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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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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1 23:25:21 조회: 547 추천: 0 |
배틀씬은 정말로 자신이 없습니다. ㄱ- 어제 저녁은 조금 정신이 공황상태여서 더욱.
일단 내용이 조금 순화됬다고 할까요( ;)
시간을 조금 돌려, 기숙사 5층을 나선 마리나와 시리아의 시점으로 돌아가자.
“그건 그렇고, 저 사람은 저기에 내버려둬도 괜찮겠습니까? 만에 하나의 사태에는…."
기숙사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한 일이 되어버린다면, 안쪽에 갇혀있는 레이는 깔끔하게
구워진 통닭처럼 될 것이다. 물론 마리나도 그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무리하게 저 사람을 풀어주는 것도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곱게 도망이라도 가주면 고맙지… 쓸데없이 끼어들거나 해서 방해가 되면 더욱 문제가
커지잖아. 그리고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시말서를 늘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마리나의 뒤편에서, 시리아는 그녀의 긴 붉은 머리를 하나로
모아 묶어주고 있었다. 트윈테일과 포니테일은 전투상황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걸까?
“하다못해 로젠펠트(Rosenfeld)라도 들고 왔다면 금방 끝날 텐데….”
지금 이 자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무기를 떠올리는 마리나.
“……분명 금방 끝나기야 하겠지만, 이 주변이 무사하리라는 가능성도 낮아지는데요.”
표정도 바꾸지 않고 대꾸하는 시리아는 이미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양 대퇴부와
허리 뒤쪽, 왼쪽 어깨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슴 아래쪽에 손잡이를 아래로 향해 꼽혀있는 서
바이벌 나이프들. 마리나는 수녀복을 닮은 법의(法依)를 위에 걸쳐 슈트를 가리고 있지만
시리아는 자신의 복장을 감출 필요를 전혀 느끼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끝나고, 정문으로 한발을 내딛는 마리나의 손에는 글록 17이 들려있었고, 시리아는
수류탄을 닮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상대는 원한으로 폭주한 사령(死靈)이야. 최악의 경우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주의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당겨진 글록 17의 슬라이더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운동장의 한 점을 겨냥한다.
“시작해.”
감정을 담지 않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시를 내린다. 시리아는 손에 들고 있던 폭탄과 같은
물건에서 안전장치를 제거한 후 운동장을 향해 던졌다. 원만한 포물선운동을 하며 날아간
그것은, 운동장의 한점에 떨어져,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퍼져나가는 붉은 빛은 이윽고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전신에 불꽃을 두른, 도마뱀과 같은 모습의 무언가는, 그렇게 그 형태를 드러냈다.
“힐베르트 이펙트(Hilbert Effect) 확인. 지금부터 전투행동을 개시합니다.”
억양을 가지지 않은 딱딱한 목소리가 한차례 흐른 후, 시리아는 주저 없이 불의 괴물에게
돌진했다. 갑작스레 실체화한 자신의 몸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굳어있던 사령은, 길게 포효
를 내지르며 그 팔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발해지는 4개의 화구(火球). 그것은 절대로
인간이 버틸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질주하는 시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모든 것을 태우는 원귀의 화염은, 4발의 총성과 함께 나타난 은색의 십자
가에 가로막혀 그 원한을 드러내지 못했다. 정작 그런 신기의 가까운 묘기를 펼친 저격수는
아무런 표정도 바꾸지 않고 묵묵히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다.
하지만 탄환은 무한이 아니다. 17번째 탄피를 쏟아낸 슬라이드는 뒤로 젖혀지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매거진이 바닥을 굴렀다. 두 번째 탄창을 꺼내 초탄을 장전하기까지의 시간은
약 3초. 그 짧은 틈을 노려 또다시 그 손바닥에 염(炎)을 모으던 원귀는, 자신의 목을 노리
고 날아든 나이프를 피할 수 없었다.
푸슉, 하는 이질감이 섞은 소리와 함께 목을 뚫고 들어간 나이프를 놓고 시리아는 뒤로
점프했다. 그에 맞춰서 마리나가 영력을 담아 읊조린다.
“ausschließen!”
글록 17의 총구에서 발사된 성화탄(聖火彈)이 정확히 나이프의 손잡이에 명중했다.
2미터가 넘는 괴물보다도 더 거대한 회색빛의 십자가가 나이프의 끝을 기점으로 방출되고,
그녀가 입에 담았던 단어의 뜻 그대로 그렇게 화귀는 제거되려고 했었다.
“------------------------!!!”
비명과도 같은 화염의 포효가 내질러지고, 지면을 강타하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방사형으로
퍼지는 붉은 불꽃. 분노와 증오, 그리고 공포가 뒤섞인 울부짖음. 그 속에서 시리아는 마리
나를 끌어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를 두어 도약했다.
한 템포 늦게,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폭음이 울렸다.
“…….”
등부터 바닥으로 떨어진 시리나의 전투복에는,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손에 피가 맺히도록 깍지를 끼고 자신을 잡고 있는 그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싼 마리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를 올려보았다.
“시리아?! 괜찮은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시선을 돌린 시리아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시각을 중점적으로 당했습니다. 그것보다 마리나야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강렬한 빛과 고온에 그 빛을 잃어버린 안구는, 여전히 자신의 주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공격은 단순한 폭발과 화염이 대부분이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리나가
소유하고 있던 화약이었다. 갑작스레 고열을 받은 화약이 폭발하는 것을 시리아가 몸을
던져서 막았지만, 정작 자신은 피해를 대처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자신의 판단미스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한 분노에 어깨를 떨면서도 마리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시리아. …일단 후퇴하자. 무엇보다도 당신의 치료가 우선이야. 시신경 전체가 죽어버리면
나도 손쓰기 힘들어.“
탄약이 터져버린 권총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다행히 저 괴물도 이쪽의 공격이 먹혀들어
피해를 입어 경직되어 있긴 하지만, 상황은 자신들이 훨씬 불리했다. 그러자 시리아는
떨리는 다리를 강제로 움직여, 마리나의 앞을 막아섰다.
“거점으로 돌아가셔서 저격을 준비해주십시오. 3분 정도는 벌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는 허세였지만, 시리아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녀가 벌 수 있는 3분이라는 건, 자신의 전부를 포기한 상황을 전제하에 둔 시간이다.
“당연히 거부하겠어! 다시는 그런 말 입에 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완강히 거부하는 소녀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보였을까.
무표정한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운다. 언제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기에, 조금은
다가가기 힘든 그녀지만, 단 한명. 자신의 눈앞의 있는 사람에게만은 그 웃음을 보인다.
“가끔은 동생의 말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언니는 언제나 혼자서 모두 짊어지려 하니까.”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화귀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대퇴부의 홀더에 꽃혀 있는 나이프를 뽑아 영력을 주입한다. 원래 주술적 소양이 없는
시리아지만, 단 하나 자신 있는 분야가 있었다.
“windstill…Schrei!”
문자 그대로의 뜻을 가지듯, 주위의 바람은 그녀에 손에 들린 나이프를 중심으로 고요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응축된 바람의 칼날은, 그 형태를 창과도 같이 바꾼다.
타앙-!
하지만 그 비장의 창은, 한발의 총소리와 함께 와해되었다. 시리아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마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팔이 수직으로
들어올려질 정도의 반동에 놀라서 손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멍청한 청년이 서있었다.
“우와와왓! 손목이 날아가는 줄 알았네. 거기다가 맞지도 않았잖아….”
반동으로 얼얼한 손목의 통증을 풀려는 듯 손목을 흔들면서, 레이는 마리나와 시리아에게
접근했다. 물론, 총은 바닥에 내버려두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 변태 아니니까 이해 해주세요.”
레이는 시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흉부에 달려있는 소검을 뽑아 능숙하게 시리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열을 받았다고 해도 카본 나노 튜브제의 옷이 쉽게 찢어질
리는 없기에, 살에 달라붙은 부분을 나이프로 걷어내어, 손으로 벗기는 방식이었다.
“…좀더 난리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어느새 레이가 떨어트린 M500을 주워 괴물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마리나에게 말을 걸자,
안광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을 한 마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열로 화상을 입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겠죠. 지금은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 왜 나를
돕는지는 묻지 않겠어요. 아니, 내 쪽에서 부탁드리죠. …시리아를 도와줘요. 대가는 원하는
대로 지불할 테니까.“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은 정확히 괴물의 안구가 위치한 곳에 맞았다.
9mm 파라블럼탄과 500매그넘탄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 파괴력에 비례하듯 더욱
커진 십자가가, 화귀의 앞길을 막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용자의 신체에 끼치는 영향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어깨가 튕겨나갈 정도의 반동을 떨리는 두 다리로 지탱한다. 피로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어깨를, 레이는 부드럽게 두드렸다.
“저 눈은 도저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금 움직일 수 있어요?“
힘들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통이나 피로도 문제지만, 동생의 안위가 가장 걱정되기에 몰린
정신적 피로는, 육체를 좀먹는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갈퀴가 되어 가슴 깊숙이
박히고, 결코 빠지는 법이 없다.
급한대로의 응급처치를 끝냈는지, 레이가 마리나에게 다가와서 손에 들고있는 권총을 넘겨받는다.
그리고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담뱃갑만한 흰색의 상자를 꺼냈다. 겉에는 붉은색의 십자가가
그려진 게, 영락없는 구급상자였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주사기가 들어있었는데, 하나분의
공간이 비어있었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 마리나의 목으로 가져간다.
“잠깐, 당신 그거 도대체 뭐예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오는 대답.
“뭐긴요. 당연히 모르핀이잖아요? 몰라요? 그거 참고 서있으면 모르겠는데 당신 그러다가
쇼크로 죽으면 내가 무섭잖아요….“
“나는 그렇다 치고, 왜 주사기 하나 분량의 공간이 비여있죠?!”
“물론, 저쪽 분에게 투입했는데요?”
웃으며 대답하는 레이의 면상에 철권을 꽃아 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마리나지만, 지금
당장은 그나마 가장 의지가 되는 아군이었다. 거기다가 성화탄의 저지력도 한계를 달했는
지, 십자가는 부서지며 화귀의 전진을 허용하고 말았다.
“……빨리 놔줘요. 그리고 나는 알아서 할 테니까 시리아를 부탁해요. 일단 각개도주해서
근처 병원에서 만나죠.“
목에 닿는 주사기의 이질감에 몸서리치면서 말하는 마리나에게 되돌아온 대답은, 천사표
미소청년에게는 가장 어울리지 않을 듯한 내용이었다.
“그건 안되죠. 눈앞의 목표는 철저히 분쇄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괜찮으니까 저쪽의 무서
운 여자 분이나 간병해주세요. 아, 그 화상부분은 일단 이걸로 찜질이라도 해주세요.“
그러고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 소검 중에서 손잡이가 푸른 것을 던져주었다. 은은하게
냉기를 품고 있어서 분명 화상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알아들을 리 없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과 동시에, 레이는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숙이고, 그림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급속도로 대쉬했다.
성화탄은 그 특유의 영력으로 가해진 공격을 막거나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일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술식을 새기기 위해 무른 금속으로 탄두를 만들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강하지 못하다. 관통 당했을 화귀의 안구도 이미 제자리를 찾아서 그 눈동
자는 시시각각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레이를 보고 있었다.
“----------------------!”
다가오는 레이를 향해 그것은 입을 벌리고 괴성을 내질렀다. 가청영역을 뛰어넘은 주파수가
물리적 손상을 유발한다. 주변이 울리고 운동장의 모래들이 땅을 박차고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하는 존재는 한 마리의 뱀. 그 비늘을 뚫기에는 역부족이다.
자신의 음파가 상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물은 자신의 가장 쉽고 가장 간단한
특기인, 화구를 만들어 레이에게 던졌다.
화귀도 마음이 급했는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거대한 화구를 던졌다.
하지만 그것이 뱀에게 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한순간 이었다. 페인트를 잔뜩 섞은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후, 공격이 끝난
틈을 노려 공격하는 전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
하듯, 흉기는 그렇게 화귀의 손을 잘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화구와 팔을 동시에 베어버
리고도 만족하지 못한 듯, 청년의 손에 들려 있는 흉기는 살기를 뿜고 있었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공격이다. 가속된 신체에서 하나의 버팀목을 주축으로, 전신의 근육의
탄력을 한곳에 집중한다. 섬광과도 같은 왼손이 검의 손잡이를 잡고 그대로 발도. 그 후에
가랑이부터 머리까지 올려친다. 단 일격으로 상대를 죽이는 살수(殺手). 그것이 화구에 의해
시야가 가려져 실패한 게, 지금의 팔을 잘라버리는 일격이다.
“얕았나?! 제기랄!”
분명히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음에도, 청년은 뒤로 크게 물러섰다. 단박에 10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다시금 공격의 틈을 노린다.
‘일격에 죽인다. 이 녀석은 곤란해. 원령이 가장 강한 순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처에
스스로 놀랄 때!‘
침묵으로 가득한 폐쇄공간을, 끊임없이 살기가 잠식해간다. 원망, 분노, 증오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살기. 그저 상대를 죽이고 싶다, 라고 하는 감정만이 그곳을 맴돌고 있었다.
“-------------!!"
팔을 잃은 게 충격인지, 화귀는 이성을 잃고 레이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남은 팔을 크게
휘두르자, 그 육중함을 담은 불꽃은 그대로 레이에게 날아든다. 이번에는 산탄과도 같이
수를 셀 수 없는 작은 탄환들이, 그를 습격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대로 달려들어 저 뱀을
두 동강을 내려고 한다. 저 녀석은 위험하다. 머리가 아닌 혼이 경고하고 있다. 이대로는
분명히 살해당한다. 아직 하지 못한 게 너무나도 많은데! 모처럼 얻은 복수의 기회인데!
분노로 폭주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괴성을 내뱉으며 팔을 휘두른다.
원념을 가득 담은 그 일격은, 검은 코트를 꿰뚫었다.
“…….”
심장 위에 왼팔을 올리고, 그 위에 오른팔을 방패삼아 적의 공격을 막는다. 상대는 이미
충분히 약해져있고, 자신의 보호구는 그렇게 물렁하지 않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아머 글러브를 관통하지 못하고 미끄러진 화귀의 오른팔을 쳐내고, 그대로 노출된
가슴을 향해 검을 꽃아 넣었다.
마리나는 눈앞의 광경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화귀의 형상을 하고
있던 그 괴물은 레이의 살형도에 심장을 관통 당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오른쪽 눈과 왼팔을 잃어버린 한 소녀였다.
‘원귀가 다시 사람의 모습을 취했다고? 저건 있을 수 없어!’
그것보다 문제는 저 정체불명의 남자다. 아까 보이던 실실거리는 웃음은 어디가고, 지금은
귀신과도 같은 눈매로 토할 것 같은 살기를 뿜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자신의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상대가 인간령이라면 쉽게 베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마리나의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철컥, 하는 쇳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있는 소녀의 관자놀이에 M500의 차가운 총구가
닿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발의 탄환을 장전하기 위해 공이를 당겼다.
“어째서….”
자신이 죽음이 두려운지, 소녀는 전신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 눈은 원망을 가득히 담아
자신의 앞에 서있는 레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날 괴롭히는 거죠?! 난 그저… 그저 조금 더 이곳에 있고 싶을 뿐인데!”
독기를 품은 소녀의 눈빛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던졌다.
“……?”
“선물이에요. 이해는 못할 테지만 선물로 하나 가르쳐주죠. 내가 왜 당신을 방해하고, 지금 죽이려고 하는지 물었나요?”
살기와 분노가 가득한 레이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칠 용기가 없는지,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당연하잖아요?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돼는 쓰레기니까.”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한 그 대답에, 소녀의 눈빛이 무섭게 변해간다.
당장에라도 죽여 버릴 듯한 살기를 담은 표정으로 레이를 쏘아보자, 이변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났다. 오른팔이 또다시 화귀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레이는 다시 총구를 관자놀이로 가져갔다.
“당신은 그렇게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를 상처 입혀요.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과 같은 존재를 원귀, 원령, 악령이라고 부르죠. 당신이 살아서 무슨 일을 당했던, 그건
나에게 관계없어요. 지금 중요한건 당신이 이렇게 다른 누군가를 해치려 한다는 것과, 나는
그것을 막을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게 끝입니다.“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청년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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