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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R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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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27 03:29:16 조회: 789 추천: 0 |
뜨겁고 건조한 대지의 공기 속에서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만 놓고 보면 사람보다는 오히려 말 못하는 미물 쪽이 훨씬 유능하다. 아프리카 사막 전갈은 기껏해야 성인의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지만 무려 수천 년 전 이래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이곳 아프리카의 뜨거운 사막에서 살고 있다.
갑자기 사나운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자, 아프리카 사막 전갈 한 마리가 그것을 피해 힘겹게 작은 바위가 갈라진 틈새로 숨으려다 결국 바람에 몸이 날아가고 만다.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치벨라 공화국 북서쪽의 노이아 사막을 가로질러 비행하고 있는 치누크 헬리콥터에는 아르곤 네트웍스社의 보스, 잭 바벤코와 회사 내 유일한 현직 실행 요원 겸 실행 어드바이저인 비올라가 타고 있었다.
16분 후, 치벨라 공화국 영토 내 서쪽에 위치한 대통령 비밀 안가의 헬기 착륙장에 아르곤 네트웍스의 로고가 선명한 치누크가 착륙했다. 케이는 아르곤 네트웍스의 보스인 잭 바벤코를 이전에도 몇 차례 본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크고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도 했고, 서양인 치고는 작은 체구에 별 특징이 없게 생긴 잭의 외양은 그저 별 볼일 없는 백인 노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잭과 함께 회사에서 온 비올라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인 아담도 요식 행사로나마 아르곤에서 훈련소를 2주간 거치기는 했으나, 비올라는 회사가 아예 애초부터 거액의 몸값과 회사 고문역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한 케이스다. 또한 그녀는 국적만 터키로 알려졌을 뿐(그것도 사실 정확한 것은 아니다), 연령이라든지 가족관계, 아니면 도대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군인이 된 건지 그 어느 것 하나 알려진 게 없다.
어쨌든 이번 제임스 은구아니 대통령의 암살 미수 사건은 회사로서도 큰 손실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적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가장 중요한 사항인 범인의 정체(저격 위성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분명 개인의 시도는 아닐 것이다)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긴 했지만, 군사용역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와 최고 품질을 내세우는 아르곤 네트웍스사가 경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요인이 저격 리스트에 올랐다는 건 회사의 이미지 관리에도 치명적인 상황인 것이다.
“오랜만일세, 케이 대령. 우리가 본지 한 1년 정도 됐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잭 바벤코가 케이에게 말했다. 잭 바벤코는 악수를 할 때 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는 버릇이 있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10개월 됐습니다, 사장님.”
“그래… 수고가 많네. 대통령 각하는?”
“다행스럽게도 무사하십니다.”
“일단 각하를 면담하고 난 다음 그 일에 대해 보고를 받도록 하지.”
사실 은구아니 대통령의 경호 총괄을 맡았던 케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최악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만약 그럴 경우, 케이는 앞으로 용병 세계에서 기껏해야 기간병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잭 바벤코는 빈틈이 없는 냉혈한이라는 사실까지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케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비올라와는 별다른 인사 없이, 눈만 잠깐 마주쳤다. 잭 일행은 바쁜 걸음으로 대통령이 은거하고 있는 지하 3층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불과 48시간 전까지 생명이 경각에 달했던 사람을 앞에 두고 내뱉은 잭 바벤코의 형식적인 인사말은 흡사 썩은 고깃덩어리를 앞에 두고 이걸 치워버려야 되겠다는 말처럼 인간의 감정이란 형식을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은구아니 대통령은 의연했다. 어쨌든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19년을 지낸 인물이 아닌가.
“귀사 경호 요원들이 고생해준 덕분에… 이렇게 멀쩡하게 있소이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심려가 크실 줄로 압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었는데.”
“아니, 아닙니다. 저희 아르곤 네트웍스의 의뢰인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저희 일선 요원들은 물론, 저까지도 이렇게 언제든지 열과 성을 다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교활한 늙은 여우. 은구아니 대통령은 잭 바벤코를 이렇게 생각했다. 아르곤 네트웍스가 민간군사용역 부문에서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은 모두 이자의-어떤 식으로 보자면 긍정적인-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는 자를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 외에도 꺼림직한 부분은 있었다.
이런 자와는 한시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대통령은 일찍 자리를 뜰 요량이었다.
“어쨌든 저는 비공식적으로 유고 중이니…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습니다만.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잭 바벤코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가볍게 손짓을 하자, 곁에 있던 비올라와 경호 요원들이 자리를 물렸다. 이제 은구아니 대통령과 잭 바벤코, 둘만 남게 되었다. 잭이 먼저 입을 열었다.
“3개월 전 오캄포의 일, 기억하시죠?”
“물론이오. 나를 암살하려고 했던…”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 식으로 젊은 친구가 힘을 키우면, 각하로서도 나중에는 컨트롤이 힘들어지죠.”
은구아니 대통령은 섬찟했다.
“나중이라고요? 나중…”
잭 바벤코가 가볍게 손을 들어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했다.
“저희 아르곤 네트웍스의 정보망을 과소평가하시면 곤란합니다. 각하.”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오캄포의 아지트가 위치하고 있던 치벨라 공화국 북부의 케골 고원, 거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뭐가 발견되었는지 저희가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 정도 상황까지 오리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은구아니 대통령은 나름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지금 자신의 표정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미스터 바벤코.”
“정확히 말씀 드릴까요? 케골 고원 인근에서 엄청난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것, 저희가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상대편으로 넘어간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 그 얘기였군요. 하하. 그 정도야 뭐, 귀사의 막강한 정보력이면 모를 리가 없죠. 저도 적당한 때를 봐서 해외 언론에 공개할 생각을…”
“각하, 저는 지금 각하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러 날짜변경선까지 넘어온 게 아닙니다.”
잭 바벤코의 눈빛이 번득였다.
“저희는 각하를 대신해서 가장 귀찮은 쓰레기를 청소한 겁니다. 현재 치벨라 공화국의 정규군 병력이 오캄포의 세력과 북서부 파예드의 세력이 합쳐졌을 때, 그걸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요?”
“별 것 아닙니다, 각하. 각하도 알고 있고, 저도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은구아니 대통령이 아연 긴장한 안색을 보이자, 잭 바벤코가 느물거리는 미소를 던졌다.
“각하, 딜러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카드를 줍니다. 같은 카드를 갖고 승리를 이끌어내는 사람은 그 자체로 추앙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잭 바벤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번 각하의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으러 가야겠습니다. 각하, 아직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화국의 국민들을 위해서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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