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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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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2.28 18:56:14 조회: 922 추천: 0 |
그것은
소녀의 모습을 한 채,
유유히 그들의 앞을 지나간다.
그녀를 막아서는 자는 없었다.
그녀가 보라색의 눈동자를 붉게 빛낼 때 마다,
앞을 막고서 '성채'를 지키던 사람들의 모습은 불타버린다.
'죽음'이 아닌, '소멸'.
그것은
소녀의 모습을 한 채,
'성채'를 향해,
유유히 그들의 앞을 지나간다.
.
.
.
.
.
.
the distress
-5-
"..."
소녀는 눈을 반짝인다. 나의 반응을 지켜본다. 스스로를 '마녀'라고 칭해버린, 보라색의 소녀는 즐거운 듯 미소를 짓는다. 다만, 그 아름다운 미소에 서려있는 것은, 천진난만 하지만, 잔인한 광기. 방금 전까지 그녀는 사람들을, '태웠다'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어떠한 방법을 통해 죽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는 보라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자색(紫色)의 눈동자를 깜박이며, 농담을 하듯이 대수롭지않게 말한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여러가지 가정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소녀는 그 특이한 외모로 주위에서 멸시당해, 결국에는 나와 같이, 마녀라는 미명하에서, 온갖 고통을 받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스스로를 '마녀'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그나마 현실적인 추리에 나는 그만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워 죽였다.'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재미없네."
소녀는 내가 어떤 반응을 하길 바랬던 것일까?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재미없음'을 솔직히 나타낸다. 미간에 힘을 주고서, 양 쪽 뺨을 부풀어 올리는 그 모습이 귀여워, 뒤늦게 '아! 세상에! 마녀였어요?!'하고 놀라는 척이라도 해주고 싶어졌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뭔가 말해보란 말이야. 다른 놈들 처럼 '살려주세요~'라던가, '전 맛이 없어요~'라던가..."
소녀는 장난스런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단순히 넘기자면, 그것은 그녀에겐 '우스운 말' 이었겠지만, 다른 식의 가정을 내리고있는 나에게는, '살려주세요.', '전 맛이 없어요.'라고 말했을 다른 사람들의 결과가 어떠했을 지가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다. 소녀는 내 앞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죽어라, 마녀...'라던가..."
소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휘어진 듯하게 느껴졌다. 그 귀기(鬼氣)에 나는 순간 적으로 온 몸의 모공이 꼿꼿히 서는 느낌을 받게되었다. 보라색의 눈이, 붉은 빛으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터라 확실하게 보았다. 광기에 뒤덮힌 눈에서, 그것은 무언가를 향한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적의에 가득차, 그것을 어디에 분출할 수 없어서, 그저 속으로만 삼키다, 어느 순간 분출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니, 방금 전의 그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다.
"아니예요."
소녀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까지 무엇에게 억눌려서, 참고, 참고, 참아왔던 것이다. 소중한 것을 가지기도 전에, 이 아이는 자신의 슬픔을 분노로만 표출하게 된 것이다. 이 소녀는, 정말 마녀(魔女)인 것이다.
"그건, 이름이 아니예요."
나의 말에 소녀는 놀란 듯이, -그것은 정답이라고 확신했던 문제를 틀린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나에게 되묻는다.
"어째서?"
정말 궁금한 듯한 얼굴, 자신이 '이름'이라는 단어에 부여한 뜻이 틀렸다고 말하자, 그녀는 화를 내기보다는,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를 알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의 행동이, 천진난만한 학생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기 때문에. 그녀의 말투가 너무 어울려서, 나도 웃음을 짓고만다. 그녀는 그런 나의 행동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불만스런 태도를 가진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며,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저도 '마녀'인걸요?"
"...너 진짜 재미없어."
소녀는 그 귀여운 얼굴을 찌푸린다. 눈썹이 위로 향한다. 어쩐지, 그녀가 화난 모습은 귀엽다. 놀려주고 싶은 짓굳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다. 갑작스런 시무룩한 모습.
"...그럼, 난 이름이 없는거네."
그것은 '풀수없는 문제에 직면한 수학자'나, '얕보고 있던 동급생에게 패배한 아이'의 모습이다. 보라색의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있다. 소녀의 표정은 아마 슬픔에 가득차 있을 것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그녀는 고개를 휙돌려버리고서, 무언가를 읽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책이 들려져있었다.
"저기."
힘이 빠진 목소리다. 소녀는 시선을 피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책을 읽기 위해서이지, '이름'의 존재여부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그녀는 잠시의 침묵 뒤에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타인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널리고 널렸잖아. 어째서 '이름'이라는 특별한 것으로 서로를 부르려하지? 구분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것을, 어째서 '이름'이라는, 별다른 규칙없이 만들어진 단어로 자신의 존재를 표시하는 거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을 수도 있잖아. 그건 '구분의 목적'이 아니라, '존재의 부여'에 가까운건가? 모르겠어, '죽어버린 자'에게 이름을 물어왔자, 대답을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름'이라는 단어는 소용없게 되어버려, 아무 의미가 없잖아. 아, 내가 어째서 인간에게 이런걸 묻고 있는거지?"
소녀는 말을 이어가는 도중, 갑자기 짜증을 내며, 나를 노려본다. 내가 타당한 대답을 해줄 것 같아, 기대에 가득찬 눈이다.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 짜증을 부리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모르겠어요,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이 아이가 하는 말의 반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알 것 같지만, 그것은 어려운 말이다. 나는 얼마되지도 않는 나의 지식으로 그녀의 말을 끼워맞추는 수 밖에 없다.
"'이름'이란 말이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이 소녀 앞에서, 나는 어째서 이토록 즐거운 것일까? 소녀의 눈망울이 나를 향해서 호기심에 빛난다.
"소중한 사람에게 불렸을 때, 그 의미가 있는 거랍니다. 당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이 당신을 불러줄 때, 그 사람은 당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름'이란 것은, 그 '특별한 존재'의 징표이지죠.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해도, 그건 당신의 소중한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사람'로 생각될거예요. "
갑자기 소녀가 일어섰다. 거친 움직임, 지금까지 보여주던 여유 넘치는 모습이 아닌, 무척이나 거친 몸짓이다.
"...주제에..."
"에...?"
"...인간 주제에...인간 주제에...누가 누굴 가르치는 거야! 채 100년도 온전한 구실을 못하는 생물이, 사물의 본질보다도 가치를 중시하는 생물주제에!"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표정으로 화를 낸다. 화를 낸다기 보다는 뭔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향한 경멸이다. 나를 노려보며, 그녀는 보라색 눈동자를 붉게 물들인다. 그 소름끼치는 '적의'에 나는 몸을 떨었다.
"넌 재미없는게 아니였어. 그래, 짜증나. 짜증나는 생물이야."
소녀가 보이는 태도는 부자연스럽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모습이다. 분노로써, 슬픔을 가려버리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녀는 화를 내고있지만, 울고 있는 것 같다.
"아아, 맞아. '예외'란 건 없어. 인간은 모조리 태워버려야해. 널 데려온 것이 잘못이였어."
"...없는거군요."
"...뭐?"
소녀는 멈칫한다. 정확한 의표를 찔렸던 것일까, 정말 무엇을 숨기려한다. 자신에겐 없는 것을. 타인을 인간이라 지칭하며, 필사적으로 숨기려하는 것을. 나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몰아세운다.
"소중한 사람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거군요."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보여주던 '적의'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멈춰버렸다. 순간 영혼을 잃어버린 듯이, 그녀는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내 시선을 피하며, 아래를 향한다.
"...시끄러워, 닥쳐..."
소녀는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나를 향해, 그것은 무엇일까? 소녀는 나에게 무엇을 하려한다.
"너따윈 재도 남지말고 사라져버려, 열화(烈火)에 녹아버려, 암화(暗火)의 불길에 갈갈히 짓이겨져버려!!!"
동시에, 뒤쪽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어째서인지, 주위가 붉다.
"아니, 취소야...그만둬! 그만...!"
소녀는 갑자기 '앗차'하고,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그만두려한다. 스스로 되새기며, 그것을 취소하려한다. 나에게 무엇을 하려했을까? 소녀는 필사적이다. 눈을 질끈감고, 그것을 그만두려한다.
[콰아앙!!!]
그러나, 너무 늦은 것일까?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이 폭발은 소녀가 일으킨 것일까?
"아..."
나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의 폭발이 저너머의 벽을 날려버린 것이 아니라, 내 앞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으리라.
"하아...하아..."
나를 향하고 있었던 소녀의 오른팔은 어느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있다. 필사적으로 취소하려 했지만,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폭발의 방향을 바꾸어서, 내가 아닌 벽을 터트린 것이다.
"너."
"...에?"
"이름이 뭐지? 너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름'말이야!"
소녀는 자신에게는 없는,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할 그것을 나에게 물어온다.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해온다. 그 당당한 모습에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캐서린."
나는 자랑스럽게 이름을 말했다.
"캐서린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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