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다시금 평화로운 날이 찾아왔다. 어제 일로 인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던 엄마는 해외로 아빠는 본사로 다시 출근하였다. 연성은 지금 학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방에 와서 교복을 입은 뒤 1층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엔 아침마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차려주는 로제가 간단하게 먹어도 될 아침을 진수성찬 못지않게 차려놓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식사를 권유하며 입을 열었다.
“맛있을 거야. 즐겨.”
“응, 그래.”
로제의 음식 솜씨는 수준급이다.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차려놓으면 뭐부터 먹을지 고민부터 하게 된다. 이때 로제가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연성이 입가로 가져가 앙증맞게 입을 열었다.
“아앙~”
“윽··· 내가 먹을게···”
“싫어~~ 빨리 아앙~”
“그러니까 내가···”
올록볼록한 닭살이 두드러기처럼 솟아오를 것 같은 분위기를 적응하지 못하고 연성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솔로 인생 15년에 여자가 자신의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는 것은 너무나 생소하고 적응 안 되는 일이 분명했다. 그래서 거부했다. 하지만···
“우···”
볼을 크게 부풀리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획 돌렸다. 삐졌다. 삐진 게 확실하다. 그는 상황에 맞게 처신하기로 했다. 끝까지 거부하다간 로제가 화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먹을게, 먹을 테니까 부풀린 볼은 좀 집어넣어.”
덥석.
오물오물.
“맛있지?”
끄덕끄덕.
음식을 씹고 있던 터라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맛있긴 맛있었다. 고기를 오물오물 잘 씹어 식도 너머로 넘기고 손을 움직여 다른 음식을 먹으려는 찰나···
“아앙~”
그녀의 손길이 연성에 입 쪽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고기가 아닌 고슬고슬한 쌀밥 위에 잘 덥혀 있는 매운 양념으로 조리된 두부였다. 연성에 입에 쏙 들어갈 만큼 아담한 사이즈의 숟가락은 밥과 반찬을 동봉해 연성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앙~~”
입을 열라는 신호가 전달되어 왔다. 부담스러웠지만 입을 열지 않고 그녀의 뜻에 따라주지 않으면 분명 그녀는 화낼 것이 분명했다. 이것도 사랑이야! 하면서 말이다. 그는 별수 없이 입을 열어 숟가락의 입장을 허락했다.
덥석.
오물오물.
“맛있지?”
끄덕끄덕.
그렇게 둘의 화목하면서 부담스러운 아침식사는 계속 됐다. 연성은 그날 아침을 자신의 손으로 먹지 않았다. 밥이다, 반찬이다, 물이다 해서 로제가 손수 모두 떠먹여주며 황제보다도 더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아침식사를 끝낸 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로제는 현관까지 학교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해주었다.
“잘 다녀와. 동네를 미친 듯이 휘젓고 다니는 개새끼 조심하고~”
“아··· 그래.”
언급했다시피 그 멍멍이 발광사건은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연성은 경기도에 산다. 집을 나서며 학교를 향해 곧장 출발한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대 로면 지각이야!!”
연성은 보폭을 넓게 벌리며 빠른 걸음으로 질주했다. 이때 어제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비록 네가 몸이 약해도 남자로 태어난 이상,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이상 책임감 있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넌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해 질 수 있는 거야.’
아버지는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저 세월이 흘러 단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 몸의 성장과 함께 마음도 생각도 더 어른스럽게 성장해 가는 것을 아버진 바라고 계신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보답할 길은 오직 하나.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자.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을 넓게 볼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리고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남자. 연성은 피식 웃어 보이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나직이 입을 열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게요.”
그렇게 다짐하며 앞을 향해 질주했다. 호흡을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넓은 보폭으로 가는 것이 지금의 연성에겐 뛰는 것 보다 빠르다. 남편을 학교로 떠나보내고 집안에 혼자 남은 로제는 부엌으로 돌아와 비워진 그릇을 정리하고 음식이 있는 그릇은 렙으로 잘 동봉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음식을 담아두기 위해 썼던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물을 틀어 뽀드득, 뽀드득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 물기를 털어내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두었다. 삼일 하는 거 치곤 굉장히 능숙한 솜씨였다.
설거지를 끝낸 로제는 부엌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TV나 보다 자야겠다.”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 TV를 키려고 리모콘에 손을 대려는 찰나 어젯밤 시어머니가 업무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 했던 말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나 대신 연성이를 잘 부탁 한다··· 내가 없을 때 연성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시어머니가 했던 이 말이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 로제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생각했다. 잘해야겠다고···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당당하게 외치며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걱정 마세요! 확실하게 책임질 테니까!”
더욱더 사랑으로 감싸주어야겠다고 로제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TV에 넋을 놓고 시청하였다.
<내 사랑스런 아내> 현실감각이 부족한 나(完)
니네집
크크크 1등이군하~~
요번글은 짧네요...;
아, 너무 부러운데요..
2006-03-13 21:24:11
하루세번
벌써 완결 난거에요!? 헉 쿠로사마님 너무해 ㅠㅠ
2006-03-13 22:39:46
쿠로사마
니네집// ㅎㅎ 저도 이런 부인을 ㅋ
하루세번// 완전히 끝을 낸건 아닙니다. ㅎㅎ.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에피소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