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있었던 절대적으로 난감한 상황을 상기하며 연성이 외쳤다. 하지만 로제는 넉살좋게 받아 넘기며 손사래를 쳤다. 그 행동의 의미는 연성에 행동은 그저 과민반응일 뿐이다. 라고 해석 할 수 있다.
“뭐 어때서? 부부 사이에 그런 것도 못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연성이 바로 반박했다.
“그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하필 거기서 하는 건데? 이해가 안 돼!”
“그냥 받아들여.”
건성으로 대꾸한 뒤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 마신다. 로제는 이런 스킨십은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다. 물론 부부라고 한다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때와 장소는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다. 로제의 생각은 어떻든 간에 연성은 그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순간 연성의 언성이 높아졌다.
“받아들이기 힘들어! 왜 그런 행동들을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는 건데?! 때와 장소는 가려서 하란 말이야!”
“왜 자꾸 그래? 그냥 받아들이라고. 그게 그렇게 힘들어?”
“너의 생각하고 나의 생각은 틀려!”
“그럼 어쩌자는 건데? 타임머신 타고 시간이라도 되돌릴까? 그만 좀 해!”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의 언사를 받아치던 로제도 순간 울컥하며 따지기 시작했다. 집안이 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얇지만 성깔 있어 보이는 목소리와 가늘지만 앙칼져 보이는 목소리가 한데 뒤섞이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걸 부부싸움이라고 한다. 서로 짜증이란 성질이 잔뜩 뒤섞인 말이 오고가며 둘의 신경을 박박 긁어대고 있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 사고치지 말라고··· 학교에선 자제하란 말이야!”
“우리 사귀는 거 남들 다 알고 있는데, 가릴 게 뭐가 있어? 남의 시선이 두려워? 그게 그렇게 중요해? 우리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
“그래! 우리만 좋으면 돼! 하지만 이곳은 너희 천공성과는 달라. 알겠어?”
“뭐가 그렇게 다른데!”
“생각하는 가치관이 틀리단 말이야!!”
“······”
목이 터져라 노호를 터트리며 연성이 외쳤다. 순간 로제에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비록 오랜 시간 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연성이 저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로제는 주스를 마시던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연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흔들림이 없었다. 로제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야. 틀려···”
“로제···”
“미안··· 먼저 올라갈게···”
힘없이 부엌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다. 축 처진 로제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심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졌다. 이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연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침묵만이 거실을 가득 메운다. 그 침묵 속에 들려오는 소리라곤 매일 같이 백만 스물 한 개의 팔굽혀펴기를 해내는 에너자이저를 원천으로 한 초시계바늘의 회전소리.
전등은 켜져 있지만 연성에 눈에 비추는 광경은 어둡기만 하다.
“후우··· 목적에서 벗어났군···”
솔직히 로제의 그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로 사랑을 주는 로제에게 백날 감사해도 모자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 행동이 남이 볼 땐 안 좋게 비출 수도 있었다. 괜한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여자가 구설수에 오르는 건 정말로 보기 싫었다. 그래서 말을 꺼낸 것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연성은 또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시각 로제는···
“······”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인형처럼 움직임조차 보이지도 않은 채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커튼은 처져있고 불은 꺼놓고 있어 방의 구조를 모른다면 바닥과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방의 환경으로 보건데 이건 지금 로제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거울이라 봐도 무방했다. 로제의 지금 마음의 상태는 어둡다.
항상 밝은 태양이 비추어 만물영작의 도움을 주었는데, 지금은 달빛조차 들지 않는 새카만 어둠의 칙칙한 빗줄기가 요란스럽게 떨어져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녀는 초지일관 침묵을 지키며 끌어 앉은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조용한 목소리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바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연성이 미울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오늘 아침은 상쾌하고 쾌청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날씨도 따듯해서 나들이 가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아침과 상반되게 두 남녀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다운되며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연성은 세안 후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로제에 모습이 연성에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을 느낀 로제는 고개를 들어 연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그녀는 집을 나섰다.
“밥은 차려놨어. 그럼 먼저 갈게···”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연성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부엌으로 건너가 의자에 앉고 탁자 위에 놓여 진 음식을 먹으며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한 음식이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똑같은 음식인데··· 예전과 같은 종류의 음식인데도 오늘은 그리 맛있지 않았다.
대충 아침을 먹은 연성은 이것저것 확인 후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섰다. 그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은 뒤 집을 나와 문을 잠그고 학교로 향해 걸어갔다. 연성이 학교로 등교하자 자리에 있는 한천중학교 학생들에 이목이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뭔가 서로 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어제 그 주인공~’
‘으~ 닭살커플 등장 했네.’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지? 매일 같이 등교하면서···’
등등 여학생들의 말이 작지만 소곤소곤 들려온다. 한편 남학생들은···
“쳇! 재수없는 새끼 왔군.”
“복 터진 놈.”
“어린 것이 벌써부터··· 쯧쯧”
지는 중학생 아닌가? 남학생들은 마치 연성이 들으라는 듯 대놓고 지껄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자기이상주의에 빠진 미친 작자들에 이기적인 관념을 떠올리게 했다.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싶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행이도 로제에 대한 폄하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원치도 않는 주목을 받으며 그가 교실로 입성했다. 역시 교실엔 로제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연성이 교실에 들어서자 남학생들 모두 연성을 노려보며 무지막지한 포스를 방출했다. 순간 연성은 움찔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제에 일 때문인지 로제를 보러온 그 인원수는 평소보다 꽤나 줄어있었다. 그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혜선과 길섭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왔니?”
“친구~ 드디어 왔는가? 그런데 오늘은 같이 등교를 안 하다니? 무슨 일 있나?”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꾸하며 메고 있던 가방을 풀고 자신의 자리로 가 앉는다. 옆자리엔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로제가 앉아 있었다. 어색했다. 이상 했다. 평소대로라면 벌써 연성에 팔에 매달려 애교를 피웠어도 남을 시간인데··· 둘의 사이가 왠지 서먹서먹했다. 길섭이 의아해 하며 중얼거렸다.
“왜 저러지?”
그 이유가 궁금해 길섭이 물어보려 했지만 옆에서 혜선이 그의 귀를 잡아당기며 행동을 저지했다.
“아야야야···”
“그만 둬.”
“왜 그래?”
고통이 느껴지는 귀를 어루만지며 길섭이 반박했다.
“저땐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좋아.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자리에나 앉아.”
유난히도 감이 좋은 혜선이 저 둘의 상황을 눈치 채고 멋모르고 나대려는 길섭에 행동을 미수로 그치게 하는데 성공했다. 길섭은 하는 수 없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때마침 수업준비를 시작하라는 종소리가 학교 내에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울리자 로제를 보기 위해 몰려있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잠시간 시간이 흐른 뒤 1교시 수업을 맞은 담당선생이 교실에 들어오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