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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5 15:50:06 조회: 573 추천: 0 |
비롯 로브로 가려졌지만 소년은 평소의 버릇대로 머리 윗 로브를 긁었다. 그리고 나서 튤립 한송이를 자신의 손에서 그녀의 손으로 옮겨주었다. 이별의 모든 애뜻함은 꽃에 담겨져 체온을 통해 전달되었다. 꽃을 받고 기뻐하던 소녀가 이제 막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소년은 이미 자신의 백마에 올라타 있었다.
이제 떠나려는 순간, 소년은 잊고 있었던 자주색 튤립의 꽃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안녕 리엔, 자주색 튤립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데.”
꽃말을 남기고, 소년은 그곳을 떠낫다. 그때 소녀는 꽃을 코에 대고 무어라 말하며,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에서 목숨을건 선택 앞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지도자란 선택을 해야하는자다. 설령 그 순간이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존재다.
“로드 카드모스, 곧 이곳을 떠날겁니다.”
비를맞으며 소년을 기다렸던 기사들 중 웬헤드경이 말에서 내려 카드모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왕자는 로브를 벗어 금발의 머리카락을 드러냈다. 소년의 검은눈은 깊은 슬픔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헤드는 왕자가 가여워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해야할 일이 많다는걸 인지했고, 또한 어서 그 일을 마치고 성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느꼈다.
흐릿하고 신비로운 달빛아래, 죽음의 강이라도 건널 듯 기다리는 그들 앞에선 웬헤드경은 각오를 밝혔다.
“부르베뉴 제1기사단의 기사들이여, 우린 예전의 충성의 서약을 지키고자, 로드 카드모스를 적에게서 구원해내려 한다. 겉은 태산처럼 튼튼하며, 속은 장작처럼 타오르는 자들이여! 우리의 맹세를 기억하는자여! 나를 따라 기사로써의 의무를 완수하자!“
그리고 끝까지 맹세를 지킬 수 없는 자라면 지금 여기서 떠나도 좋다며 말을 마쳤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고무된 웬헤드경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의 신성한 의무를 적들에게 전한 배신자들이 있다. 우리가 이 곳을 무사히 떠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죽음을 선사한 뒤 움직여야 하는게 당연한일이 아닌가?”
웬헤드경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자 웅성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뒷줄에 있던 몇몇 기사들이 대열을 이탈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도망치기도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다른기사들에게 붙잡혔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 그리고 그것들이 안겨주는 추위는 소년에게 처음으로 배신이란 악덕을 선사해주는 배경역활을 해주었다.
기사들 앞에 6명의 배신자가 포박당한체 꿇려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는 배반자들로 좀더 우세한 편에 서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순간적으로 타락한 자들이다. 기사단의 부단장의 역활을 맡고 있는 로지나경은 부드럽고 유창하게 카드모스도 보고 있고, 또 그들은 기사단의 일원이었으니 한 뼘의 동료애로써 자비를 베풀어 풀어주거나, 아니면 회유를 통해 다시 기사단에 복귀시키자는 말들을 단장에게 했지만, 웬헤드는 그런 무의미한 행동으론 현재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기사단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며 끝끝내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포박된 자들의 목과 몸통이 분리될 때마다 붉은 것이 흘러나와 빗물에 쓸려 내려갔다. 비록 그들은 기사단을 배반하고 적에게 기사단의 중요한 정보들을 가져다준 배신자들이지만 고개를 숙인채 묶여있는 자들을 보자면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에 그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여러번의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공포에 젖은 이들의 비명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무렵, 죽음으로 가기전에 죽음으로써 행한 그들의 의식은 마침내 끝났다.
소년의 부드러운 눈동자는 선혈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여, 그의 마음 속 깊은 곳 까지 그 붉음을 스며들게 하였다. 그것은 그의 눈이 강제적 죽음을 처음으로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다만 소년이 죽음을 처음으로 본건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의 죽음도 보았고 엘프들의 마을에서 살았을때는 수명을 다 채운 엘프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피를 튀기며 목이잘려 뎅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맞이하는 죽음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로시네는 기사단의 이러한 검은규칙과 잔인한관습이 카드모스에게 안겨다줄 충격을 생각해 단장에게 재고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지만, 카드모스의 반응이 의외로 담담하자. 오히려 그의 마음이 심난해졌다.
웬헤드라고 로시네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았던게 아니다. 그도 카드모스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기에 카드모스가 그 일로 충격을 받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미친다던지 하는 문제가 생길것을 염려했었다. 그러나 카드모스는 그의 그런 염려를 무시하는 듯 처형식이 벌어지는 내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 살육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또래의 소년들이라면 최소한 구토를 한다던지,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지의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카드모스는 그런 종류의 반응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웬헤드경은 이러한 카드모스의 태도를 의아해했지만, 어찌됬든 카드모스가 충격을 받지 않은걸로 만족하고 속히 다음일을 준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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