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덮고 있던 이불을 냅다 걷어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입고 있는 잠옷을 흥건히 적셨다. 한참을 가픈 숨을 몰아쉬던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커튼을 걷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 환했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빛을 가로막았다.
그러고 있기를 5분. 눈이 빛에 익숙해 졌는지 남자는 손을 내리며 바깥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학교로 가는 학생들과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회사로 출근하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매일 보는 광경이라 생소하지 않지만 저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너무 부러울 따름이었다.
남자는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려있다. 병명 또한 알 수 없으며 치료방법도 없다. 일확천금의 거액을 들인다 해도 남자의 병은 고칠 수 없다. 자신은 시한부 인생인 것이다. 죽음이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지만 언제고 죽을 것이다. 남들 보다 빠른 시간에···
“후우···”
남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뒤로 뻗었다. 그때···
물컹~
무언가 느껴졌다.
“뭐·· 뭐지? 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마치 젤리 같이 탱탱하고 부드러우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무언가가 남자의 손에서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감각.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남자는 손을 움직여 보았다.
이상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침대 옆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순간 변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여고생이 길거리에서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 짓는 표정이랄까? 그는 황급히 손을 때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낯··· 낯선 사람이다!! 남자는 놀랐다. 기겁했다. 당황했다. 황당했다. 그가 살아온 세월 15년 동안 자신과 합방을 이룬 여자는 단 한명, 바쁘신 업무로 인해 해외출장을 가신 어머니뿐이다. 집안이 떠들썩하게 울리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번 씩 쳐다보고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갈 길을 걸었다.
거의 청각박살신공 수준의 비명소리는 여인의 단잠을 깨워놓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여인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허리까지 뻗어 내린 붉은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상체를 뒤덮었고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레이스가 농후한 색기를 발했다.
게다가 입고 있는 레이스가 반투명이라 자세히 보면 속이 비췄다.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너무나 요염한 자태를 뽐내던 여인은 방긋 웃으며 남자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머리 위로 피가 거꾸로 쏠려 얼굴엔 붉은 홍조가 가득했고 관자놀이가 거세게 뛰며 심장이 파열될 듯 거세게 요동쳤다.
으아! 미치겠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아니, 여자와 이렇게 단 둘이, 그것도 한 침대에서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남자는 황급히 여자와 거리를 둔 뒤 본능적으로 이불을 들어 몸을 가리며 더듬거리는 어투로 여자에게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왜, 제 침대에 있는 거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말투로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물음에 여인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식으로 가볍게 대꾸했다.
“부부니까 당연히 한 침대에서 자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리고 그 행동은 여자가 취할 행동 아냐?”
확실히 그랬다. 지금 남자가 취한 행동은 엄연히 여자의 행동 중 하나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사소한 거에 개의치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의 정체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는 여전히 더듬는 투로 말하며 취조하듯 물었다.
“부··· 부부라뇨? 전 15세입니다.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전 당신을 오늘 처음 보는데···”
“뭐? 처음? 이게 아직 잠이 덜 깼나?”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고 너무나 섹시하고 보였던 여인의 인상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한방 먹일 기세였다. 남자는 순간 흠칫했다.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아름답지만 그만큼 무서운 여자.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자신의 볼을 좌우로 잡아당기며 욕설을 퍼부었던 여자.
여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생각났다. 남자는 조용히 읊조렸다.
“꿈이··· 아니었던가?”
“꿈? 꿈이라니? 너, 아직 잠이 덜 깼구나. 현실감각이 부족한걸 보니 말이야.”
여인은 관자놀이 부근을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무능한 남편을 둔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일까? 마누라 얼굴도 기억 못하는 남자를 뭐가 좋다고··· 여인은 그렇게 생각하다 그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작게 말했다.
“이러면 기억할라나?”
“에? 읍!”
여인의 입이 남자의 입과 서로 포개어졌다. 순간 남자의 뇌리 속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달콤하게 남아있는 키스의 감촉. 이거였나? 왠지 모르게 황홀해 지는 기분을 느낀 것이? 남자는 생각했다. 그럼!
그것이 꿈이 아니었단 얘긴가?
“이젠 기억해?”
포개어 졌던 입을 때며 여인이 말한다. 그녀의 얼굴에 작은 홍조가 맺혔다.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화나면 무섭지만 웃으면 천사 같았다.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의 자태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엔 충분했다. 여인은 아직도 황홀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편에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이제 정신 차려. 그리고 그렇게 좋았어? 나와의 키스가?”
“······”
남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물론 자기가 원해서 묵비권을 행사한 것은 아지만··· 여인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씻으러 가야겠다. 같이 씻을래?”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거부의사를 표했다. 더 했다간 자신이 정말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내 고귀한 자태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그러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남자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주루를 이루며 남자의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던가? 꿈이! 분명 꿈이어야 했다. 하지만 꿈에서 여인이 자신의 볼을 잡고 흔들었을 땐 분명 통증이 있었다.
그러면 현실? 난 현실 자각부족? 이해하기 힘들다. 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하늘에게 물었지만 답해주지 않는다. 마음에게 물었지만 답해주지 않는다. 그는 여인이 훔쳐갔던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살짝 가리며 뒤늦은 후회를 시작했다.
“나··· 나의 첫 키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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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힘들군요...
니네집
제발 중도하차 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재밌게 보고 있어요 다만, 원하는 점이 있다면
좀 더 글이 길었으면 좋겠어요.
