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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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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6 21:18:43 조회: 570 추천: 0 |
연참 무리라고 써놓고 연참 했군요 ㄱ-. 라기보단 피서가서 써둔것이 조금 남아있기에 올립니다.
-interlude.1-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소녀. 카츠라기 마야는 정처 없이 길을 떠돌고 있었다. 길을 걸으
면서도 그 남자에게 잘린 왼팔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죽은 후에도 고통을 느낀다니
웃기지도 않는다며 그녀는 인파를 피해 공원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구겨진 사진을 바라본다.
‘아빠….’
딱 한번,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만났었다. 하지만 그 때 만난 아버지의 눈빛도,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공포, 경악, 분노, 원망. 이런 마이너스적 감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어째서 네가 살아있냐고. 왜 지금 이렇게 이곳에 존재하
냐고. 그것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하나씩 박힌다. 눈앞이 침침하다. 총에 맞은 오른
쪽 안구는 다시 실체화를 할 때 복구되었지만, 그 눈이 비춘 마지막 영상은 안구에 눌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분노와 원망이 그 남자에게 향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
고 싶다. 이미 자신은 사진에서처럼 웃는 일은 불가능하다, 라고 스스로 마음을 죽인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한줄기 구원의 빛은 찾아온다.
“마…야 언니? 언니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정말로 그리운 이름. 정말로 그리운
얼굴. 자신이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하던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서있다.
“카오리…!”
목에서 흔들리는 짧은 검은머리에 소매를 두 번이나 접어도 큰 재킷을 걸치고 있는 소녀는
분명 자신이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 하고, 또 단 한번 만났던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생이
었다.
“언니! 그 팔 어떻게 된 거야!”
손에 들고 있던 쇼핑봉투를 떨어트리며 카오리는 마야에게 뛰어왔다. 마야는 생각한다.
결국에는 카오리도 아버지와 같을 거야, 라고. 이미 죽은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단 한순간.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는
카오리의 따듯한 체온에 그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카오리… 나, 나!”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렇게 독하게 먹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풀리고 그저 그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낸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터인 눈물샘이 눈물을 만들어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은 구원받고 있다. 이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녀에 의해서.
그리고 그렇게 폭포수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 마야에게 카오리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곳으로 가자 언니. 이 4년간 늘어난 내 요리 실력을 모두 발휘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먹여줄게!“
활발하게 웃는 카오리에게 이끌려, 마야는 인파의 물결을 뚫고 지나간다. 이 아이는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만약 모른다면, 그 사실을 안 다음에도 이렇게 내 앞에
서 웃어줄까? 그런 감정을 담아, 마야는 입을 열었다.
“카오리… 나…사실은!”
“알고 있어.”
해맑은 미소를 유지하며 카오리는 입을 열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그 표정에
무심코 마야는 또다시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내가 무섭지 않은 거야?”
“응. 언니는 언니니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마야 언니 그대로니까.”
그제야 마야는 깨달았다. 자신이 바라던 것은, 복수 따위가 아니라 이 따듯함 이었다고.
“순간의 구원… 그것은 존재할 수 없음에도 바라고 있는 무언가.”
그런 그녀의 옆에서, 얼음덩이와도 같은 차가움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영도의 세상에서 살다 온 것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눈썹.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금색의
눈동자. 마야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카오리는 안색을 굳히며 그녀를 막아섰다.
그런 카오리를 자신의 한 팔로 밀치며 마야는 체념을 입에 담았다.
“괜찮아 카오리. 이제 나는 만족했으니까….”
“아직은 끝나지 않은 바람… 영원히 지속되는 망각의 순간.”
그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으며, 그녀는 크로스 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마야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것은 많은 매듭이 지어진 삼배로 만든 끈이었다.
“일주일…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일상의 끝을 고하는 시간. 각오가 되셨다면 시작점…
당신의 학교로 찾아와주세요.
그런 말은 남기며 백은의 공주는 모습을 감췄다.
“아…….”
실체화의 도구로써 쓰이는 주술의 삼배끈. 실체화 하고 하는 대상의 나이의 수만큼
매듭을 지은 그것은 마야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던 자연의 영력을 약화시켜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언니, 팔이….”
카오리의 목소리에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의
왼팔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마야가 놀람을 표현할 틈도 없이 마야는 카오리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별 5개짜리 호텔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깔끔
하게 정돈된 실내와 로비를 밝히고 있는 황금빛 샹들리에에 마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때, 괜찮지? 처음에는 마야 언니네 집에 묵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역시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 혼자 자보고 싶었어!“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모으는 카오리. 쑥스럽거나 기쁠 때 자신의 양 손바닥을 맞붙이치고
있는 것이 그녀의 버릇이었다. 그런 카오리를 보자 마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그녀와 어울리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까지 올라가 들어간
카오리의 방실은, 상당히 호화로운 고급 룸이었다.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고, 침대는
퀸 사이즈. 바닥에는 붉은 카펫. 언제 카오리가 이렇게 호화로운 곳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마야는 침대 옆 탁자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구겨진 사진과 마찬가지인, 즐거운 추억의 단편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앞치마를
입고 있던 카오리가 마야에게도 앞치마를 넘겨주었다.
“후훗, 그럼 우리 오랜만에 같이 요리해볼까? 어렸을 때는 내가 언니한테 배웠으니까
이젠 스승으로써 제자의 솜씨를 봐줬으면 하는데.“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카오리는 마야를 주방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들고 온 쇼핑봉투에는
한가득히 먹을거리가 들어있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마야를 보고 웃음 짓던 카오리는
핸드폰을 꺼내 카츠라기 료에게 전화를 했다.
“아, 아저씨? 마야 언니 찾았어요! 여기 위치요? 카민 호텔 13층 1307호에요.”
그런 카오리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마야가 달려왔다. 자신의 아버지는 카오리와 같은 태도로
자신을 맞아주지 않는다. 그런 그와 다시 얼굴을 마주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아직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카오리… 아빠는 안 불렀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야! 아저씨가 언니를 얼마나 찾았는데. 아, 지금 바꿔드려요?”
떨리는 손으로 마야는 수화기를 받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녀마저도 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고민은, 료의 단 한마디로 사라져버렸다.
“마야…! 정말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울음 섞인 료의 따듯한 목소리에,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이 평범한 일상이 자신을 감싸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환희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카오리도 눈물을
흘린다.
통통 통통, 하고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언니 그거 너무 크게 썰었어!”
마야가 썰어둔 감자를 보고 카오리가 호통을 친다. 그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요리는 카레
라이스. 감자가 너무 작으면 씹히는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미안…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조금 어렵나봐.”
울상이 된 마야의 얼굴에 카오리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놀리는 동생을 보며
뺨을 부풀리는 마야를 달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고기를 볶고, 양파를 까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들은 만찬을 준비한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 돼는 료가 도착했다.
“하하, 일단 이거 받으려무나.”
문을 밀고 들어온 료가 카오리의 손에 들려준 것은 그가 아끼는 비장의 컬렉션중 하나인
고모다루(菰冠)이다. 쉽게 말해 전통방식의 일본 술. 일단 죽은 동안 흐른 년수를 치지
않는다면 마야는 미성년. 그리고 그런 마야보다 어린 카오리는 당연히 미성년.
“아빠, 술은 좀….”
주저하는 마야와는 반대로 환호하는 카오리. 그동안 많이 강해졌구나! 라면서 그녀의 어
깨를 팡팡 두드리는 카츠라기 료의 모습을 보고 결국은 마야도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
이는 수밖에 없었다.
시리도록 빛나는 만월의 달빛 아래, 있을 수 없는 망각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부수는 날카로운 못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렇게, 존재할 리 없는 망각 속에서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interlude.1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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