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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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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01 21:10:50 조회: 696 추천: 0 |
[2]
내가 인간을 먹는 이유는 단순했다. 맛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물과 비교하자면, 육질이 부드럽다거나, 씹는 감촉이 좋다거나 하는 그런 면에서도 으뜸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구하기 쉬운 먹잇감이라는 이유도 있다. 주위의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면, 여기저기에 잡아먹을 것들이 넘쳐난다.
[콰득-콰드드득]
지금 나에게 먹히고 있는 이 녀석들을 예를 들자면, 가장 잡기 쉬운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인간이란 생물의 수컷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미적기준에 근접하는 암컷을 만나게되면 아무런 경계도 하지않더라.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사냥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 그 이상의 수고는 하지않았다. 심야의 골목이라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인간을 끌어들이는 간단한 방법이면 충분한 것이다. 나는 결국 사냥에 성공했고,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컷의 고기는 질기다. 특히나 지금 먹고있는 이 고기는 여기저기가 근육질이라 씹는데 불편하다. 턱을 확장해서 억지로 쑤셔넣어 먹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인간의 형태로 돌아오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콰드드드득- 콰직]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절단한다.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는다. 고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씹어넘기기 위해 발달한 이빨이 그것을 해체한다. 모든 생물의 단순한 즐거움이랄까, 먹는 과정은 즐겁다. 도중에 뼈가 손에 닿았다. 나는 먹는 것을 멈췄다. 뼈를 먹는 것에 망설인 것은 아니다. 물질계의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우리 '앙풰-지옥-에서 흘러온자'에게 척추동물의 살 속에서 몸을 지탱하는 칼슘조직 따위는 씹는데에 아무런 장애도 되지않는다. 내가 한순간 망설인 것은 단순히 배가 불렀기때문이다.
'...너무 과식한 걸까, 역시 다섯명은 무리였다.'
들고있던 고깃덩이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지금 상태는 포만감에 의한 행복이라기 보다, 불만에 가까웠다. 맛이 없는 고기를 배가 찰 정도로 먹다니. 그만큼 내가 배가 고팠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기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피로 벽을 칠한 듯하다. 나는 꽤 깔끔하게 식사를 하는 편이었는데도,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다. 몇 주일간 아무것도 먹지않은 상태에서 간만의 먹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골목을 빠져나오려했다. 밖으로 나가자, 달빛이 비친다. 나는 내 몸에 묻은 흔적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나 쳐죽여서 바꿔야겠네.'
정신없이 먹어대느라 온통 피범벅. 안그래도 넝마에 가깝던 이 회색 천조각도 이제 시뻘겋게 붉은 액체에 물들어버렸다.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 배운것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인간의 간단한 예법이었다. 아무래도 내 모습의 여자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않은 상태로 길을 걸어다닌다면, 주위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겉모습을 꽤 중요하게 여기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빼앗을 당시만해도 보기좋은 회색의 망토였던 이 옷이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그래도 꽤 오랫동안 쓰던 것이라 약간 기분이 씁쓸했다. 아하핫, 재미있네. 다른 동물을 난도질해서 죽여대는 것에는 아무렇지도 않는 주제에 이런 천쪼가리에는 안타까움을 느끼다니. 나는 어떻게할까, 하고 소매를 만지작 거렸다.
[터벅-]
이상한 주파수가 청각기관을 자극했다. 그것이 인간의 발자국 소리라는 것을 눈치채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동시에 나의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
왠지 김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하얀 로브를 입은 멍한 표정의 갈색머리 남자가 세상에 이럴수가, 와 같은 감탄사를 내밷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내 주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바라보더니, 주저앉아버렸다. 딱히 모습을 들어내는데에 거부감은 없지만, 왠지 부끄러운 장면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그 기분은 수치심으로 변하여, 남자를 향한 적의로 돌변했다. 그래, 요괴의 범행현장을 목격한 대가를 치르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겠지.
'아, 귀찮아. 그냥 죽여버리자-'
나는 오른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이 상태에서 부분변화시켜, 나의 '검'으로 남자의 몸을 두동강내는데는 10분의 1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등을 돌리며 도망치려하는 그 순간에 맞춰서 남자를 베어버릴 생각으로 남자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러나 나는 그 뒤의 행동을 이을 수 없었다. 남자는 도망치긴 커녕,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괘, 괜찮습니까!? 맙소사, 이 피는 대체..."
"...?"
뭐지, 이 인간이 대체 뭐라는 거...
"어디 다친데는 없어요?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남자는 내 앞까지 다가와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무..."
나는 하마터면 '무슨 헛소리냐?',하고 되물을 뻔했다. 이 남자는 주변 상황을 보고서, 이 참사를 일으킨 것은 나라는 사실보다도, 내가 이 사건에 휘말려들어서 피범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
나는 뒤늦게 내 실수를 눈치챘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버린 소리를 이 갈색머리의 남자가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생각해내야했다. 운이 좋은것인지, 아니면 나의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난 것인지를 몰라도, 나는 곧 거기에 대응할 수단을 찾아냈다.
"무서웠어요!!!"
라는 대사를 간절하게 내밷고는 남자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무래도 남자는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나의 행동은 충분히 거기에 맞을 것이다.
"...이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안심시키려고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나를 안는다. 멍청난 놈같으니, 나는 처음부터 괜찮았고, 걱정따윈 하지않았어. 정말 특이한 인간이네, 보통 그런 상황에서 나를 보면 '서쪽의 마수-키사'를 떠올릴텐데. 온통 널부러진 인간의 신체와 그 중심에서 피에 젖은 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그 전설에서 묘사하는 '키사'의 모습일텐데 말이지. 사실, 그 '키세아나자드(kiseanazade)'가 바로 나이긴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나를 걱정하는 이 남자의 행동을 보고서 그만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뭐, 상관없지. 그런 착각이 너를 살린 거라고 생각해라.'
나는 부분변화 시키려했던 오른손의 신경을 끊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나를 구했다고 착각에 빠져있을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마를 가릴 정도의 긴 갈색머리. 반쯤 감긴 눈을 하고있어, 얼핏보면 졸려보이기까지 하다. 정말 다행이다, 하고 중얼거리며 내 몸을 감싸고있다.
"..."
나는 필사적으로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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