아주 천천히,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냉장고는 2개가 병렬로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보편적인 문 하나짜리 냉장고였고, 다른 하나는 꽤나 자그마한 냉장고였으나 그것보다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냉장고에 붙어져 있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혈액 보관용 냉장고'
하지만 그는 그것에 상관치도 않고, 한술 더 떠서 냉장고의 문을 몸을 굽혀 열었다. 과연 냉장고 안에는 이름에 걸맞게, 보약처럼 만들어진 몇 첩의 '혈액'이 보관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붉은 피가 담겨져 있는 봉투를 집어 든 후,
꿀꺽-꿀꺽-
마셨다.
은상은 쓴 보약이라도 마신 양 미간을 찌푸리며 입가를 닦았다. 불그스름한 피가 손에 묻은 것은 당연지사였으나, 손으로 슥슥 문지른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내용물을 모두 뱉어낸 봉지를 손끝으로 슬쩍 들었다.
"우욱, 아저씨 피가 섞여 있잖아. 맛없어."
그렇게 맛을 평가하고는, 봉지를 휙 하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금 시계를 바라본 그는 시간이 출발할 시간이 됐다는 것을 깨달은 듯 부랴부랴 침대로 달려가 자신의 가방을 낚아채듯 쥔 후에 가방 안에 두어개 정도의 혈액첩을 던져 넣었다. 가방 안에는 책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 들리는 소리는 둔탁하기만 했다.
"자, 가볼까나."
가방을 등에 들쳐 메고 현관으로 나가던 그는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자그마한 사진이 놓여 있는 탁자 위였다. 은발의 여성은 그 곳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엄마."
“아직은 쌀쌀한걸.”
은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3월 초이기는 하지만 쌀쌀한 바람은 여지없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등교시간이라 그런지 그와 같은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은상을 포함해, 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사립 광월 고등학교(私立 光月 高等學校)’라는 꽤나 특이한 이름을 가진 학교다. 하지만 꽤나 진학률도 높은데다가 두발 자유까지 보장하고 있어서 인기가 많은 학교랄까. 교복 패션도 어느 정도 괜찮아서 이 학교를 오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그런 곳이었다.
“그건 그렇고……왜 이렇게 언덕은 높은거냐, 이 학교는……!”
은상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언덕의 경사도는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에게는 꽤나 큰 장애물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길이도 짧지 않았기에 다리에 가중되어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야에 학교의 모습이 들어오게 된다. 돈이 꽤나 많은 재단이 후원해주는 모양인지 학교 외양은 굉장히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 넓은 부지에 뒤뜰에는 정원도 완비되어 있어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또 학교 건물 역시 서양식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꽤나 개량한 건물이기 때문에 중후하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그렇다고 해서 미션 스쿨은 아니지만. 하지만 여기서 학생들은 꽤나 거대한 충격을 받게 된다. 학교 내부 시설은 정말이지 꽝이기 때문이다. 학교 건물이 건물이다 보니 전기가 들어오기 힘든데다가 학교 내 방침인지 뭔지는 몰라도 기본적인 전등과 수도 시설을 제외하고는 다른 전자 기기는 거의 들어올 수 없는, 그런 학교였다. 여름에는 정말 사람을 돌아버리게 하는 학교, 라는 거지요.
“……어라?”
갑자기 은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옆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여러 학생들 때문. 게다가 그런 학생들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은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전력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학교의 교문이, 닫히려 하고 있던 것이다!
“아, 아직도 이런 학교가 있었던겨?!”
은상은 경악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등교 첫날부터 이렇게 강하게 학생 지도에 임하다니, 보통 학교가 아니라고 그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맹렬한 속도로 자신의 앞을 가로 막던 학생들을 제친 은상은 얼마 안 있으면 닫힐 것만 같은 교문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매정한 교문은 점점 닫혀가고만 있었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은상의 속도로는 교문 안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만이 튀어나왔다.
“야, 야, 닫지 마, 닫지 말라고!”
은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2m 남짓한 크기의 거대한 철문은 철옹성처럼 은상의 앞을 가로 막으며 닫혀 버리고 말았다. 은상을 뒤따르던 학생들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달리던 속도를 줄이며 교문만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은상은 속도도 줄이지 않고, 더욱 박차를 가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교문 내에 있던 선도부 요원-으로 보이는 학생-은 약간 당황했다. 결국-은상의 몸은 교문에 부딪힐 듯 접근하였고,
“어이, 그만둬. 다친다고!”
타다다닥-
“응?”
“어어엉?”
“우왓.”
“어머.”
“어잌후.”
꽤나 다양한 감탄사.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은상이었다. 꽤나 경쾌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은상은 철문을 ‘밟으면서’ 올라간 것이다. 그의 화려한 아크로뱃 묘기에 교문 내외의 학생들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은상은 약간 흐트러진 은발을 다듬으면서 상큼하게 미소지었다.
“저, 지각은 아니죠?”
그제서야 은상을 무뚝뚝하게 바라보는 선도부 부원들. 그리고 그 중에 부장으로 보이는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의 학생이 걸어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은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도 돼죠?”
“…….”
하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은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는 아주 느릿하게, 하지만 단호히 입을 열었다.
“교내 기물 손상. 벌점 2점. 선도부로 연행해.”
“아, 예. 부장.”
“으, 으잉? 무, 무슨 짓이에요? 이, 이것 좀 놓고 말합시다. 러브 앤 피스!”
양팔의 자유를 두 명의 거한에게 구속당한 은상은 처절한 표정으로 소리질러보았지만, 부장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신들의 부원에게 턱으로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아크로뱃을 하는 은상이라지만, 이렇게 힘으로 압도되고 있으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질질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교문 바깥은 학생들은 꽤나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앞에 선 부장의 얼굴에, 당장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부장은, 역시나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각. 벌점 1점. 선도부로 단체 연행해.”
“예, 부장.”
“하아아아아?!”
교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탄성.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학생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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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피, 정말로 맛이 없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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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하인씨, 새 연재 소설... 무척 재미있네요
과연 어떤 등장인물들이 나올지, 기대 기대 |
2006-06-02
17: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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