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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R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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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01 02:55:25 조회: 853 추천: 0 |
낮 동안에는 지상 위의 모든 것을 녹일 것 같이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밤에는 생살을 도려낼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댄다. 사실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대부분 국가의 날씨가 그렇고, 치벨라 공화국도 예외는 아니다.
초승달이 뜬 오늘 밤도 마찬가지다. 체감 온도가 섭씨 0도에 가깝긴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구름이 잔뜩 끼어 별빛을 가로막고 있다. 야간에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오늘 밤은 최적의 상황이다. 물론, 결혼식 날짜를 정하듯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아르곤 네트웍스 본사의 슈퍼컴퓨터가 날씨를 비롯한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선정한 D-데이였다.
치벨라 공화국의 여러 군벌들 가운데 최대 세력인 파예드의 아지트가 위치한 곳은 공화국 영토 내 북서부, 야트막한 계곡이 10Km 정도의 거리로 늘어선 곳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풍화작용이 일어나며 형성된 천연 동굴들은 작게는 2평방미터, 넓게는 50평방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파예드의 부하들은 이 동굴들을 서로서로 연결하는 힘든 작업을 10년 동안 해냈다.
어쨌든 오늘 밤에는 저 동굴들 중 하나, 파예드의 방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침투하여 금고 안에 있는 기밀 서류를 빼오는 것이 작전명 ‘루팡’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아르곤 네트웍스가 보유한 지상 정밀 관측용 위성은 수만 장에 이르는 해당 지역의 사진을 촬영했고, 이를 스캔한 뒤 3D 공간에 재구성한 다음, 지난 한 달 동안 17번에 걸쳐 사이버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눈을 감고서도 파예드의 방을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훈련은 어디까지나 훈련일 뿐, 실제 상황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이미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아담이나, 현장 경험은 적지만 기본적인 전투 능력과 감각이 탁월한 케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총탄 한 방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전장에서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상시의 훈련, 훈련, 그리고 훈련이니까.
이번 ‘루팡’ 작전은 극비 중의 극비 사항으로, 투입 인원은 은구아니 대통령 경호실의 최고 책임자인 케이와 이번 임무를 마지막으로 캐나다로 돌아가는 아담, 단 둘이었다. 둘은 파트너가 되어 중요한 이번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7미터 전방… 왼쪽으로 돈다.”
“알고 있어. 여기서도 보여.”
케이가 파예드의 경계병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나일론 끈을 양손에 쥐고 팽팽하게 한 다음, 케이는 번개 같은 솜씨로 경계병의 뒤에서 목을 졸랐다. 단검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적이 피를 너무 많이 흘릴 경우 뒤처리에 골치가 아파지기도 한다. 케이의 솜씨는 변함이 없군. 이 광경을 특수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아담이 생각했다.
사실 야간 침투 작전이란, 직접 침투를 수행하는 요원은 극도로 긴장을 하게 되어 있지만 이번의 아담처럼 외곽 지역에서 엄호를 하는 요원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따분한 임무에 불과하다. 아담은 무선 통신기로 올해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대한 이야기나 나누려고 했다.
순간, 엉뚱한 방향에서 총성이 울렸다. 케이가 침투하고 있는 파예드의 아지트 입구 동쪽이 아니라 정 반대 서쪽 지역이었다.
케이가 바위 뒤에 급하게 몸을 숨기고 아담을 호출했다.
“아담, 뭐야?”
“잠깐만 있어봐… 빨리 확인할게.”
아담은 망원경을 통해 파예드의 부하들이 AK소총을 들고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광경을 보았다. 파예드의 모습도 보였다. 타티로스 방언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아담은 망원경으로 계속 상황을 살피다가, 이내 씩 하고 웃음을 지었다.
“확인됐어?”
“확인됐어. 사막 여우가 범인이야.”
아담의 망원경 너머, 파예드의 부하 중 하나가 총격을 당한 사막 여우의 시체를 들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광경이 보였다.
“사막 여우가 쥐새끼라도 잡으러 왔나 보지.”
“그 쥐새끼, 부디 내가 아니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어떻게 생각해, 케이? 올해 챔피언스 리그는?”
“바르셀로나. 무슨 말이 필요해?”
“후후, 자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지금 들어간다. 반 다이크 감독의 전술 브리핑은 15분 뒤에 하지.”
케이가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아담은 망원경의 옵션을 조절해 광학 열 추적 세션으로 바꿨다. 이제 망원경에는 붉은색의 흐릿한 사람 모양이 들어왔다.
두 번째로 큰 입구로 들어와서 우회전, 다시 20걸음 간 뒤에 세갈래 길 중에 가운데, 그 길로 30걸음 들어간 뒤 좌회전, 정면에 육중한 철제 문. 오케이. 시뮬레이션 그대로군. 케이가 생각했다. 문에 걸려 있는 케이의 팔뚝만한 구식 자물쇠는 만능 열쇠로 쉽게 열렸고, 나름대로 아늑하게 꾸며진-동굴 속에 붉은 카페트라니, 이건 또 누구 취향이야?-파예드의 방 구석에 있는 금고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는 약식 청진기를 금고에 바짝 붙이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자석의 원리를 사용한 최신형 금고 키트가 있었지만, 워낙 돌발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의 임무에 지나치게 복잡한 전자장치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케이였다.
‘CLASSIFIED’라는 붉은색 인장이 찍힌 문서를 비롯해서 여러 두툼한 서류들을 배낭에 챙긴 케이는 다시 금고를 닫고 방을 나왔다. 금고 안에는 그 밖에도 콜트 45구경 피스톨과 달러화, 유로화, 심지어 중국의 위안화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케이는 루팡 작전의 최종 목표물 외에 눈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들어온 길을 되짚어 입구로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분명 그 사이에도 경계병이 동굴 사이를 돌아다니게 되어 있었지만(물론 이런 상황도 사이버 트레이닝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식들, 임무 수행에 게으른 편이군.
입구로 케이가 막 나오려는 찰나, 담배를 나눠 피우며 노닥거리고 있던 파예드의 경계병 둘이 우연히 케이를 발견했다. 경계병들이 타티로스 방언으로 시끄럽게 소리지르며 소총을 겨누는 찰나 케이는 Mk23 소콤 피스톨을 홀스터에서 꺼내 정확히 두 명의 이마를 쏘았다.
“아담!”
“나도 봤어. 수염 기른 녀석이 화장실에서 갑자기 나왔어. 시간이 없었다구.”
케이가 두 명의 시체를 미처 치울 새도 없이 파예드의 부하들이 AK소총을 들고 동굴 입구에서 뛰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작전의 본래 목적인 잠입 침투는 이미 물 건너 갔다. 케이는 MP5SD5를 꺼내어 탄창을 장전하면서 무선 통신기를 통해 아담에게 말했다.
“상황 보고!”
“11시 방향, 30미터, 세 명, 1시 방향, 25미터, 한 명, 2시 방향, 40미터, 네 명. 지프 뒤로!”
케이가 재빨리 지프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소리 없는 MP5가 불을 뿜었고 1시 방향의 적을 처리했다. 2시 방향의 네 명도 차례차례 이마를 관통 당했다. 케이의 30미터 뒤쪽에서 어둠을 응시하며 상황을 살피던 파예드의 부하들은 아담의 M24가 처리했다.
“11시 방향 세 명은?”
“처리 완료.”
“오케이. 여기선 시야 확보가 안 됐는데.”
“케이, 베네수엘라에서의 일 기억 나지? 나한테 50달러 빚졌어. 후후후.”
“이봐, 파트너, 인도네시아 일은 잊은 거야? 네가 나한테 50달러 빚진 거야.”
“이런 젠장. 그건 작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때 까기로 했잖아?”
“난 기억 안 나. 너무 취해 있었거든.”
약간의 ‘돌발 변수’가 있었지만, 루팡 작전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미니건으로 무장한 캐링턴 스트라이커를 타고 기지로 돌아가는 길, 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또 볼지 모르겠군.”
“50달러 얘기야?”
“우리가 낯간지럽게 위성 전화로 안부나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파트너에게 그런 발언은 좀 심한 거 아냐?”
아담이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이봐, 농담이야, 농담.”
“캐나다의 침엽수림이 그립군…”
“그래, 언제 휴가 얻어서 캐나다로 한번 와. 예전처럼 낚시도 하고, 곰 사냥도 하고 그러자고.”
“네가 휴가 얻어서 이곳으로 오지 그래?”
“아프리카… 케이 자네가 아니라면, 아프리카에 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
“…그 일 때문에?”
아담은 대답이 없었다.
아담의 부인과 딸은 리비아에서 사망했다. NGO인 세계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리비아에 온 아담의 아내와 딸은 11년 전 리비아에서 있었던 최악의 폭탄 테러로 민간인 419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의 사망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원래 여기 오기 싫었지?”
“사실이야. 아프리카 쪽 일이라면 내 M24의 조준선을 겨누는 일 말고는 평생 없을 것 같았거든.”
“정말 나 때문에 온 거야? 킥킥킥.”
“간지러운 소리 하지 마. 회사 호출이었으니까 왔지.”
약간의 시간 뒤, 케이가 배낭에서 파예드 금고의 서류를 꺼내어 훑어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뭐긴 뭐야? 정보 입수하는 거지.”
“그건 알겠는데, 네가 그건 왜 봐?”
“의뢰인에 대한 정보 입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냐고 하더군.”
“그래도 네가 그걸 보는 건…”
“아담, 너만 입 꽉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몰라. 그리고 서류를 꺼내오는데 보지도 않고 어떤 서류인지 어떻게 알아?”
서류를 훑어보던 케이가 말을 꺼냈다.
“통화 기록이야… 통화 기록이긴 한데…”
“파예드, 그 자식도 나름대로 갖출 건 갖추고 있는 모양이군.”
“이 번호… 전에 어디서 분명히 본 기억이 있어. 어디서 봤더라. 조사를 좀 해야겠어. 그리고… 이건 또 뭐야?”
케이가 서류에서 특이한 점을 더 발견하고 말했다.
“브라질의 사회당, 볼리비아의 노동당과 접촉…? 이 양반, 이거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케이의 말을 듣고 있던 아담이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제임스 은구아니, 아프리카의 볼리바르를 꿈꾸는 건가.”
“볼리바르? 볼리바르라면…”
“그래, 바로 그 시몬 볼리바르.”
캐링턴 스트라이커를 거칠게 몰면서 아담이 말했다.
“시몬 볼리바르. 내 조국인 멕시코에서도 그렇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이지. 외세로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완전한 독립을 꿈꾼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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