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무사부이자 천하제일오검수의 일좌를 지닌 매화질풍검[梅花疾風劍] 유진환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어느 한곳을 향해 거침없는 활주를 시도 중이었다. 강직한 이목구비에 왼쪽 뺨에는 검상이 있어 더욱 강한 이미지를 풍겼고 오른쪽 가슴에 매화문양이 새겨진 청의 무복을 입은 그의 전신에선 기백이 흘러넘쳤다. 그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달려간 곳은 화산의 제자들이 묵고 있는 월음관[月陰館]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월음관에 도착한 그는 왼쪽 맞은편에 위치한 문 앞까지 다가가 무거운 걸음을 멈추고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쿵!
「 누구세··· 헉! 무사부님. 」
「 대체 어찌된 일이냐! 」
문을 박차고 들어온 유진환은 인사 생략하고 본론부터 간단히 말했다. 환권의 사제들은 진환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기겁했고 허벅지에 붕대를 칭칭 감은 환권은 고개를 들지 못하며 작게 뇌까렸다.
「 면목 없습니다. 아버지. 」
질풍검 유환권의 모습이 이렇게 비참하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화산의 제일 기재로 손꼽히는 그는 1년 후에 열리는 화산지구대회에 대표로 발탁된 실력이 출중한 아이였고 이 젊은 나이에 검향지경[劍香之境]이라는 놀랄만한 경지에 이른 절정고수로 구파에서도 총망 받는 인재였다. 자신의 자랑이자 화산의 자랑인 유환권이 같은 나이 때로 추정되는 한 여인에게 단 이초 만에 승부가 판가름 났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만년철로 만들어진 가문대대로 내려오는 청월검의 검신은 지옥의 겁화와 맞서 싸웠는지 검신의 반이 녹아 검의 인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유진환은 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며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첫 패배를 쓴맛을 맛본 환권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으며 온화한 말투로 위로를 해주었다.
「 너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만, 그렇게 낙담할 필요는 없단다. 넌 또 하나의 벽을 맞이한 것이다. 그 벽을 넘어서는 순간 너는 지금보다 더욱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청월검은 화산검장에게 맡겨 놓을 테니, 우선 건강에 신경 쓰도록 하거라. 」
「 ···예. 」
「 그럼 편히 쉬면서 상처회복에만 열중해라. 그리고 너희들은 권이를 옆에서 잘 보살펴주고. 」
아들에 대한 자상함이 묻어나는 말투에 세 명의 사제들은 당차게 대답하며, 포권취례를 하였다. 유진환은 방에서 빠져나와 넓은 공터로 나왔다. 자신의 아들 정도에 실력을 간단히 제압한 여인이 대체 누굴까? 유진환의 머릿속엔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흘러 다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작게 읊조렸다.
「 홍익[紅翼]. 」
그가 부르자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그 바람 속에서 굉장히 저조한 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부르셨습니까? 」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공간이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집중을 하고 보지 않는 이상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고수인지 능히 짐작 할 수 있었다. 유진환의 심복이자 분신인 홍익은 자신의 주군의 부름이 들리자 은신을 풀고 부복을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달라붙는 타이트한 검은 예복을 차려입고 부복을 하고 있는 홍익은 고개를 조아렸다.
유진환은 여전히 하늘을 주시한 채 조용히 입을 땠다.
「 아들에게 패배를 안겨준 소저의 행적을 찾아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장문인과 원로님들도 그 소저의 얼굴을 보고 싶다 하시니 말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구요. 그대의 실력이라면 간단한 일이겠죠? 」
「 간단한 일입니다. 」
「 그럼 부탁합니다. 」
「 존명! 」
홍익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햇볕에 그을리는 유진환의 그림자 속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환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입가에 작은 호선을 그렸다.
「 세상은 넓구나. 」
섬서성[陝西省] 여산[驪山].
섬서성 서안부에 위치한 산이다. 여산, 회창산이라고도 하며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크리제는 산기슭을 따라 목적지 없는 행보를 계속했다. 걸음을 걷는 와중에도 수차례 본부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여전히 불통이었고 리퍼런스를 작동시켜 500킬로 이내의 레이더망을 펼쳐 ES윈도우가 발생된 곳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녀는 걸음을 걷던 도중 알이 위험신호를 감지하자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주시했다.
- 11시 방향에 리스크를 감지. 액티브모드로 전환하시겠습니까? -
「 적의 직접적인 움직임은? 」
- 레이더에 감지된 적의 언동을 살펴보면 공격의 의사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량의 무기를 몸속에 소지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니 디펜시브를 작동시키겠습니다. -
「 OK. 」
그녀의 몸 저변에 보이지 않는 필드가 형성됐다. 디펜시브 매트릭스는 다방면에서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시켜주는 필드였고 그 힘을 역으로 되돌리는 리턴이 작용하기 때문에 상당히 뛰어난 방어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크리제는 오른손을 뒤로 물려 홀스터에 가져갔다. 적이 공격의사를 보일 즉시 발포하겠다는 의지표현이었다. 이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굉장히 저조한 톤의 음성이 크리제의 귓전을 살며시 울렸다.
「 그대와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살의를 거두시죠. 」
「 살의? 그 낱말의 뜻은 잘 모르겠다만 공격의사는 없어 보이는군. 」
「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온 것이니 잠시 저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전에 이와 같은 상황을 실제로 격어본 적이 있다. 비록 언행과 언사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앞을 가로막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비슷했다. 그녀는 전에 자신에게 호되게 당한 유환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떠올렸다. 메모리칩에 확실하게 저장되어 있는 그 남자는 ‘귀찮은 녀석’으로 분류된 남자였다. 크리제는 여전히 디펜시브는 풀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맞았다.
「 이야기는 들어보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
- 마스터. 저자는 위험합니다. 감지센서도 저자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 저자가 이상행동을 할시 나노머신의 힘을 40%까지 개방한다. 」
- 라져. -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평균적인 체격을 가진 남자가 허공에서 떨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홍익이었다. 유진환의 뒤를 보좌하고 있을 땐 항시 검은 예복으로 전신을 뒤덮고 있지만 주군의 명에 의해 다른 이를 안내할 땐 예를 갖추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짧은 헤어스타일에 짙은 눈썹과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창공을 비상하는 한 마리의 늘름한 매처럼··· 그의 전신에선 은은한 매화향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매화는 독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건 살기였다.
홍익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크리제 또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며 예를 갖췄다. 이 세계에 와서 많은 걸 배우는 크리제였다. 홍익은 자신의 무거운 입을 때어 간단명료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했다.
「 저의 이름은 홍익이라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주군과 화산의 어르신들이 소저를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와 화산에 같이 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 화산? 그 멍청한 놈이 속한 그곳 말이냐? 」
「 멍청하다라··· 그분의 자제이신 유환권도련님은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신 무인이십니다. 그런 망발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홍익이 보이지는 않지만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크리제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목적에 대해 물었다.
「 흠··· 듣기 거북했나? 그건 그렇고 날 그곳으로 대려 갈려는 이유가 뭐지? 」
「 화산의 어르신들이 그대의 고강한 무위를 견식 하고자 하십니다. 」
「 그것이 전부인가? 」
「 그렇습니다. 」
크리제는 생각했다. 딱히 저자를 따라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의 생각은 틀렸다. 저자는 아주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만약 저 홍익이라는 자와 싸운다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각오로 싸워야 했다. 알은 그것을 감지하고 위험하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제의 생각은 달랐다. 힘겹지만 못이길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홍익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마땅히 할 일도 없으니,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 마스터··· -
알이 다급한 어투로 말했다. 크리제는 알이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한 음성으로 알에게 속삭였다.
「 괜찮아. 날 믿어. 」
- ······라져. -
알은 자신의 마스터에 행동에 따르기로 했다. 크리제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자 홍익은 낮은 웃음을 띠며 그녀를 화산으로 안내했다.
「 감사합니다. 화산의 어르신들도 기뻐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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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는 가져다 붙이는 식으로 썼으니 그거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말아주세요..ㅠ.ㅠ
[신]SC
중얼중얼…。
2006-02-18 18:12:39
궁
화산파와 함께하게 되는건가
2006-02-19 11:13:46
넘어지다
실질적으로 몸을 조종하는 건 알인가요?
크리제가 명령을내리면 능력을 실행시켜주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나중에 알이 크리제의 정신을 먹을 것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