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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5 15:48:47 조회: 523 추천: 0 |
하늘의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내리는 날의 밤이었다. 습도가 높아 기분이 좋지 않고, 달빛하나 없는 어두운 날씨는 그림자만을 알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내려오는 비가 바닥에 부딫쳐 내는 소리는 가만히 듣고 있자면 작고 미미한 진동을 내는것 같지만, 빗소리 하나하나가 뭉친 소리는 규칙적이면서 거대한 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거대한 소리를 뚫어버리는 다급한 목소리가 마구간에서 들려왔다.
어느 성이나 마굿간은 존재한다. 성에 거주하는 왕이나 기사들은 자신들의 귀중한 애마를 마굿간에 서슴없이 맡기면서도 더럽고, 누추하며, 낮은것들이 일하는 마굿간을 자신들이 가서는 안될 금역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야심한 시각에 그들이 그런 마굿간에 온건 분명 흔한일이 아니였다. 금발의 머리카락과 보통의 사람들 보단 조금 더 큰 귀를 가진 소년은 백마를 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백마가 가문을 상징하는 머리보호대를 쓰고 있는걸로 보아 그 백마는 가문의 수장이 타고 다니는 말이 틀림없었다. 소년이 타고 있는 말 아래에는 중갑을 착용한 기사가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말의 상태가 괞챦다는걸 확인한 그는 소년에게 말을 타고 빨리 마굿간을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 하지만."
금발의 소년은 말안장에 올라탔지만, 고삐를 흔들 수 없었다.
"아무말 하지 마시고 이곳을 떠나시면 됩니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기사가 안장위에 앉아있는 소년을 다독였다. 그리고 소년에게 어서 나갈 것을 재차 요구했다.
"경의 충성은 무덤까지 기억하겠소."
소년은 기사에게 의젓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목소리엔 심한 떨림이 담겨있었다. 기사는 소년의 의젓한 목소리에 사뭇 흐뭇했지만 곧 숙연해져 무릎하나를 꿇었다. 그리고 소년이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얼굴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왼손으로 닦고 소년이 흔들지 못한 고삐를 잡았다.
"로드 카드모스, 곧 후문이 열릴겁니다. 으럇!"
기사의 갑작스런 행동에 소년의 당황한 탄식소리가 들려왔지만 기사는 멈추지 않고 잡은 고삐를 힘차게 흔들었다. 고삐가 흔들리자 백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고삐를 잡으며 중심을 잡고 뒤를 돌아 점점 멀어져가는 기사를 바라봤지만 기사는 손도 흔들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기사단이 동행할겁니다. 웬헤드경을 따라가십쇼."
빗소리를 뚫는 또 하나의 소리가 성안을 울리게 했다. 마차가 지나다니는 돌바닥을 달리는 말발굽소리는 시끄럽다긴보단, 전장의 공기에 익숙한 이들에게 불안의 상징이였다. 잠을 자던 이들은 불안감이 엄습하여 등불을 들고 창문을 열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유추해보았다. 성내의 도로를 말을 타고 달리는 무리들은 중갑을 착용하고 랜서를 들고 있음에 신분이 기사임이 틀림없었다. 한참을 달리며 성내의 주민들을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든 그들은 마침내 넓은 광장에 멈춰섰다. 그들이 멈춰서자 다시 성내에 평안이 찾아왔다. 빗소리가 고요하게 울려퍼졌다. 기사들은 엄숙하게 랜서를 땅에 비스듬히 내려놓고 비를 맞으며 말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로드라고 불려진 소년은 상황이 급작스렀다고 작별의 의식을 미루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로브로 가려진 소년은 거리의 어느집문을 두들겼다. 오래지 않아 어느 소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소녀는 작았고, 소년과 같은 금발이었지만 청순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금발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벼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금발은 가볍다는 느낌 대신 청순한 미를 완성시키는 역활을 해주었다. 소년은 그녀의 미소를 보자 막상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단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녀에게 진실되게 얘기한다면 그녀의 검은색 눈은 물방울을 내보낼것이며, 어쩌면 그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소년은 ‘어떻게든 말하고 가야하는데........’ 라고 생각하자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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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 공작아들을 부르는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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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와서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못한다면 어쩐단 말인가? 저 미소를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지기 위해 왔건만, 그 미소에 빠져버려 헤어 나오지 못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그녀를 보내고 그녀를 보는 것이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이별 또한 깨끗해야함 함이 아닌가?’
안절부절, 소녀 앞에서 웃고 있었지만 소년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당초 이곳에 오기전부터 다짐했던 그녀의 마지막 웃는 모습만 보고 가자는 그 마음은 소나기처럼 지난간지 오래였다. 타들어가는 마음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더 소년의 용기있는 다짐을 연악하게 만들었다.
“무슨일 있는거지?”
평소와 다른 소년의 모습을 보며 소녀는 물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그저 바닥만을 뚫어지게 보았다. 소녀가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소년의 고개숙인 얼굴을 쳐다보다가 비가 많이 오는데도 손님을 계속 밖에 있게한 일이 실례란걸 깨닫고 실내로 들어올것을 권했다.
소녀의 제안에도 말이없던 소년이 드디어 결심이나 한듯 고개를 들어 주머니에서 꽃을 꺼냈다. 자주색 튤립, 로우랜드의 호빗들이 재배하는 튤립은 아름답지만 매우 귀해 사치품에 속하는 꽃이였다. 그런 튤립을 보게되자 소녀의 갈색 눈은 동그래졌다.
“널 주려고 준비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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