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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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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08 13:37:00 조회: 238 추천: 0 |
"어, 어떻게…"
불타고 있는 성. 처참한 전쟁의 마지막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활활 타오르는 성중앙에 은색의 머리와 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소년은 바로 하엘이었다. 레앙과 성밖으로 나오다가 갑자기 레앙이 성에 볼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시켜 자신을 최대한 멀리 있는곳으로 데려가게 했다. 하엘은 반쯤 가다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마부에게 반 강제적으로 말머리를 돌리게 하여 성으로 돌아와보니 성은 불타고 있었다.
언제나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던 성문은 구겨진 종잇조가리 마냥 망가져 있었다.
하엘은 성안의 참혹한 풍경을 돌아보다가 어느 한곳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 앙?"
하엘은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조금씩 시체에게 걸어갔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레앙의 힘을 알고있는 자신이었기에 아닐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레앙!"
하지만 그는 레앙이었다. 은백색의 빛을 언제나 발하던 플레이트는 이미 수많은 피딱지와 칼날에 의해서 제 빛을 잃어버렸다. 언제나 어깨를 당당히 펴고 누구보다 기사도를 아는 레앙은 수많은 칼날에 농락당하여 차가운 시체가 되어있었다. 정정당당한 대결도 아닌 허무한 죽음.
"이, 이럴수가… 흑흑, 이럴수가!"
하엘은 레앙을 끌어안고 절규하였다. 피비린내가 진하게 났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렸을때 부터 자신이 외로울때는 친구가, 힘들때는 가족이 되어준 레앙이었다. 언제나 그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레앙이었다. 참을수 없었다. 속에서 뜨거운것이 입을타고 올라왔다. 하엘은 소리쳤다.
"누구야! 어떤새끼냐고! 커헉!"
하엘이 소리지르자 목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두 손으로 레앙을 내려놓고 바닥을 집은체 굵은 눈물을 흘리며 흙을 움켜지었다.
"죽여버리겠어. 어떤 새끼이던 내가 꼭 죽여버리겠어."
하엘의 은빛 눈동자는 이미 제 색을 잃었다. 붉게 충열된 눈에서는 한줄기 혈선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붉은 눈으로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던 하엘이 무엇인가를 보고 그자리에 못박히듯 모든 동작을 멈춰버렸다.
"억…"
하엘은 그것을 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움직일수도 없었다.
"아버지?"
하엘은 사시나무 떨리듯 다리를 떨며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빠지고 일어 설수가 없었다.
그극
그그극
조금씩 샤넬에게 기어갔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무릎의 살갗이 떨어져 나갔지만 고통이 안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니 샤넬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럴수가…"
샤넬은 가슴에 검은빛의 검을 꽂고 무릎을 꿇은체 죽어있었다. 하엘은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터질것만 같았다. 조금씩 기어가니 샤넬의 발목이 보였다. 한쪽다리의 발목은 없어지고 다리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크아아악!"
하엘이 피를 토하며 또한번 소리쳤다. 피보라가 하늘을 적시며 하엘의 머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자신의 피로 머리를 물들이고, 한줄기 혈선이 뺨을타고 흐르는 하엘의 모습은 마치 악마의 새끼가 갓 태어난것 같았다. 하엘은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고 샤넬의 얼굴을 보았다.
"크흑!"
샤넬의 두 눈이 없었다. 샤넬의 머리카락도 전부 잘려있었다. 샤넬임을 알수있었던 검한자루만이 샤넬의 시체옆에 박혀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야! 누구냔 말이다!"
하엘은 하늘에 대고 소리치다 머리를 바닥에 쳐박고 몸을 꼬았다.
"하악! 하악!"
거치 숨소리를 내며 하엘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하엘은 고통을 못느끼는지 계속해서 머리를 바닥에대고 비볐다.
"뭐야, 난 뭐냐고."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포근한 미소를 지어주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반대로 언제나 엄하게 꾸짖던 아버지도 떠올랐다. 그리고 바보같은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크크큭, 뭐? 상인이 되겠다고? 이 미친새끼야!"
쿵 쿵
하엘은 머리를들었다 바닥에 쳐박기를 계속 반복했다.
"힘도 없는새끼, 사랑하는 사람하나 지킬수 있는 힘도 없는 멍청한 새끼!"
하엘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속이 타올랐다. 머리는 멍해졌다. 머리를 바닥에 쳐박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으으."
하엘은 몸을 돌리고 하늘을 보며 괴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멍청하게 침을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으어어…."
타닥 타닥
불길이 거세졌다. 성만을 태우던 불길은 어느새 정원으로 번져갔다. 하엘은 몸이 뜨거웠다. 살갗이 녹는것 같았다. 눈을 떴다.
"커헉! 헉, 헉!"
하엘은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는것을 느꼈다. 살갗이 돌에 닿으며 뜨거워지던 느낌도, 하얗게 머리속이 텅 비어버리던 느낌도, 모두 사라졌다.
"내가 죽을수 없다면, 그들을 죽이겠다."
하엘은 정신이 뚜렷해 지는것을 느꼈다. 복수… 그것은 멀고 험한 길이다. 하지만 자신은 꼭 해내야 했다.
"아버지… 크흑."
하엘은 뭄을 일으켜서 샤넬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이 시체가 정녕 샤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정도로 시체가 온전하지 못했다. 하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입에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흘린 피의값을 되받아 오겠습니다."
'오냐.'
환청같은 소리가 머리속을 울렸지만 하엘은 그것이 환청이 아닐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엘이 몸을돌려 성밖으로 가려는 순간 샤넬의 검에서 무엇인가 반짝거렸다.
"…마지막 선물인가요?"
딸각
샤넬의 검의 손잡이에 끼어져있던 동그란 금패를 뽑아냈다. 그것은 소드마스터의 증표였다.
"모두들 여기서 편히 잠드세요. 내가, 꼭 이 땅을 다시 찾을것입니다. 반드시!"
하엘은 몸을돌려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크로이안 성에서 두줄기의 빛이 하늘로 올라갔다.
은백색의 두줄기 빛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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