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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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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1 18:06:01 조회: 548 추천: 0 |
뒷부분이 이렇게 짤리면 조금 곤란한 대목이라 길게 이어쓸까
했지만, 역시 따로 쓰더라고 빨리 쓰는게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공원을 나와 주차해둔 벤의 앞으로 오자 레이의 주머니에서는 휴대폰이 울렸다.
샤오링으로부터의 전화였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은 거야?”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자마자 울리는 샤오링의 목소리에 레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벨 울리고 2초도 안돼서 받았는데 늦었다니요…. 그래서 무슨 일이세요?”
후, 하고 담배연기를 한번 내뿜은 사오링은 전화의 용건을 밝혔다.
“클라이언트와 상담이 조금 길어질 것 같아. 너는 미리 미도 외국인학교에 들어가서
방음결계를 설치해둬. 할 수 있다면 정보조사도.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절대로
맨몸으로 들어가지마. 이번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야. 그노시스 쪽에서 2급
인퀴지터(INQUISITOR)를 두 명 파견했어.“
“…그냥 돌아가서 근처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볼까요?”
“그전에 내손으로 죽여줄까?!”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샤오링의 뒤편에는, 약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번 일의 의뢰주인 카츠라기 료(葛城 涼)는 착잡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서 샤오링의 통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료에게 별거 아니라는 듯한 대답을 하긴 했지만, 2급
인퀴지터가 두 명이나 된다면 사건의 위험도는 B급 이상으로 보아도 괜찮다는 뜻 이었다.
“별 문제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길. 그것보다 의뢰의 내용을 들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자리에 돌아와 비싸 보이는 소파에 앉은 샤오링에게 차를 권하며, 료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은 죽은 제 딸아이의 만행을 막아 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책상에서 한 장의 사진을 가져와 넘겨주었다. 그 사진에는 윤기 있는 검은 머리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가 찍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시겠어요?”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두운 표정으로 료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도 외국인학교의 기숙사에서 4년전 일어난 화재를 알고 계신지요…. 세간에는
평범한 화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것은 방화였습니다. 그것도 제 딸아이가 저지른
일 이었죠….“
그러고는 끝이 약간 그슬린 두꺼운 노트를 넘겨주었다.
“일기장이군요. 따님의 것입니까?”
“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딸아이는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숙사 학교여서 간섭하기도 힘들고, 또 원체 속을 털어놓지 않던 아이라 그저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거지요. 불쌍한 것….“
일기장의 안에는 매일 계속되는 괴롭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도와주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심한 행위를 당하던
아이는, 그 괴로움에 기숙사에 불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이 일기장의 내용은 상당히 안타까운 사연이군요. 하지만 이것이 최근 일어난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샤오링의 물음에 약간 주저하던 료는, 이윽고 마음을 굳게 먹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주일 전쯤에 자살한 아이를 처음 발견한 교사는 제 딸아이의 담임이었는데, 그분께서
자살한 시체의 곁에서 제 딸을 보셨다고 하더군요.“
“환각이었을 가능성도 낮지 않을 텐데, 그 이야기만 듣고 바로 의뢰를 결정하신 겁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씩 학교 곳곳에서 마야(真綾) 모습을 본 학생들이
많았고, 결정적인 것은 일주일전 쯤의 직접 제 눈으로 마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직접 보았다, 라는 이야기에 샤오링의 눈이 빛났다.
“직접 보셨다고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단 그 당시에 상황부터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지, 잠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료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확히 일주일 전. 오후 7시쯤 이었습니다. 평소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때 마야를 잘 따르던 아이를 만났습니다. 마야가 죽기 1년 전쯤에 사정이 있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와서 그런지, 아직 마야가 죽은 줄도 모르더군요.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그 아이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
하더군요. 오랜만에 마야랑 만났는데 그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죽은 마야양과 만났다…. 오래된 친구. 아, 상관하지 말고 계속하세요.”
이야기를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 챈 샤오링은 이야기를 계속하길 재촉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는 그 아이의 모습에, 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놀라서 마야가 있었다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마야는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저를 보고 한번 웃더니, 그대로 사라지더군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료에게, 샤오링은 가차 없이 질문을 날렸다.
“좋은 추억은 아닐 실텐데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상황이 아니라
모습, 그것도 질량감을 중점으로요. 사람 특유의 무게감이 느껴졌습니까?“
잠깐 고민하던 듯한 표정을 지은 료는 그렇다,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어보자 샤오링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답변해주었다.
“보통 오랜 세월이 지나 모습을 드러낸 혼들의 경우, 대부분 실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럴 힘도 없거니와 무리하게 실체화 했다간 파마사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하게 저는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아이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소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약간 흥분한 듯한 료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샤오링은 다 식은 찻잔을 들어 한번에
들이켰다.
“보통의 원령들의 경우, 절대로 자신의 원한과 관계없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자살한 소녀들과 따님과의 인과가 혹시 존재한다고 해도, 단순한 인간령이 사람을
자살시키거나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학교에 붙은 지박령이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기엔 ‘이동’을 했다는 점에서 걸리는군요.“
“그렇다면 마야가 학교에서 원한에 휩싸여 무고한 소녀들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신의 딸이 남을 해치는 줄로만 알고 있던 료는 샤오링의 말에 큰 기대를 걸었는지
표정이 매우 밝아져 있었다.
“그것은 확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의 상황에 따라서는, 인간령 자체가
요괴가 되어 사람을 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군요. 이걸로 일단 제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료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혼자서 앓고 있던 무언가를 남에게 이야기 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딸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그를 웃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뢰를 철회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협회에 연락해서
철회신청을 해 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샤오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는 것은 아마 료에 대한 예의이리라. 그러자 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남을 해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아이가 성불하지 못하고 현세에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디 마야를 찾아 그 아이를 성불시켜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용은 조금 바뀌었지만 분명한 의뢰였다. 혼령의 성불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흔쾌히 승낙한 샤오링은 웃는 얼굴로 저택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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