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CRUX
|
날짜: 2007.09.27 05:58:39 조회: 729 추천: 0 |
10개월 전.
아르곤 네트웍스가 치열한 로비전 끝에 치벨라 공화국의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의 경호 업무를 맡게 된 후, 아르곤의 경호 요원들이 처음으로 이 아프리카의 소국에 도착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회사가 가장 주목하는 실행 요원이 된 케이를 총 책임자로 하는 일단의 그룹은 A-380 수송기의 트랩에서 발을 내딛자마자 이곳에서의 임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케이 대령?”
“그렇습니다. 음보마 소장님이십니까?”
날짜변경선을 넘어 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대면한 치벨라 공화국 육군의 음보마 소장은 짜증과 피곤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케이는 그와 형식적인 악수를 나눴다.
“대령이라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소. 당신네들… 그 뭐냐… 민간기업에 소속된 친구들의 편제는 우리하고는 약간 달라서.”
하지만 그의 이 발언은 사실과 달랐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요원들이 단기적으로 특정 국가의 정규군과 함께 작전을 펴거나, 특정 국가의 정규군 편제에 소속되는 경우 지난 기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업무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부여된 새 계급장을 달게 되어 있는 사실을 음보마 소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노골적인 냉대를 넘어 모욕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일이었다.
24시간 이상을 덜컹거리는 군용기에 짐짝처럼 실려온 아르곤 네트웍스 소속 요원들 모두는 금새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케이는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음보마 소장. 우리는 우리 관할을 확실히 지킬 테니, 그쪽은 그쪽 일만 알아서 잘 처리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 대통령을 면담하실 땐 48시간 전에 저희 쪽으로 관련 서류 보내주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등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가려 할 때, 음보마 소장이 뒤에서 몹시 불쾌해하는 표정이 케이의 눈에 비치는 것만 같았다.
우려하던 일은 언제든 터지게 되어 있다.
일주일 후, 음보마 소장이 딴에는 급한 일로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을 면담하고자 부관 3명과 함께 대통령궁을 방문했을 때 그는 케이가 당부한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즉, 자신을 포함한 부관 3명과 운전병의 신상 명세 서류, 그리고 용건을 기재한 서류를 48시간 전에 접수시키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궁 외곽 3Km 지점의 검문소에 발이 묶인 음보마 소장은 노발대발했다.
“이 빌어먹을 용병 자식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까불어!”
그러나 경계 근무를 서던 아르곤 네트웍스 소속 요원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48시간 전에 관련 서류가 접수되지 않은 관계로 귀하는 대통령궁 출입을 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서류를 접수하시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 분은 치벨라 공화국 육군 소장이다! 이 자식들이 정말 뜨거운 맛을 보려고…”
이미 그와 함께 관용차에서 내린 부관 중 하나인 투레 소령이 외치면서 허리에 찬 홀스터로 손을 가져가 피스톨을 꺼내려 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경계 근무 중이던 아르곤의 요원들이 음보마 소장 일행에게 소총을 겨누고 장전을 했다.
“지금 이곳은 오렌지 에어리어입니다. 우리는 관련 규정에 따라 귀하를 체포, 구금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사살도 가능합니다.”
투레 소령이 결국 홀스터에서 M92F 피스톨을 꺼내 근무 요원의 이마에 겨눴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때, 뒤에서 케이가 다가오며 짐짓 태연한 척했다.
“무슨 일인가?”
“이 분들이 서류 없이 이곳을 통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케이와 근무 요원의 대화가 음보마 소장 일행의 화를 돋웠다. 그런 모습을 그냥 지나칠 음보마 소장이 아니었다.
“야! 너 거기 애송이! 내가 누군 줄 알고…”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보마 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케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뭐하나? 빨리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케이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잘 훈련된 근무 요원들은 재빨리 투레 소령을 제압하고 무장해제시켰다. 번개 같은 속도로 야전 출신인 투레 소령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음보마 소장은 입을 딱 벌렸다. 투레 소령은 어느새 뒤로 수갑을 찬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게 되었고, 다른 부관들과 운전병까지 피스톨을 압수당했다. 근무 요원들이 음보마 소장의 허리에 찬 피스톨을 빼앗으려는 찰나,
“잠깐!”
케이가 외쳤다. 갑자기 펼쳐진 상황을 보고는 얼빠진 눈을 하고 있는 음보마 소장의 코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케이는, 직접 음보마 소장의 홀스터에서 피스톨을 꺼내 탄창멈치를 눌러 탄창을 빼 떨어뜨린 후 슬라이드를 제꼈다.
“제가 한 말, 잊으셨습니까? 대통령을 면담하시려면 48시간 전에 관련 서류를 접수시켜야 합니다. 소장님과 다른 분들의 무기는 다음에 오실 때까지 깨끗하게 손질해 놓으라고 얘기 전하겠습니다.”
케이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은 음보마 소장 일행은 하는 수 없이 관용차를 타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의자에 앉게나.”
“서있겠습니다.”
아마도 오전에 있던 음보마 소장 일 때문이겠지. 은구아니 대통령이 갑자기 호출을 했다는 전갈을 받고서 케이는 생각했다.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단 둘이 그 외에 할 얘기가 또 뭐가 있을까.
“업무에 열심이라고 하더군.”
“과찬이십니다, 각하. 제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뿐입니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육중한 책상 뒤에서 케이를 빤히 쳐다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책상을 돌아 창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아프리카는 처음이지?”
“그렇습니다, 각하.”
“아프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업무에 필요한 정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이신지요, 각하?”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었네.”
사실 케이는 이 질문의 의도를 재빨리 파악하지 못했다. 평소 대통령에 대해 알고 있는 사항을 대답하기로 했다.
“오전 공오시 삼십 분 기상. 간단한 운동 후 공육시 삼십 분까지 집무실에 관용 3호차를 타고 도착. 공육시 오십 분까지 워싱턴 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조간 신문 구독…”
“그만.”
대통령이 말을 막았다.
“나는 지금 자네 암기력을 테스트하려는 게 아냐. 나에 대해 얼마나, 무슨 사항을 알고 있지?”
“저는 의뢰인… 아, 죄송합니다. 각하의 안전 보장을 위한 내용 외의 사항에 대해선 인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업무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그쪽 세계의 불문율 같은 것이겠지?”
케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지금 이곳의 상황에 대해, 나에 대해, 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세계에 대해 자네에게 할 말이 있을 걸세. 나가보게.”
케이가 뒤로 돌아 집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 대통령이 다시 케이를 불렀다.
“케이 대령!”
“예, 각하.”
“…자네 업무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를 신뢰하고 있네. 그건 알아두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