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트메어
|
날짜: 2007.10.04 19:44:14 조회: 877 추천: 0 |
[4]
그녀와의 만남은 회상하자면, 정말로 기묘한 사건 때문이었다. 늦은 시각, 두사람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둘다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로, 무언가에 겁을 내며 뒤돌아서서 죽어라 달릴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 도망치게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다 잠이 오질 않아서 잠시 밖으로 나온 나는 도망치는 그들을 보고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무슨일이 있었겠구나, 하고 넘겨집었다. 그게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의 엄청난 대사건이라는 것을 모르고서. 그 두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보고만 것이다. 나는 두 남자가 달려온 길로 걸음을 옮겼다. 대체 왜 도망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하루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었던 내 허리가, 조금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게 어때, 하며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기때문이다. 그 때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며, 건장한 두 남자가 죽어라 도망치지 않으면 않되는 이유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못했던 나는 아무 생각없이 밤산보를 즐기기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남자들이 도망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표현하자면, 위험한 산짐승이 가축을 도살해놓은 듯한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 단지, 그 가축이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골목에서부터 이어진 피의 강, 그 주위로 얼마전까지 살아있었을 사람의 토막난 부분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저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 나는 잠시동안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소녀의 보라색의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보였다. 달의 조명이 아래를 비추는 그 모습은 구역질나는 참상이라기보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한 소녀의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그 아이의 창백한 얼굴은 어째서인지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칠흑과 같은 어두운 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작은 달빛과 붉은 피로 휩쌓인 소녀. 나는 그렇게 그 아이, 키리아를 만났다. 키리아라는 소녀가 무사했던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놈들의 모습을 보고서 도망쳐온 목격자들이 그것을 증명하듯이, 요괴라는 놈들은 자신이 식사를 방해하는 존재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전에 죽어버린 나의 동생과 같이, 놈들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추축이건데,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녀석들은 무언가의 시선이 견딜 수 없을만큼 용서가 되지않나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사건에서 키리아양은 살아난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날 줄이야. 나는 신에게 감사했다. 아아, 창조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그 때와 같은 슬픔을 느끼지않게 해주셨군요. 사제라는 말이 무색한 말이지만, 그 때처럼이나 성의를 가지고 진실된 기도를 해본 것도 오랜만이었지. 나는 정말이지 그 날 만큼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은 처음이었다.
.
.
.
군청의 하늘은 점차 그 색이 옅어져간다. 새벽의 여신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가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시계가 어두워 하늘의 상태를 식별할 수 없는 밤과는 달리,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이 때는 인간들의 시간이다. 어둠에 대한 절대적인 공포에서 벗어나는 시간, 즉 인간이란 족속들이 찬양하는 창조신 '퀴스나트'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시간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째서 이 영장류들은 빛이라는 것에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나는 인간들이 '여관'이라 부르는 숙박시설 안에 들어와있는 중이다.
"자아, 마셔요."
나를 이 곳으로 끌고온 장본인인 갈색머리가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하얀색 흙으로 빗은 조그마한 찻잔 안에 검은색의 액체가 담겨져있다. 주는 것이라 받긴 했지만, 나는 이게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인간들이 먹는 음식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뭐예요, 이거?"
남자는 기쁜 듯이 웃으며, 찻잔에 담긴 액체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카르보이아라는 꽃잎을 넣고 우려낸 차랍니다. 검은 색 꽃이라, 장식용으로는 별로지만, 이게 건강에 좋거든요. 무엇보다 맛이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차죠. 잎을 하나하나 따서 햇볕에 말린 다음 그걸 다시..."
아아, 거기까지. 난 별로 이 차를 만드는 방법이 궁금한게 아니야. 나는 속으로 불평하며, 찻잔을 바라보았다. 방금 끓인 것을 찻잔에 담았는지, 위로 김이 올라온다. 순간 그것이 어느 지역의 독사가 움직이는 형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맹독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소량의 독만으로도 커다란 물소를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내가 직접 물린 것은 아니었고, 설사 물렸다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우리의 외부표피를 뚫을 수 있는 독니따위가 이 세계에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아, 어째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거지. 분명 차에 대한 주제였는데 말이야.
"드셔보세요."
마셔라, 들이켜라, 어서 식도에 흘려보내라, 하며 세뇌하듯이 나에게 요청한다.
"보기엔 그래도 꽤 맛있답니다.
"..."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별로 마시고 싶지않은데. 이 세계의 어떤 생물보다도 발달된 내 후각이 이 액체를 마시면 위험하다고 온몸에 신호를 보내고있거든. 그래도 냄새만 그런 것일지도, 하고 나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
.
.
"자아, 마셔요."
키리아양에게 나의 혼신의 힘을 받친 스페셜 드링크를 내밀었다. 차를 끓이는데 최고의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 꽃잎의 양을 조절하고서 물의 온도를 적성수준을 유지, 그리고 '필살-뭘 반드시 죽이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찻잎에 물붇기'로 완성되는 '검은 진미-카르보이아 차'. 이 정도의 수고라면 이 소녀를 만족시킬 수 있겠지.
"...뭐예요, 이거?"
역시 처음보는 차려나,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소녀에게 그것을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카르보이아라는 꽃잎을 넣고 우려낸 차랍니다. 검은 색 꽃이라, 장식용으로는 별로지만, 이게 건강에 좋거든요. 무엇보다 맛이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차죠. 잎을 하나하나 따서 햇볕에 말린 다음 그걸 다시 볶아내는 그 과정에서 차를 만드는 사람의 혼이 담겨있달까요, 무엇보다 끝에 느껴지는 그 맛이..."
차의 이름부터 그 만드는 과정까지 이야기하다 점점 다른 길로 빠지려는 찰나, 나는 찻잔을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있는 키리아양을 발견하고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나보다.
"드셔보세요."
소녀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와아, 너무 맛있어요. 넬씨가 끓이신 건가요?' 라던지 '최고예요.'라는 반응이겠지? 이럴때, 나는 차를 끓이는 보람을 느낀다.
"..."
나와 찻잔을 번갈아보며, 소녀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보기엔 그래도 꽤 맛있답니다."
"..."
"자아, 어서요."
그녀는 내 요청에 마지못해서 그것을 입에 가져다댔다. 아아, 이젠 소녀의 환호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바로 마시기엔 뜨거웠는지 입으로 호호-불어가며 그것이 식는 것을 기다린다. 왠지 귀여운 행동이 나를 들뜨게 한다.
[후릅-]
드디어 마셨다. 자아,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정말 기대된다.
"..."
얼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입맛에 맞지않는 것일까? 소녀가 맛을 느끼기엔 너무 배합이 적었나보다, 다음에는 여러가지를 첨가해봐야지. 이런이런,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가보다. 이상하게도, 소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창백해진 것 처럼 느껴졌다.
.
.
.
...'카르보이아의 잎으로 끓여낸 차'를 마시고서 그 소감을 말하자면, 며칠은 밤을 세어야 내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말하자면 '미각 세포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그것이 혀에 닿았을 때, 미각의 신경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거 혹시 어느 식물 도감을 뒤저보면 카르보이아라는 식물이 독초로 표기되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것도 강렬한 맛으로. 하마터면 웃기지도 않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독살당할 뻔했다. 악의없이 상대방을 경계하게 만드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구나. 나는 차마 더 이상 그 위험한 음식에 입을 댈 수 없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