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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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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9 11:42:38 조회: 579 추천: 0 |
드디어 10번째 업로드군요. 이번에도 기탄없는 의견을 들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5월의 빠른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고 푸른 달이 하늘에 떠오를 무렵, 미도 외국인 학교
기숙사 5층에서는 향기로운 음식의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레이와 마리나의 ‘로리콘’소동이
있고 나서 약 한 시간이 지나고, 시계의 시침은 어느덧 8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레이. 아직도 화났어?”
싱크대 끝에 턱을 걸치고 한껏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제자를 부른다.
“화 안 났어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레이는 도마 위에 오른 양파를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잘게 썬 양파를 프라이팬에 볶는다.
“정말로, 별것도 아닌 일로 삐지다니 남자답지 못하잖아.”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감자를 자르고 있던 레이의 이마에 실핏줄이 솟아났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망칠만한 발언을 해놓고 그게 어디 별것도 아닌 일이에요!”
정작 가장 큰 피해자인 마리나는 용호상박의 전장에 다가가지 못하고 애꿎은 총기만 계속
손질하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다고 빌잖아.”
힘없이 제자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샤오링의 모습에서 스승의 위엄이라곤 쥐뿔만큼도
느낄 수 없다는 게 또 슬프다. 결국 그런 그녀의 모습에 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쉬었다.
“어휴… 그럼 그 일은 넘어가죠. 피해자인 마리나 씨도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움찔, 하고 어깨를 떨던 마리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어째서인지 식재료를 사온 샤오링이란 여자는 싱크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사과만
계속하고 있었고 정작 요리를 하는 것은 흰색의 와이셔츠와 약간 어두운 계열의 슬림 라인
청바지를 걸친 청년이었다. 단, 그 위에 걸치고 있는 하늘색 에이프런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것은 본인에게 말하지 않는 약속이다.
“아, 마리나 씨. 괜찮으시면 그릇을 좀 놔주시겠어요? 그리고 욕실에 계신 분은 언제쯤
눈을 뜨시나요?“
오늘 저녁의 메인이 될 닭 가슴살 야채 볶음에 후추를 뿌리며 레이의 말에 그녀는 옆에
놓여있던 그릇들 들어서 사람별로 놓기 시작했다. 식탁이 2인용이었기에 임시방편으로 책상
을 끌어와 식탁 옆에 붙여서 그런지, 높낮이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곧 일어날 거예요. ”
그런 그녀에 말에 응답하듯, 욕실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백은의 살빛을
드러내며 시리아는 욕실을 나왔다. 단, 욕조에 있던 차림 그대로. 즉, 알몸이다.
“시,시,시,시리아! 옷,옷,옷, 옷!!!”
비명과도 같은 마리나의 목소리에 시리아는 멍한 눈초리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성스러움을 주장하듯 드러난 양 쇄골. 주위의 시선을 압도하는 큰 가슴. 꾸준한 운동으로
꽉 죄여진 복부. 그리고 여자로써 쉽게 드러내선 안 될 둔부까지 그녀는 전부 들어내고 있
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앞으로 옮겨져, 주방에 있는 레이를 보고 인식하기까지 약 3초.
시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욕실로 돌아갔다. 거기에 뒤따라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그녀를 따라가는 마리나.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배웅하듯 식탁에 앉아 홀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샤오링이 능글맞은 너구리같은 미소를 지으며 레이에게 말을 건다.
“음, 나랑 좋은 승부가 되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예?”
하지만 그녀가 바란 대답을 청년에게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양파의 매운 기운에 눈이
붉게 물들 때까지 비비고 있던 청년은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듯 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됐으니까 타지 않게 조심해.”
내가 더 큰데, 라고 중얼거리는 샤오링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레이는 모든
준비가 끝난 요리를 하나하나 식탁에 옮기기 시작했다. 닭 가슴살 후추볶음을 메인으로
잡고, 입맛을 돋우는 부드러운 향을 풍기는 맑은 장국과 한눈에 봐도 바삭바삭한 질감이
드러나는 두부튀김. 조졸해보이면서도 어딘가 가정집의 맛을 풍기는, 그런 식단이었다.
욕실에서 한바탕 실랑이를 일으키던 마리나와 시리아도 밖으로 나왔다. 마리나는 아까
기숙사에 돌아와서 갈아입었던 푸른색 원피스에 트윈 테일. 시리아는 슬림하게 달라붙은
검은 쫄티에 짧은 핫팬츠.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듯 목에서 대충 자른 것처럼 보이
는 단발머리와 큰 검은 눈이 이국적인 미소녀&미녀 콤비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아, 준비도 다 끝났으니까 앉으세요. 두 분 다 외국인이시니까 양식으로 하는 편이 좋았
을까요?“
앞치마를 벗고 밥을 그릇에 담던 레이가 그녀들을 보고 웃었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 수에
시리아는 놀란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시리아, 일단 앉아. 자세한 사정은 먹으면서 이야기할 테니까.”
그러면서 자리에 앉는 마리나.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시리아는 레이가 넘겨주는 밥그릇
을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배 안 고파요? 피를 많이 흘린 후에 먹는 밥은 정말로 중요하니까 조금이라도 드세요.”
자신을 보고 미소 짓는 청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시리아는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
처럼 불안한 눈으로 마리나를 보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엘릭서에 몸을 담구고 있던 영향
인지 그녀의 이성이 확실히 작동하지 않아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런 시리아를 귀엽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마리나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식사 전에 서로 정식으로 자기소개라도 하는 편이 좋겠죠? 전 그노시스의 2급
인퀴지터. 마리나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인 시리아. 저와 같은 2급 인퀴지터입니다.“
그러고서는 고개를 앞으로 숙여 인사한다. 옆에서 시리아도 멋모르고 그녀의 행동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들의 다음 차례는 레이였다.
“에… 저는 레이라고 합니다. 옆에 계신 스승님과 함께 오컬트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나이는 대략 스물넷. 뭐, 저는 이정도 밖에 소개할게 없네요.“
뭔가 나사가 한두 개 풀린 자기소개였다. 그리고 그것을 마리나가 넘어갈 리는 없었다.
“이름은 그렇다 치고, 나이가 대략인건 도대체 무슨 이유죠? 그렇게 제가 못미덥나요?“
그 말에 레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저 녀석은 그래도 사실만을 말한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말아. 레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어. 그 이유는 나도 말 못해. 나이는 내가 저 녀석을 발견했을 당시 대략 8살 정도로
보였으니까 대충 정한 거고. 이름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더 이상은 질문 금지.“
샤오링이 담담하게 말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 젓가락이 막 두부튀김 하나를 집어 입으로
옮기려는 순간, 마리나가 그녀를 막아섰다.
“제일 중요한 당신의 자기소개가 아직 이잖아요.”
그 말에 아쉽다는 듯이 두부튀김을 놓으며 샤오링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렇게 딴 여자의 신상정보가 알고 싶은 거야?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너의 ‘언니’는
될 수 없어.“
조롱이 반쯤 섞인 웃음과 동시에 마리나에게 훠이훠이~ 하고 손짓하는 샤오링. 그런 그녀
의 태도에도 아랑 곳 않고, 마리나는 끈질기게 자기소개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결국 항
복한 것은 샤오링이었다.
“거 참 질기네. 알았어. 특별히 내 소개도 해주지. 이름은 샤오링. 나이는 대략 스물일곱.
직업은 레이가 말했고,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저 녀석과 나는 사제관계다. 특기는… 어디
보자, 검술(劍術), 선술(仙術), 사격(射擊), 요술(妖術), 체술(体術), 무기제조 정도 일까.“
그녀가 줄줄이 늘어놓은 특기만 해도 6가지. 그것도 전부 전투와 관련된 특기였다. 대단한
영력을 자랑하는 그녀에게 숨겨진 비밀은 아마도 한두 가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마리나는
그녀를 요주의 인물로 체크해두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거기 있는 너만 하면 다 끝나네.”
샤오링의 집게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시리아였다. 멍하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던
시리아는 그녀의 지적에 깜짝 놀랐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마리나가 자기소개! 라고 중얼
거리고 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는 시리아라고 합니다. 그노시스 소속 2급 인퀴지터. 담당분야는 전 계열. 특정 종교나
학파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간략하게 소개를 끝낸 시리아는 그제야 자신의 냉철한 표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사람 자체가 냉정한 게 아닌, 전투시의 감정이입을 막기 위해 부분적으로 감정을
커트하고 있는 듯 했다. 금세 감정을 드러내는 마리나와는 천지차이이다.
“좋아, 그럼 이제 먹어도 돼지?”
시리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샤오링의 젓가락이 다시 두부튀김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몇 초 후 목이 꿀꺽. 굉장한 페이스로 음식을 먹어치우는
샤오링을 보며 마리나는 떨리는 젓가락을 움직여 두부튀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소녀와 같은 작은 입술이 알맞게 튀겨진 두부를 삼키고, 그녀는 감상을 입에 담았다.
“아, 맛있다…?”
왠지 믿음이라곤 전혀 가지 않는 레이가 만든 음식이라 걱정하고 있던 그녀의 마음을 단번
에 날려줄만한 그 맛에 마리나는 감동했다. 조금만 온도조절에 실패해도 이 깔끔하고도
시원한 질감은 사라지기 쉬운데 그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또 적절하게 달
콤한 소스가 풍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 반해 아무런 표정도 가지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음식을 입으로 옮길 뿐인 시리아. 저건 사람의 식사라기 보다는 단순한 영양
섭취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정작 자신이 만든 음식에는 깨작거리면서 대충 먹던 레이가 시리아를 보고 물었다. 역시
만든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그녀와 같은 식사태도는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아뇨. 분명 영양균형도 적절하고 맛도 기준 이상입니다.”
굉장히 간단하고도 딱딱한 평가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침묵을 깨는 것은 역시
연장자의 일이다.
“한 그릇 더.”
그러고는 척, 하고 밥그릇을 레이에게 넘긴다. 그릇을 받아 수북이 밥을 담은 그릇을 샤
오링에게 넘겨주자, 그녀는 또 다시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렇게 먹는데 어떻게 몸매가 유지되는가는 역시 비밀이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어느덧 샤오링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뺨에 비비기 시작했다.
“…하아. 레이 너도 한잔할래?”
휘익, 하고 캔 맥주가 하늘을 날아 레이의 손 안으로 착지한다. 그런 사제지간을 바라보며
마리나는 긴장의 끈이 풀려버릴 것 같은 감각에 몸서리쳤다. 그런 그녀를 무시하듯 맥주를
들이키며 레이가 입을 연다.
“하지만 역시 의문점이 많네요. 인간령 주제에 저 정도의 힘을 가진 것도 그렇고, 왜인지
아직 자아도 남아 있으니까 좀 껄끄럽군요.“
갑작스레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걸로 휴식시간은 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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