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모스
|
날짜: 2006.07.19 23:07:04 조회: 539 추천: 0 |
기차의 경적소리도 공장의 매연도 없는 어느 시골마을, 이곳은 계몽되었다는 자들이 흔히 말하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벽촌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푸른산과 들판속, 젖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이곳에서 역사의 한폐이지가 씌여질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 폐하 전보이옵니다."
군복을 점쟎게 차려입은 인간 사내는 백발의 남자에게 전보를 건내었다. 백발의 남자는 나이가 꽤 있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세에 한치의 흐트림도 없이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전보를 받아냈다.
"그래..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
남자의 눈이 물기를 머금으려 하고 있었으나, 가부장적 가치관이, 아니 그의 신분이 그가 그것을 눈에서 흐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대신 그에게 전보를 건네던 사내나
간호원의 얼굴을 자그마한 물길이 지나갔다.
삐그덕,
문소리에 모두들 들어온 존재들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전보를 건내줬던 사내는 고개를 돌렸으며 간호원은 열린문으로 나가버렸다.
"폴레네스 3세, 면회자가 왔소."
군복을 입은 건장한 오크는 정적속에서 필요이상의 큰소리로 폴레네스3세에게 면회자가 왔음을 알렸지만, 그들은 그 오크에게 분노를 표할 수 없었다. 검은 망또를 펄럭이며 들어선 이의 얼굴은 검은 중절모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금발의 머리카락만이 그의 모습을 유추하게 해줄 뿐이다.
"폐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단신인 그의 굵은 목소리가 정적속에서 울려퍼졌다.
"그럼 난 가보겠소."
오크가 거만하게 보이는 큰 몸짓으로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전보를 전해주던 사내가 따라 나갔다.
"이제 폐하의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소."
검은 중절모의 사내가 품에서 와인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레니엔즈, 원하는것을 얻지 못해 분하더냐?"
폴레네스3세는 고개를 들었지만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진 않았다.
"못 얻었단 말은 아직 하지 않았소, 내껀 금고에 잘 있으니 걱정 마십쇼"
'퐁'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가 떨어졌다. 레니엔즈는 병을 들고 폴레네스3세가 앉아있는 소파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전등불 아래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전황이 전황인지라 어렵게 구한 '부르겐트 9년산 폴레네스 꾜냑'이오 폴레네스1세가 남긴건 공화국과 법이 전부가 아니란건 이 와인한병이 증명해주는군......'"
두개의 잔에 붉은 와인이 담겨졌지만, 폴레네스3세는 잔을 들지않자 레니엔즈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황제께서 독살을 두려워 하는건가?"
레니엔즈의 도발에 폴레네스3세는 천천히 잔을 들어 콧수염 위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잔을 45도로 숙여 입안으로 붓자 와인이 그의 목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난 항상 제국을 위해 제국을 위하여 내 인생을 바쳤다네, 수많은 세월들과 젊음을 오직 대 드네실렌만을 위하여 바쳐왔다네, 내 유일한 실수이자 가장 큰 실수가 바로 그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죽을 수 있다네."
폴레네세3세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다. 그는 레니엔즈를 향하여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는 투로 말하였지만, 레니엔즈의 표정은 중절모 밑에서 드러내지 않았다.
"남은건 잿더미 제국과 갇혀있는 황제뿐이요."
레니엔즈가 중절모의 챙을 올려들자, 금발의 머리카락과 보통의 인간들보단 약간 큰 귀가 드러났다. 폴레네스3세와 눈을 마주친뒤 입을떼서 나온 레니엔즈의 말은 폴레네스3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위선으로 가득찬 엘프들의 제국만큼이나 강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사람들은 날 우러러보지 않고, 나가들은 그들에게 국가를 선사하였으나, 나를 배신자로 취급한다네, 그리고 탐욕한 저 오크들은! 저 오크들은 내게서 모든걸 앗아갔네 나의 원대한 계획과 나의 자비함과 영광을 기억하는 이는 하나도 없네 그들은 단지 나를 숙부를 따라하려 했던 정신병자로 기억만들것이고, 후세인들은 그렇게 나에 대하여 배우겠지?"
폴레네스 3세의 목소리는 떨려있었다. 그는 분노했지만 그의 분노는 어린아이의 원초적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는 그의 과거속에 자기자신에겐 아무런 과오가 없다고 느끼며 억울해하였다. 그런 폴레네스3세를 지켜보던 레니엔즈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폐하는 물론 정력적인 힘을 전부 제국에 쏟아 부었소. 그리고 배신을 당한것도 사실이고, 폐하의 업적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것도 사실이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매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아두어야 하오. 그건 사람이 아닌 오크나 나가 엘프라도 마찬가지일것이오 하물며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던 드래곤들 조차 돌아서면 배신해버리는일이 다반사요."
폴레네스3세를 위로하는 말을 건낸 뒤 레니엔즈는 발걸음을 폴레네스3세 앞까지 옮겼다. 폴레네스3세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한채 그저 바닥만을 처량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이 곳 까지 온건 마지막으로 폐하를 만나기 위함도 있지만, 폐하께 마지막 선물을 드리고자 해서 온것이오. 폐하, 아니 각하, 각하의 명예는 오늘 이후로 더럽혀지지 않고 봉인되어, 모든 이들의 기억속에 업적만이 남겨질것이오. 이게 나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딸깍, 레니엔즈의 품안에서 꺼내진 권총이 금속음을 내었다.
"안녕히가십쇼. 각하. 각하의 업적, 각하의 신념 모두 이 총탄 한발로 후세에 남겨질겁니다."
총구가 폴레네스 3세의 심장을 가리켰다. 폴레네스3세는 공포에 젖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머리와 입과 눈에서 분비물이 나와 얼굴을 뒤덮었다, 그의 몸이 안정을 찾은건 그의 심장이 멈춘 뒤에 였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