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선 지금 난리도 아니었다. SBS든 KBS든 MBC등등 어느 프로에서든 일요일 아침에 발생한 초자연적 사태에 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출현 혹은 지구침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역설을 늘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공원이 있던 자리엔 거대한 구멍이 생겼으며, 지금 이 사건은 세간에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카메라와 수첩으로 중무장한 기자들이 벌 때처럼 들이 닥치며 특종이 될 만한 사건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TV에선 각 방송국에 기자들이 출동해 사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중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사건의 진상을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이 튀어나왔어요. 그 다음 들소모양의 거대한 불덩이가 솟구쳐 나오며 공원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어요··· 정말···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어요.”
아직도 정신에 후유증이 남았는지 공포에 사로잡한 얼굴로 더듬거리며 주저리 늘어놓는다. 그래도 이곳저곳에 붕대와 어깨엔 얇은 이불을 덮고 있는 걸 보니 경상정도는 입은 것 같았다. 기자는 건넸던 마이크를 도로 회수하며 간략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 사건을 벌인 주모자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외계인에 짓일 까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지구 종말이 지금 이 시각 현실로 드러나는 것일 까요?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폭발사고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 MBC뉴스 이 종철입니다.”
틱!
리모컨 전원버튼을 누르자 흐르던 전류가 뚝 끊기며 TV의 불이 나갔다. 그 후 한 여자의 비명의 가까운 절규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대체 너! 어쩌자고 저런 미친 짓을 벌인 거야?!”
로제가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휘저으며 분개했다. 사태가 점점 커져간다. 다행히 자신들의 얼굴이 표면적으로 노출되지 않아 용의자로 몰릴 일은 없지만 이 걸어 다니는 인간폭탄이 인간세계에 남아 있는 한 또 저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로제에 과격한 발언에 크리네스는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이며 말했다.
“난 단순히 부탁에 의해 일을 시행한 것뿐이다.”
“누구! 누구! 누구!!”
“아까도 말했듯 리틀레이디의···”
“그렇다고 대 학살용마법인 헬 바이슨을 공원 한복판에 싸되? 제 정신이냐? 돌은 것 아냐? 미쳤냐? 개념은 재대로 박혀있냐?”
그렇다. 헬 바이슨은 대규모 전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광범위 마법중 하나이다. 범위 마법 중 거의 최강의 파괴력을 지녔으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고위급마법이었다. 그런 고위급마법을 마을 한복판에서 남발하다니··· 만약 로제가 혼신을 다해 헬 바이슨의 파괴력을 최대한 도로 죽이지 않았다면 1Km 반경 내에 포함된 이는 모두 몰살이었다.
거의 죽다 살아난 것이다. 인정사정없는 발언에 크리네스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반성하고 있네. 그땐 나도 모르게 그만··· 이젠 걱정하지 말게. 더 이상 네가 미친년처럼 열심히 활동할 일은 없을 것이며, 살짝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검을 휘두르지 않게 하겠네. 그러니 안심하게.”
정상적인 답변이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더없이 진지하게 말하는 크리네스. 신경을 박박 긁는 저 발언···
그리고··· 안심하게··· 안심하게··· 안심하게···
어떻게 안심할 수 있을 수 있냐고!! 말이 돼?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하다 생각해? 크리네스의 발언에 로제는 울컥하며 스팀을 팍팍 뿜었다.
“이! 백날을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새끼야!!”
순간 로제에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그의 인영은 소파에 앉아있던 크리네스를 집어던져 땅바닥에 테이크다운 시키고 파운딩을 시도했다.
퍽퍽퍽! 퍼퍼퍽! 콰직! 뻐뻑!
“우우! 우욱! 으허헉! 로··· 로제··· 너무·· 아프다··· 우욱! 으컥!”
“죽어! 죽어! 죽어!”
급소를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 들어오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엄습해오는 고통에 신음하며 절규한다. 지옥의 고통. 반면 로제는 천국의 희열을 느끼며 난타하듯 휘몰아쳤다. 교육적으로 너무나 부 합리적인 광경을 두 눈 멀뚱히 뜨고 목격한 연성은 이 둘을 말리려 해보았지만 살기에 띤 로제에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고는 사태를 방관한다. 점점 로제를 닮아가는 연성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구타시간이 끝나고 20분의 시간이 지났다.
“아··· 으··· 죽겠네···”
로제에게 개잡듯 맞았던 크리네스는 팅팅 불어터진 얼굴을 해가지고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상태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알아듣기 쉽게 비유하자면 걸어 다니는 시체 -좀비라 봐도 무관했다. 로제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씩씩 거리며 성난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연성은 슬그머니 그녀와 거리를 좁히며 슬쩍 조용히 속삭였다.
“로제··· 그만 화 풀어라~ 응?”
“싫어! 안 풀어!”
“이런 분위기 정말 적응 안 돼··· 그러니 화 풀어라~”
남자의 애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애교는 굉장히 귀여웠다. 순간 로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로제에게 있어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크리네스의 대한 분노를 삭이지 않았다.
“못 풀겠어! 저 녀석! 오늘 완전히 끝을 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몰라!”
로제는 완고했다. 이때···
“로제··· 나 너 화내는 모습 더 이상 보기 싫어··· 내가 말했지. 넌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고···”
“여··· 연성아···”
살짝 감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연성이 쐐기를 박는다.
“그러니 웃어.”
이 한마디가 로제에 심금을 울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순간 그녀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으며 투명한 물로 변해버렸다. 로제는 품안에 연성을 꼭 끌어않으며 약간의 코맹맹이 소리가 가미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아잉~ 알아썽~ 화 안낼게에~”
로제에 품안에서 연성은 성공적인 미소를 띠었다.
“로··· 로제···”
크리네스가 힘겹게 말한다.
“왜?”
연성과는 사뭇 다른 어투로 대꾸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너의 성격··· 줏대 없어 보인다.”
로제에게 말한 말이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먹은 것은 연성이었다. 기껏 사태를 무마시키고 평화모드로 돌입하려 하는 찰나 그가 분위기파악 못하고 초를 쳐버린 것이었다. 저게 정말 생각 있는 사람 맞아? 기본적인 사고개념은 가지고 있는 건가?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된다. 충격을 먹은 연성도 연성이지만 자신을 향한 직설적인 발언에 로제에 안면이 극심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명 안면표피근육운동.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난이도 기술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녀는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앙칼지게 외쳤다.
“뭬··· 뭬야!!”
곧 폭력이 나올 이 상황에 크리네스는 짧게 답했다.
“미안하다. 용서해줘.”
톤의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말투. 전혀 용서가 되질 않는다.
“너 같으면!”
연성을 때 놓고 크리네스가 누워있는 곳으로 힘껏 도약해 주먹을 뒤로 물린다.
“용서가 되냐!! 지금 병 주고 약주냐!!”
팽팽했던 활시위가 펼쳐지며 크리네스의 복부로 빠르게 급속 하강했다.
슈아아악!
“로··· 로제! 미안하다.”
찜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공에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뻐억!
“커흐흑!”
이번에도 무방비상태로 타격을 입은 크리네스는 전에 입었던 데미지를 더해 완전 HP 제로가 되어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또 다시 혼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