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은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습관이 되어버린 기상시간인 5시는 아마 평범한 고교생들에겐 낯선 시간일 것이다. 몸에 배어 버린 습관은 본가에서 나온지 두 달이 지났음에도 풀린 적이 없었다. 학교와 가까운 원룸을 얻어 입학하기 한 달 전부터 생활했다. 자취라는 생활은 별 것 없었다. 혼자일 뿐이라는 것을 제외한 모든 생활이 평소와 똑같은 것이었다.
잠옷 겸 실내생활복인 반팔과 반바지는 벗어두고 독특하게 생긴 옷을 집어 들어 차근차근 입었다. 약간 펄럭펄럭 거리는 옷은 류가의 도복을 개량하여 만든 수련복이었다. 수련복을 다 입고 문 밖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가장 꼭대기 층인 8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사는 7층과는 단 1층 차이.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수련의 가벼운 몸풀이인 계단은 가뿐했다. 원룸의 현관을 나서자 차갑지만 신선한 아침 공기가 폐부를 훑었다. 아직은 봄이라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크기에 아침공기는 차가웠다.
가까운 공원으로 향하는 류정의 발걸음은 예사 발걸음이 아니었다. 물 흐르듯 뻗어져나간 발. 그 다음 발걸음 또한 재빠르면서도 흐름이 있다. 수련복이 펄럭거리며 소리를 낸다.
파라락.
류정의 움직임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사위는 사라지지 않은 어둠이 드리워 있었으나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원에 도착한 류정은 다시 몸을 추슬렀다. 호흡을 가다듬은 류정은 눈을 살며시 감으며 손을 앞으로 뻗는다.
뻗어진 손은 부드럽게 펼처진 사지장四指掌. 약간 굽혀진 엄지 손가락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몸은 전체적으로 굽혀지며 장을 휘젓는다. 또 다른 손이 가슴 언저리에 올라가 역시 사지장이 되어 전방을 휘저으며 후後를 향한다.
팡!
갑작스런 양손의 떨침. 공기가 마찰되는 소리와 함께 류정의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이 것은 류하예류流河藝類의 입문공入門功인 곡무曲舞였다. 뜻풀이를 하자면 굽실굽실 굽는 춤 정도였다.
류하예류에 속한 무예들은 유난히 춤출 무舞자가 많이 붙는다. 그 움직임이 춤과 같기에 그러할까? 류가의 사람이 아니고선 그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류정의 곡무는 굽이 칠때마다 팡팡 하는 마찰음이 사정없이 터졌다. 손과 발은 끊임 굽이치며 흐른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같이.
곡무는 가장 기초적인 세가지로 분류된다. 디디는 법[步法]. 손과 발을 젓는 법[手腿法]. 그리고 보는 법[見法].
디디는 발로 몸을 지탱하고 손과 발로 저으며 뻗어나간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을 내외면으로 관조하여 다스린다.
이런 세가지 분류는 류정의 몸에서 하나로 변했다. 그 세가지는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류정에겐 그저 곡무에 불과했다.
몸이 멈추며 시작을 거꾸로 돌린 듯 뻗은 사지장이 역으로 돌며 몸으로 돌아왔고 천천히 내려졌다. 예의 종결식終結式은 류가에서 역류逆流라고 부른다. 류정은 역류를 마치고 눈을 떴다.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자신의 거처를 향했다.
곡무라는 것이 큰 틀로 보면 별 것이 아니지만 수련을 위해 류정이 변화를 가했다. 류정이 땀에 젖은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원룸에 도착한 류정은 수련복을 벗어두고 샤워실로 향했다. 수련복은 걱정할 필요 없다.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졌기에 땀냄새라던가 축축함 따윈 문제도 아니었다.
샤워부스에 들어선 그는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 물을 틀었다. 머리부터 온몸이 젖어들어갔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벽에 맺힌 물기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인다.
또르륵.
물기는 흘러내렸다.
샤워를 끝마치고 류가 특유의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수련복 보다 넓은 소매와 바지는 펄럭임의 정도가 컸다. 도복을 입은 채 냉장고를 열고 아침상을 차리는 류정은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누님이 다녀가셨군."
가득 담겨져있는 반찬들과 새로운 반찬들. 그는 그걸 보며 작은 그릇으로 옮겨 담았다. 데워야 하는 것들은 랩을 싸서 전자랜지에 넣었고 나머지는 다시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 집어 넣었다.
사실 그는 어제 밤 늦게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산을 올라 수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누님이 와서 반찬을 차렸을 것이다.
조촐한 식사를 끝냈다.
도복을 접어 소매를 올리고 설겆이를 끝낸 뒤 차를 우렸다. 녹차잎에서 우려나온 향이 류정의 코를 맴돌았다. 좋군 하는 나지막한 중얼거림 후 차를 음미했다.
차를 마시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7시 30분이 되었다. 학교가 가깝긴 가깝지만 슬슬 나가봐야 했다. 두루마기를 챙겨입은 그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챙기고서 밖을 나섰다. 불이 꺼지고 문이 닫혔다.
달력이 펄럭거렸다. 4월 1일. 무호고교의 어느 특별한 날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캐스톨™
청아한 목소리. 전편 마지막 부분에서 보고 류정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갔군요.;;
"누님" 이라는 대목에서 알았음..
그건 그렇고 류정이 아침 수련을 하는 부분의 묘사가 아주 좋아요. 배워가야 할 부분이 많으니 기분이 좋네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 그럼 건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