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 모 고등학교 별관 3층에 위치한, 음산한 기운 탓에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한 부실이 있다. 부실의 이름은 ‘탐구부’ 부의 이름 탓에, 가뜩이나 오지 않는 사람들이 그곳을 더욱 찾지 않는다.
그런 부실에도, 오는 사람은 있었다.
「와? 내는 그런 철…… 하여튼, 그 철 뭐라카는 그런 거 하면 안 되나? 그래, 철혈! 철 뭐시기가 철혈 맞제?」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형적인 만년 꼴찌의 순수한 부산 소년. 그는 친구들의 ‘무식쟁이에 등치만 큰 곰새끼’라는 발언에 ‘탐구’ 부서에 온다. 물론, 철학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천하의 바보 천치다.
「왜? 이곳이 잠들기에도 좋고, 조용하고, 무엇보다 남 관섭 같은 거 안 받아서 좋잖아?」
서울에서 전학 온, 대가리는 회색으로 물들고, 잠자기를 하루의 일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양아치. 그는 조용하고 포근하고, 그리고 편안한 잠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물론, 그는 애초에 이 부실 이름이 ‘탐구부’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왜? 탐구. 좋잖아? 주제도 철학적이고, 무엇보다 눈에 확 띄잖아? ……다만, 부실이 눈에 안 뜨일 뿐이지.」
순수 부산 사람임에 불구하고, 유창한 표준말을 구사하는, 이 탐구부의 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나, 세간에는 사이코로 알려져 있음. 부를 개설한 목적은 자신만의 개성을 위해. 물론, 뒤의 변명을 봄으로써 알 수 있는 사실, 그는 늘 자신감이 없다.
「왜죠? 내가 이곳의 학생이라 불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올 수 없나요? 나 역시, 지구의 언어로는 탐구라는 목적을 가지고 지구에 온 거예요.」
간단한 말을 무진장 길게 늘어트리는,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대는 미소년 외계인. 그는 자신의 행성 ‘#(*&#*($#($&!-외계인 언어는 해석 불가능-’에서 지구의 조사라는 임무를 받고 지구에 온 것이고, 그가 맨 처음 알게 된 지구의 단어는 탐구다. 물론, 우주선이 불시착한 곳이 탐구부의 부실이다.
「왜, 왜라니? 아, 저기, 그게, 에, 그러니까, 어, 으, 그……. 나도, 그 탐구부에 들어가고 싶은데…….」
말을 잘 더듬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그래도 탐구부의 유일한 홍일점. 소심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 역시 부장과 마찬가지로 표준말을 구사한다. 가끔, 흥분할 때 사투리가 튀어나오지만. 그녀는 탐구부의 조사를 위해 학교에서 파견된 비밀 요원이다(자칭). 물론, 제비뽑기로.
“자, 좋다. 오늘의 탐구 주제는……. 이거다! ……해도 돼?”
“누가 그딴 거나 하려고 이곳에 온 줄 알아? 난 잘래.”
“그, 그게 뭐꼬? 난 도대체 모르겠는데. 뭔 꼬부랑글자가 요로코롬 난리를 치냐?”
“저 역시, 아니, 저가 아니라 나인가? 여하튼, 아니지. 어쨌든, 어어, 똑같은가? 아니, 아니. 저도 그 뜻을 모릅니다. 역시, 지구의 언어, 언어가 맞습니까?”
“아, 저, 그, 에……. 재밌어 보이는 주제네…….”
뭐, 어찌됐든, 그들의 탐구는 1화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언제 될지는, 나도 모르지.
-Intro The end-
1. 모두 모여야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아, 아무도 없나?”
천하의 바보 천치 소년, 준혁은 그 말과 함께 ‘탐구부’라고 써져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의 바람대로, 부실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준혁은 한숨을 동반한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음산한 기운을 뿜어대는 한 시선과 마주쳤다. 준혁과 마주한 시선의 주인공은 회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데다(분명히, 이 고등학교는 확실하게 두발 규정이 되어 있다) 입고 있는 교복 역시 제대로 입고 있지 않았다. 준혁은 생각했다. 눈앞의 있는 사람은 한마디로 생 양아치라고.
눈길을 무시하고 돌아선 순간, 누군가의 손이 턱하고 어깨에 올려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손이 이어진 팔로 시선을 옮기고 거기서 어깨로, 그리고 턱선, 마지막으로 눈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다. 양아치다.
양아치는 준혁의 어깨에 손을 놓은 채 말했다.
“여기에 볼일 있어서 온 거 아니냐?”
양아치의 말이 자신이 평소에 쓰는 말과 달랐다. 억양이 세지 않다. 그리고 빠르지도 않다. 게다가 길고. 전형적인 부산 사투리가 아니다. 준혁은 머릿속에서 이 학교에 서울 말, 그러니까 표준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생각은 약 3초 정도 걸려 해결을 보았다.
약 한 달 전,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양아치 한 명. 아마도 그놈이 이놈이겠지. 준혁은 생각했다. 나름대로 깔끔한 결말을 냈다고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던 준혁의 귀로, 시선과 동급의 음산함을 자랑하는 양아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대답이 없어?”
양아치는 고개를 젖히고 한쪽 눈을 살짝 감은 채 하품을 했다. 볼썽사납게, 입까지 크게 벌려가며 쩝쩝대는 행동도. 준혁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양아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겁게만 느껴지는 입을 재차 움직였다.
“어이. 무슨 일로 왔냐니까?”
그제야, 준혁은 입을 열었다.
“이, 입부 문제로 왔는데…….”
“…입부?”
양아치가 꽤 놀란 눈치로 준혁에게 묻는다. 준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어. 니가 여기 부장이가?”
짧은 대답을 하고, 준혁은 양아치를 향해 물었다. 양아치는 여전히 놀란 기색으로 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양아치로서는, 이 광경이, 그러니까 누군가 이 빌어먹을 부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목을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아니, 부장은 아닌데. 부장이란 녀석은 아마…….”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그의 시야로 들어온 시계의 눈금은 작은 바늘이 6, 큰 바늘이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양아치는 시계에서 눈을 떼고, 다시 준혁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10분 뒤에나 올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양아치는 이미 열려져 있는 부실의 문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준혁의 귀로 부실로 들어가 버린 양아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서 좀 기다리지 그래? 궁상맞게 밖에 서있지 말고.”
준혁은 그 말에 선뜻 ‘응!’하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들어가면 양아치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압박감에 숨이 막혀 올 것만 같다. 방금 전만 해도 그 요상한 분위기에 한없이 위축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추운 겨울 날씨에 몸을 맡긴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다는 것 역시 우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뭐, 별 수 있나. 준혁은 피식 웃고 살짝 열려져 바깥 공기의 유입이 허용되어버린 부실의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양아치는 부실에 놓인 목재 탁자에 고개를 파묻고 잠을 자고 있었다. 준혁은 그 광경에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러면서, 어깨, 몸, 다리의 순으로 천천히 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저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양아치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부실 문이 오래된 탓에 끼익하고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났다. 준혁은 즉시 문을 끌어당기던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양아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양아치는 여전히 고개를 파묻고 단잠에 취해 있었다, 라기보다는 그렇게 보이는 듯 했다. 준혁은 낮게 한숨을 내뱉고 이번엔 그 소리가 나지 않게 힘을 주어 그대로 닫아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쾅하고 금속끼리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실수다. 문을 닫는 팔에 힘을 너무 많이 주었다. 준혁은 이번에도 최대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양아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아치는 자고 있었다. 아니, 이번에도 그렇게 보이는 듯 했다.
준혁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발을 옮겼다. 혹여나 양아치가 잠에서 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동반한 채. 다행히 비어있는 의자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양아치는 깨지 않았고, 준혁은 두근거리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그는 반사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흐아. 죽겠다.”
그렇게 말하고, 양아치를 쳐다본다. 역시 양아치는 깨지 않았다. 또 한 번 입가에 걸리는 미소. 그러던 중 문득, 준혁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왜 그토록 양아치에게 신경 쓰며, 왜 양아치의 분위기에 압도되며, 왜 반사적으로 양아치를 향해 고개가 돌려지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다지 고민한 가치도 없는 그런 것이었지만, 준혁은 나름대로 중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준혁이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자빠져 자는 양아치마냥 탁자에 고개를 떨어트리는 순간, 부실의 문이 예의 끼익하는 소리를 동반하며 열렸다. 준혁의 고개가 자연스레 문 쪽으로 향했다. 준혁의 시선이 향한 곳, 문 사이로 스커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준혁은 생각했다. 여자다.
복도에 일던 차가운 공기가 부실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스커트의 끝자락이 살랑거렸다. 스커트의 주인은 그런 스커트의 끝자락으로 손으로 잡으며 천천히 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일반 스커트라 생각했던 것은 위에 입고 있던 상의를 보고 교복 치마인 것을 알았다. 이윽고 신체의 모든 모습이 그의 시야로 들어왔다.
부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곳, 학교의 여학생이었다. 준혁은 부실 안으로 들어온 여자의 생김새를 둘러보았다. 머리는 짧은 단발머리. 교복은 깔끔한 그 자체. 가슴 부위에 달려있는 노란색 이름표. 1학년. 준혁은 여러 생각과 함께 연신 여학생을 관찰했다. 그때, 준혁의 관찰 대상이 되어버린 여학생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여학생의 말에 준혁은 제 발 저린 도둑마냥, 몸을 흠칫 떨었다. 얼결에 시선을 옮기니, 여학생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시선이 마주치게 되자 준혁은 아까보다 더 흠칫했다.
“저…….”
다시 여학생의 입이 움직였다. 준혁은 어지럽혀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되도록 침착한 모습으로 자신을 부른 여학생을 향해 말했다.
“무, 무슨 이, 일인 데?”
물론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은 전혀 침착해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하지만 그런 준혁의 행동에도, 여학생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저기, 그게……. 여기 이 부……. 지금 입부……. 되나요?”
나름대로 침착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학생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준혁은 그녀가 한번에 말하지 않고 계속 말을 질질 끌고, 말꼬리를 흩트리자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도 그렇게 당당한 어투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눈앞의 여학생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준혁이 마음속으로 흉을 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학생은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을 했다.
“저, 그러니까……. 입부가 안 되면 갈 테니까……. 아니, 아니……. 그게 저…….”
준혁은 자꾸만 반복되는 ‘저, 그게, 그러니까’라는 말 탓에 여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저 답답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정말 못 봐주겠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준혁이 책상을 탁 치며 일어섰다.
“니.”
준혁이 여학생에게 시선을 주며 말하자, 여학생은 당황했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별것에 다 놀란다, 라고 생각하며 준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할 말 있으면 그렇게 뜸들이지 말고 퍼뜩 해라. 뭘 그렇게 우물쩡거리노?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하다.”
양아치와 대면했을 때와는 아주 정반대의 상황. 그때의 자신 역시 저 여학생처럼 자신을 두려움이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을까? 음, 두려움이 가득한 눈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학생은 준혁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가까스로(준혁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입을 열었다.
“……여기 부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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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인트로에서 보셨듯.. 연재주기 is 불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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