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CRUX
|
날짜: 2007.10.04 03:06:32 조회: 919 추천: 0 |
한 세대 전만 해도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국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세계적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 마디로 저개발의 대륙이었다. 거기에 강대국으로부터 일단은 표면적인 독립을 이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민족간, 종교간 분쟁과 정국 불안은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 대명사처럼 통용되곤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도 이제 30년이나 지난 현재, 아프리카는 과거 ‘저개발의 기억’을 한 꺼풀씩 벗겨내기 위한 몸부림을 하며 마치 과거 동아시아가 그랬듯이 전세계가 주목하는 명실상부한 신진 세력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아프리카 각국이 결집한 아프리카 통일기구(OAU: 1963년 발족. 2001년에 더 단단한 형태의 아프리카연합으로 발전-저자 주)의 모토인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에 의해서”라는 선언은 더욱 공고해졌다.
특히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지난 30여 년 간 아프리카의 발전은 눈부셨다. 일단 많은 수의 국가들이 풍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교통과 통신, 물류의 발달로 아프리카의 저임금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한 환경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해진 덕택이었다. 그러나 2030년이 되어서도 완고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정치의 후진성, 여타 대륙에 속한 국가들에 비해 교육열이 낮은 이유로 비롯된 높은 문맹률 등이 여전히 아프리카가 ‘자신들의 손으로’ 스스로 해결할 과제들이었다.
2001년에 출범한 아프리카연합의 본부가 소재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어느 새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도 신천지가 된 이곳은 세련된 양복 수트 차림의 샐러리맨들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높은 마천루의 외벽에 달린 전광판은 각종 국제 경제 지수가 빨갛고 파란 그래프를 그리면서, 길거리의 시민들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여러 모로 지난 20세기 후반의 뉴욕 맨하탄을 연상시켰다.
아디스아바바 대부분의 시민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느긋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무렵, 아프리카연합 본부의 주차장에서는 ‘PRESS’라고 찍힌 차량들이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분주했다. 이미 일찌감치 주차를 마친 안면이 있는 기자들끼리는 인사를 나눴고, 구석에 위치한 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콧수염을 길렀으며 동그란 금테 안경을 낀 키 큰 라틴 혈통의 기자가 편한 복장으로 노트북용 배낭과 디지털 카메라를 맨 채 헐레벌떡 흡연석을 뛰어들어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동양인 기자들이 시시덕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헤이, 다케시! 지금 왜 여기 있어? 브리핑 시간 아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동양인 기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원래 예정된 시간은 2시였는데, 1시간 늦춰졌어. 교통이 막혀서라나 뭐라나.”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네 곤잘레스. 잘 지냈어?”
곤잘레스라 불린 기자가 한시름을 놓았다는 듯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아이고… 살았다. 난 또 늦은 줄 알고. 담배나 한 대 줘봐.”
“체, 구두쇠로 유명한 일본인에게 담배를 얻어 피울 수 있는 건 이 바닥에선 자네뿐일 걸.”
그러면서도 동양인 기자는 그에게 담배를 하나 권했다.
“오면서 한 갑 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샀어. 땡큐. 난 담배 없으면 못 살아.”
“그래, 나도 알지. 자네 앞에서 금연론자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
“말도 마.”
곤잘레스 기자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이번에 새로 카이로 지국장으로 온 폴란드인 여자 데스크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5개월 전 치벨라 공화국 오캄포 사건 있잖아. 그거 낙종했다고, 한 번만 더 데드라인 넘기거나, 다시 자기 앞에서 담배 냄새를 풍기거나 하면 말야.”
“하면?”
“내 머리를 내 조국 볼리비아를 향해서 똑바로 놓은 다음, 있는 힘껏 내 엉덩이를 걷어찰 거래.”
일동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치벨라 공화국 은구아니 대통령이 무슨 브리핑을 한다는 거야?”
“글쎄, 나도 궁금했는데. 그것도 여기 아프리카연합 본부에서 말야.”
“치벨라 공화국,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 입장하십니다.”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이 빨간색 넥타이에 멋진 회색 수트를 입고 기자 브리핑실에 들어오자, 이미 착석하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조금 전까지 담배를 나눠 피우며 희희낙락했던 다케시 기자와 곤잘레스 기자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외신 기자 여러분께 인사를 전합니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가볍게 인사를 하자 기자들이 착석했다. 그리고 은구아니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제가 오늘 이렇게 이곳 아프리카연합에서 외신 기자 여러분들을 모셔놓고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수 세기에 걸쳐, 아프리카가 강대국들의 침탈을 여러 차례 당하며,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인 완전한 독립을 우리 아프리카인의 손으로 이룩하는 것은 요원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미리 준비한 원고는 여러 차례 ‘강대국의 침탈’ ‘아프리카의 독립’ ‘자주권’ 등을 언급하며, 생각보다 그 표현의 수위가 높은 것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 분위기를 눈치 챈 은구아니 대통령은 원고를 덮고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5개월 전, 우리 치벨라 공화국 북서부의 케골 고원에서는 막대한 매장량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자들 중 소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날 은구아니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자들 중 일부가 질문을 쏟아냈고,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은구아니 대통령은 손짓으로 기자들을 제지하고는 계속 발언을 쏟아냈다.
“매장량이나 향후 채굴 계획 등은 제 뒤에 아프리카 다이아몬드생산국기구의 아루나 대변인이 전하겠지만, 제가 말씀 드리려는 사항은 그런 것에 관한 게 아닙니다. 본론은 이제부터입니다.”
기자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향후,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치벨라 공화국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는 원석이나 가공 여부를 떠나서, 해외로의 반출을 전면 금지함을 선언합니다. 만연화된 다이아몬드의 밀거래는 다이아몬드생산국기구 특별법에 의거, 최고형으로 다스리겠습니다. 치벨라 공화국의 다이아몬드는 온전히 치벨라 공화국의 재산이며, 나아가 아프리카의 재산입니다. 치벨라 공화국의 다이아몬드가 앞으로 미국과 유럽 부호들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는 모두 아프리카 내에서 동결될 것입니다.”
기자들이 미친 듯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카메라의 플래시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은구아니 대통령은 이런 소란을 미리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 중 앞줄에 앉은 기자를 지목했다.
“워싱턴포스트 나이로비 지국의 프리델 기자입니다. 치벨라 공화국의 다이아몬드 예상 매장량과, 오늘의 이 발언이 사전에 아프리카 다이아몬드생산국기구 회원국들 사이에 조율이 된 내용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치벨라 공화국 케골 고원의 다이아몬드 예상 매장량은, 뒤에 아루나 대변인이 자세한 브리핑을 하겠지만 아프리카 최대 규모로 예상되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전세계 최대 규모라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전 조율 부분은 일부 회원국의 대통령과만 교감을 나눴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 이런 생각은 앞으로 전 아프리카 다이아몬드생산국기구의 회원국 대표가 공감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다른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BBC 케이프타운 지국의 영블러드 기자입니다. 오늘의 기자회견 장소의 선택도 그렇고, 오늘 각하의 발언도 지극히 정치적인 제스처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벤트가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는 시각을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입니다. 여러분의 판단과 TV 시청자들, 신문 구독자들, 전세계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의 아수라장 같던 기자회견이 끝나고 브리핑 룸에 들어선 아프리카 다이아몬드생산국기구 아루나 대변인의 브리핑을 듣는 기자들은 소수였다. 경호 책임자인 케이의 인솔 하에 대통령 일행이 전용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기자들은 차창 너머로 쉴새 없이 카메라를 돌렸고, 질문을 던졌다.
은구아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곤잘레스 기자가 아프리카연합 본부 앞에서 급하게 택시를 세웠다.
“공항으로 갑시다. 달러로 드릴 테니, 15분 안에.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커다란 덩치의 흑인 택시 기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택시 뒷자리에 앉은 곤잘레스 기자는 벌써 배낭에서 노트북을 켜며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검은 대륙의 완전한 독립을 꿈꾸는 시몬 볼리바르의 후예: 치벨라 공화국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 아프리카 내 동결 선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