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한번쯤은 실수를 하곤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태어나서부터 영재란 소리를 들으며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보다 높은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힘찬 도약을 하는 소년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길을 올바르게 걸어 나간다면 장차 커서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천재에게도 딱 한 번에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게 언제 일어날지는 확실치 않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 실수는 연인들의 사랑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더 주장하기 위해 보다 언성이 높아질 것이고 언성이 높아진다면 자연스레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짜증이라는 성질이 유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자연스레 파상으로 치닫게 되며 둘의 사이는 점차 벌어질 것이다. 두 손 놓고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있다면 둘의 사이는 백억 만 년이 지나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처참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쉽사리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건 어찌 보면 참담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로제와 다툰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3일 동안 자기 생활에 필요할 때 쓰는 단어 외엔 별다른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 이토록 심각해 질 줄이야··· 연성은 크게 용기 내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로제.”
“왜?”
“할 얘기가 있는데···”
“뭔데? 말해봐.”
자리는 마련되었다. 이제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면 상황은 자연스레 종결 될 것이다. 연성은 쭈뼛쭈뼛 거리다 이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신경 쓰이게 해서···”
“괜찮아.”
간략하게 답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연성은 자신의 이런 용기 없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자신이지만 이처럼 한심할 때가··· 그는 머리를 엉망으로 헤집고는 근처에 있는 리모컨을 붙들고 전원버튼을 눌렀다. TV에선 케이블채널에서 웃찾사가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방송이고 지금 하고 있는 행님아라는 코너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기지만 지금의 연성에겐 아무런 웃음조차 주지 못했다.
다음날 토요일.
전과 같은 상황이 연이어 일어난다. 로제는 연성이 먹을 아침식사만을 차려두고 먼저 집을 나섰다. 뒤늦게 일어난 연성은 세안 후 1층으로 내려와 로제가 차려준 음식으로 아침을 마쳤다.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생활. 즐겁지가 않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인데···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며 학교로 등교한다. 학교에 도착하고 2학년 7반 교실로 가니 먼저 로제가 와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로제를 보기 위해 많은 인원들이 모였지만 딱히 먼저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요 근래 로제의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했기 때문이다.
연성이 교실로 들어오자 낯익은 얼굴이 하나 나타나며 무언가 말했다.
“어이~ 연성~~ 대체 무슨 일이냐? 둘 왜 그래?”
다짜고짜 질문을 해오는 길섭. 궁금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커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떠벌리듯 애정행각을 펼치던 한천중 닭살커플이 요새 무지하게 조용해졌다. 싸운 것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속은 알지 못한다. 길섭에 질문에 연성은 대충 얼버무리며 받아넘겼다.
“아냐, 아무 일도 없어.”
“으···”
표정은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런 얼굴로 아무 일 없다고 지껄여 봤자 설득력 제로다. 둘의 사이가 어떻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1교시 수업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토요일. 일주일 중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교가 그렇든 토요일은 오전수업으로 마무리 지어지며 다음날은 빨간 날인 일요일이기 때문에 쌔가 빠지게 놀다 잠들어도 다음날 학교 갈 걱정이 없기에 마음도 편하다.
토요일의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시간이 금세 지나감과 같이 수업도 끝이 났고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집으로 가기위한 도약을 시작했다. 그중에 로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 학생회 일있지? 늦을 것 같으니까, 나 먼저 갈게.”
“응··· 그래.”
평소 같으면 끝날 때 까지 같이 있겠다며 성하를 부릴 텐데··· 로제가 사라지고 연성은 터벅터벅 걸음을 걸으며 학생회실로 향했다. 넓은 공간에 학생회실. 학생회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칠판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회장 한 월경이 보였고 그의 앞으로 대략 10여명 정도의 학생회임원들이 무슨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바로 한천미술제의 제본작업이었다. 전에 모두 끝내긴 했지만 몇 가지 오류가 있어 수정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수정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중 소 유경도 껴 있었다. 제본작업에 열중하던 유경은 연성을 발견하곤 활짝 웃으며 물어왔다.
“연성이 너도 하니?”
“응. 어찌 보니 그렇게 됐네.”
연성은 유경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수정해야 할 부분을 유경에게 지도받고 작업에 임했다. 그러기를 10분. 고요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던 유경이 입을 열며 연성에게 물었다.
“근데 있잖아··· 나 뭐하나 물어봐도 돼?”
“응? 뭔데?”
“저기 말이야··· 이런 거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로제하고 무슨 일 있었어?”
조심스레 그녀가 물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로제는 지금처럼 힘없고 조용하고 어둡지 않았다. 명랑하고 쾌활하며 얼굴엔 항상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근래엔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연성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유경이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어··· 어떻게 알았어?”
순간 제본 수정작업에 열중하던 손이 멈췄다. 유경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알지. 저번 그 사건 이후로 둘의 사이가 서먹서먹해진 걸 느꼈으니까.”
“······그래?”
“우리, 나가서 얘기할까?”
유경에 제안에 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좋아. 회장. 연성이 하고 나, 잠시 자리 좀 비우면 안 될까?”
회장의 허락이 필요하다. 한 월경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읽고 있던 경제신문을 밑으로 내리며 말했다.
“음··· 일찍 들어오도록.”
“알았어.”
그리고 다시 신문을 들어 읽기 시작한다. 유경은 연성을 대리고 학생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향한 곳이···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불며 오후의 나른함이 느껴지는 한천중학교 옥상.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유경은 옥상 난간에 설치된 펜스에 몸을 기대며 멀뚱히 서있는 연성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한 번 말해봐.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거야.”
“······”
“어서.”
유경이 독촉하자 연성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며 진상을 말해주었다.
“누나가 예상했던 대로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런 거야. 그때 그 일로 잠깐 다툰 적이 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착잡한 마음으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다.
“서로간의 의견이 엇갈렸구나.”
“뭐··· 그렇지···”
“하지만 서로 다투고 투정부리는 것도 사랑이 있으니까 가능 한 거야.”
“······”
“그리고 로제에 그 행동. 아마 너의 성격으로 그녀의 저돌적인 행동은 감당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그건 그녀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몰라. 강한 어필로 만인에게 증명하는 거지.”
“만인에게 증명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유경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만인에게 증명하다니? 뭘? 무엇을?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유경이 나서며 그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자신은 유연성. 바로 이 남자의 여자니까 날 넘보지 말라. 라고 증명하고 싶었겠지.”
“그 사실은 거의 다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그렇다.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소문으로 들어서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널렸잖아. 그리고 자신의 애정전선에 누군가 불청객이 개입하는 것도 원치 않으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 라는 뜻으로도 해석 할 수 있겠지.”
유경은 자신을 빗대어 말했다. 아마도 로제는 자신을 겨냥하고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인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 말한 남정네들의 일방적인 사랑은 로제에 성격으로 보건데 절대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때어내는 동시에 추종자들도 때어내는 일석이조의 수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경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입을 연다. 연성은 조용히 입을 다물며 경청했다.
“그런 행동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것 아니겠어? 사랑하니까 다른 사람들 눈은 신경 쓰지 않고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야. 그게 쉬울 거 같지만 굉장히 힘들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
“······”
“너 로제에게 화낸 이유가 정확히 뭐야? 그냥 그때 상황이 창피해서 화를 낸 거야?”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연성이 강하게 부정했다. 결코 그건 절대 아니었다. 좀 적응이 안 되기도 하고 때론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절대로 창피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유경이 의중을 물어왔다.
“그럼?”
“그런 일이 있으면 괜히 다른 여자애들한테 헤픈 여자로 취급 될까봐서···”
연성이 쭈뼛쭈뼛 거리며 말한다. 이에···
“풋! 푸핫핫~”
“가··· 갑자기 왜 웃어?”
연성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반박한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웃었다.
“푸핫핫핫~ 웃기니까 웃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보통 싸우지는 않는··· 아~ 맞다. 너 원래부터 말주변이 없었지···”
표현력이 부족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내세우기 힘들다. 그렇게 되면 자꾸 샛길로 빠져들게 되고 더 나아가 그게 상대방에게 잘못 인식이 된다면 결국 그건 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유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연성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가서 똑바로 전해. 너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을. 그리고 화해해.”
“······”
“분명 일이 이렇게 커진 대에는 로제에 잘못도 있겠지만 너의 잘못도 있어. 그러니까 화해하고 어둡고 무거운 고민거리로 가득한 너의 마음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비워버리도록 해.”
“누나···”
“내가 해줄 말은 여기까지. 이젠 네가 할 차례야. 회장에겐 내가 잘 전해줄게. 그러니 가봐.”
같은 중학생이면서도 유경은 성숙한 어른처럼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상적이지 못한 몸을 이끌고 학교를 나서기 시작했다. 연성이 사라진 후에도 유경은 옥상에 홀로 남아 펜스에 팔을 걸치며 반짝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밝게 빛나는 태양. 그 태양을 보면서 유경은 작게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