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위축되는... 그만큼 뿜어져 나오는 영기가 강한곳, 지옥.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염라는 자신의 본분을 다해 이승을 떠난 영혼들을 ‘등급 매기고 있었다.’
“인간계 귀도 민소려. 앞으로!”
염라의 사자후에 재판대 앞 영혼들은 하나같이 귀를 틀어막았다.
본래 상대방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자신의 투기로 상대방을 휘감아버리는 무공이지만 염라 딴에는 언제까지나 자기의 일을 편하게 하기위한 요령일 뿐이였다.
잠시후 많은 인파를 해치고 한 남자 영혼이 재판대 앞에 섰다.
‘염라라니.. 역시 죽은건가? 젠장!! 억울하다고!!’
“쳇, 이름만 보면 여자인줄 알겠구만..”
염라의 황당한 한마디에 소려는 그만 말 문이 막혀버렸다. 이승에서 떠들어대던 염라대왕이란 존재는 근엄하며 냉철한 거대한 신과 같은 존재, 아니 신이였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일뿐이였다. 그 누가 염라대왕이란 인물이 여자나 밝히는 호색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여자가 아니라서 소름돋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색마대왕님.”
소려에 입에서 나온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누구도 대들지 못할 염라라는 존재에게 그냥 대든것도 아니고 색마라는 멋진 호칭까지 달아주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의 말에 반대하는 것은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염라뿐이였을 것이다.
“이..이..자식이 미쳤나!!”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극도로 분노한 염라는 의자를 박차고 소려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염라의 손은 어느새 움켜쥐어져 있었다.
-부웅
성인 남자 3명의 크기는 돼 보이는 염라의 주먹은 소려의 몸을 빗겨나가 허공을 갈랐다. 자세하게 말해서 소려는 염라의 거대한 주먹을 아주 가볍게 피해버린 것이다.
자신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염라는 그새 독이 올랐는지 큰 주먹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러댔다. 물론 주먹의 희생량은 죄없는 어린양들이였다.
“어억!!”
“염라가 사람잡네!!”
여기 저기에서 신음이 퍼졌다. 단 한 사람, 소려를 제외하고..
“이봐! 염라, 나란 놈이 엄청 억울하게 죽었거든? 죽지만 않았어도 명성을 누리고 살 수 있었다고.. 그런데 말이야? 내가 살아있었을때 제일 증오하던 놈들이 누군줄 알아?”
소려는 염라의 공격.. 아니 공격보단 발작에 가까운 동작은 모두 피하면서도 힘든 기색하나 없었다. 말을 마친 소려는 이내 자세를 바꾸어 피하기만 하던 움직임을 바꿔 염라의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너같은 쪼다새끼들이 날뛰는거야!!”
-퍼억!!
소려의 주먹은 통쾌하게 염라의 명치에 빨려들어갔다. 단순한 공격이였지만 명치라는 약점에 암살자 특유의 공격방식까지 더해지니 그 고통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허헉!! 감히... 네놈이 염라를!!”
-스스슥
가슴을 움켜쥐고 고함을 지르는 염라에게 소려는 다듬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영원한 안식을 안겨주었다. 많은 영혼들이 그 광경을 기뻐하거나 한편으로는 비위가 약해서인지 헛구역질을 해댔다. 소려는 염라의 머리를 쥐어들고는 영혼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쓰레기는 사라졌으니 당신들 갈길 가쇼!!”
말을 끝낸 소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유니아판데스라고 써있는 이계의 문이였다.
‘이제 인간들 상대하는건 지겨워 죽겠다. 한번쯤은 다른 세계로 가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영혼들의 산만한 웅성거림을 뒤로 두고 소려는 잠시 멈춰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대 두들기더니 이내 이계의 문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반동을 주어 문을 살며시 열기 시작했다.
“그 손 떼어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풍기는 살기는 주변의 상황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려는 직감적으로 몸을 돌려 양손을 들어올렸다.
‘저 녀석은 또 뭐야. 귀찮아 죽겠네!!’
“뭐냐?”
소려는 도발을 유도하는 기분나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심기가 불편한지 살짝 인상을 구겼다.
“내 대리를 알아서 처리해놨더군? 반갑다. 염라다.”
‘허?! 이제 별게 다 염라래?’
소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기가 염라라는 남자에게 손을 뻗고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사이에 꼽고선 흔들어댔다. 남자는 이번에도 언짢은 표정을 짓긴했지만 좀전에 당한 사칭염라처럼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