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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R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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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26 22:15:31 조회: 828 추천: 0 |
“…준비는 끝났습니다. 예. 예. 그럼 다음에는 하와이에서 뵙겠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윤곽이 뚜렷한, 매우 잘 생긴 얼굴을 가진 흑인 청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짧게 한숨을 쉰 뒤 자신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집무실 밖에는 ‘대위 로이 디켐베’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치벨라 공화국 육군의 촉망 받는 젊은 간부인 로이 디켐베 대위가 자신의 관용 차량인 메르세데스 벤츠를 직접 운전하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다.
사실 그 전에, 평소 매사에 침착한 그의 모습과 달리 오전 업무 보고 시간에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 초조해 하면서 급기야는 보고서에 커피를 쏟는 실수를 범했을 때에도 은구아니 대통령을 비롯해서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그저 요사이 그가 좀 과로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북부 케골 고원 인근의 산악 지역을 제외한 치벨라 공화국의 영토 대부분은 전형적인 아프리카형 스텝 기후로, 해가 빨리 뜨고 느리게 지며 낮이 길고 밤이 짧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평소보다 저녁 식사를 좀 일찍 마치긴 했지만 아직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식당을 나와서 커다란 잔에 가득 담긴 아이스 티와 치벨라 공화국의 유일한 신문인 네이션 타임스를 들고 대통령궁의 뜰에 차려놓은 야외 식탁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평소의 모습과 같았다. 대통령궁 3층 발코니에서 24시간 사주경계를 하는 아르곤 네트웍스의 대원들도, 9개월 째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역시 24시간 경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아르곤 네트웍스의 특수 요원 워렌 샌들러도, 대통령 자신과 심지어는 이제 막 서쪽으로 노을이 지려고 하는 치벨라 공화국의 아름다운 풍경도 평소와 한치도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매일매일 진행되는 이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 유일하게 뭔가 위험하다는 낌새를 알아챈 것은 대통령의 애견인 셰펴드종의 맥스였다.
야외 식탁의 항상 앉는 자리에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이 이제 막 앉으려는 찰나, 맥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어디랄 것도 없이 허공에 대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것이었다. 온순한 맥스의 성격을 아는 대통령과 샌들러 요원은 의아했다.
“맥스, 왜 그러냐?” 맥스의 목을 쓰다듬으며 대통령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주인의 사랑스런 손길에도 아랑곳없이 맥스는 연신 사납게 짖어댔다.
“각하, 맥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좀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입니다. 맥스를 데리고 들어가겠습니다.”
샌들러 요원이 맥스의 목에 둘러진 목걸이를 잡아 끌려는 순간, 맥스는 더욱 큰 소리로 짖어댔고, 샌들러 요원과 대통령은 모두 맥스가 보이는 의외의 행동에 당황했다. 난데없는 소동은 경호 대원들의 주의를 끌었다.
대통령이 계속 맥스를 어루만지면서 아이스 티 잔을 입에 대고 마시려고 하자 맥스는 샌들러 요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대통령에게 달려들었다. 대통령이 깜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아이스 티를 자신의 바지에 흘렸을 때,
바로 그 때,
귀가 밝고 매사 주의가 깊은 사람이라도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겨우 들릴 수 있는 ‘삐-‘ 하는 전자음이 작게 울리는 듯싶더니 하늘에서 푸르스름한 레이저 빛이 ‘떨어지면서’, 조금 전까지 대통령이 앉아있던 의자의 안장을 관통하며 직경 1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구멍을 냈다.
“비상! 비상! T1 발동!”
치벨라 공화국 대통령궁의 바로 옆에 인접한 경호실에 불똥이 떨어졌다. 서쪽 국경 부근으로 야생동물 사냥에 나섰던 케이와 아담이 대통령의 저격 기도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것은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도 1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경호실 정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온 케이가 외쳤다.
“각하는? 각하는 무사하신가?”
“예, 대령님. 각하는 무사하십니다. 현재 E134 안가로 이송 중입니다.”
“호위 병력은?”
“캐링턴 스트라이커 4대, 무장 험머 6대가 호위 중이며 앞으로 1분이면 도착합니다.”
“각하 주변엔 지금 누가 있나?”
“C조 요원들과 호르헤 요원이 각하와 영부인, 막내 영애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샌들러는?”
“샌들러 요원은… 그게…”
케이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당직 요원을 몰아붙였다.
“빨리 말해! 샌들러가 왜 각하 옆에 없어?!”
“샌들러 요원은… 그… 저격으로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지금 의무실에 있는데, 아직 쇼크 상태랍니다.”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거의 1년 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보좌하던 대통령이 저격의 위험에 처하다니. 케이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사무실 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케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아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흥분하지 마, 케이. 이럴수록 침착해.”
“침착? 지금 침착하게 됐어? 누구야? 어떤 자식이야? 아부살라미, 파예드, 사이드 소재 빨리 파악해!
“…군벌의 짓이라고 보나?”
“그럼 그 놈들이 아니면 누구겠어?”
“이봐, 네가 그래서 이 생활 3년이나 지나고도 아직 초짜 티를 벗지 못하는 거야. 잘 생각해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이야길 들었는지 생각해보라고.”
케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잠잠해졌다. 그리고 아담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당직 요원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구멍이 났다고 했지? 의자에.”
“예, 그렇습니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고?”
“예.”
케이가 다시 아담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격 위성이로군.”
“그래, 저격 위성이야. 대인 저격이 가능한 MESSA급 위성을 운영하는 곳이 회사 말고 어디겠나?”
“…SLA, 블랙 아이스, 그리고 미국, 러시아연방, 중국.”
“거기서부터 시작해. 회사엔 연락했나?”
“예, 아담 대령님. 지급으로 연락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관계자들과 목격자들 모두에게 함구령이 내려졌고, 또 철저한 보도 통제가 이뤄진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의 저격 기도 소식과 관련한 기사는 치벨라 공화국 유일의 신문인 네이션 타임스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이 날 네이션 타임스의 1면을 장식한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공화국 육군 로이 디켐베 대위, 나이지리아로 망명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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