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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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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12 13:16:24 조회: 538 추천: 0 |
넘버가 11이라는 것은, 어딘가에 1~10편이 있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ㄱ-
“뭐, 그건 답하기 어려운건 아니지.”
여유롭게 맥주를 들이키며 샤오링이 대답한다. 그러더니 시선을 마리나에게 옮긴다.
“뭐예요? 갑자기 사람을 쳐다보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듯한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리나는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비웃듯이 샤오링은 들고 있던 맥주 캔을 찌그러트린다.
“아니, 뭐 중요한 게 아직 남았잖아. 너랑 나의 관계. 설마 맨입으로 그냥 가시려고?”
의미심장한 그 미소에 마리나는 그제야 샤오링의 의도를 알아챘다.
“…당신들을 고용하란 소린가요?”
정답~ 이라며 냉장고에서 또 다시 맥주를 꺼내는 샤오링. 참 여러 가지로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레이.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뭐 나도 그렇게 큰 걸 바라는 건 아니지. 이중계약이기도 하니까. 보수는 알아서 지급
해.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건 정보랑 전투요원 정도일까. 뭐, 레이는 맘대로 써먹어도
좋아.“
“아니, 저 일단 부상자인데요.”
그런 레이의 발언은 완벽하게 무시하고 붉은 괴수와 하얀 마녀는 협상을 시작했다. 사실
협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일방적인 계약이었지만.
“…정보부터 넘긴다면 생각해보겠어요.”
일단 가볍게 견제를 들어가는 마리나의 태도에 샤오링은 딱 잘라 거절한다.
“협상결렬이네? 뭐 우리는 나쁠 것 없어. 저 녀석 부상치료 하는데 드는 비용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손해거든?“
그럼 잘 해봐, 라며 레이를 이끌고 문밖으로 나가려는 샤오링을 결국 마리나는 제지하고
말았다. 상대의 페이스에 완벽하게 말려버린 것이다. 사실상 단순한 원귀 정도로 생각하고
무장을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게 제일 컸다. 만성적 전투원 부족인 이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기본이 3인 1조인 퇴치계를 단 둘이서 하라고 하다니, 상부도 너무
하다며 투덜거리는 마리나.
“좋아요. 선금 때고 딱 1500. 이 이상은 나도 절대 못줘요. 공무원 월급으로 이정도면 나도
엄청 크게 쓰는 거니까.“
눈가에 물방울을 맺힌 표정으로 샤오링을 째려보는 마리나. 어째서인지 그 귀여운 소녀의
얼굴에는 세상살이에 찌든 가장의 표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본국에 가면 만화같이 큰 성도 가지고 있으면서 쩨쩨하긴… 뭐 알았어.”
다시 레이를 끌고 자리로 돌아와 앉은 그녀는 정장의 포켓에서 사진을 한 장 뽑아 던졌다.
사진 속의 인물은 그녀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원귀. 카츠라기 마야였다.
“한번밖에 이야기 안할 테니까 잘 들어. 그 녀석은 가짜야.”
“가짜?!”
직접 변화하는 과정까지 목격한 마리나에게 상대가 가짜라고 믿으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바로 반박하려 드는 마리나는 손가락으로 제지하며 샤오링을 이야기를 이
어 나갔다.
“허리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너, 그 학교가 설립되기 전에 그 자리에 봉인되어 있던 지
박령에 대해 알고 있냐?“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도리도리 휘젓는 마리나의 머리를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는 샤오링.
“뭐, 그쪽 정보통은 역시 오래된 건 잘 안 알려주나? 뭐 상관없지. 지금부터 약 12년 전에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대부호의 집이 하나 있었는데, 대화재가 났어. 가족들은 대부분 피
신에 성공했지만 그 딸은 죽었다고 해. 화재의 원인은 방화. 딸이 저지른 거지.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심각한 허언증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고립 됐었다고 해. 그 결과 정신적으로
미쳐 버린 거야.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모두 죽이려고 하는 놈을 허접한 도사
나부랭이가 봉인하긴 했는데, 하필 그 위에 떡하니 학교를 지은거지 뭐.“
“잠깐, 방화라니. 설마 그거?”
마리나의 머리 속을 뚫고 들어간 이미지는 바로 그 화귀였다. 아귀가 맞긴 했지만 그럼
마야와의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녀들이 싸운 상대는 분명 마야였다.
“네가 궁금해 하는 건 알아. 그러니까 좀 조용히 들어.”
두 번째 제지에 결국 마리나도 그 입술을 닫고 말았다. 열 받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서로 다른 두 혼이 어째서인지 하나의 그릇에 들어가 있어. 굳이 말하자면 저 마야란
꼬마의 혼을 그릇으로 힘을 잃었던 화귀가 들어간 거야. 물론 혼의 결합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력을 이용해서 혼을 때려 넣었어.“
그 결과, 저 마야란 소녀의 속에 들어있는 화귀는 지박령 소녀의 존재위치인 이 학교에서
밖에 힘을 쓸 수 없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화귀의 영력을 빌린 마야의 행동이다, 라고
샤오링은 사건을 단정 지었다. 물론 의문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것은
역시나 우리의 우등생. 마리나양이다.
“그럼 같은 학교 내에서 한번 변했던 것은?”
“영력부족. 지박령이 죽을 때가 되니까 껍데기인 마야를 남기고 숨었지. 서로의 분노에
반응하기 때문에 마야가 분노로 폭주하면 강제로 또 변화될걸?“
“그럼 결론은 간단하네요? 학교에 오기 전에 베어버리면 되겠네.”
혼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것처럼 보이던 레이가 간단하게 말한다. 졸면서도 내용은 대충
이해했던 모양이다.
“의뢰주가 성불을 부탁했는데 네가 착착 베어버리면, 우리 돈은 누가 주냐!!!”
아… 라고 한숨을 내쉬는 레이의 머리에 샤오링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노크를 한다.
단, 어째서인지 노크 소리는 수박을 깨는 듯한 소리였다는 게 문제일 뿐.
점점 아파지는 머리를 싸매는 마리나. 어째서인지 이 둘과 있으면 자신마저도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라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결론은 이 학교에 잠복하고 있다가 타깃이 접근하면 베어버리는 거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두 영혼을 결합시킨 간섭자가 문제군요.”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시리아가 말을 꺼낸다. 그동안은 쭉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무언가를 마구 휘갈긴 것처럼 보이는 메모가 굴러다니고 있다.
“그렇지.”
너 제법 마음에 드는데? 라면서 시리아에게 다가가는 샤오링의 목덜미를 잡아 눈썰매처럼
질질 끌고 온 마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능력 좋아 보이던데 어떻게 안돼요? 솔직히 당신 정도의 영력은 1급 인퀴지터들이나
가지고 있다고요.“
“혼의 고착화는 내 영력을 몽땅 써도 부족한데, 그걸 막 쓰는 놈이랑 싸우라고?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은 그냥 손때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이쪽 계열은 의뢰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 정석이자 매너이니까 억지로 물고 있는 거라고.“
울고 싶은 건 이쪽이라고 투덜거리는 샤오링. 그녀가 말하는 이쪽 계열의 의뢰를 거절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 오컬트계의 공통적인 명제다. 기본적으로 과학을 믿는 현대사회
에서 사이비 종교와도 같은 퇴마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에게 의뢰를 할 정도라면 그들의
사연은 말 그대로 ‘최악에서 1보 전.’이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뢰를
하러 온 의뢰인을 내쫓는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퇴로가 없다. 그래서 생긴 암묵적인 규칙
이 바로 이 ‘의뢰를 거절하지 않는다.’인데, 그것이 역으로 퇴마사를 죽이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하니, 그녀의 고충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은 학교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마야가 오면 일을 처리하고,
그 뒤는 서로 찢어지는 거지. 너희야 정 안되면 본부에 지원요청이라도 하라고. 그럼 이걸
로 이야기는 끝이야.“
샤오링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 구석에 놓았던 가방을 뒤적이며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로션과 각종 새면도구, 배게. 말 그대로 씻고 자려는 모양새였다. 검은 정장의 상의를 벗어
서 의자에 걸고, 스커트는 곱게 접어서 바닥에 놓고 욕실로 향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레이는 어째서인지 점점 표정이 굳어져가고 있었다.
“당신, 괜찮아요?”
새파랗게 변한 레이의 안색에 놀란 마리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레이는 대답조차 못하고
피가 나도록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이봐요! 이사람 상태가 이상해요!”
그 소리에 칫솔을 문 샤오링이 척척 맨발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샤오링을 놀리듯
레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다음, 그 몸을 돌려 창가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시린 달빛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방문자가 서있었다.
“너….”
그 모습을 본 샤오링도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떨어트린다.
“후훗,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같이 술이라도 한잔 할까 해서 왔어요.”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병은 흔드는 소녀.
-하늘을 좀먹는 붉은 달 아래에서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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