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너와 나 사이에 그런 우습지도 않은 관계가 성립되는 거지? 어째서 내가 네 주인님이라는 거야?」
「클로에를 구해주셨으니까요」
클로에는 별 걸 다 묻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남이 보았더라면 때 묻지 않은 소녀의 호기심어린 표정을 보았다고 말하겠지만 루시안으로서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클로에가 새침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여 얄밉기까지 했다.
「그거 간단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야. 구해줬으니 충성을 바친다는 거지? 하지만 말야, 난 널 구한 기억이 없어」
클로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려 보였다. 묘하게도 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급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 주었다. 루시안은 마음을 차분히 갖고 클로에의 대답을 들어보기로 했다.
「클로에를 깨워주셨잖아요?」
겨우 가라앉았던 루시안의 마음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구한 거랑 깨운다는 건 상당히 다른 거야! 눈 덮인 산에서 얼어 죽기 전에 깨워주는 것 외에는 깨우는 것은 절대 구하는 것이 될 수 없어! 게다가 난 널 깨우지 않았어. 우연히 고대유적에서 우연히 함정에 걸렸는데 우연히 그 함정이 비밀 공간으로 통해 있어서 우연히 네가 있는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는데 우연히 네가 그 때 깨어난 거야.」
루시안은 ‘우연히’ 란 말을 강조하여 ‘난 절대 너를 구한 적도 깨운 적도 없다. 그러니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 두고 네 갈 길 가라.’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클로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그건 루시안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주인님이 오셔서 클로에가 깨어날 수 있었던 거예요」
주인님이라는 소리에 루시안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위그든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기에 그러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낮게 소곤거렸다.
「제발! 그 주인님이라는 단어 좀 말 안하면 안 돼?」
「클로에는 주인님을 따라야 해요. 그러지 못하면 클로에는……」
갑자기 클로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루시안은 갑작스런 클로에의 반응에 당황하여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요상한 자세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러지 못하면? 어……, 어떻게 되기라도 하는 거야?」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클로에는 주인님을 따를 거예요」
루시안은 반쯤 의자에서 일어난 자세에서 클로에의 맥 빠지는 대답에 털썩 주저앉다가 그만 의자와 함께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